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2011.08.23 21:27

은밀한 생 조회 수:2423

네.

 

마치 미리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나를 놀래켜 주려고 깜짝 쇼라도 하는 것처럼 세상이 너무도 친절할 때.

이거 이래도 되나 싶게 다들 나의 어두운 예상을 뒤엎을 때.

많이 거창한가요? 하하.

아무튼 제가 요즘 이런 행운들 속에서 탄성을 지르는 중입니다. 한 번 얘기해 볼게요.

 

1.

올리브 영.

저희 집 근처 올리브 영에 가끔 가는 편인데, 혼자 사는 사람한테는 대형 마트에서 잔뜩 사들고 오는 물품들이

전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지라 각종 생필품들을 그때 그때 조금씩 사는 편이에요.

가격도 오히려 마트보다 더 저렴한 것 같고 할인 행사도 거의 365일 연중 무휴로 하는 것 같아서 가끔 이용합니다.

(사실 이건 행운이나 친절이라기 보다.....부자 기업의 거대 자본력 낭비에 흠칫한 경우에 가까울 것도 같아요)

전 손을 비누로 씻지 않은지 5년이 넘은 것 같아요. 손 세정제로 씻어야 마음도 개운하고 손도 덜 뻣뻣하더라고요.

마침 데톨 손세정제 리필이 필요해서 구매하려다가 리필 제품이 없길래 그냥 본품을 담았던 적이 있어요.

그리고는 구입한 다른 물품들과 함께 계산대 위에 올려 놓았죠.

계산원이 물건들을 정산하며 쇼핑 가방 안에 넣어주려던 순간, 계산원 뒷쪽으로 보이는 손세정제 리필 8개 정도가 보였어요. 

전 반색을 하면서 "어머 저거 제가 사려던 건데 판매대에는 없던 걸요?" 라고 했죠.

 

계산원 : 아 그렇습니까? 고객님?

은밀 : 네 ㅎㅎ

계산원 : .....

은밀 : 흑 저거 제가 찾던 건데 하나 주세요. 전 사실 리필이 필요하지 통은 집에 되게 많거든요....

계산원 : 아 그럼 그냥 하나 드릴게요.

은밀 : (순간 귀를 의심하며 심장이 두근....) 정말요?

계산원 : 네에 (빙그레 웃는다)

은밀 : 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요?

계산원 : 네에 (또 빙그레 웃는다)

은밀 : 그, 그럼.... 감사합니다.... (꾸벅)

계산원 : (계산을 모두 다 마치고 마지막으로) 그럼 이 본품은 안 하실 거죠?

은밀 : (또 귀를 의심하며) 그, 그래도 돼요? 본품 안 사도 저걸 주실 거예요?

계산원 : 네에 (또다시 빙그레 웃는다)

 

뭐 이런 겁니다. 그래서 갑자기 공짜로 리필 제품을 얻어서 집에 돌아왔단 겁니다.

어리둥절하면서..... 이게 바로 통 큰 영업이란 말인가? 사랑하는 고갱님이 조금이라도 불편해 보이면 뭐든 팍팍 주라고

응대 방식 지침서에라도 써 있는 건가? 마구 갸우뚱 하면서.....그러나 기분은 솔직히 좋았어요.

어흑. 이런 식으로 대기업의 노예가 되는 건가요.... 아 그리고 물티슈 건도 있습니다. 들어보세요?

 

손 세정제 리필을 그냥 받기 며칠 전에 물티슈를 사러 갔었습니다.

마침 2700원쯤에 (정확하진 않아요) 70매짜리 깨끗한 나라 허브 물티슈를 1+1 행사를 하길래 얼씨구나 하고 집어 들었죠.

그리고 룰루랄라 오늘도 득템했어 아자! 씐나게 계산대 앞으로 가서 당당히 물티슈'만'  턱 하고 올려놨죠.

 

계산원 : (바코드를 찍어보다가 찍어보다가 찍어보다가 잠시 주춤하더니...) 아 저 고객님 잠시만요오.. 매니저님!! 매니저니이임!!!

매니저 : (창고에서 물품 정리하다가) 어 왜애??

계산원 : 이거 행사 상품 맞아요??

매니저 : (계속 물품 정리하면서) 어 그거?? 잠깐만??

계산원과 매니저 : (둘이서 뭔가 속닥속닥하면서 물티슈를 보고 물티슈가 있던 자리에 가보고 한다)

계산원 : (아주 재빠르고 경쾌한 걸음으로 다시 돌아와) 고객님 이거 행사 상품이 아닌데 저희쪽 실수로 행사로 표시됐나봐요.

