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 초에는 그닥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데뷔 앨범이 싫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여전히 그 앨범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가를 좋아하게 된 건 리패키지 앨범인 [The Fame Monster] 때부터였어요. 전곡 다 정말 좋았고 여전히 즐겨듣고, 특히 첫 싱글 'Bad Romance'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퀄리티가요.

 

길다면 긴 시간을 기다려 [Born This Way] 앨범을 손에 쥐었습니다. 전년도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으로 'Born This Way'를 들려주었는데 예상했던 것과 달리 강렬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아이덴티티 때문인지 앨범 전체에 흐르는 메세지도 좋았어요. 그래서 더 미친듯이 빠져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컨셉이 과해진다, 점점 대중과 거리가 멀어진다는 평이 즐비했지만 전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평범한 건 케이티 페리나 케샤가 하는 게 훨씬 잘 어울리고 잘 하는 것 같아서요.

 

굳이 가가까지 그런 걸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봤자 가가의 음악은 대중적인 그 자체지만요. 그 멜로디와 가사에 흐르는 가가만의 메시지가 좋았습니다.

 

 

* 가가의 공연이 좋았던 건 2011년 초에 있었던 그래미 시상식에서 선보였던 'Born This Way' 첫 프로모션 때부터입니다.

 

그 전까지 (앨범이 맘에 안 들어서 그랬는진 몰라도) 단 한번도 가가의 무대가 재밌었던 적이 없어요. 지루했습니다. 정말 싫었어요-.-

 

제가 브리트니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노래는 굉장히 자주 듣는 편인데 가가도 그때까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최고로 좋다고 꼽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무대가 별로였으니까요.

 

하지만 작년 그래미 이후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이후로 나온 소포모어 앨범 관련 프로모션, 뮤직비디오는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좋아합니다.

 

애증의 'The Edge Of Glory' 뮤직비디오마저 수십번은 본 것 같네요. 그래서 이번 내한 공연을 더욱 기대했습니다.

 

게다가 2012년 월드 투어의 첫 공연이라뇨, 한국의 가가팬으로써 얼마나 감동적인 '의미부여' 겠습니까! 정말 기다렸습니다.

 

 

* 참고로 스탠딩 2000번대 초반이었고 사실상 공연을 볼땐 1000번대 안쪽 분들과 함께 봤습니다. 키가 작아서 앞으로 나가봤자 장벽같은 분들에게 가려져서 좋을 게 없었고

 

저도 앞에 나가서 볼 생각은 없었는데 말그대로 밀려서 휩쓸렸습니다. 공연 시작전에 가가가 직접 초이스한 DJ가 게스트 오프닝 쇼를 선보였고 별로 특별하지도 참신하지도 않은

 

클럽음악에 열광하는 관중들 사이에서 가볍게 리듬만 타고 있었습니다. 체력소진이 어마어마할걸 예상했기에 괜히 땀빼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습니다만...

 

 

* 공연이 시작됐고 순간 스탠딩은 카오스였습니다. 밀리고, 밀고 난리도 아니었죠. 게다가 예상을 깨는 히트곡 위주의 셋리스트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오프닝을 'Marry The Night', 클로징을 'Born This Way'로 예상했는데 정반대였어요. 아무튼 신나게 따라 불렀습니다. 한 다섯 곡까지는 이렇다할 감상을 하기도 전에 미친듯이

 

달렸던 기억밖에 안 나네요.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 쭉 생겼고 공연 내내 불만 투성이었습니다.

 

 

* 저는 기본적으로 '스탠딩 좌석'이라면 의도치 않은 상황이 당연히 주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위험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 주의를 해야 하는 건 맞죠.

 

하지만 스탠딩석에 들어와 두시간 내내 '밀지 마세요'를 외치던 킬힐을 신은 20대 초-중반의 여성 관객들에 둘러싸여 봤던 입장에선 정말 짜증이 났습니다. 곡이 바뀌고, 무대장치가

 

바뀌고 있는데도 계속 뒤를 노려보며 밀지 말라고 하더군요. 하도 답답해서 '제가 미는 거 아니고 뒤에서 밀려오는거라 어쩔 수 없어요, 제가 잘 버텨볼게요 (전 남자입니다;)'

 

라고 했더니 '좀 밀지 말라고 하세요' 라며 날카롭게 받아치더군요. 심지어 제 옆에 있던 여자분은 앞에 있던 여자분이 아예 작정하고 뒤를 돌아 밀기 시작했습니다.

