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낮에 ㅄ아치와 된장녀글을 읽었습니다.

 

ㅄ 아치라고 적어도 저는 보슬아치로 읽히던데, 그 이름은 부르지 말아야 할 어떤 이유가 있나 싶네요.

 

그럼 저는 볼드모트라고 부르겠어요. 대신 딴 분들은 라고 불러야됩니다.

 

흔히 미인계라고 불리던, 여성성을 이용한 사회생활(?)이 볼드모트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희화화 된 것은

 

얼마되지 않았죠.

 

댓글들을 읽다가 그냥 사회 실패자들이 내뱉는 열등감 폭발로 받아들이라는 글이 드문드문 보이더라구요.

 

저는 화가 났어요. 사실 그래서 숨겨왔던 나의 ~ 전투기질로 앙하고 물어뜯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생겨서

 

갔다오니 식어버렸습니다.

 

 

이성에게 인기가 없고, 능력이 없는 저를 포함한 우리 시대의 젊은 실패자들은 당연히 열등감 덩어리에

 

삐뚤어진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기본 전제 때문이었습니다.

 

 

강남 대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볼드모트라고 말해요. '으휴. 저 볼드모트' 정도 되겠네요. 

 

뒤돌아보니 여름이라 더운지 육수를 뽑아내고 있는 찐따같이 생긴 한 청년이 유니클로에서

 

옷을 사고 나오는 길이네요.

 

기분은 잡쳤지만, 얼굴을 보고 그냥 웃어줍니다. 그래 넌 볼드모트를 부를 자격이 있는 생물이구나.

 

그래, 그렇게라도 울부짖어야지 호호호

 

 

일종의 방어기제 였을까요. 언제가부터 여성성을 공격하는 폭력은 찌질이들의 전유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볼드모트를 울부짖는 그린핀도르 학생들과 찌질이들이 같은 인물이라는 팩트확인이 불가능했습니다.

 

찌질이들이 덮어쓰게 되었죠. 문자로 가득한 네트워크에서 이미지화가 쉽다는 이유만으로요.

 

그들이 볼드모트를 울부짖는 것은 왜 이해가 되나요?

 

여자에게 인기가 없고, 능력이 없고, 사회 생활이 서툴러 방에 있으니

 

나 같이 화려한 미모의 여성에게 열등감 폭발은 당연하기 때문에?

 

 

인터넷 폭력이 뉴스에 나오는 경우 우리는 많은 수의 가해자들이 멀쩡한 직업이라는 것에 놀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놀랍니다. 무직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사짜가 들어가있으니까요. 매번 놀라요.

 

 

인터넷 뿐만 아닙니다.

 

지방 잡대에 다니거나, 동네에 공장이 많거나, 평이 좋지 않은 동네에서 왔거나, 못생겼거나, 소심하거나

인상이 구리다거나, 집에 돈이 없다거나, 집안이 정상이 아니라거나, 어디 듣도 보도 못한 회사에 있다거나... ...

 

당신들이 규정지은 성공의 경계 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개개인에 따라 추가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합니다.

 

볼드모트에 의한 방어기제는 이들 모두를 볼드모트를 울부짖을 수 있는 생물로 규정짓습니다.  

 

과잉방어임이 틀림없습니다.

  

조금 오바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이 부분에 있어서 저에게는 몇 안되는 원칙중에 하납니다.

 

 

인간 군상을 프레임으로 규정하고 판단하는 것 만큼 폭력적인 시선은 없습니다.

 

그것이 단지 감정적 위안을 위해서라면 비난 받아야합니다. 이것은 볼드모트와 상관 없는 문제입니다.

 

당신이 KKK단에 가까워지는 수단이니까요. 혹은 듀게에서 인기 있는 호모포비아로 변경도 가능합니다.

 

 

여성이 희화화되고, 성적인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것이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주변의 여자에게 실망할 수 있는 부분들이 여성이라는 범주에 밀집되었기 때문에, 

 

네트워크에서 한국 여성은 강하지만 연약한척하고, 성적으로 문란하며, 외국남자라고 하면 그냥 껌뻑죽을뿐더러, 가식적이며,

 

의리라고는 없고, 남자들을 등쳐먹기만 하죠. 현재 이 단어는 현실의 한국 여성과 전혀 상관이 없어졌습니다. 새로운 정의가 필요해요.

 

계속해서 축적됩니다.

 

외국에서 매춘을 하는 사람이 토렌트를 통해 축적되고,

 

듣도 보도 못한 사이코 패스와 같은 사람이 네이트 판을 통해서 축적 됩니다.  

 

볼드모트라는 단어는 한 사람이 만들어 낸 뇌주름의 전기신호가 아닙니다. 네트워크 속의 한국여성이라는 비실체가 만들어 낸, 귀결 된 단어죠.

 

 

행여 볼드모트를 외치는 그리핀도르 학생을 보면, 그래 나 불렀냐 이 찌질한 새끼야 라고 말하면 통쾌하긴 합니다만

 

역시 한국의 볼드모트라는 사례가 네트워크에 축적될 뿐입니다.

 

우리는 좀 더 이 일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똑같은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폭력의 실체를 더 키우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보슬아치를 입에 담았다고 사회 실패자는 아닙니다. 보슬 아치를 입에 담았기 때문에 그는 보슬아치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에요.

 

누구를 개새끼라고 하면 개가 불쌍하다고 하잖아요. 사회 실패자도 마찬가집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 더한 오물을 뒤집어 쓸 의무는 아무에게도 없어요.

 

 

 한줄요약: 당신의 입에서 나온 Loser 와 그의 입에서 나온 보슬아치는 별반 다를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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