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정치의 파탄, 절반 이상의 책임 민주당에 있어


민주당, 길을 잃다

    민주당은 길을 잃었다. 더 이상 나아갈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져 있음이 분명하다. 대표적 진보매체 10월 31일자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여론조사 수치가 이를 웅변해주고 있다. “한나라당 40%, 민주당 11%, 제3세력39%” 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는 부동(不動)이거나 기대 이상으로 나타나는데, 민주당에 대한 지지는 썰물처럼 빠져나갔을까.

그 원인을 논하기 전에 민주당에 머물러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반대세력들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상징적 기사가 눈에 띈다. 11월 2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International Herald Tribune)은 머리기사로 “The opposition goes online(반대의 목소리가 온라인으로 가다)” 라는 제목과 함께 “나꼼수”가 주최한 토크쇼에서 열광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실업과 빈부격차로 절망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분노가 온라인을 통해 결속하면서 제1야당인 민주당을 버리고 새로운 대안을 찾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전후하여 안철수, 박원순이라는 제도권 밖의 인물을 핵(核)으로 하는 거대한 태풍이 불었다. 그러나 이는 일회성(一回性)이 아니다. 내년 총선, 대선에서는 더 강력한 태풍이 상륙할 전망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정당정치가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그나마 정당정치가 마비되면 사회적 혼란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다.

앞서의 수치가 말해주듯 정당정치를 파탄시킨 절반 이상의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 한나라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무한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길을 잃은 민주당이 역사 앞에 더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올바른 방향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퇴행의 길을 걸어왔으며, 그 결과 절망하는 국민들이 새로운 곳에서 희망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민주당을 말하는가

나는 정치평론가가 아니라 현실 정치인이다. 어느 정당에 대해 왈가왈부할 처지가 아니다. 또 나는 오랫동안 무소속으로 있었지만, 지금은 자유선진당에 소속되어 있다. 자유선진당은 내년 총선에서 제3의 교섭단체를 목표로 하고 있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요 지지기반인 충청권에서 민주당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민주당이 잘못되면 내가 속한 당으로서는 다행한 일이고, 그래서 굳이 민주당에 대해 입을 열 필요가 없다. 나아가 나는 민주당과 특별한 인연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내가 민주당에 관하여 말하면 순수성을 의심받기 십상(十常)이다.         

그러나 어떤 오해를 받더라도 나는 민주당의 진로에 관해 충심으로 말하려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민주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뿌리가 깊은 정당의 하나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세력이고, 본격적으로 민족화해를 추진한 최초의 정당이다. 또 지금은 제1야당으로서 한나라당과 함께 국회를 주도하는 국정의 한 축(軸)이다. 민주당이 잃어버린 길을 찾아 정상궤도로 올라와야 정당정치의 파탄을 막을 수 있으며, 정당정치가 무너지고 장외(場外)가 주도권을 장악한다면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나라의 리더십은 송두리째 붕괴되고, 모든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벼랑 끝에 서 있는 민주당을 향해 길을 알려주는 것이 최소한의 의무이자 도리라고 생각한다.

서투른 통합, 민주당의 소멸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낭패를 겪었다. 힘들게 선출한 후보가 장외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나가떨어진 것이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한 때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지만 그대로 주저앉았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장외세력들이 중심이 되어 통합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민주당 외곽에서 ‘혁신과 통합’이라는 간판을 걸고 야권통합의 군불을 때고 있던 사람들에게 호기(好機)가 온 것이다. 손 대표의 첫 반응은 민주당이 통합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도권은 달라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결정된다. 서울시장 후보자리를 뺏기고 11% 지지를 받는 민주당과 서울시장을 차지하고 39%의 지지를 갖고 있는 장외세력 가운데 누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지, 정치학자 출신의 손 대표가 모를 리 없다. 그의 절규는 그저 공허할 뿐이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연말 안에 민주, 진보 진영의 통합정당 건설을 마무리하자고 제안하였다. 대표적 좌파정당인 민주노동당과 친노세력 일부가 만든 국민참여당은 일언지하에 이 제안을 거절하고, 또 다른 친노세력 일부가 만든 ‘혁신과 통합’은 이 제안을 환영하고 나섰다. 당권주자들은 일제히 반대하며 우선 전당대회를 치른 후 통합을 논의하자고 주장한다.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손대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전략으로 그런 제안을 하는지, 나는 알 수 없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지금 통합의 소용돌이 속으로 민주당을 끌고 가면 민주당이 부활할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이 소멸할 것인지, 그 해답은 또렷이 나와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소멸할 것이다.  즉, 민주당이 역사 속에서 계승, 발전시켜 온 가치와 노선이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위기에 처할수록 냉철하게 길을 찾아야 한다. 손 대표와 민주당원들은 허둥대지 말고 그들이 잃어버린 길을 찾아나서는 일이 우선이다. 통합의 주도권을 놓치면 어떻게 하나, 당권을 내놓은 다음 통합이 이루어지면 자신의 위상은 추락하지 않을까, 이런 계산은 민주당의 처지를 더 궁지에 몰아넣고, 나아가 우리 정당정치의 큰 틀이 잘못 짜여지는 최악의 상황을 가져올 가능성만 키울 것이다.

