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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호레이쇼 그리너프Horatio Greenough, 1832~41년경, 대리석, 높이 3.2M, 워싱턴 D.C. 미국역사 박물관 소장




역시 학교 다닐 때 일입니다. 어느날 교수님이 보여주신 슬라이드에 딱 이 분이 떠올랐습니다. 어라...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 차림새가...이윽고 조용하던 강의실이 술렁대면서 여기저기서 ㅋㅋㅋ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저 사람 워싱턴 아냐? 맞는것 같은데... 그 미국 초대 대통령. 그런데 왜 옷이 저래? 연극이라도 하나? 웃도리를 훌렁 벗고...뭐야...ㅋㅋㅋ 나중엔 아예 강의실 전체가 웃음 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_-;;... 예,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분 맞습니다. 미국의 첫번째 대통령 조지 워싱턴(1732~1799)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왜 이런 차림을 하고 계시냐면, 미 건국의 아버지를 찬양하겠다는 후세 사람들의 마음이 깃들여서 그런거죠 뭐...최고 신의 신성을 부여하기 위해 고대 조각가 피디아스가 제작한 제우스 신상을 본떠서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머리 모양은 18세기 워싱턴 시대 스타일인데 의상은 고대 그리스 인...미 초대 대통령은 제우스 신급이다 뭐 이런 생각이었나 본데...아무리 정치 선전용이라해도 진짜 이런 오바질이 또 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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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모습




물론 대통령 각하께서는 생전에도 이런 찬양은 거북하게 생각하시던 분이었습니다. 각하께서도 생전에 프랑스의 유명한 조각가들 초빙해 초상 조각을 만들 계획을 세우긴 했었는데 - 국회의사당에 세울려고요 - 그때도 하나같이 이런 도상의 신상으로 디자인하겠다는 얘기 뿐이어서 그걸 다 마다한적이 있었죠. (결국에는 장 앙투안 우동Jean Antoine Houdon(1741~1828)이라는 조각가가 낙점받아 제작은 했습니다만, 이런 신상이 아니라 평소의 군복 차림으로 조각된 평범한 모습이었습니다.(1788년) 조지 워싱턴에게는 그게 더 어울리죠. 결국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니 지금의 미국도 있었을테니까요) 그리고 지금 보고 계시는 문제의 제우스 상은 워싱턴 사후인 1840년에 제작된 것인데 - 사실 오늘날 한국인들이라 우리가 이렇게 웃은 건 아니고 저 시절에도 이런 신상에 대한 반감은 상당했던것 같습니다. 전제정이라도 말이 나올 소지가 있는데 명색이 공화국에서는 더 더욱...- 결국 논란 끝에 이 제우스 - 워싱턴 상은 원래 계획했던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미국 역사 박물관 한쪽 구석에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미국정부가 자국 태생 조각가에게 의뢰한 첫번째 작품이었는데, 이런 말썽...ㅋ 각하 생전에 이런 일이 있을까봐 그토록 이런 조각 만들지 말라고 했건만...예술가들이란...가끔 이렇게 시대를 역행하기도 합니다.


18세기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해서 19세기 내내 서양미술계를 지배했던 신고전주의 사조는 이렇듯 정치선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터라 실존하는 정가의 실력자들과 엮여져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상당히 있더군요. 일례로 18세기까지는 대상을 신적으로 묘사한다고 해봤자 이 정도였습니다.(아직 이 시절은 로코코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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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의 모습으로 표현된 퐁파두르 후작부인Madame de Pompadour en Diane, 장 마르크 나티에Jean-Marc Nattier, 1746년, 캔버스에 유채, 101*82cm, 베르사이유 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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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나의 모습으로 표현된 아델라이드 공주Marie Adélaïde of France as Diana, 장 마르크 나티에Jean-Marc Nattier, 1745년, 캔버스에 유채, 104*141cm, 베르사이유 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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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여신 플로라로 표현된 앙리에트 공주Madame Henriette en Flore, 장 마르크 나티에Jean-Marc Nattier, 1742년, 캔버스에 유채, 96*151cm, 베르사이유 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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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여신 플로라의 모습으로 표현된 뒤바리 백작부인Madame Du Barry en Flore, 오귀스탱 파주Augustin Pajou, 도자기, 1771년, 34*22*13cm, 프랑스 국립 도자기 박물관 소장




