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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작은 서울 암사동에서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작은 박정근이라는 작은 당원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대표님께서 죽은 말 한 마리를 좀 비싸게 사주십사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대표님과 저는 사실 한번 인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작년 12월 1일 대표님께서 처음 사회당 당사를 방문하셨을 때였죠.


[사진 http://www.newjinbo.org/xe/files/attach/images/58/553/726/002/7abdde5b4b9eede9dc3f965a96833582.jpg ]


대표님이 제 이름을 듣게 된 건 아마 그보다 한달 후 정도일 겁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1월 11일 구속되었습니다.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주제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요. 이미 한차례 떠들썩하게 알려진 일이니 자세하게 이야기하진 않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뭘 말하건 얼마든지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으니까요.


보석금 천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내고 보석으로 풀려난 것이 2월 21일입니다. 묘한 날짜죠. 바로 사회당과 진보신당의 합당을 위한 수임기구 설치가 가결된 다음날입니다. 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통화한 친구의 첫마디는 "야, 우리 이제 진보신당이야"라는 말이었죠.


저는 통합을 동의한 적도, 반대한 적도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당이 사라지는 중대한 결정에 저는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건 당의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저는 제가 선택하지 않은 당의 당원이 되었다는 사실이지요. 그러니 당원이긴 한데, 저 스스로 당에 대한 책임이나 자부심을 가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후원하는 기분으로 당비를 내고 싶진 않고요. 이걸 어찌하면 좋을까요.


매사마골이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작은 연나라의 왕위에 오른 소왕이란 양반이 나라의 부흥을 위해 인재들을 끌어모으느라 난리였더랩니다. 이 양반이 곽외라는 사람을 만나서 유능한 인재를 얻는 방법을 묻자 곽외가 해주었다는 이야기가 매사마골입니다.


내용은 뭐 간단합니다. 옛날 어떤 임금이 죽은 명마의 시체를 황금 5백냥을 주고 샀더니, "죽은 말도 5백냥에 사는데 살아있는 말은 오죽하겠냐"는 소문이 나서 금새 많은 명마가 궁전으로 몰려들었다는 이야기죠.


곽외는 이 고사를 들려주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부터 잘해주세여!"


소왕은 이후 곽외를 위해 궁전을 짓고 후하게 대접합니다. 그러자 얼마 후 악의를 비롯해 온갖 재능있는 활동가인재들이 앞다퉈 연나라에 모였고, 부강해진 연나라는 자신을 괴롭히던 경기동부제나라의 작은 배때지에 칼빵을 놓기에 이릅니다.


생각해봤는데 말입니다. 당에 대한 제 소속감을 회복시키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제가 당을 선택할 수 없었던 대신, 당이 저를 선택해주는 것입니다. 물론 “당은 이미 동지를 선택했다” 같은 뻔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화려한 궁전이냐 황금 5백냥을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요구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그러나 보수적 명망가정당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두 가지 일입니다.


4월 18일 오전 10시 수원지방법원에서 제 두 번째 공판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 공판 일정을 제 개인적 일정이 아니라 진보신당의 일정으로 확인해주셨으면 합니다. 둘째는, 한명의 보잘것 없는 당원이 피고석에 서는 이 법정에 홍세화 대표님께서 당을 대신해 찾아와 주셨으면 합니다. 단 한명의 당원에게 쏟아지는 질문들과 변론들을 당을 대표해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정세판단에 무지한 몸인지라 이번 총선이 어떤 식으로 끝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총선이 어떤 식으로 끝나건 이것 하나는 확신합니다. 만약 단 한명의 보잘것 없는 당원의 고난에 당이 함께 해준다면, 진보신당이 “박정근의 일이 곧 나의 일이다”라고 말해준다면, 저 뿐 아니라 선거에 지친 모든 당원들이 자신의 등을 떠받쳐주고 있는 진보신당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게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나의 당을 다시 만날 기회가 되겠지요.


그러니 대표님,

죽은 말 한 마리만 사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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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박정근을 건드리면 아주 종되는거야.. 는 아니고..


방금전에 진보신당 게시판에 올라온 글인데 재밌어서 올려 봅니다.

딱히 배경설명같은 건 글 자체에 있으니 필요 없을 거 같습니다만..

박정근은 트위터에서 리튓과 개드립 (..) 을 날리다가 국보법으로 기소된 (전) 사회당원입니다.


죽은 말의 고사 오랜만에 보네요.


총선은 4월 11일이지만, 정치가 총선으로 끝나는 건 아닐 테죠. 어떤 운명을 맞게 될 지는 모르지만, 그 이후에도 정치는, 생활은 계속됩니다.

그래서 4월 18일,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의미 있는 행동들이 필요할 것이겠지요. 그런 관점에서 중요해 보이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ps. 문득 저런 글을 받을 수 있는 홍세화씨가 좀 부러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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