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킹 투하츠’/ 2012년 대한민국, 어느 드라마적 판타지의 완성에 대하여

 

21세기 왕족이 대한민국의 품위와 판타지를 위한 공식지정 마네킹, 허수아비라고 말하는 서열 2위의 왕제인 이재하(이승기)는 자신이 누구며 뭘 가졌고, 어떤 한계가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이상하게도 그는 극의 초반부터 왕이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의도적으로 내내 표시한다. 하지만 천방지축에다 뺀질 거리는 이 남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가 없다. 오히려 그가 보여주는 위악이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서 애써 도망가려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재하는 드라마의 중반까지 무언가 계속 회피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WOC(세계장교대회)의 참가는 물론이며 김항아(하지원)와의 로맨스에서도 마찬가지다. 김봉구(윤제문) (자신의 힘을)인정받고 싶어 안달 난 어린아이처럼 구는 모습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과연 이유가 뭘까?  

 

질문을 잠시 접고 우선 입헌군주제라는 가상의 설정이 왜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재하의 대답을 빌려 표현하자면 국민들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21세기의 왕족은 우아하게 웃어주며 대한민국의 품위와 대중의 판타지를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가상의 왕을 브라운관으로 불러낸 시청자들의 판타지는 무엇인가? 국민의 세금을 받는 만큼, 돈 값을 좀 하자라고 말하는 국왕(이성민)은 드라마 내내 남북의 화합을 위해 힘쓰고, 품위와 소탈함을 가진 이상적인 왕으로 그려진다. 여기에서 왕은 봉건주의 시대의 그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하는 자본주의 시대 이상적 모델에 가깝다. 우리시대의 만연한 천민자본주의의 폐해 속에서 대중들의 보고 싶어하는 인간적인 품위 갖춘 사람 말이다. 엄청난 자본으로 전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클럽 M의 회장인 김봉구와 비교하면 이는 더 분명해진다. 불쾌한 장난 같은 마술을 좋아하고, 애처럼 히스테리를 부리는 등 기괴한 성격과 행동을 보이는 그가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미친 짓도 마다하지 않는 자본의 변태성을 상징할수록 왕의 고상함과 아우라는 빛이 난다. 

 

잠시 영화 다크 나이트를 떠올려보자. 나는 극의 처음부터 왕실의 비서실장인 은규태(이순재)가 브루스 웨인의 집사인 알프레드를, 카드 마술을 선보이며 기괴한 미소를 띤 김봉구가 조커를 코스프레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실제로 은규태는 집사처럼 이재하를 보필하며, 절대 악 김봉구는 그를 왕으로서 각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낮에는 부유한 기업가이자 밤에는 정체를 감추고 악에 맞서 싸우는 브루스 웨인이야 말로 자본주의 시대의 영웅이자, 그럴듯한 판타지이다. 조커를 체포하기 위해 그가 시민들의 휴대폰을 도청하는, 이 있을법한 장면은 그걸 가능하게 하는 자본의 현실적인 힘과 위협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스크린 속의 자본가 영웅과 브라운관 속에 가상의 왕의 존재는 분명 자본주의 시대의 살고 있는 대중들의 판타지가 만들어낸 무엇이다.

 

그렇다면 브루스 웨인과 이재하 둘 중 좀 더 현실적이고, 그럴듯한 판타지는 누구인가?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들어가보자. 위에서 이재하가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숨긴다고 가정했는데,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나는 그가 왕이 되는 욕망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무언가 내심 걸려 하기 때문이라 믿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재하가 이 드라마에서 입헌군주제라는 판타지를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왕의 자리를 회피하는 이유라 생각한다. 국왕의 죽음으로 좋든 싫든 이재하는 왕의 자리를 승계 받았고 이야기는 날라리 왕족이 제대로 된 국왕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이재하는 드라마적 판타지의 완성을 위해 왕이 되어야 하며, 여기엔 명분이라는 카드가 필요하다. 21C 대한민국에 이재하가 존재함으로써 얻어지는 것들 말이다. 요컨대 더킹 투하츠는 스스로 판타지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의 서사이다.

 

더킹 투하츠는 대한민국 현실과 이재하를 정면 대치시키며 답을 얻고자 한다. 미국과 중국이 폭탄사고 조사를 명분으로 훈련장을 어지럽히는 행패를 보이자 왠 오지랖이냐 일갈하는 이재하의 대응은 현실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간섭에 비춰봤을 때 일종의 대리만족을 준다. 국왕암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벌어지는 청문회에서 벌어지는 정치인들의 이권다툼을 보며 밥그릇 싸움이란 대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김봉구로 상징되는 자본의 저열과 싸움만 일삼는 정치판의 비열, 그로 인한 대중의 환멸이 이재하의 존재, 즉 그럴듯한 판타지를 완성시킨다. 드라마 초반 한국같이 작은 나라에도 왕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봉구는 대한민국의 오래된 분열과 갈등의 썩어빠진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왕의 존재를 무시하며 부정한다. 그러니까 왕은 단순히 왕족이라는 혈통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2012년 대한민국에 결핍된 위신을 바로 세울 가상인물의 어떤 예시다.

 

이제 막 국왕이 된 이재하에게 판타지의 완성을 위한 과정은 아직 멀고도 험난하다. 김봉구가 암살의 배후임을 알게 되었지만, 증거보다 중요한 힘이 없고, 힘과 돈의 원리로 돌아가는 세상에 정의란 없다며 그를 만류하는 은규태의 말에서 이재하가 넘어야 할 수 많은 장벽들을 짐작 할 수 있다. 이재하가 제대로 된 왕이라 생각하지 않는 은규태가 은시경(조정석)을 질책하면서 국왕이니까, 강하다고 믿고 싶겠지라고 던지는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왕이니까 그가 모든 걸 해쳐나갈 것이라는 판타지에서 벗어나 그가 어떻게 판타지를 완성해 나가는지 조용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실패든 성공이든 이 드라마가 제법 흥미로운 게임인 구석은 여기에 있으니까.

 

덧붙여, 우리는 2012 12월의 어떤 드라마를 예약하고 있다. 판타지가 대중의 바람이라면, 브라운관 속 판타지의 완성에서 그 드라마 내용을 조심스럽게 미리 점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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