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화 노역의 의문.

2014.04.01 19:35

잔인한오후 조회 수:2342

일베 형성 초창기에는 그들을 전부 숙청해야한다는 급진파와 소통해야한다는 온건파가 있었고 서로 심심하면 싸웠는데 요새는 급진과 온건의 감정만이 일반화되고 계속되는 피로감에 태도 자체의 논의는 사그라들었습니다. 아마도 저 포함 온건파가 먼저 피로감으로 언급을 줄여나가서 한 쪽 손으로만은 박수를 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겠죠. 그렇게 일베는 인터넷의 일상으로, 소라넷과 디시 그 어디 쯤의 이미지로 녹아들었습니다. 그래서 근간에는 일베 이야기를 더 이상 소비하지 않는 시점까지 왔는데 오랜만에 원정을 오셨군요. 아이디에서 풍기는 느낌과 텍스트 편집 모양새로는 접때 오셨던 그 분이 다시 오신 것 같은데 듀게에 대한 애정만은 높이 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신경 쓰였던 일베 소식통 분도 관심이 식자 어디론가 떠나버리셨는데 (감에 불과하지만) 이 분은 다시 돌아오셨군요.


태도야 다들 알아서 취하고 있으니 이제서야 드는 의문입니다만, 어째서 그들은 전도와 논리의 확산에 이렇게 목을 매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작부터 그들은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단어를 통해 -화에 대해 민감하게 접근했죠. 이 계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식민화, 문명화인데 기분이 요상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론 이런 현상을 일베화(ilbelization?)라 정의하고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누군가가 다른 커뮤에서 듀게화를 추진하고 있다면 꽤 창피하게 느껴질 것이고, 여기와서 누가 루리웹화라건가 코갤화를 외친다면 매우 기묘하게 생각할 겁니다. 간단히 뻘글 취급 받게 되겠죠. 근데 일베는 왜 사서 고생? 인거죠.


정치적 소재 때문이라면 더욱 이상합니다. 한국 인터넷 세계에서는 견고하거나 큰 커뮤가 아닌 이상 정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다간 커뮤가 파탄 나기 일쑤였고 금기 일순위로 올라가게 되죠. 그래서 정치 이야기를 꺼낸다면 결국 서로가 용인하는 내에서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끼리끼리 모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베 전에도 우파계열 넷커뮤가 없던 것도 아니었지만 자기 커뮤 문화 전파에 혼심의 힘을 커녕 노력도 하지 않았죠. 근근히 특정 의미가 부여된 단어나 말투 정도가 넷계에 영향을 주는 정도였고. 이런 문화 교류의 경직이 최고도로 이른게 박근혜 당선 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비율 상 편향된 커뮤 내에서 왜곡된 정보를 가지고 어느 쪽이 유리하다 생각했는데 제겐 자신이 보는 세계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죠. 그리고 그 때 잠시 자기가 소수가 아닌 반수임을 체감하시고 몇몇 분들이 글을 올리기도 했구요.


어떤 커뮤, 예로 듀게의 주인이 누구인가 생각해보면 피상적으로는 글쓰는 이들이 주인처럼 보입니다. 몇몇이 꾸준히 글을 쓰고 몇몇은 가끔 글을 쓰고 댓글만 단다거나 하며 한 커뮤의 이미지를 특정하게 이뤄나가는 사람들 말이죠. 하지만 이번 듀게 몰락론에 대한 글들을 보며, 사실은 눈팅하는, 말없이 지켜보는 이들이 다수이고 글을 쓰는 이들은 그저 노출된,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처럼 눈에 띄기만 하는 존재이구나 싶더군요. 조회수 등으로만 추측되는 다수, 특정 문제로 호출 된다면 그제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분들이 커뮤의 주인이었습니다. 다들 웹과 일상에 몸을 걸치고 있다면 더 일상 쪽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는 것도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이구요. 커뮤의 주제들이 뜨겁게 타오르지 않고 잔잔히 흘러가는 있는 다수의 용인이 그 뒤에 있기 때문인거죠. 참여 이후의 피로감과 용납 가능한 자극 사이에서 저울질하며 논쟁에 참여하기에 조금 지리멸렬해 보이는 문제들만 다수가 참여해 다뤄지기도 하구요. 즉, 많은 수가 참여할수록 큰 문제가 아닌 미묘한 문제이기 쉽습니다.