그냥 일상의 모습에 덧붙여 여신으로 분장했음을 알려주는 소품들을 몇개 들고 있는것 정도? 그런데 1789년에 대혁명이 터지고 로베스피에르같은 혁명가들이 고대 로마와 그리스를 모델로 새로운 시민 국가를 구상하기 시작하자 갑자기 신고전주의는 미술계에 대세로 부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 나폴레옹까지 통령정부와 제정기에 자신의 주요 정치 선전화로 신고전주의를 체택하고 적극 후원하기 시작하자 이건 뭐...이 분야에 솜씨가 있는 화가나 조각가들은 날개를 달게 됐죠. (대표적으로 다비드하고 앵그르, 그리고 나폴레옹이 젤 총애한 장 그로까지...)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이 시대 신고전주의 조각가로 이 분을 빼놓을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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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 후면 모습, 안토니오 카노바, 대리석,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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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타우로스를 죽이는 테세우스, 안토니오 카노바, 1819년, 대리석,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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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cules and Lichas 1795-1815 Marble, height 335 cm Galleria Nazionale d'Arte Moderna e Contemporanea, 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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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아함과 아름다움의 세여신, 안토니오 카노바, 대리석, 1799년 작,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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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로스의 키스로 되살아난 프쉬케Psyche Revived by Cupid's Kiss,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 1793년, 후면모습, 루브르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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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1757~1822)는 이탈리아 출신 조각가로 <가니메데>의 토르발센과 함께 19세기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조각가입니다. 토르발센이 북유럽 특유의 소박함을 간직하고 있다면 카노바는 이탈리아인 답게 남유럽 신화에 담긴 관능성을 특유의 부드러운 선으로 우아하게 표현했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신화적 인물 표현에서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었죠. 그래서 그랬던지 그는 다른 조각가들이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과감한 방식에 도전해 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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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비너스로 분장한 파울리나 보르게제, 안토니오 카노바, 부분, 1808년, 대리석, 2m, 로마 보르게제 미술관 소장





바로 초상 조각에서 자신만의 신기원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종래의 신고전주의 초상화가 단순히 주인공 인물에게 소품 정도나 쥐어주는 것이 표현의 전부였다면, 카노바는 아예 주인공을 신처럼 표현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자체만으로는 문제될게 없었습니다. 이미 전부터 정재계의 유력인사들을 위한 신처럼 분장한 초상화나 초상조각이 많이들 유행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뭐가 문제가 되냐하면, 인물이 신처럼 분장하는 것과 바로 다이렉트로 신으로 표현되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였다는 겁니다. 왜냐면 당시 미술은 신과 오직 신적인 인간만 '누드'로 표현할 수 있었거든요. (이는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로마에 이어 근대 유럽까지도 철저히 지켜지던 원칙이었습니다. 서양고전미술에서 누드 상이 유행했다고 하지만 그 주인공들은 오직 신과 신적인 인간들 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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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리나 보르게제는 나폴레옹의 여동생이었습니다. 그녀는 당대 최고의 조각가인 카노바에게 자신의 초상 조각을 의뢰했는데, 이렇듯 카노바는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에게 파울리나를 빙의하여 표현해 놓았습니다.(파울리나가 비너스 여신이라는 상징으로 한 손에 사과를 들고 있습니다. 이거 그 트로이의 파리스에게 득템한거죠ㅋ)

 그럼 대체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 자, 한번 앞서 보여드린 루이 15세 시절의 귀부인들 초상화나 조각과 비교해 보세요. 무엇이 다른가요? 바로 파울리나가 누드로 있다는 겁니다! 오직 신과 신적인 인간만이 누드라는 민망한 이미지로 표현됐던 시절에....누드에 도전한 이 용감한 여성은! 바로 파울리나! 세상에, 파울리나가 누군가요? 나폴레옹 황제의 여동생, 바로 프랑스 황실의 여인 아닙니까! 귀부인이 누드 초상 조각을 했다? 헐...이 시절은 진짜 이거 경천동지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귀부인이 화가 앞에서 직접 옷을 벗고 누드 모델을....물론 그건 아니구요! 물론 얼굴이야 파울리나 본인의 것 맞습니다만, 누드로 표현된 신체는 파울리나의 것이 아닙니다. 이건 누드 모델을 따로 둔 것이고 얼굴만 본인 것일 뿐이죠. 그러나 그렇게 조각했다 해도 당시 관례상 말이 안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빠 못지 않게 과감하고 야심많은 성격의 파울리나는 카노바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누드 초상 조각을 만들게 합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그녀는 자신의 누드 조각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지 이걸 집안에만 얌전히 모셔놓치 않고 온갖 친구와 친지들은 다 초대해서 구경하게 했다고 합니다. 특히 그녀는 극적인 연출도 좋아해서 주로 밤에 열리는 파티 때 자신의 조각을 선보였다고 하는데요. 어둠 속에서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음영이 지면서 아주 근사하게 보였던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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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리나 보르게제는 자신의 조각상을 가까운 친지들에게 야간에 횃불 아래에서 보여주는 것을 즐겼다. 명멸하는 불빛은 부동의 대리석상에 불과한 이 작품에 '고딕적인' 분위기와 미묘한 움직임을 부여하였다. 그 시대의 인물을 이처럼 도발적인 자세로 묘사한 것이 공개된 것은 아마도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조각에 나타난 몸The Body in Sculpture> 톰 플린Tom Flynn 지음, 김애현 옮김, 112p, 예경사




