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에 호국순열에 대한 감사와 묵념은 마음으로만 한 채 태극기 게양도 생략해버리고, 근 6년만에 명동 **백화점을 다녀왔습니다. 일전에 저는 다가오는 어떤 공적인 일정을 앞두고 고가의 모자를 구입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머릿속에서는 그에 걸맞는 코디를 생각해내면서 쇼핑 아니 패션중독자 답게 어서 빨리 그것을 찾아내서 사야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올라 몸과 맘이 휘발하기 직전, 늘 가던 새로운세상 백화점을 등지고 집에서 가장 가깝지만 도외시 하던 그 곳을 오후 5시 반이 넘어서야 길을 나선 것입니다. 네, 머릿속엔 분명 원하던 차림의 옷이 있고 늘 그렇듯 그런 옷은 현존하지 않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저는 당당히 명동놋데의 위풍당당한 출입구를 지나 청춘을 최종확인 하려는 늙은 뱀과 같은 노련함으로 근래 침만 흘리고 있던 몇 아이템의 모체인 몇 군데 명품매장을 쑥 들어가(얘, 너 지금 최소한의 비비도 안 바르고 기름낀 머리 틀어올리고 50년대풍 꽃무늬원피스 입고 있다는 자각에도) 원하는 아이들 한번씩 매보고 둘러보고, 지금 당장 이런 게 필요한 건 아니다, 이까짓것 원하면 언제든 살 수 있다는 듯 무심하고 시크하게 나서서는 바로, 나의 사랑 행사장 매대 앞으로 돌격!

 

진정한 쇼핑의 진수를 맛보고 싶으십니까?

인터넷, 할인매장, 보세숍, 벼룩 등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 믿음, 소망, 사랑 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듯, 저에겐 백화점 행사장 매대의 균일가가 최고인 것입니다. 그것도 물건 많기로 유명한 곳이 바로 이곳이지요.  네, 간만에 눈이 획 돌아가서는 미끈한 종아리에 알이 잡힐까 걱정이 될 만큼 몇 시간 동안 고르고, 2차 대전 당시 식료품 배급을 받는 줄 만큼이나 치열한 대열에 서서 원하는 것 다입어봤습니다. 원래 귀찮은 거 싫어서 굳이 입어보지 않아도 실패한 적은 없지만  그냥 오늘은 백년 만의 백화점 외출이니까요.

 

그래놓고 오늘 득템한 아이들은 하나같이 가을 겨울옷. 여름 기획전 북새통 어느 틈바구니에 섞여있지만, 0.3의 시력에서 뿜어나오는 쇼핑에의 열정을 가눌 길 없어 매의 눈이 된 제 시야에 걸려든 이 아이들은 저처럼 처음엔 제법 샤이한 첫인상이자만 잠재된 그 끼를 주체할 수 없는(?), 무려 브랜드를 대표하는 샘플들인 겁니다, 사이즈도 재고도 단 하나여서 교환도 반품도 환불도 안 되는!

 

미리 준비해 간 에코백에 염가에 건진 고원가의 아이들을 고이 접어 모시고 버스를 타고 앉아 다음달 나갈 카드값을 헤아리듯 저녁별을 세고 집으로 돌아와, 연출없는 냉혹한 제 전신거울 앞에 늙은 누이처럼 다시 입고 서봐도 이것은 너무 훌륭한 지출인 것입니다. 아아, 옷태가 흐트러지지 않는 통통한 옷걸이들에 적당한 간격(을 확보할 수도 없을 만큼 방마다 붙박이 옷장에 옷이 차고 넘치지만)으로 걸어놓고, 므흣해져서는 소맥말고 있는 휴일밤입니다만,  슬슬 걱정이 몰려옵니다. 계절을 앞서는 옷들만 샀으니

 

내일 뭐 입고 출근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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