다시 민주주의로 무장해야

민주당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정신을 계승한 정당이다. 독재와 정치적 폭력에 맞서 싸울 때에는 그 대항 수단 일부가 불법이나 폭력성을 띠고 있다 하더라도, 독재를 타도해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적 열망 때문에 정당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독재와 정치적 폭력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그런데 바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그 민주당이 걸핏하면 의회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장외에서 벌어지는 불법 폭력시위를 옹호한다. 물리학에서 배운 관성(慣性)의 법칙이 정치의 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를 혼란에 빠트린다. 민주당은 스스로 지켜야 할 민주주의 토대 위에서 아직도 폭력적 수단에 의존하는 나쁜 타성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폭력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의 적이다. 불법이 판치는 파업현장에서, 반미구호가 난무하는 정치현장에서 아직도 불법 폭력시위가 기승을 부린다. 민주당은 한나라당 보다 불법 폭력을 나무랄 수 있는 우월한 도덕적 힘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불법폭력에 편승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는 국민 일반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요즘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 용어를 쓰는 문제를 놓고 논쟁이 있지만, 계급독재와 폭력혁명을 내세우는 이른바 인민민주주의는 우리가 신봉하는 민주주의의 하나가 될 수 없다. 민주당은 이 사실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불법폭력으로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다는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민주당에 몇이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다수가 아닌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손 대표가 민주당을 살리고자 한다면 더 이상 소수세력에 끌려 다닐 것이 아니라 불법폭력을 단호히 배격하고 민주주의 철학으로 민주당을 재무장시켜야 할 것이다. 

의회주의의 옹호자

의회주의 마비가 정당정치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이다. 다른 세력 아닌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바로 의회주의를 질식시키고 있다. 국가공동체를 끌고 가는 리더십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구성원들이 뽑은 대표들로 의회를 구성하고, 이 의회에서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법률과 예산을 만드는 등 리더십을 생산해나가는 시스템이 바로 의회주의이다. 의회주의는 자유로운 토론, 배려하는 타협의 토대 위에서 기능을 발휘한다. 그러나 우리 국회를 좌지우지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민감한 문제가 나오기만 하면 토론을 틀어막고 극한대결로 치닫기 일쑤다. 의회주의를 스스로 부정하고 정치를 길거리로 내모는 일이 다반사(茶飯事)인 것이다.