 나폴레옹의 누이에게서 작품이 대성공을 거두자, 카노바는 더욱 더 용기를 내게 됩니다. 당시 그는 황제 나폴레옹의 요청으로 프랑스에 건너와 있었는데, 물론 폐하로부터 이런 저런 자신의 근사한 조각들을 제작해 달라는 주문을 받은 터였죠. 어느 때처럼 나폴레옹의 취향에 맞는, 제정의 위엄을 보여주는 근사한 조각들을 만들던 참에 카노바는 나폴레옹에게 새로운 제의를 합니다. 마침 나폴레옹이 그에게 파리 시 광장에 세울 6m짜리 거대한 조상 하나를 의뢰한 터였거든요. 전쟁의 신 마르스를 적당히 응용해서 월계관을 쓴 근사한 모습으로 자신을 만들어주면 어떻겠냐고 폐하께서 말씀하시자 카노바는 이때다 싶어서 용기를 내어 아뢰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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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좌에 앉은 나폴레옹 1세 Napoléon Ier sur le trône impérial,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 1806년, 캔버스에 유채, 259 x 162 cm , 파리 앵발리드 군사 박물관 소장 (바닥의 카펫에 그려진 큰 독수리 문양은 그가 제우스로 분한 것을 상징함)



 바로 폐하의 누드 조각을 만들겠다고 제의한 것입니다! 그것도 6m짜리 대형으로요! 그것도 실내용도 아니고 파리 시 노천 광장에 세울 걸로요! 이런 엄청난 제의를 받은 나폴레옹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그 역시 유럽을 재패한 용맹한 장수이고 여동생 못지 않은 과감한 영혼의 소유자라 흔쾌히 자신의 누드 상을 만들라고 허락은....개뿔....아주 노발대발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쟎아도 나폴리의 왕비가 된 여동생이 비너스 여신인지 뭔지라면서 누드 초상 조각 만들어 화재 만발인 것에 언짢았던 폐하로서는 아주 얘기만 들어도 대노할 상황이긴 했죠.



 " 안돼! 안돼! 절대 안돼! 누드상이라니! 이건 시내 광장에 세울 거야! 당신 미쳤어!" " 폐하, 그것이 아니오라...누드이긴 하지만 신체 모델은 따로 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얼굴만 제게 보여주시면 됩니다. 제 앞에서 며칠씩 옷을 벗고 서 계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니 제발 허락을..." " 안돼! 절대 안돼! 안됀단 말야....!!!!"



 여튼 분위기는 진짜 험악해졌습니다. 여동생 일까지 생각이 난 나폴레옹은 예상외로 크게 분노했고, 모처럼 용기를 냈던 카노바 역시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사실, 카노바는 예술의 본고장 이탤리의 조각가라는 것에 자부심이 큰 사람이었고, 파리까지 온 것도 나폴레옹의 거듭된 정중한 요청 때문에 마지못해 수락한 것이었죠. 그런데 일생 나름의 대작이라고 기획했던 것에 대해 이런 냉대를 받자 그는 크게 상심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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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 1세Napoleon Bonaparte,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812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앵발리드 군사 박물관 소장



 사실 굳이 그의 보수적인 성향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당시 나폴레옹의 신체적 상태를 생각해 보면 카노바의 제안은 확실히 무리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20대 시절 날씬하고 작은 체구의 대명사였던 나폴레옹은 황제가 된 지금 살도 상당히 찐데다 젊은 시절처럼 민첩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술가들 눈에는 고대 신상이 위엄있어 보일지 몰라도, 실물이 현실에서 이러고 다니는데 그 사람이라면서 멋진 누드상을 거리에 세워놓는다고 그게 멋있어 보일까요? 나폴레옹의 지적은 상당히 현실적인 것이었지만 문제는 카노바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머릿속에 이미 착상해 둔 근사한 나폴레옹 - 마르스 상이 있었고 이런 난관이 있다고 포기한다면 그건 예술가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황제에게 말도 없이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물론 처음 예정한 것처럼 6m짜리 거대한 상은 아니었죠. 그래도 카노바는 한 가지 맘 한구석에 기대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황제가 얘기만 듣고도 노발대발이지만, 완성된 작품을 본다면 마음을 풀 것이다. 그만큼 그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젊은 시절 연극배우 빰치는 미남이었고 그의 뛰어난 무훈은 그에게 군신 마르스와 같은 후광이 드리워져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드디어 1811년, 작품은 완성되었고 카노바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의 군신을 황제께 공개했습니다. 그 결과는....뭐 여전했습니다. 이건 조각상이 근사하고 멋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요. 황제의 분노는 여전했고, 카노바의 군신을 결코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겠다는 차가운 명령만 돌아왔을 뿐이었습니다. 카노바는 몇 년 동안의 수고가 한 순간에 날라가 버리는 참담한 심경을 겪으며 자신의 군신이 수장고에 쳐박히는 광경을 쓸쓸히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후 나폴레옹은 곧 있을 러시아 원정 준비에 들어가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지냈고 자신의 예술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미처 신경 쓸 경황도 없었습니다. 그 후 유럽 정세는 모두들 아시는 바 같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서 비참하게 패했고, 곧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그가 돌아오기도 했지만 결국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그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보내졌고 프랑스에는 부르봉 왕조가 돌아왔습니다. 처형된 루이 16세의 동생인 아르투아 백작이 돌아와 루이 18세로 다시 왕위에 올랐습니다. 정말 나폴레옹과 그리고 지난 대혁명의 시대는 이걸로 끝나버린것 같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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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웰링턴 공작 아서 웰슬리The Duke of Wellington, 토머스 로렌스 경Sir Thomas Lawrense, 1816년 워털루 전투 직후에 제작된 초상화



