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 여섯 혹은 열 일곱 무렵. 제인 오스틴의 책을 처음으로 읽던 순간이 기억나요.

여름방학의 어느 날이었어요. 더위에 늘어져 수박이 담긴 접시를 옆에 두고 큰언니 책장에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꺼내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엄청 재밌는 거예요. 확 빠져들어 쉬지 않고 읽어내려갔죠. 십대 시절에는 한 번 맘에 든 책은 몇 번이고 질리지 않고 되풀이 읽는 습관이 있었는데

오만과 편견도 그랬어요. 나중에는 혼자 대사치며 읽을 수 있을 정도였죠.

당시 제 주위에는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는 또래가 없었기 때문에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하나씩 찾아 읽는 재미를 공유할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혼자만의 은밀한 즐거움으로 간직했죠.

 

 

언젠가 우연히 TV에서 '제인 오스틴 북클럽' 이라는 영화를 봤어요.

아무 생각없이 본 영화였는데 의외로 재미있는 요소들이 있었어요. 특히 에밀리 블런트가 연기한 역할이 흥미로웠어요.  그냥, 귀엽더라구요.

중간중간 제인 오스틴 작품 속 인물들에 대한 북클럽 회원들의 감정이입에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그건 아니지~ 라며 고개를 젓기도 하고 그랬네요.

영화의 엔딩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치고는  재밌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저도 제인 오스틴 북클럽을 해보고 싶은 거예요.

처음에는 주변에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는 혹은 좋아했던 사람들을 물색해 꼬셔서 북클럽을 만들어 볼까 했는데,

게으름으로 물색 작업을 미루던 와중에 + 별로 없을 것 같아서 아예 서로 낯선 사람들로 북클럽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해봐요.  

 

혹시 이 글을 보신 분들 중에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관심있는, or 관심 있었던, 좋아하는 or  좋아했었던 사람으로서

제인 오스틴 북클럽을 함께 해보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손 들어주세요. 쪽지로 참여 의사 밝혀주시면 돼요.  

제인 오스틴 작품 중 각자 하나씩 선택해,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모여 작품에 대한 해석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올해 가을까지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영화처럼 북클럽을 통해 어딘가 꼬여있는 인생과 연애를 풀어나가 모두 해피엔딩!! 이런 걸 추구하는 건 아니지만(사실 되면 좋겠죠.)

단순한 작품 해석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삶과의 접점을 찾아 고민해 본다면 더욱 좋겠죠.

참고로, 제가 거주하는 지역을 고려하면 기왕이면 모임 장소가 홍대, 합정, 상수 지역이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만약 아무도 없으면 미뤄뒀던 물색 작업을 해야겠죠.

 

 

 

 

2. 예전 듀나 게시판을 쓰던 시기에, 새언니와 관련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어요.

좋은 내용은 아니었죠. 새언니가 제 옷을 말없이 여러 벌 가져가서 숨겨두고 있었다는 내용이었으니까요.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본가에서 가까운 곳으로 분가했고, 안 그래도 데면데면한 사이었던 새언니와 저는

즐겁지 않은 비밀을 공유하며 한층 더 어색한 사이가 되었죠.

새언니는 결혼 초기부터 아이를 빨리 갖고 싶어했는데, 그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죠.

병원도 다니며 의사의 지시대로 노력했었는데 잘 되지 않았죠.

그렇게 한 해, 두 해 시간은 점점 흐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본인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은 가파르게 상승했었나 봐요.

 

어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본인이 저렇게 원하는데 잘 안 되니 그저 안 됐다 여기시며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덜 주려고 했고

가족 중 누구도 먼저 아이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죠.

그러던 중, 올해 초에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고 성공해 지금은 임신 5개월 차네요.

사실 불과 며칠 전까지 태아의 상태에 대한 우려가 있었는데, 검사 결과 문제 없다네요.

잘 됐어요. 이제 남은 기간동안 별 일 없이 건강히 지내다가 순산했으면 좋겠어요.

 

 

 

 

3. 주말에 애인과 어떤 커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의 매력에 대해 물었죠. 정색하고 물은 건 아니고 서로 놀려먹으려는 심사에서.  

애인이 먼저 저에게 물었는데, 저는 한 10초 동안 침묵했어요.

그 침묵에 애인이 파하하 웃으며 뭘 그렇게 오래 생각하느냐고 그러길래

"매력이 너무 많아서 정리가 안 돼. 뭘 먼저 말해야 할 지 생각하느라고." 했더니 이걸 믿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모르겠다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군요.

근데, 전 90% 는 진담이었거든요.

 

여하튼, 제가 열거한 애인의 매력은 '양성적 특성 그러나 나한테는 확실히 남자로 보임, 가부장적이지 않은 가치관과 태도, 길고 곧은 다리, 좋은 목소리,

웃는 모습, 문화적 감수성, 영민한 두뇌, 나보다 좋은 성격, 나보다 확실히 착함, 한결같음, 같이 있으면 지루하지 않음' 이었죠.

그리고 제 매력에 대해 애인으로부터 들은 대답은 '첫째, 예뻐. 둘째, 예뻐, 셋째 눈이 커..'  여기서 제가 입을 막았죠.  어디서 날로 먹으려고.  

그랬더니 또 파하하 웃으며 "이거 그 패러디." 

 "나도 뭔지 알아. 외모 말고 딴 거. "

잠시 후 돌아온 대답은 "날 쥐었다 놓았다 하지. 쥐락 펴락해. "

아.  저의 매력은 바로 이것이었군요. 쥐락펴락하기.

근데 쥐락펴락하기는 매력이라고 하기에는 꺼림칙해요. 뭔가 찔려요 막.

 

여기까지 쓰면 뭔가 염장스러운 내용이지만, 사실 주말동안 두 번이나 애인에게 화를 냈어요.

굳이 그렇게 날카로운 말들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낸 것에 대해 사과하고 자책하며 잠들었더니 마음이 가볍기는 커녕 여전히 안 좋아요.

누군가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은데, 더구나 그 누군가가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피하고 싶은데.

이번에는 유난히 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는 건지 몸도 힘들고, 알러지는 심해지고, 감정도 널뛰기를 하네요.  몸은 그렇다 쳐도 감정의 진폭을 누르며 다잡는 일은 해도해도 쉽지 않네요.

여전히, 언제나, 이토록 불완전하고 모자란 인간이라니. 참.

 

 

 

4. 작년 여름에 처음으로 보드카 수박을 만들어 먹어봤어요. 시간이 촉박해서 두 시간 정도만 보드카 병을 수박에 박아 놓았다가 먹었는데도 은근 맛있더라구요.

주량은 맥주 한 병이 될까 말까 하고, 애들 입맛이라 웬만한 술은 취하기도 전에 맛이 역해서 못 먹는데.

보드카 수박은 꽤 많이 먹었는데도 괜찮았어요. 숙취도 없었구요.

작년에는 남의 집 냉장고 선반도 부수고 참 민폐만 끼치고 어설프게 만들었는데, 

이번 여름에 다시 한 번 보드카 수박에 도전해봐야 겠어요.  이번에는 정말 철저히 준비해서 제대로 해먹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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