지금도 한미FTA 처리문제를 놓고 국회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민생법안이나 예산은 내팽개쳐졌다 졸속으로 처리되거나 방치될 운명이다. 매국노, 이완용, 미국식민지 등 국민의 대표 입에서 나왔다고 믿을 수 없는 폭력적 언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의회주의는 숨을 쉬지 못한다. 민주당은 그 한 가운데 자신들이 서 있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한나라당의 책임은 뒤로 하고, 우선 민주당이 앞장서 의회주의를 짓밟고,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 불을 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민주당 사람들의 눈에 한나라당만 보일지 모르지만, 이제 눈을 크게 뜨고 국민을 보아야 한다.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정당정치 위기에 대한 경고음을 그토록 들었으면서,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민주당 지도부의 무감각이 참으로 경이로울 지경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정치인은 존칭 생략)은 평소 자신이 의회주의자임을 입버릇처럼 강조하였다. 민주당은 노무현, 김대중 전 두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크게 걸어 놓았다. 민주당의 정신적 지도자인 김대중에게 길을 물어보기 바란다. 특히 민주당 손 대표는 그를 믿고 천길 절벽을 뛰어넘어 민주당으로 가지 않았던가. 김대중은 분명 의회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또 한미FTA문제를 이렇게 막무가내로 반대해야 하는지 노무현에게 물어보면 아주 쉽게 답을 알려줄 것이다. 자신들이 만든 협정을 부정하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밤을 새워 토론하고 책임 있는 표결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의회주의이다. 산을 넘으면 또 산이 나타나듯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더 큰 과제들이 계속 닥쳐오고 있다. 이를 외면한 채 한미 FTA 한판으로 사생결단을 하려는 민주당의 무모함 때문에 자신들이 고립되고 우리 정당정치가 붕괴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좌파주의, 길이 아니다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나는 국민신당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국민회의와의 통합을 결행하였다. 지역패권을 허무는 전국정당, 낡은 이념을 뛰어넘는 중도개혁정당을 건설한다는 것이 유일한 통합의 전제였다.  그리하여 2000년 중도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새천년민주당이 창당되고, 내가 선대위원장으로 치른 16대 총선을 통해 민주당은 비로소 영남을 제외한 전국에서 골고루 의원을 당선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2002년 김대중 정권은 모든 영향력을 동원해 좌파노선을 추종하는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고, 천신만고 끝에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노무현 정권 이후 중도개혁주의가 소멸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일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 정권을 좌파정권으로 규정하지만, 정작 김대중 본인은 자신의 정권을 좌파정권이라 말한 일이 없다. 그러나 노무현은 자신의 정권을 좌파정권으로 규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정권을 좌파정권이라고 큰 소리쳤다. 그럴 때마다 민노당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좌파는 자신들 뿐이라고 항변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나는 좌파주의(leftism)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의 기본노선이 좌파주의로 가는 것은 민주당의 정신적 지도자인 김대중의 뜻도 아니고,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온 사람들의 여망도 아니며, 나아가 시대가 요구하는 바도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미국의 정당을 보자. 공화당을 보수정당이라 부르는데 이의가 없다. 하지만 민주당을 좌파정당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민주당의 진보(progressive)는 좌파주의가 아닌 자유주의(liberalism)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도 비슷하다. 일본 민주당을 좌파정당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이 야당일 때, 내가 당시 하토야마 당 대표에게 자민당과 무엇이 다르냐고 질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 하토야마는 아주 간단히 설명했다. 자민당은 안보, 사회인프라 건설 등에 우선순위를 두지만 민주당은 교육, 복지, 환경, 문화 등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이다. 냉전시대 일본정치는 우파 자민당과 좌파 사회당 구도였다. 그러나 탈냉전이 본격화되면서 우파 자민당을 이탈한 세력들이 민주당을 만들고 좌파 사회당은 소멸하였으며, 지금은 좌파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이 군소정당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에는 좌파정당들이 건재하고 있다. 미국, 일본과 달리 유럽에서 사회주의에 기반을 둔 좌파정당들이 발전해 온 이유는 역사적 배경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일본은 사회주의 혁명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였다. 이에 비해 유럽은 사회주의 사상이 태동하고 혁명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지역이다. 폭력혁명을 부정하지만 의회주의를 통해 온건하게 사회주의 가치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존재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미국, 일본처럼 혁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유럽처럼 사회주의사상이나 혁명의 세례를 받은 것도 아니다. 냉전 때문에 분단이 강요되고, 분단의 저편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진행되었다. 대한민국은 그 혁명세력의 공세를 차단하며 성장해왔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적 가치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은 우리 사회에서 주류가 아닌 변방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미 민노당 등 좌파정당들이 그 자리를 충실하게 지키는 상황에서 정치주도세력의 하나인 민주당이 좌파주의로 기운다는 것은 민주당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하여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손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더 이상 좌파세력에 끌려 다니거나 좌파세력과의 통합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민주당은 미국이나 일본의 민주당처럼 자유주의로서의 진보를 표방하며 온건하고 실용적인 중도개혁노선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          