 

제 옆에 있던 여자분도 덩치도 작고 힘도 약해 보이셔서 계속 괴로워하고 계셨는데 그 분이 미는 거라고 생각했나보죠. 각자의 공간이 정해져있고 그 공간을 침해한 것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위치 변동이 무척 자유로운 스탠딩 석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분들이 꽤나 많았습니다. 덕분에 저는 공연 내내 가가의 노래보다도 (잠실주경기장 특성상

 

음향이 정말 별로였습니다.) 그 분들의 '밀지 마세요'를 더 많이 들었습니다. 적당히를 모르고 밀어대는 분들도 문제였지만 그 분들이라고 문제가 아니었던건 절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 한국에 내한오는 가수들은 모두 '떼창' 에 감동받고 간다고 하죠. 어제는 그런 게 거의 없던 것 같네요. 저는 팬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좌석도 아니고, 스탠딩석이라면 노래를 외워오는

 

분들이 꽤 많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 주변은 '이게 뭔 노래야?' 라고 하는 분들 투성이였고 심지어 떼창하는 저를 노려보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분들도 수두룩하게 있었어요.

 

팬카페 회원들끼리 온 걸로 보이는 무리와 저는 노래를 따라 부른다는 이유로 눈총을 받아야 했습니다. 저스트 댄스~ 따라 뚜루~ 밖에 못 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은 줄 어제 처음 알았어요.

 

그렇게 히트곡이 많은 가가인데, 한국에서 현재 최고의 존재감을 갖고 있는 외국 가수 중 하나인 가가의 노래를 모르면서 공연, 그것도 스탠딩에 서 계신 분들이 그리 많을 줄이야.

 

그래서 한 시간이 지나고부터는 아예 침묵했습니다. 그냥 서서 열심히 까치발을 들고 가가를 보았습니다. 물론 제 주변은 소리지르는 거 외엔 따라부를수 있는 분이 거의 없었구요.

 

 

* 예전에 Maroon5 내한 공연때 스탠딩 맨 뒤로 밀려났었는데 바로 앞에 키가 185는 될법한 남성 분이 여자친구를 지키겠다고 공연 내내 백허그를 하고 있는 바람에 뒤에서 밀리고 밀리던

 

안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어제는 그런 분들 투성이었어요. 물론 이해합니다. 그런 위험하고, 흥분되는 상황에서 '내 사람'이 다칠 수 있다 생각하면 본능적으로 그렇게 보호하게 되겠죠.

 

하지만 저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가만 서 있으려고 (심지어 앞에서 하도 밀지 말라해서 온몸으로 뒤에서 오는 압력을 버티고 있었습니다. 앞에 여자분과는 접촉조차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는데 옆에 서 계신 커플의 남자 분께서 팔뚝에 힘을 줘서 제 팔뚝을 밀어버리질 않나 그렇게 해서 뒤로 밀렸더니 이번엔 여성 커플로 보이는 분 두분 중 한 분이 '밀지 마세요'와 '내 사람 지키기'를

 

동시에 시전하시더군요. -.- 공연 보는 내내 그분들의 팔뚝 힘 사이에서 저는 양쪽 팔이 퉁퉁 부었습니다. 그렇게 힘을 주고 있으면 자신의 파트너 분도 충분히 힘들텐데 말이에요. 아, 물론

 

그분들은 무척 편하게 공연을 보시더군요. 솔로의 비애인가요? 아, 웃음이 안 나오네요.... 웃프지도 않고 걍 짜증났습니다.

 

 

* 저도 특정 가수의 내한공연을 못 갔다거나 좋아하는 가수의 외국 투어가 시작됐을때 유투브에서 fancam을 검색해보는 습관이 있긴 합니다만 스탠딩에 서 계신 분들이 모두 아이폰과

 

갤럭시를 들고 족히 50m는 떨어져있을 무대에 방향을 들이대고 있는 걸 보니 어이가 없더군요. 뒤에서 보기에도 뭐가 제대로 찍히지도 않을 뿐더러, 음향이 그렇게 뭉개지는데 핸드폰

 

카메라에 그게 잘 담겨질리가 있나요. 가가가 무대 앞쪽으로 나왔을때 얼굴을 한번 찍는 것 정도야 기념으로 그러려니 하겠지만 분명 앞에서 경호원이 제재하고 있는데도 공연 내내

 

핸드폰을 들이대고 계신 분들은 진짜 불쾌했습니다. '촬영 좀 그만 해주세요' 라고 말했는데 시끄러워서인지 들은 척도 안 하더군요. 덕분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인 'schiece'의 군무 부분도

 

겨우 봤고 이번 투어의 기본 무대 연출인 성 3층에 가가가 올라갔을때야 제대로 뭘 하고 있는 지 봤습니다. 대체 뭘 그렇게 찍고 싶어하는 걸까요? 비싼 돈 주고 왔으니 이렇게라도 남겨가야

 

겠다 싶은 걸까요? 아니면 포털 사이트 음악 카테고리 파워블로거라도 되시는걸까요? (그런 영상으로는 힘들텐데.) 아예 그럴거면 샤이니 팬클럽에 대포 카메라라도 빌려와서 찍지 저게

 

뭔가, 공연을 보는 사람도, 집에서 fancam을 볼 분들도 좋을 거 하나 없는 흐릿한 핸드폰 촬영이.... 아무리 '촬영 금지' 가 명목상의 규칙처럼 되어버렸다지만 어제는 좀 심하더군요.