              그냥 가격 할인인데 1+1으로 잘못 표기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은밀 : 아 그래요? 그랬구나.....

계산원 : 네 죄송합니다 

은밀 : 아 네 아니에요 (내밀었던 돈 보다 돈을 더 꺼내려고 지갑을 연다...)

계산원 : 아 고객님 그냥 1+1으로 드릴게요.

은밀 : 네?

계산원 : 그냥 2700원에 1+1으로 드리겠습니다 (빙그레 웃는다)

은밀 : 아, 네... ;;;;;

 

아니 아무리 그쪽에서 표기를 잘못했어도 그렇지, 그렇다고 통도 크게 2700원에 1+1으로 팍 줘버리다니.

너무 통 크신 거 아닙니까? 어쨌든 저는 이런 일련의 일들 때문에 물품 구성이 점점 편협해져서 탐탁치 않았던 올리브 영을

당분간 계속 이용할 것 같은데..... 바로 이걸 교묘하게 계산한 마케팅 전략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2.

토스트 가게.

 

오늘 저녁으로 감자 치즈 야채 토스트를 사 먹으려고 동네 이삭 토스트에 갔습니다.

거긴 아주머니 한 분께서 장사를 하시는데 정확히 8시면 문을 닫아요.

8시 2분에 갔다가 헛탕을 치고 온 적도 있답니다.

서넛의 여고생들이 토스트를 서서 먹고 있는 와중에 제가 주문을 넣고 수퍼에 다녀 오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수퍼에 가서 삼각 커피 포리를 6개 사고 (이거 요즘따라 왤케 맛있나요) 칠갑농산 우리 쌀국수 북어맛을 6개 샀습니다.

근데 칠갑농산 우리 쌀국수 북어맛 이거 진심 듀게에 포스팅 하고 싶어요 인스턴트 국수지만 정말 맛있어요.

면발이 가느다랗고 찰지고 부드러우면서 기분 좋은 느낌이에요 국물도 시원하고요.

여튼 거기다 숙주 나물,오이,두부,상추,깻잎,바나나,푸른 사과 등등을 사고 장바구니를 든채 우산을 들고

좀 낑낑대며 하지만 씩씩하게 (여엉차! 정도?) 토스트 가게를 들어셨죠.

 

은밀 : ㅎㅎ 사장님 얼마에요?

사장님 : 네 치즈 야채 토스트, 감자 치즈 야채 토스트 이렇게 해서 모두 4300원입니다.

 

그렇습니다 전 토스트 하나는 그냥 군것질이지 식사가 못된다고 생각하는 배 큰 여자.

아니 식사라면 토스트 두 개는 먹어줘야되는 거 아닙니까?

 

은밀 : (주머니를 뒤지다가 낙담하여) 어 사장님 죄송해요 제가 얼른 집에 뛰어갔다 올게요 돈이 모자라요.

사장님 : (대번에 웃으시며) 아휴 손도 불편하시고 비도 오는데 어딜 가세요. 그냥 다음에 주세요.

               그거 돈 가지고 다시 오려면 귀찮아요.

은밀 : (눈물이 핑 돌게 감사하며) 어 아니에요 제가 얼른 뛰어가서 200원 가지고 올게요.

사장님 : 아휴 아니에요 귀찮으세요. 그냥 다음에 주세요. 제가 깎아 드렸다고 하면 되죠 그죠?

               자주 오세요 (예쁘게도 환하게 웃으신다)

은밀 : (비는 내리고 두 손은 자유롭지 못하고 뭔가 타협하고 싶어진다...) 어 그럼.... 제가 내일...

           꼬옥.... 가져다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꾸벅..

 

이러고 집에 종종 왔는데 아직도 기분이 좋아서 혼자 히죽히죽 웃다가 듀게에 소상히 아뢰고 있는데요.

써놓고 보니까 뭔가 굉장히 쪼잔해 뵈는 게..... 이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히히.

그냥 몇 분 안되더라도 이 글 보시며 그 몇 분의 기분이 조금 좋아지셨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마구 의미 부여해 봅니다.

 

좋은 밤 가지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신 : 사실 이거 말고 몇 가지 더 있는데 쓰다 보니까 어쩐지 뭔가 오글오글한 기분이 들어가지고..... 자제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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