종북주의를 배격해야

친북(親北), 종북(從北) 논쟁이 치열하게 점화되고, 결국 분당(分黨)에 이르게 된 곳은 민노당이었다. 그 논쟁과정을 지켜보며 풀기 어려운 의문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은 왜 이탈세력으로부터 종북주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민노당이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침묵할까 하는 점이었다. 그 침묵의 의미는 긍정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적 가치를 의회주의 테두리 안에서 추구하는 정치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반대할 일이 아니다. 그들이 건강한 사회통합에 기여하고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이 북한체제를 추종한다면 이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해야 하고 국가의 존립을 긍정해하여야 하며, 이를 위반하면 헌법재판소의 심판으로 해산되기 때문이다. 지도자를 신격화하고, 군부가 정치를 선도하며, 권력을 세습하는 북한체제를 추종하는 일과 대한민국의 정통성, 정체성을 긍정하는 일을 양립(兩立)시키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참으로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의 혼란이 군소정당도 아닌 민주당에서 일어나고 있어 안타깝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햇볕정책을 추진한 것은 북한의 변화를 기대하였기 때문이지, 북한을 추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러나 김대중은 북한을 변화시키는데 실패하였다. 물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변화의 씨앗을 심어놓았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 씨앗이 발아(發芽)하여 변화의 한 원인이 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현재 눈에 보이는 결과는 북한의 핵개발을 비롯한 도발과 체제강화이다. 민주당이 김대중의 대북정책을 계승할 생각이라면 실패를 만회할 새로운 정책으로 개방과 개혁을 통해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거꾸로 종북주의에 매달리는 정파와 공공연히 정책연대, 선거연대를 추진하고, 나아가 아예 통합하자고 제의한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당원 가운데 압도적인 다수는 종북주의, 즉 북한체제 추종을 반대할 것이다. 통일 이후 우리나라가 지금의 북한처럼 우상화, 세습제, 선군정치를 내용으로 하는 체제를 채택할 수 있겠는가. 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왜 우리사회에서 아직도 종북을 추구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것일까.  언론인 출신 남시욱 교수의 저서 “한국 진보세력 연구”에 그 해답이 명쾌하게 나와 있다. 해방을 전후하여, 특히 6.25전쟁을 통하여, 좌우익 충돌로 수십만 명이 사살되거나 처형되었고 민간인 인명 피해까지 합하면 그 수가 수백만 명에 이른다. 또 전후 실시된 연좌제는 그 가족들에게 굴레가 되어 잠재적인 좌파 동조세력을 양산했다. 이러한 가족적 배경을 가진 일부 좌파세력, 특히 민족해방(NL)파는 인간의 존엄성,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와 인권, 생명의 존중이라는 진보사상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맹목적인 북한정권 감싸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 교수의 이 분석은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역사이자 살아있는 현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민주당이 북한을 추종하는 이 소수의 맹목적 정서를 대변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하루빨리 북한의 변화를 이끌고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면 그로써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다. 민주당은 단호히 종북주의를 배격하고 합리적인 대북정책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포퓰리즘 유혹 뿌리쳐야

