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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빵집 아저씨는 언제나 웃으면서 손님을 맞이합니다. 부담스럽지 않은 적절한 선에서

손님에게 "오늘 날씨 좋죠?", "오늘은 이 빵이 맛있습니다." 이런식으로 말을 건네십니다.

물론 빵도 저렴하고 무척 맛있습니다. 슈크림도 큼지막한데 300원이지요.

굳이 빵을 먹고 싶지 않더라도 아저씨 얼굴 보고나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지나칠 때마다 

들르게 됩니다. 동네 장사하면서 최소한의 서비스 마인드도 없는 사람들은 이 아저씨께

보내서 교육 좀 받게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단지 맛이 좋고 빵의 품질도 뛰어나며 저렴하고 무척 친절하다는 것. 

해가 바뀌면 인테리어와 간판을 굳이 바꾸지 않아도, 대중적인 프랜차이즈가 없어도

기본에만 충실해도 굉장히 훌륭한 가게가 된다는 것은 이 가게가 증명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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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온지 오래되지 않아 이 미용실 저 미용실 헤매다가 정착하지 얼마 되지 않은 동네 미용실.

원장님 홀로 하는 미용실은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직원을 둘 수 없어 죄송하다며 예약해주시면

기다리시지 않고 좀 더 빠른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손글씨 포스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얼핏 모니카 벨루치를 닮은 젊었을 적 한 미모하셨을 것이고 지금도 아름다우신 원장님이

저를 단골로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저를 이곳에 머물게 만든건 그깟 남자머리 이발하는데 세세하게 이발하는 도중에

몇번이나 이 정도면 맘에 드시는지, 이 길이는 어떤지 물어보는 세심함이었습니다.

물론 처음 방문하는 손님에게 그 정도는 기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발하는데 무슨 

돈을 많이 들일 필요가 있냐며 블*클럽이나 지하철에 있는 저렴한 저*스트컷 같은 곳을 이용했지만

그곳에서는 이곳에서와 같은 처음을 느낄 수도 없었고, 언제나 한결같은, 저렴한 비용만큼의 저렴한 직업정신

(기다리는 손님이 없는데도 대충대충, 심지어 기다리는 손님이 있을지라 하더라도 그러면 안되는 것을)

이 느껴져서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체인점의 모든 점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쨌든 이것이 제가 저렴한 곳들에 비해 매번 두배가 넘는 비용을 감수하고 이발하는 곳을 옮긴 이유입니다.


흘러나오는 음악 덕분에 원장님과 말문을 트게 되서 이발을 할 때 이런 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초등학생 6학년의 자녀를 두신 분인데도 "노리플라이", "루시드폴" 같은 음악을 들으시고 한달 전에는 에릭클랩튼 

내한공연에도 다녀오셨답니다. 그런데 오늘은 뜬금없이 자신이 아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왕따라는 말씀을 꺼내십니다.

강남사는 엄마들 치맛바람이 꼴보기 싫어서 이 동네가 싫으시답니다. 유한부인들이 자식 등하교길에 

따라다니며 학교일에 시시콜콜 간섭하고, 자식뒷바라지라는 명목아래 모여 함께 브런치, 커피를 즐기며 

연예인 얘기나 남편흉, 시부모흉을 보내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데 그네들의 남편이 불쌍하다고 

혀를 끌끌 차십니다. 본인은 그런 일에 끼지 않으니 단지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뒤에서 험담한 이야기를 건너건너 들으셨답니다. 가당치도 않은 일이지요. 어울리고 싶지도 않겠지만

어울리고 싶어도 매일 아침부터 저녁늦게까지 가게를 운영하시는데요. 


계산을 하고 나가려니 펭귄 클래식 시리즈가 두박스 100권은 족히 되보일 만큼 캐셔대 앞에 있습니다. 

니체, 디킨스 등등..자식들도 이제 커가면서 좋은 양서도 봐야할 것이고, 자신도 함께 보려고 큰맘먹고 구입하셨답니다.

뭔가 좋은 기운을 받고 가게문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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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생뚱맞지만 결혼식 문화가 조금 바뀐다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그냥 얼굴만 알고 체면치레로 부르는 하객들보다 

일상에서 이렇게 마주치며 웃음짓게 만들어주는 이웃들을 초대한다면 어떨까 이발을 하고 빵을 한 움큼 사들고 집으로 

들어오며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정성스럽게 머리를 다듬어주고, 언제나 기분좋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살가운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는, 건강한 가치관을 지니신 이 분들이야말로 제 삶에 있어서 소중한 분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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