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총선의 하이라이트

 

선거권이 생긴 이후로, 아니 생각해보니 선거권이 없었던 97년 대선부터 선거라면 모든 신경은 곤두세워왔지만

이번만큼 절실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생계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었거든요. 하지만 예상 외의 뒤통수였냐 생각하면

분명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상한 것보다 야권의 의석수가 적게 나오긴 했지만 그럴만한 요소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이번 선거의 주목할만한 지점은 '김무성을 주저앉힌 박근혜' 입니다. 음모론적 관점에서는 '이명박과 악수한 박근혜'..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죠. 김무성이 백의종군 선언을 할때, 이번 선거의 중용한 변곡점이 될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보니 가속도가 꺾이는 변곡점이 아니라, 아예 새누리당 표심의 방향이 바뀌는 하이라이트 부분이었습니다.

(더불어 이삭줍는 아낙네 레디 상태였던 박세일과, 아뿔싸 한발 먼저 뛰쳐나간 전여옥의 망조가 시작되는...)

 

알려진대로 김무성의 지지율은 자기 지역구에서도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김무성과 친이계를 끌어안음으로서,

박근혜는 보수세력을 모두 포용하는 이미지를 함께 가져가게 됐습니다. 한줌 남지도 않은 친이계 지지자들의 지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이 부분에서 박근혜는 범보수~중도적인 유권자들에게 통합의 이미지로 소구했습니다. 계파갈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한명숙과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었죠.

 

 

2. 고성국을 위한 변명

 

총선 이후 가장 각광받고 있는 정치평론가는 고성국 박사입니다. 총선기간 내내 '박근혜 지지'라며 그의 객관성이나 공정성을

비판하는 진보성향 네티즌들이 많았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그가 객관적인 시각과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박근혜를 지지하는게 아니라, 선거국면에서 박근혜가 무서운 저력을 발휘해왔고, 그게 실제로 먹혀온걸 그대로 해석해냈습니다.

'선거공학자'라는 호칭에는 분명 '공학'이 상징하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탈가치적 이미지로서, 이념과 사상에 관계없이

하나의 '승부'인 선거에서의 방향을 세팅하는 전략가의 이미지를 얘기하고자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평론이 '탈가치'적이라는 점,

아니 '탈가치적'이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그의 그러한 해석과 평론이 친박을 이롭게 하기 위한 의도적 행위

라는 '탈가치'와 모순된 지점의 공격에서는 갸우뚱합니다. (물론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의 평론과 해석이 박근혜 대세론을 전파하는

수단이 될수 있음은 인정합니다만)

 

저는 무언가를 판단함에 있어서 가장 객관적이고 냉정해야하는 판단이 요구될 경우에는 "내 전재산을 (강제로) 모두 걸고 알아 맞춰야

하는 승부라면 어디에 걸 것인가?"라는 상상 도박을 합니다. 내 목숨을..이런건 너무 비장해지고, 신념을 위해서 목숨을 걸수도 있는건가

...뭐 이런 생각까지 들면서 잡생각이 가지치는데, 깔끔하게 내가 가진 재산을 전부 걸고 도박을 한다고 치면, 내가 가진 편향과 희망에서

조금은 떨어져서 판단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런 전제로 지금 당장 12월의 선거에 판돈을 올인해야한다고 한다면, 현재로서는 박근혜의 손을 들어주겠습니다.

물론 대선은 구도의 싸움이고, 커다란 변곡점들이 유별나게 많고, 이전의 대선에서도 몇달안에 뒤집혀진 경우가 경험적으로 많았지만,

그러니까 그런 독립변인들이 발생할 가능성을 모두 감안하고도 '니 전재산을 지금 당장 어디에 걸꺼야'라고 강요당하는 상황의 선택이라면

냉정하게 박근혜에게 거는 것이, 제 지향과 희망과 무관하게 전재산을 날리지 않을 지금으로서의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고성국의 해석 역시, 제 판단과 같은 지점에서의 해석이라고 생각되는 점에서, 그의 해석과 평론을 친박성향이라고 폄하하고

무시하기 보다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고민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3. 경제민주화

 

이번 총선의 표심에 아주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겠지만, 저에게 가장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유종일의 낙천이었습니다.

