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보람있게 보내자는 기치 하에 게으름을 억누르고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가는 길엔 큰 사이즈 버블티를 물고요. 미국인 룸메이트들이랑 살지 않게 된 이후로는 미국 명절에 대한 실감도가 막 떨어졌는데 (작년 이맘때 룸메이트 R양은 친구들을 불러 13일의 금요일을 보면서 호박을 깎고 저는 그 옆에서 야옹이 Lucy를 괴롭혔...) 지하철엔 할로윈 복장을 한 꼬마들이 많았어요. 가장 귀여웠던 장면은 새 복장의 남자어린이가 야옹이 복장의 여자어린이를 보고 "아 야옹이다!" 했더니 여자어린이가 "야오옹" 한 장면. 지하철에선 A tree grows in Brooklyn을 읽었어요. 마침 브루클린에 가는 길이니.


브루클린 뮤지엄은 회원이 되고 뻔질나게 드나들다가 최근 좀 뜸했습니다. 미술관 가는 걸 대체적으로 좋아하지만 맨하탄의 관광객들로 득시글거리는 미술관은 정말이지 무서워요. 브루클린 뮤지엄은 주말에도 사람이 없고 자원봉사 혹은 연구원 도슨트들의 갤러리 투어도 여러 번 있어서 좋아요. 게다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선 어마어마한 정보량에 눌려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토할 뻔 한 적이 있었는데 이 곳에선 여러 번 되새김질을 할 수 있어요. 지금은 닫은 키키스미스 전은 일단 혼자 보고>> 갤러리 투어 (그것도 다른 도슨트로 두 번)로 설명 듣고 >> 또 다시 혼자보고 다큐멘터리까지 섭렵을 했는데 이런 식으로 하는 게 관광객 모드로 짧은 시간에 휙 둘러보는 것보다는 훨씬 좋죠.


오늘은 먼저 주디 시카고의 Dinner Party 전시 갤러리 투어에 갔어요. 도슨트 아줌마하고 학생(?)은 저랑 점잖아보이는 중년의 커플 한 쌍. 디너파티도 실은 혼자 둘러 봤는데 자세히 설명을 들으니깐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달까요. 그리고는 팝아트와 여성 작가의 역할에 대한 패널 토론에 들렀다가 팝아트 전시에 갔습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뮤지엄 샵 구경을 마치고 맨하탄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 탔어요. 목적지에 거의 도착해서 지하철이 갑자기 멈추고 한 3분가량 아무 안내도 없다가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승객이... 지하철은 운행하지 않고... 다음 지시를 기다려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이때쯤 저는 살짝 패니킹하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아 내려서 걸어야 하나" "할로윈 퍼레이드 가야하는데 깔깔" 하는 분위기였어요. 그 사이에 야광 조끼에 공사 복장을 한 청년이 차량 연결부위에 서 있자 "아 벌써 고치니" 하고 사람들이 놀랐는데 그 청년은 그냥 할로윈 복장인 걸로 판명되어 또 일대는 웃음바다. 그리고 또 5-7분 정도 있다가 결국은 차량 맨 앞으로 이동해서 지하철에서 내렸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사고였어요. 지하철 승강장에 선혈이 힐끗 보였습니다. 직원에게 무슨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자세히는 말 못해주지만 승객이 다쳤다고. 마침 할로윈이고, 그 빨강색은 마치 할로윈 장치처럼 기이하게 보였습니다. 그때까지 지하철 요금 환불받겠다고 농담하던 사람들도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집에 와서 검색을 해봐도 관련된 뉴스는 안 나오는데, 많이 다친 게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하여튼 그렇게 쌀쌀한 거리로 나와서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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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를 먹으러 갔습니다. 일본어 표현으로 하면 "델리카시가 좀 부족한" 것 같지만 김치찌개가 너무 먹고싶었거든요. 정식 한국음식점도 아니고 한국음식을 패스트푸드 식으로 파는 학교 근처의 가게에 갔습니다. 졸업하고는 처음 간 거 같은데, 여전히 한국사람은 없고, 어린 학생들만 혼자 밥을 먹고 또 할로윈 파티 계획을 세우고 있더군요. 그렇게 밥을 먹고 정신을 차려서 월동준비 쇼핑을 조금 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코트를 운좋게 찾고 쿠폰도 사용한 알뜰한 쇼핑이었죠. (쇼핑 자체를 안하는 게 알뜰하다고는 지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ㅇ') 그렇게 할로윈 전야, 토요일 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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