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와 기안

2020.08.19 11:48

Sonny 조회 수:1373

저는 이제 이런 논쟁을 하는게 좀 쓸모가 없는 것 같아요. 늘 단순하고 투박한 관념만을 이야기하는 사람 vs 비평적, 사회적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의 구도가 벌어집니다. 그러다보니 전자가 늘 주장만 한다면 후자는 그 전자를 설득하기 위해 쎄빠지게 긴 글을 구구절절 쓰는 양상이 되풀이됩니다. 중요한 건 맥락과 디테일입니다. 자유! 를 외치는 분들은 늘 비평적, 정치적 맥락을 아예 염두에도 두지 않은 채 그냥 참고 받아들이라고만 하는 것 같습니다.

복확왕의 퇴출 논란에는 일단 작품을 즐기는 이용자의 연령, 그 작품이 게재되는 매체, 해당 장르의 작품들이 보이는 표현 수위 정도의 맥락이 거론되어야 할 것입니다. 듀게에 있는 분들 대다수는 검열에 반대할 거에요. 문제는 검열을 찬성한다는 입장 곡해가 아니라, 각 매체에는 일정 기준을 가지고 규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거의 전연령이 이용가능한 네이버라는 매체에서, 성적인 묘사는 최대한 간접적으로 나오리라 기대되는 공영방송 수준의 매체에서, "여자가 성접대를 해서 입사했다ㅋ"의 묘사가 과연 무조건적으로 게재되어야하는가 하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안의 작품에서 문제시되는 지점은 어떤 묘사 자체보다도 그 묘사가 가리키는 대상과 그 묘사에 담긴 "ㅋ"의 지점입니다. 그는 그냥 농담을 하고 싶을 뿐인데, 그 농담이 비열하고 차별적 성격을 띄고 있어서 네이버라는 국민적 매체에 실리기에는 매우 부적절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분들에게는 그런 반문을 좀 하고 싶죠. 네이버 웹툰에 일본 상업지 수준의 작품들을 허용해도 되냐고요. 뭐 이런 인질극에 모든 기준을 포기할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대체 왜 일본만화의 욱일기 논란이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모욕 논란이나 우익 논란은 왜 일어나냐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게 있다면 누가 뭘 해도 꼬운 티 내면 안되고 다 얌전히 참고 견뎌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작품의 어떤 표현이 수용되는데는 그 한계치가 있고 분명한 선이 있습니다. 왜 그 선을 이야기하자고 하면 두루뭉실한 표현의 자유만 이야기하는 걸까요. 가치관과 가치관이 충돌하는 게 맥락 아닙니까...

지금 기안은 자기 작품에서 봉지은이란 캐릭터로 그런 농담을 한 겁니다. "여자들은 성상납하고 회사에 들어가기도 하잖아?ㅋ" 그걸 네이버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여자들"이라고 명시해서 말을 한 거에요. 만약 봉지은이 (이름 진짜....) 정말 가상의, 특정한 캐릭터라면 그가 이상하고 현실적으로 괴리되어있으며 그게 일반 여성들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르다는 표현이 있었어야하지만... 기안이 언제 그런 묘사를 하는 작가였던가요. 그저 다른 남자들이 일반적으로 품고 있을 편견을 농담조로 툭툭 던지면서 세상 원래 그런거잖아 하고 자조하는 게 전부인 작가죠.

그게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에게는 좀 묻고 싶어집니다. 본인의 오프라인에서도 잘 모르는 여자들에게 "어떤 여자들은 성상납하고 회사에 들어가잖아?ㅋ"라고 대화를 나누시나요? 강용석이 국회의원 시절에 아나운서를 지망한다는 여성 대학생에게 아나운서 되려면 성상납도 해야 된다고 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게 꽤나 떠들썩했던 일 아니었던가요. 그런 대화가 네이버 같은 대형매체에서 아무 의도 없이 노출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여성에게 성상납을 받는 사회가 그냥 농담거리이거나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소재인가요?

표현의 자유라는 게 아무데서나, 아무한테, 아무렇게 말을 해도 된다는 무제한의 관용은 아닐 것입니다. 작품이라는 픽션세계가 현실이랑 별도로 분리된 진공세계라서 어떤 표현이든 다 재미나 농담으로 수용되는 것고 아닐 것입니다. 작품은 창작자가 수용자에게 던지는 또 다른 언어입니다.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넌 어때? 그 언어는 담고 있는 내용에 따라, 말해지는 장소에 따라, 듣는 사람에 따라 당연히 자유의 정도와 비판적 반응도 다릅니다.

네이버 웹툰은 아주 다수의 사람들에게 보편적 언어를 말하는 곳입니다. 그 언어는 공적인 매체로서 욕설도 제한을 둘 만큼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다수의 이용자들에게 어떤 여자가 성상납을 한다는 내용을 킬킬대면서 말하는 게 과연 허용되어야 하는지, 그것이 비판과 분노의 의도가 아니라 그저 농담거리로 소수자를 비아냥거리는 게 괜찮을지 좀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저는 이제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시는 분들의 길고 세세한 주장을 좀 듣고 싶습니다. 그저 무조건적으로 모든 비판을 금지하자는 건 아닐 테니까요. 어떤 작품들은 비판이 가능하고, 어떤 작품들은 비판으로 부족해서 퇴출까지도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맥락없이 무조건적인 옹호가 아니라, 왜 여자가 성상납한다는 비열한 농담이 네이버 웹툰이라는 매체에서, 여자들이 직장 내 권력형 성폭력을 당하고 무고범으로 몰리는 현실에서 어떻게 유효할 수 있는지, 작품이 여성을 바라보는 태도가 일베랑 얼마나 닮아있고 그것이 공적 매체에서 허용될 수 있어야 하는지, 그런 걸 좀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아무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자유만 주구장창 외치면서 마스크 쓰기를 반대하는 미국사람 같은 주장보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그 명확한 이유를 좀 듣고 싶습니다. 이것은 단지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이고 소수자 차별에 관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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