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을 봤습니다.

2012.04.02 14:12

chloee 조회 수:1361

 주말에 여자친구와 건축학개론을 보았습니다. 보다가 한가인의 아버지에게 이미 시한부 선언(1~2년)이 떨어진 상황에서 한가인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답답해, 집에 가고 싶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눈물이 쏟아져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조부님, 외조부님이 돌아가실 때 같은 말씀들을 하셨던 것을 들었던 탓이지요. 어른들이 돌아가실 때에는, 조금쯤 나도 당신도 힘들지라도 평생 살아오신 집에 모셔서 자손들 모여앉은 가운데서 돌아가시게 할 수 있는 것도, 그 모습 지키기 참 힘들지만서도 그것이 마지막 효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속 당신이 손수 만들었다던 시멘트 수조에 담아둔 금붕어를 바라보고 앉은 모습이 밝지만 처연해 보였던 것은 시한이 정해진 나날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펑펑 울게 만든 것은 조금 다른 이유일 것 같습니다. 그 한 대사, 그 한 장면이 원인이 되었다기보다는, 영화 전체를 휘감아 도는 마음의 결결이 보는 이를 감정적이 되도록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내가 사랑하던 어떤 이가 자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던 기억이라거나, 바라지 못할 사랑을 그렸던 기억같은 것들을 공유하는 어느 순간 하나 하나는 누구나의 청춘 속에 아로새겨진 것일 테니까, 그런 아리따운 물결.

 

 그런 이벤트나, 오래 기억되는 첫사랑은 제겐 없습니다. 질척하고 짜증스러운 기억만 남아있는 첫사랑이 있지요. 그런 것도 인생의 한 슬픔일 거라 생각합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아슬아슬한 연애의 시작이라거나, 혹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애닯은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리라 봅니다. 건축학개론이 건드리는 지점은 그런 것일테고, 영화를 본 거의 모든 사람에게 기분 좋은 찌름 punctum이 느껴지도록 해주었다고 봅니다.

 

 생각건데 삶이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이에게 있는 특별했던 경험은 다른 누군가에게 조금 다른 색채로 있는 것이지요. 특별함을 찾을 게 아니라 익숙함을 찾을 일인 것이라는 옛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므로 이번 독일 출장때는 익숙한 레고 모듈러를 두개 사다가 여자친구 하나 저 하나 만들어야겠습니다. (급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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