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휴학시켰던 교수님

2012.06.18 11:13

Tutmirleid 조회 수:3202

저는 평범한 공대에서 수업을 매끄럽게 잘 하거나 잠으로 인도하시는 교수님들 사이에서 고만고만하게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H교수님이 나타나셨죠


H교수님은 타과 대학원 교수님이신데

닥터드레 헤드셋을 좋아하시고 색소폰의 대가로 일명 케니H이신 낭만적인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분은.... 거의 교양만 듣다가 올라와서 ㅇㅅㅇ교수님 그게뭐에여? 하고 있는 2학년들을 상대로 양민학생 대량학살 스킬을 시전하셨습니다.


대개의 전공 수업은 내용이 어렵다뿐이지 수업 방식은 고등학교 때나 별 다를 바 없었고 조별로 밤샘이 필요한 이론설계나 과제, 퀴즈가 좀 많다 뿐인데

(사실 그것도 힘들어요 막장플레이 안하고 제대로 수업들으려면 캠퍼스의 낭만은 개나 줘버려야 하죠)


아따 원서도 모자라서 영어로 수업하시네요?

거기다 영영한 사전만한 교재가 1+1로 주교재에 부교재까지!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주교재 부교재 한챕터씩 매주 빈칸테스트를 봐요! 말로만 듣던 영단어시험용 교과서 씹어먹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빈칸테스트 비중이 꽤 높았는데다 적립식으로 하면 나중에 격차가 꽤 납니다. 아주 x줄타죠

그리고 2학년이 과제로 논문을 썼습니다! 그것도 막대한 양의 논문을 소화하고 쓰는 리뷰논문....


그러다가 나서는 거 별로 없이 찌그러져 공부하던 저와 친구가 제대로 멘붕당한 건

인간이 도대체 풀 수 없게 만들어놓으신 중간고사!!! 환산해서 100점 만점에 xx점 맞으면 고득점....

조용조용 다크템플러로 살아가며 좋은 성적에 만족하던 저와 친구는 휴학을 결심합니다. 야 못살겠다 때려치자

몇 번이고 그 순간으로 돌아간대도 휴학할 거 같습니다 으으 내가 xn점이라니!!!

생각해보니 아깝네요 둘이 1,2등이었거든요 나중에 복학생오빠들이 둘이 사라졌다고 아주 살판났다 하셨더라는 후일담이 있습니다

(친구는 머리가 좋았고 저는 영어패치였슴다. 저는 아직도 전공 잘 모르겠어요....ㅠㅠ)


무슨 80년대 청춘영화에 빙의되셨는지 저희아부지는 '네가 그만한 일로 도망가다니 비겁하다!!!!!!!' 드립을 날리셨고 저는 제대로 도발되서는 '아 복학하면 듣는다고!!!'라는 말을 하고말았습니다

그런 짓을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그래서 약속대로 재수강했는데 아버지는 정작 까먹으셨더라고요???????


여튼 저는 그 후 일년반을 아주 충만하게 놀다 돌아갔고, 친구는 일찍 돌아가 공부에 더 불이 붙더니 한 학기 휴학했지만 조기졸업으로 제때 졸업하는 신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학년 수석.

저도 제대로 삘받아서 친구처럼 제대로 열심히 했으면 좋았겠지만...? 제 그릇은 여기까진가봐요 헤헤헿 그래도 재수강해서 에이쁠 맞았어엽(자랑입니다)그리고 나머지과목은 원단폭격

H교수님 과목 하나가 있는 학기 VS 밤샘 조별설계하는 과목 다섯 개 있는 학기 중에 뭐가 더 힘든가? 비교해보면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거 있죠.


여튼 복학해서 재수강 에쁠을 맞은 다음학기 H교수님의 다른 과목을 듣게 되었는데

수업소개 겸 엄포...를 놓으시다가 교수님이 '너네과엔 전설의 레전드 K양이 있지...'하고 제 친구 이야기를 꺼내시는 검니당.

좋은 대학원 루트를 타게 된 친구를 자랑스러워하시며 '나중에 교수되면 나같은 교수된다고 해써 어허허헣'하고 좋아하시는 거였죠


아니 나같은 교수가!!! 나같은 교수가!!!!!!!!! 나같은 교수가!!!!!!!!!!

저는 거기서!!!! 뭔가 머리가 빡!!! 돌았기 때문에


"아 교수님!!!!!! 그건 시집살이 호되게 한 며느리가 업그레이드 시어머니가 되는 거랑 똑같잖아요!!!!!!!!!⊙▽⊙"

하고 수업중에 발끈-_- 해버립니다.





아 교수님.......

진심으로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차라리 화를 내시지 어허허허헣ㅎ헣헣하고 웃으셔서 더 빡쳤습니다



그래도 저 교수님 많이 좋아해요! 

쿨한 분이시기도 하고, 이런 거 안 받아주실 분이면 가만히 찌그러져 있었겠죠ㅋ

조기졸업 친구는 4학년 때 교수님 과목을 한 번 더 듣고 시험보고 다시 멘붕이 와서(저는 안 들었슴다) "교수님 시험 망했어요"하니 
"그거 정상이다"라고 위로해주셨다고 합니다.


으으으으 교수님!!!!!!!!


+ 설계 때문에 주말에 학교에 붙어 있던 한 선배가 저녁에 집에 가다가 교수님을 만났는데

교수님 늦게 퇴근하시네요? 하고 여쭤봤더니 내가 열심히 해야 너넬 괴롭히지 허허허허허헣ㅎ허헣 하고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아 이분.... 진짜다......



저는 친구가 교수가 되면 교수님을 추억하며 친구에게 제 미래의 자식놈을 맡기기로 했습니다(코리안 캔디 좀 먹어봐라)


++ 시험에 깨알같이 드립을 넣어놓으신 교수님

쉬운 물리 문제에 '악명높은 H교수가 건물로 들어가는 순간 학생이 n미터 높이에서 m키로의 물체를 떨어트렸으나 맞히지 못했다(던진학생은 shit!!을 외침)'라는 부분이 있었어요

교수님 학생들을 잘 알고 계시군뇨.



+++ 교수님이 소수정예로 운영하신 수업에서 PPT 발표를 한 조에 한 시간씩 피드백(폭풍까기)해주셨었죠

한 시간 동안 하얗게 머리속을 불태우고....

다음 학기부터는 그래도 좀 더 자신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 감사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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