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13 01:12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 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장석남, 배를 밀며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 아슬아슬 배에서 떨어진 손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두며, 뵈지도 않는 길에서
못다한 침묵을 부드럽게 밀어내는 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네요.
또 한 번의 사랑이 가고, 다시 또 사랑이 오는 삶을 맞으면서,
최승자 시의 한구절처럼, '중요한 것은 삶 뒤에 또 삶이 있다는 것'이지만,
이순간엔 '죽음 뒤에 또 죽음이 있다는 것'만 떠올립니다.
2012.05.13 01:27
2012.05.13 01:38
2012.05.13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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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일도 없으면서 넋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
장석남, 배를 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