 웰링턴은 사실 이 시기 가장 행복에 겨워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1815년에 워털루에서 대승을 거둔 이후로 점령지 파리에서 그야말로 전승장군의 모든 것을 누렸습니다. 귀족 작위와 함께(그는 제 1대 웰링턴 공작입니다) 승전에서 얻은 막대한 영지와 보상금 그리고 빈 회의 이후로 사실 유럽의 실세라고도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의 수상 메테르니히와 베리 프레레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함께 오찬을 즐기기도 하고 (이곳은 평소에 영국군과 프로이센의 고위 장교들로 득실거리는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정시대 나폴레옹과 장군들이 주로 식사를 하던 곳이었거든요.) 몰락한 황제의 옛날 애인들을 만나 즐겁게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곧 웰링턴 공작이 승전 장수에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행동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파리에 있는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눈에 띄게 초조한 모습이었고 곧 이상하리 만큼 패배한 그의 적장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그의 측근 이야기로는, 웰링턴 장군이 진정한 '승리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그임에도 그는 그 패장 - 오지의 섬에 갇혀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 에게 깊은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고, 역사에 길이 기록될 자가 자신이 아니라 그 패배한 황제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진정 딱한 일이었습니다. 온 유럽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준 위대한 전쟁 영웅이 그런 망상에 시달리고 있다니! 하지만 곧 망상은 우스꽝스런 소문으로 변해서 퍼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웰링턴 장군이 황제의 옛 애인들과 잠자리를 한 뒤 침대에서는 그와 나 중에 누가 더 쎈 남자인가 묻고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_-;;....


 이쯤 되자 영국 의회에서는 무슨 수를 써야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왔고, 누군가 웰링턴 장군이 나폴레옹과 관련된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모으고 있다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이렇게 결론이 났습니다. 우리가 장군에게 뭔가 해 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게 이왕이면 대단히 근사하고 뭔가 가치도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얘기였죠. 그래서 나폴레옹과 관련된 것 중 장군을 위한 소장품으로는 무엇이 좋겠느냐는 얘기로 흘렀고 곧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안토니오 카노바. 당시 카노바는 고국 이탤리에 있다가 교황청 대사의 자격으로 파리에 돌아와 있던 참이었습니다. 영국 의회에서는 프랑스 정부 - 루이 18세의 왕정 - 와 공식적인 접촉을 했고 승전 장군에게 어울릴만한 나폴레옹의 기념비적인 예술품을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했습니다. 과연 영국 의회는 어떤 작품을 골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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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카노바의 작품들이 가장 무난한 것이었을 테지만, 정작 영국 의회의 시선을 끈 작품은 따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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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중재자 군신 마르스로 분한 나폴레옹Napoleon as Mars the Peacemaker,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 1811년 제작, 런던 앱슬리 하우스 소장


 바로 지난 1811년에 나폴레옹이 불경스럽다고 수장고에 처박아 버린 군신상 - 나폴레옹의 전신 누드 조각이었습니다. 1816년 영국 의회는 이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에 3만 5천 파운드를 지불했고 웰링턴 장군은 진심 기쁜 마음으로 국가가 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는 1817년 런던에 있는 자신의 사저에 이 작품을 설치했고 죽을 때까지 아주 소중히 이 조각을 간직했습니다. 그의 사저 앱슬리 하우스는 온통 나폴레옹과 관련된 것으로 가득했다고 하는데,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무슨 웰링턴 장군이 나폴레옹 숭배자인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여튼 승전 장군의 기벽 덕분에 세기의 걸작 하나가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초상 조각의 주인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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