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가 권고사항이 아닌 의무 사항입니다.

일 주일 째 집에 있으니 고양이님이 놀아달라고 자꾸 보채는군요.


사재기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확진자의 수는 미미한 수준인데도 이 모양이니 진짜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게 되면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보일지 무서워요.

동네에 조그만 쇼핑몰이 있는데 거기 수퍼마켓이 항상 한산했거든요. 인접한 두 이웃동네(걸어서 15분 거리)에 커다란 쇼핑센터들이 있어서 저희동네 수퍼는 물건도 다양하지 않고 채소도 덜 신선한 편이죠. 그런데 갑자기 활황이 시작됐습니다. 문열기전 아침부터 장사진을 치고 있습니다. 맞은편에 한국인 카페가 있는데 덩달아 호황중. 사람들이 쇼핑하고 커피마시고 밥 사먹고 돌아다닙니다.

한 달쯤 전에 호주사람들이 화장지 사재기 하는 것만 뉴스에 나왔을 때는 그걸로 인터넷 밈 놀이하고 놀았는데요. 막상 필요할 때 물건이 없어 구하질 못하니까 이제 짜증이 납니다. 쇼핑몰 2층에 있는 한국 마트 아주머니가 바이러스보다 사람이 더 무섭대요. 거기도 쌀이며 화장지며 티슈며 다 떨어지고 없습니다.


항공편이 다 끊겼는데 혹시나 한국 물건 수급에 지장이 있지 않나 마트에 물어보니 배로 들어오는 건 괜찮대요.

그런데 중국발, 한국발은 물건을 전수조사 한다며 지금 컨테이너가 검역소에 묶여 있답니다. 재고는 다 떨어졌는데 지금 컨테이너 검역이 4월로 잡혀 있대요. 언제 들어올지 모른답니다.


총리님이 매일같이 급변하는 상황에 맞는 정책 발표를 하면서 '제발 사재기 좀 하지 마라'고 구구절절이 외치지만 사람들이 당췌 말을 들어먹지 않습니다. 아니 그게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건가? 유치원생도 아니고. 진짜로 그렇게 얘기해요. "당신때문에 필요한 사람이 구매를 못하니 제발 필요이상으로 사지 마세요.' 이걸로 행정명령 할 판이예요. 아니면 이미 떨어졌거나.


한국 문화가 집단적이라는 말을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저는 그게 '보스 1인 체제를 정당화 하기 위한 구실'이라고만 생각했죠. 유독 '우리는 하나'를 강조하는 집단을 보면 제일 위선의 짱 1인이 내 맘대로 다 해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살면서 그게 아니라 정말 한국인의 (동양일 수도 있는데 제가 다른 나라 문화는 경험을 못해봐서 일단 한국만 예로 듭니다) 집단 문화가 있다고 깨달아가는 중입니다. 말하자면 저런 광적인 사재기도 그 중의 하나예요. 한국에서 만약 누군가가 한 사람이 물건을 싹쓸이 하고 있으면 생판 모르는 지나가는 사람이 오지랖을 부리며 '거 어려운 시기에 남들 생각해서 적당히 하라'고 훈수를 둘거고 거기에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씩 거들기 시작하면서 사재기를 하던 사람은 민망해서 물건을 놔두고 황급히 빠져나갈 거라고 상상합니다. 


물론 한국인도 사재기를 하겠죠. 그래봤자 라면, 생수, 참치 통조림 정도일테죠. 라면은 없으면 즉석밥이나 아니면 제대로 된 식사를 하면되고 물은 수돗물을 먹어도 됩니다. 그런데 여기처럼 모든 생필품을 벌써 한 달째 가게에 물건을 갖다놓는 족족 동이 나니 혹시 최근에 냉장고와 냉동고의 폭발적인 판매 증가가 있었나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고기와 빵도 냉동 저장하기 위해 모두 팔려나가고 심지어 밀가루까지 사들입니다.


이런 차이를 느끼는 건 회의할 때나 프리젠테이션 있을 때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는 회의 시간이 초과되었다는지 그러면 질문을 할 때도 혹시 다른 사람에게 민폐인가, 이 질문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가 등등을 고려합니다. 그래서 이게 나 혼자만의 문제라면 회의를 우선 끝내고 따로 질문을 하든지 그러잖아요. 여기 애들은 그런 게 전혀 없어요. 회의 중간에 사이드로 빠지는 혼자만 관심있는 질문을 혼자서 줄기차게 물고 늘어져서 회의시간을 다 잡아먹기도 하고 시간이 초과되었는데도 아랑곳 않고 자신의 의사표현을 반드시 해야만 하죠. 그리고 그런 게 참으로 권장되는 태도라서 말릴 수가 없습니다.  '혹시 나 때문에 다른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나?' 이런 생각을 1도 안합니다. 


요즘 진지하게 '한국의 집단 문화란 이런 걸 말하는 건가? 그럼 그렇게 나쁜 건 아닌데' 생각중입니다. 제게 더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죠. 모든 건 장단이 있고 양날의 검이니까요. 똑같은 오지랖이  명절 친척들의 '취직은 했니? 결혼은 안 하니? 네 사촌 누구는...?' 이런 질문으로 발화하기 시작하면 또 그만한 짜증이 없죠. 


쌀이 떨어지면 밥을 시켜먹으면 되는데 고양이 사료를 못 구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예요.

엄청 잘 놀라고 바스락 소리에도 겁을 집에 먹는 애인데 최악의 경우에 밖으로 내 보내서 직접 사냥하게 해야 되나요? 그런데 얘가 사냥을 할 수나 있을까요?


남자친구가 '진짜 진짜 상황이 나빠져서 먹을 게 하나도 없고 너와 고양이 둘 중에 하나가 서로를 잡아먹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쩔거냐?' 고 묻습니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한국 정부가 전세기를 보내줄거다'라고 받아쳤습니다. 

그런데 사실, 먹을 건 넘쳐나요. 밀가루와 육류를 세계 수출하는 나라인데 부족할리가... 얼마전에 비도 많이 내려서 농부들 상황도 나쁘지 않고요. 


참, 사재기가 넘쳐나니 수퍼마켓들이 배달 서비스를 중단했어요. 웃기는 곳이죠. 이 시국에 배달을 안 하다가도 해야할 상황인데 시행중이던 온라인 판매를 중단하고 모두 직접 가서 쇼핑을 해야 합니다. 자가 격리중인 사람들은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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