유종일과 함께 경제민주화 정책의 큰그림을 그린 홍종학 교수는 비례대표 상위순번을 받았습니다만, 분명 홍종학보다는 유종일이

목소리도 크고, 언론 인지도도 높고, 지속적으로 정치권에 발 담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를 제외하고도 아무 변명도 없이

쌩까고 있는 민주당의 멘탈은, 그들이 처음부터 경제민주화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선대인은 김진표를 절대악인양 헐뜯지만, 생각해보면 김진표는 민주당 내의 6대 계파라 불리는 친노, DY, 정동영, 정세균, 故GT, 호남

중에 특별히 한쪽에 치우치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참여정부에서 중용한 '친노'에 가깝지만, 현재 친노의

핵심을 이루는 문재인이나, 혁통세력(이해찬, 문성근)과도 김진표를 필두로한 테크노크라시들의 정책과 이념 성향은 차이가 있습니다.

 

결국 제 결론은, 김진표가 상징하는 모피아 내지 테크노크라시들이 득세할 수 있는건, 민주당 내의 어떤 계파가 우세하던간에,

관료 세력인 이들을 필요로 하고,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한, 그들의 소멸을 정치권 내부에서 기대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저는 정권심판이라는 반사심리에 기대해 참패한 4월의 선거에서 교훈을 얻어, 12월의 선거에서 야권이 내놓을 가장 핵심적인 정책공약은,

경제 민주화 정책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말 필요하다는 점과, 실질적으로 효과적일 수 있다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반대편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를 상징했던 김종인은 비대위원에서 사퇴했습니다만, 지속적으로 친박근혜적인 정치적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의아한 부분이긴 합니다. 김종인이 사퇴하는 순간, 새누리당 내에서의 한계와, 그들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없고, 자신을 그저 화장빨용

파운데이션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서 문을 박차고 나왔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사퇴 이후의 행보를 보면 아리까리합니다.

 

어쩌면, 자신보다 정치적 영향력도 덜하고 신인급인 유종일 마저도 용납하지 못하는 민주당을 반대편에서 바라보면서, 어차피 저기도 내가

갈곳은 아니고 쟤들이 별로 정권을 탈환할거 같지도 않고, 차라리 지금 당장은 물러서더라도 집권 가능성이 높은 이쪽에 줄을 대놓으면

얘들이 집권하고 경제민주화의 여론이 높아지고 대세가 된다면, 결국 나를 찾게 될거..라는 줄대기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러한 해석이, 권력 지향적인 김종인의 판단이라면 고성국과 마찬가지로 냉철한 판단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4. 안철수의 등판

 

오늘 중앙일보에 안철수가 불펜에서 연습투구를 하겠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마운드에 오르는건 아니지만,

불펜 투구를 시작함으로서 분명 이 경기에 등판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이죠. 아침일찍 기사를 접하자마자 익명으로 처리된 관계자들이

누구인지는 별 고민없이 떠올랐었습니다. 안철수 측 핵심관계자는 언제나 그의 정치적인 발언을 가지고 야권과 터치해왔던 박경철 원장,

야권의 합리적이고 중도적 성향의 중진인사는, 야권의 안철수 소통 창구인 김효석 의원(..이젠 전의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침 뉴스를 접하자마자 역시나 재빠른 시선집중은 김효석과 전화인터뷰를 했고, 김효석은 본인이 '중진 인사'는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면서 안철수의 뜻이 중앙일보의 보도와는 좀 다르다. 걔들이 오버한거다..라는 해석을 했습니다. 하지만 김효석의 말은 모순적입니다.

