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에토스

2019.10.03 23:51

Joseph 조회 수:618

요새 자주 들어가보는 김규항 씨의 블로그에서 본 글 중에 제가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을 인용해봅니다.


"딱한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밀리면 다 죽는다는 계산을 하는 모양인데, 계산할 일이 아닌 걸 계산하면 다 죽는 것이다. 우습게도 상황의 본질을 묘파한 건 조국 측이다. 그들은 며칠 전 ‘국민 정서와 괴리는 인정하지만 적법하다’고 했다. 여기에서 ‘국민 정서’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치의 에토스다. 정치는 로고스(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에토스(정서적 신뢰)의 영역이라는 말이다. ‘국민 정서와 괴리’는 참작할 문제가 아니라 결정적 본질이다. 에토스가 사라지면 정치도 사라진다. 이 정권의 정치적 에토스는 조국 덕에 이미 상당 부분 손상되었지만, 기어코 임명을 강행한다면 완전히 날아가고 만다."

http://gyuhang.net/3595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가장 공감가는 부분이 공동체에서 "신화"의 중요성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국가가 유지되려면, 때로는 나라를 위해서 개인이 목숨까지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개인으로 보면 말이 안되는 선택이 가능케 만들어야 합니다.

볼테르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하인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는 마라. 그가 밤에 날 죽일지 모르니까."라고 말했다 합니다.


실제로는 허구인, 공동체의 "신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특히 지도층의 integrity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부분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토스라고 표현하고 있고요.

에토스이자, 국민 정서, 진정성, integrity가 정치의 결정적 본질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나와 내 아들은 절대로 군대 가는 바보짓을 안할 거지만, 남의 자식은 군대에 가서 때론 목숨도 잃을 수 있어야 하고

나는 강남 불패를 믿지만, 내가 살아보니 다른 국민들은 굳이 강남에 살 필요 없고 투기를 못하게 막아야 하고

나는 내 자식 선행학습 시키고 특목고에 보내지만, 앞으로 다른 국민들은 그럴 수 없게 만들 거고

나는 내가 가진 돈과 권력을 이용해서 내 자식 좋은 학교에 보내서 의사 판검사 만들 거지만, 다른 국민들은 그런 특권적 혜택을 누려서는 안되고

나와 내 가족에 대한 수사는 인권이 존중되고 피의사실이 공표돼서도 과도한 수사가 이루어져서도 안되지만, 내 정적까지 그런 혜택을 누려서는 안되겠고,

나는 법무부장관이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대의를 위해 내가 저지르는 반칙과 위법은 문제가 되지 않고,

이것을 내로남불이라 비판하면 정치가 다 진영논리인데 이게 왜 문제되냐 항변하고 ..


법무부장관은 "자연인"으로서 COI가 있는 "검사"에게 연락을 해도 되는데, 왜 나는 업무상 관련이 있는 이들과 "자연인"으로서의 관계가 제한을 받아야 하죠 ?

왜 나는 매번 힘들게 청렴 교육을 들어야 하며, 까다로운 김영란법을 하나 하나 따져가며 지켜야 하나요?

왜 고위층 자녀들은 자사고, 특목고 쉽게 보내는데, 내 자식은 자사고, 특목고 보내기가 점점 어렵게 교육 정책이 변하는 거죠?


이런 정치인이 이끄는 정책을, 나라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요?

아마 국민들은 정치인의 손이 가리키는 쪽이 아니라 몸이 향하는 쪽만을 바라볼 것이고, 각자도생이 답인 나라가 되겠죠..


지휘관이 도망가는 상황에서 돌격 앞으로 구호에 앞으로 나갈 병사가 아무도 없는 것이 당연하듯이

온갖 부정과 반칙을 저질렀고, 가족은 이미 기소되었고 본인이 기소될지도 모르는 법무부장관이, 진정성이 의심되며 정치적 의도가 의심되는 지금 이 시점에, 이태껏 검찰이 하자고 해도 안 하고 깔아뭉개고 있던 검찰개혁을 하려고 하는데, 그가 가리키는 손을 바라볼 검사와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조국 씨가 법무부장관인 나라를 위해 내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안 듭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390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233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0733
125088 [수정] 연말에는 주위에 '스타벅스 플래너'(다이어리)를 선물하고 있어요. [2] jeremy 2023.12.28 261
125087 프레임드 #657 [4] Lunagazer 2023.12.28 50
125086 '마약과의 전쟁'으로 얻은 것? [4] 왜냐하면 2023.12.28 602
125085 다시한번 전투기를 만들었어요 [6] 돌도끼 2023.12.28 192
125084 스키탈래 죽을래 음악 [3] 돌도끼 2023.12.28 125
125083 십전살수 오십호를 영업합니다. [2] 칼리토 2023.12.28 279
125082 이런저런 잡담... 여은성 2023.12.28 345
125081 [영화바낭] 재밌게 잘 만들었지만 보는 게 고문입니다. '이노센트' 잡담 [7] 로이배티 2023.12.28 454
125080 프레임드 #656 [4] Lunagazer 2023.12.27 85
125079 이선균씨를 비판한 걸 후회합니다 [2] Sonny 2023.12.27 1258
125078 訃告 - 이선균 (1975-2023) [24] 상수 2023.12.27 2069
125077 연말결산 - CGV아트하우스 영화흥행 Top5, izm올해의 싱글, 앨범(국내, 팝) [2] 상수 2023.12.26 354
125076 에피소드 #69 [2] Lunagazer 2023.12.26 66
125075 프레임드 #655 [4] Lunagazer 2023.12.26 64
125074 백만년만에 뽄드칠을 해봤어요 [7] 돌도끼 2023.12.26 257
125073 킹스 퀘스트 4 음악 [2] 돌도끼 2023.12.26 80
125072 [디즈니플러스] 아직은 크리스마스니까! 시즌 무비 '솔드 아웃' 잡담입니다 [4] 로이배티 2023.12.25 349
125071 프레임드 #654 [4] Lunagazer 2023.12.25 77
125070 [아마존프라임] 코엔 형제 '스타일'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블로 더 맨 다운' 잡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3.12.25 273
125069 최근 본 드라마와 잡담 [6] thoma 2023.12.25 45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