바낭) 슬픔

2012.05.03 04:26

조금오랫동안익명 조회 수:1555

한달이나 된 일이에요. 혹은 한달밖에 되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요. 이제와서 글로 마음을 풀어낼 기운이 생기나봐요. 이렇게 조금씩 잊혀져가는, 덜 슬퍼져가는 것 같아서 또 착찹하네요.

한달전에 고양이가 죽었어요.

저는 지금 사정상 해외에 나와있는데, 그 사이에 늘 몸이 약하던 큰아이가 가버렸어요. 두마리를 키우는데 큰애 몸은 언제나 약했죠. 성격도 예민했고요. 친해지기까지도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도 적으려니 다시 마음이 저리고 힘들고 아파요. 정말로 아파요.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고 마지막을 지켜주지도 아팠을때 함께 해주지도 못했다는게 정말 너무나 미안해요. 그리고 어처구니가 없어요. 해외로 두세달이나 나와있었던건 애들을 믿고 맡길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만의 애들이 아니거든요. 제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챙겨주지만 데리고 올 때부터 함께 살아왔고, 그러니까 괜찮을줄 알았어요.

엄마에게서 온 이메일로 불안한 암시를 느꼈을땐 이미 늦었어요. 상상도 못했었는데, 한국으로 전화하니 오늘아침에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어느순간 아프기 시작하더니 이주를 혹독히 치르고 가버렸다더군요. 병원에서도 치료를 하지 못했다고 하고요. 그대로 전화기를 붙잡고 오열했어요. 그 후의 며칠을 지옥같이 보냈죠. 제가 너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화가 많이 나요. 엄마를 탓할 문제가 아닌걸 알고 그러지 않지만, 나였다면 하는 생각이 끊이지를 않아요.

이런 불행이 생긴걸 납득할 수가 없었죠. 태어나 이렇게 애착한 생명체가 또 없는것 같은데. 바깥에 나와 가족이 그리운적이 한번 없었는데 애들을 두고 나오니 매일같이 보고싶어 견딜 수가 없었어요. 꿈을 꿨어요. 그런데 너무나 갑작스럽게 한마리가 세상을 떠나니 닥쳐오는 감정이 너무 커서 그것을 인지하는데 만도 시간이 걸렸어요.

항상 같은 침대에서 자곤 했어요. 한마리는 가슴위에 한마리는 머리맡에 두고 잤어요. 그 온도와 털의 윤기와 감촉과 자잘한 버릇들을 세세히 기억하죠. 하지만 마지막 모습은 기억나지 않아요. 곧 돌아올게 하고 나가면서, 저는 과연 뽀뽀나 했던가요. 잔인한 4월. 3월 말을 내내 아파했던 내 아가가 기어코 견뎌내지 못했어요. 저도 없는데에서. 가엽고.. 미안하고.. 보고싶어요.

많이 사랑했어요. 정말로 무엇보다 사랑했어요. 아꼈어요. 책임을 느꼈고, 사랑했고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밤 안고 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행복하게 지켜주겠다고 말하고는 했어요. 마치 어미라도 된양,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또 아이들에게 이것이 최선이지 확신하지도 못하면서요. 그래도 행복했어요. 특히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저는 너무너무 기뻤어요. 상상하는 제 미래에 그애들이 있었어요. 혹 아이를 갖게 된다면 내 아이의 가장 친한 누이고 친구가 되어주겠지 하고 흐뭇하게 생각했어요. 저는 여행을 좋아하고 해외를 자주 오가지만, 고양이와 함께하는 미래에 그 모든것들이 많이 제한되어도 기꺼웠어요. 고작 고양이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가족보다도 친구보다도 연인보다도 가까운, 제게는 참 깊은 의미를 가진 생명들이에요.

우리 큰애는, 참 연약하고 여렸죠. 늘 말랐고요. 정말로 다시는 볼 수 없다니 믿겨지지 않아요. 이제는 더이상 아무것도 해줄게 없다는것도 믿겨지지 않고요. 너무나 어린 애들이에요. 일년을 갓 넘긴, 수명의 반의 반도 못채우고...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요. 잔인해요. 나에게 잔인해요. 그애에게도 잔인하고 제 언니를 빼앗겨버린 우리 작은애에게도 잔인해요. 행복을 주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아직 어려워도, 너희를 위해 멋진 캣타워도 더 사고 좀 더 큰집에서 지내게 해주고 그리고 더 나중에는 도시가 아닌 곳에 살면서 바깥 나들이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는데...

저는 참 어리고 멍청하고 이기적이고 잔인한 것 같아요. 훨씬 좋은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었을 그애의 짧은 생을 가두고 끝내 살려주지도 못한게 정말로 미안해요.

너무 슬프면 슬픔을 나누게도 안되더라고요. 처음엔 매달리듯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하고 울면서 감정을 해소하려 했지만 그애가 영원히 죽었다는 사실은 언제까지고 남아서 끝없어 보이는 슬픔을 생산해냈어요. 그리고 누구도 제 아픔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죠. 당연한 일이에요. 남의 일인데요.

지금은 제가 덜 아파요. 그래서 이게 무슨 소용인가 하면서도 감정을 풀어내고 있고요. 그게 가능하죠. 순전히 저를 위한 일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것중에 더이상 그애를 위한 것은 없어요.

시간이 지나니 나아져요. 고작 한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저는 벌써 웃고 설레이고 기뻐해요. 아픔에 지치고 눈물에 질리고 시간이 지나자 정말로 나아지더라고요. 종종 잊고 지내고요.

하지만 언제고 삶에 그애 그림자가 드리울 때가 있죠. 생각이 나요. 그 사실자체를 잊은듯이 지내다가도 더이상 세상에 내 첫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상기할때면 가슴이 무너질거같아요. 그리고 먹먹해요. 눈물도 잘 나오지 않다가 어느순간은 울컥 솟아요. 마음에 묻어둔 것 같아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없는일인양 외면하다가 무심코 발을 담그면 엄청난 슬픔이 또 닥쳐오고요. 오늘은 그런 때 중의 하나인 것 같고, 늘 정리되지 않은 글은 적어도 듀게에는 올리면 안된다는 강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의 흐름에 따라 써재낀 감정을 토해낼 배출구가 절실해요. 아는 사람과 슬픔을 나눌 준비가 안되어있어요. 참 슬퍼요. 아주 많이 슬퍼요. 절망적이기도 해요. 아주 슬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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