김효석은 자기 선거가 급해서 최근 몇달동안은 안철수와 연락도 못했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최근 1-2주 사이에 중앙일보의 '취재원'이 접했다는

안철수의 반응에 대해서는 자기식으로 해석합니다. 이런 시국에서 안철수를 몇 달동안이나 못본 사람이 굳이 그런 해석을 정확하게 내놓을

근거가 없는데 말이죠. 자기 말대로 몇달이나 못봤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김효석 의원이 의도적으로 안철수의 등판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혹은 실제로 안철수를 몇달 못봤는데 자기 맘대로

안철수의 의중을 섣부르게 짚어본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제 결론은 중앙일보의 보도대로 안철수는 대선에 출마할 의지를

야권 인사 누군가에게 전달했다...입니다. 실제로 안철수가 출마를 결심했다면, 가장 이를 공식화 하기 좋은 시기는 바로 이 시점입니다.

총선에 책임을 질 필요도 없고, 이를 수습해가는 민주당의 약한지점을 쥐고서 흔들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고, 야권의 리더십이 붕괴된 상황에서

야권 내의 친 안철수 세력을 규합하기에도 가장 적절한 시기입니다.

 

저는 문재인이나 안철수, 혹은 또 다른 제3의 범 야권 대선후보 누가 나와도, 이명박이 거꾸로 돌려놓은 5년의 뒷걸음질을 다시 앞걸음으로 돌려놓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거라 봅니다. 당선이 되기만 하면요;;; 물론 그에 대한 부작용이나 국민통합의 문제 등은 제기될수 있겠지만요. 그래서 제 야권후보

지지의 기준은, 거기에 더해서 누가 경제민주화를 가장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후보인지입니다. 백스탭을 다시 되돌리면서 경제민주화라는 또다른

달리기를 시작하는게 무리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늦추면 늦출수록 시장이 가진 권력은 단단해집니다. 당장 시작해도 이르지 않습니다.

 

이런면에서 안철수가 경제민주화에 대해서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고 이를 제대로 검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종인은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안철수가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 잘 알거나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거 같다고 얘기한적 있습니다. 물론 그에게

그렇다면 당신이 세팅한 박근혜는 잘 이해하고 있으며 지지하고? 라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양반이 감당할 문제니 의미없는 질문입니다.

 

안철수는 벤처기업 CEO출신이라는 퍼포먼스 이외에 여러항목에서 그의 구체적인 정책적 소신이나 지향을 나타낸 적이 없습니다.

그냥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기고, 사심없고, 특권층의 독점에 반대하고..정도만 두루뭉술하게 여러 강연이나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 밝혔습니다.

문제는 저러한 본인의 철학이 어떤 방향의 정치철학으로 수렴되고, 이를 정책이란 형태로 상품화 시킬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입니다.

위에 밝힌 안철수의 세계관은, 박근혜가 나도 그렇다...그래서 난 이러저러하게 시장주의적인 정치철학과 정책을 펼칠것이다..라고 얘기해도

말이 안되지 않습니다. (박근혜 지지를 통해 사민주의를 이루고 싶다던 어떤 ex 듀게 유저분이 또 퍼뜩 떠오르는군요)

 

더군다나 서울대를 나온 엘리트에, 부자고, 사장님 출신이라는 안철수의 기원을 생각할때, 그가 말하고 있는 철학들이, 현실사회에서 어떤 정치적인 지향과

정책으로 나타내고 싶은건지 분명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뭐 정치공학적으로 최종적인 승리를 위해서 등판이나 검증의 타이밍을 재야한다는 전략이

있다면 (즉 출마를 미루고, 검증을 늦춰서 정치권 내공이 약한 맷집을 커버해보겠다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전략입니다만, 막상 마지막에 끝판왕 박근혜와

1:1로 맞짱뜰 상대로 올라오고 나서야, 난 싸우긴 싸울텐데, 이기면 오렌지 말고 레몬을 나눠줄께..라는 식의 결론을 얻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렌지나 레몬이나

시큼한 과일이잖아 싶어도, 전 오렌지는 좋아해도 레몬은 시어서 못먹거든요.

 

 

 

p.s : 긴 시간 걸려 다 쓰고 나니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아웃 크리-_- 그래도 요새는 그 메시지 뜨고도 바로 다른 창 넘어가는게 아니라

       제가 쓴 창 그대로 보여주는군요. 천만 다행 다시살려서 글 등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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