돌아와서, 다수의 투명함(불가시)은 외준적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태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렵게 만듭니다. 눈에 보이는건 용인된 소수의 발언이고, 그를 통해 다수를 추측해야하니 안전한 행보밖에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대선을 통해 다수의 비율(51.6%)이 만천하에 공개되었죠. 약 절반이라고. 대선은 자발적 전수조사와 같아서 직관적으로 한국민들이 어떤 지형을 그리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하고, 상식적인 가상공간을 만들어냅니다. 네, 넷세계에서도 보수가 좀 더 힘을 얻게 된거죠. 자신들의 발언도 비율적으로 용인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요. 여튼, 그래도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웹정치지형에서 일베가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죠. 박근혜 당선 이후에도 그 외 보수들이 진보 진영에서 자기 이야기를 설득하려는걸 본 적이 없거든요. 안전하게 자기 마당에서 서로 격려하는 수준이지. 진보도 그렇게 보면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만.


여튼 저는 저런 깽판이 영 싫지는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있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게 낫죠. 상대방의 실존을 체감하는거 말이에요. 하도 안 보고 지냈더니 얼마나 있는지도, 있기나 한건지 조차 생각하지 않는 망각보다야 낫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왜 그들은 자신의 문화를 전파하려 온 힘을 쏟는가 생각할 때 저는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자신 문화의 선교사들을 다른 문화권에 보내는 용기는 자기 문화에 대한 미학이 서려 있다는 거요. 개인적으로는 논리적 완결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넷의 신우파는 배워왔던 세계관에 대해서 수정주의를 처음으로 맞닥뜨린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아요. 이러이러한 세계라고 배워왔는데 사실 그것은 거짓이고 이게 정답이다! 라고 하는 것 말이죠. 여기서 중요한건 그게 논리적이고 내부적인 완결성이 있어야한단 것입니다. 남이 뭐라고 하든 자신에게 미적으로 아름다우면 된다는 거에요. 그렇게 뻑하고 사랑에 빠지면 그 다음부터는 서로 그 사랑을 재확인하고, 남들에게 전하는데 앞장서게 되겠죠. 그야말로 신복음서군요.. (허나 계몽은 보수보단 진보의 특기라고 하면 이건 특기에서조차 지고 있다는 의미..)


솔직히 제겐 한국의 진보건 보수건 논리적 완결미가 떨어져요. 그런걸 들어서 설득이나 되겠나 싶죠. 하지만 가끔 수정주의(앞서 진리처럼 여겼던 걸 완전 뒤짚어 엎기)는 그 신선함 때문에 눈을 살짝 멀게 만들기도 하죠. 그런 꼼수에 당하기 앞서 처음부터 완결성을 깊게 해두면 이렇게 되꺽일 일은 없었을거라 생각합니다. 결론 내리자면 보수건 진보건 서로 납득이 될만한 논리를 쌓아 올렸으면 합니다. 한국의 넷은 현재 정부까지 개입하는 상당한 수준의 문화전쟁이 진행 중이고, 서로 피해자가 속출하는 중이죠. 사실 젊은 우파가 늘어나는걸 보면 전통적으로 생각했을 때 왼쪽의 완패이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런 정치 미학으로 누굴 설득하려고'하며 콧방귀 뀌기에는 피해자가 눈 앞에서 깽판치고 있으니 슬프기도 하고 그렇군요.


p.s. 투표율이 높은 상태에서 새누리가 이겨서 그런지 투표시간연장 논제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더군요. 이럴 때야말로 살살 꼬드겨서 통과시켜야 되지 않나 싶은데 뒷 일은 어떻게 되어버린 건지.


 p.s.2. 진보, 보수, 우파, 좌파, 신좌파 등의 용어는 정의보다는 비율적으로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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