우리 헌법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명문화하고 있다. 정치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 무한봉사(無限奉仕)해야 한다. 따라서 국민의 복지를 국가의 존재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때 아닌 복지논쟁 광풍이 우리사회를 휩쓸고 있다. 그 진원지가 바로 민주당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매달려야 할 당면과제(agenda)가 복지인가. 실업대란, 특히 절망적인 청년실업을 해결할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벌어지는 빈부격차, 그로 인한 사회통합의 균열을 막을 대책을 세워야 한다. 급속한 노령화, 그로 인한 미래의 충격을 차단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본질적인 문제는 제쳐두고, 세금을 더 거두어 어려운 국민들에게 더 많은 복지를 베풀겠다며 선심을 쓰기에 바쁘다. 여기에 한나라당까지 가세하여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우리나라가 복지천국이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지속 가능한 건강한 복지라야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사회통합을 튼튼하게 할 수 있다. 성장원천이 고갈되고 성장동력이 떨어지면 복지지출을 위해 국가재정은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복지서비스를 공급하는 파이프의 크기를 줄이는 일은 선거를 통해 만들어지는 정권에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국가부도위기에 몰리고 국민들이 정신적 공황에 빠져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사람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기획재정부가 만든 국가채무추이 통계를 보자. 김영삼 정권 말기인 1997년 60조원, 김대중 정권 말기인 2002년 134조원,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299조원이었고, 현 정권 말기인 2012년에는 44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채무의 GDP 비중도 1997년 11.9%에서 2012년 32.8%로 치솟고 있다. 여기에 지자체나 공기업의 부채까지 합치면 국가의 실질적인 채무규모는 훨씬 커질 것이다.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나는 국가채무 증가속도를 놓고 볼 때, 과도한 복지확대는 성장의 원천과 동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 국가재정을 파탄으로 몰고 갈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리스의 비극이 강 건너 불이 아니라, 잘못하면 우리에게도 언제나 닥칠 수 있는 재앙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은 물론 모든 정당들이 건강한 복지정책을 만들어 경쟁하는 것은 너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과도한 복지는 약(藥)이 아니라 독(毒)이다. 표를 얻기 위해 맹목적으로 쏟아내는 복지 포퓰리즘은 나라에 재앙을 몰고 오는 악(惡)에 지나지 않는다. 군소정당도 아닌 메이저 정당인 민주당이 복지 포퓰리즘 유혹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너무나 절실한 문제일 것이다. 민주당은 집권경험이 있고, 손 대표는 장관과 경기도지사를 역임한 사람이다.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국가재정의 건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를 리 없다. 국민 앞에 나라의 현실을 당당하게 설명하고 실업과 빈부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땀을 흘리자고 호소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 옳다. 그래야만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환상으로 국민을 현혹시키는 것보다 더 큰 국민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다            

우리 정당정치가 송두리째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오늘처럼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또 SNS라는 인터넷 기술의 진보로 그 불신과 분노가 정치의 혁명적 변화를 이끌 에너지로 결집되는 현상은 일찍이 없었다.

이는 하루아침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제도정당들이 궤도를 이탈하여 정당정치의 본령(本領)인 의회주의를 마비시킴으로써 쌓이고 쌓인 필연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므로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또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기 자신이 국민의 보편적 여망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엉뚱한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정보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오늘과 같은 딱딱한 정당은 자취를 감추고, 어젠다(agenda)나 이슈를 따라 온라인상에서 그때 그때 정당이 만들어지고 소멸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정당정치의 약화가 그러한 추세의 한 과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 우리사회에는 건강한 정당정치가 필요하며, 제도권 밖의 현상이나 인물들이 정당정치의 대안이 될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정당들은 정당정치의 회생을 위한 자기혁신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제도권 밖의 정치세력들도 정당정치를 부정만 할 것이 아니라 건강한 정당정치를 위한 자신의 역할을 겸손하게 감당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민주당은 시대와 국민이 보편적으로 요구하는 길을 벗어나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였다. 민주당이 어느 시점에서 어떤 세력과 어떻게 통합하느냐는 내가 관여할 바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자유이다. 그러나 통합에 앞서 민주당이 민주주의 철학으로 재무장하고 의회주의를 관철하지 않는 한, 좌파주의 종북주의를 멀리하고 중도개혁 노선을 실천하지 않는 한, 그리고 복지 포퓰리즘을 경계하지 않는 한, 민주당의 진정한 부활은 불가능할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원칙 없는 통합을 서두르다 보면 민주당의 전통적 가치는 소멸하고, 법치주의, 의회주의를 위협하는 노선의 등장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이는 민주당의 비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당정치를 더 깊은 수렁으로 빠트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보도를 보니 민주당 손 대표가 한국노총에 통합 합류를 제의 했다고 한다. 나는 나의 눈을 의심했다. 한국노총은 대표적인 노동단체이지 정치단체가 아니다. 노동단체를 향해 함께 정당을 만들어 정치를 하자는 제안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세계 어떤 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금시초문(今始初聞)이다. 이렇게 허둥대는 모습이 안타깝고 만망할 뿐이다. 모든 제도 정당의 살 길은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정책으로 헌신하는 것뿐이다. 노선을 재정립하고 정책을 개발하며 그 정책을 추진할 인물을 충원하는 일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부으면 된다. 그것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름길이다. 나는 내가 속한 자유선진당에서 최선을 다할 각오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다른 정당들도 최선을 다하면 된다.  내년 총선, 대선에서 새로운 비전과 정책, 인물을 내세워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 정당정치는 다시 본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바람이 정당정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람이다.

                            
                                 2011.  11.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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