 

 

* 공연을 보고 많이 화가 났었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애초에 판단을 잘못했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크게 두 가지로 느껴집니다.

 

1. 가가 공연이면 광팬보다는 '어? 레이디 가가가 한국에 온다고? 한번 가보자! 대단할 것 같아!' 라고 생각하는 가벼운 팝 팬이 더 많을 것 같다,.

 

어제 실제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공연 시작 전 듣보 DJ의 공연에 신나게 뛰어놀던 20대 초반의 남성 세 분은 막상 가가 공연이 시작되니 신나게 밀고 앞으로 나가기만 바쁘고 전혀 신나보이지

 

않더라구요. 그런 분들을 탓할 게 아니라, 어제 그 정도의 규모로 열리는 공연이고, 가가가 대중 지향적인 댄스 음악을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똑같이 잠실을 채워도 메탈리카가 주경기장에서 공연하는 것과, 가가가 주경기장에서 공연하는 것은 들어오는 관객의 성격 자체가 다를 수 밖에 없겠죠.

 

2. 공연 분위기를 느끼기엔 스탠딩이 최고지만 장소가 '주경기장' 이라면 좌석이어야 했다.

 

저는 지금까지 항상 공연을 스탠딩으로만 봐버릇했고 가가를 좀 더 가까이서, 열광적으로 즐기고 싶어 고민도 안 하고 스탠딩으로 예매한건데 차라리 R석이나 A석에서

 

위에서 말한 짜증나는 상황 없이 공연을 봤으면 무척 만족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건 1번의 이유와도 연관되어 있겠죠. 어차피 같이 간 '덕후' 일행들도 다 흩어져버린게

 

스탠딩이었고 내 주변의 모르는 관객들이 대부분 '가가라서가 아니라 현시대 최고의 팝스타의 공연이어서 온 분들' 이라면 당연히 제가 생각한 감상은 힘들었던게 맞습니다.

 

 

* 공연의 재미 자체를 따져도 그닥이었습니다. 애초에 가가가 레퍼토리가 그렇게 많은 가수도 아니고, 자궁 퍼포먼스같은 건 이미 많이 써먹어왔고 본인의 소포모어 앨범의 비디오에서도

 

충분히 어필한 부분이었기에 팬과 가수의 유대감을 느끼기엔 충분했지만 그뿐이죠. 게다가 아직 발표한 작품이 많지 않다보니 셋리스트도 충분히 예상되는 구성이었구요. 여러가지 이유로

 

짜증이 나니 집에서 마돈나의 'Sticky & Sweet Tour'를 보면서 눈물을 쏟으며 감동을 했던 순간이 절로 떠오르더라구요. 적어도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공연장보단 그 공연이 훨씬 감동적이었다구요.

 

뭐 연차도 차이나고, 적절한 비교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확실히 가가의 레퍼토리나 가치관, 사상을 잘 이해하고 있는 팬이어도 특별히 예상을 뛰어넘는 공연은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 다음에 또 가가가 한국에 온다면 -솔직히 안 올 것 같아요....- 그때는 기필코 좌석에서 봐야겠단 생각을 했고, 만약 그 다음 공연도 장소가 주경기장이라면 참석 자체를 제고해볼것 같습니다.

 

펜싱이나 체조에서 했다면 훨씬 완성도 있는 공연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그래도 가가가 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절로 느껴지는 순간이 많았고 오늘 출국길에 팬들을 위해

 

의상을 고르느라 시간을 허비했다는 소식까지 들으니 그래도 팬으로서 많이 고맙네요. 역시 가가구나 싶기도 하고. 앞으로 남은 투어 잘 했으면 좋겠어요. 몸 건강히.

 

 

* 문제가 되거나, 논란을 일으킬 부분이 없도록 글을 쭉 써봤는데 많이들 거슬리시는 부분이 있다면 글 삭제하겠습니다. 애초에 개인의 감상으로 논란이 일어나고 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 공연에 대한 블로그 평같은걸 읽어보다가 가슴이 답답해져서 제가 제일 편안하게 느끼는 듀게에 적어봤습니다. 불편하신 글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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