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시력 장애인 여주인공. 그녀를 위협하는 싸이코 악당. 그리고 껌껌한 공간에서의 클라이맥스. 이러니 [어두워질 때까지]가 절로 연상되지 않을 수 없지만, 영화는 기대 이상의 일을 해냈습니다. 이야기 속 멜로드라마가 과잉이지 싶지 않나 하는 때도 간간히 있는 가운데 뻔하고 작위적인 부분들로 눈에 띠지만(보는 동안 스릴러 영화들에서 모 특정 임무를 맡게 되는 조연 캐릭터들은 거의 늘 누구 밥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좋은 스릴러인 본 영화엔 그 아찔한 지하철 역 장면을 비롯한 좋은 순간들도 여럿이 있습니다. 배우들은 잘 활용되었는데, 다른 분들 말씀대로 유승호는 좀 거슬리는 편이지만 그래도 괴작인 [4교시 추리영역]을 잘 기억하는 저한테는 최악은 아닙니다. (***)




[카우보이 & 에일리언]

제목의 절반은 괜찮은데, 제목의 다른 절반은 밋밋합니다. 한 쪽은 비록 그다지 새로운 건 없어도 장르 상 익숙한 소재들이 이것저것 나오니 지루하지 않지만, 다른 한 쪽은 그렇게 기술이 발달했는데도 [배틀 인베이전] 다음으로 멍청하고 흉측하기만 한 외계인들만 있으니 불만입니다.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이왕 SF와 웨스턴을 교잡시켰으니 이보다 더 잘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1/2)




 


[최종 병기 활]

워밍업 단계에서 상대적으로 늘어지지만, 간단한 줄거리를 바탕으로 해서 캐릭터들와 설정이 일단 자리를 잡고 나면 영화는 격렬하게 달려갑니다. (***)



 


[마당을 나온 암탉]

원작 동화를 읽어보지 않은 저에게도 [마당을 나온 암탉]의 단점들은 많이 보였습니다. 이른바 4차원 주인공이란 잎싹을 지켜보는 동안 가끔씩 정신 좀 차리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고, 어느 특정 캐릭터들은 닭살 돋을 지경이었고, 만든 사람들이 이야기의 어두운 면을 다듬으려고 애를 쓰는 티가 났습니다. 하지만 본 애니메이션 작품은 보기 좋은 가운데 장점들이 단점들보다 많았고, 저와 애들을 데려온 관객들은 좋은 일요일 아침을 보냈습니다. 일단 한 발짝 전진은 했으니, 국내 애니메이션이 여기서 더 앞으로 나가길 빌어야겠지요. (***) 






[혹성 탈출: 진화의 시작]

몇 달 전에 예고편을 봤을 적엔 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혹성 탈출: 진화의 시작]은 놀랍게도 이야기 면에서나 기술적면에서나 모범적인 블록버스터 영화의 사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끔찍한 [트랜스포머 3]와 달리 영화는 우리가 신경 쓸 이야기 주인공을 선사해주었고, 그건 다름 아닌 앤디 서키스와 다른 배우들에 의해 훌륭히 연기한 CGI 원숭이들입니다. 단지 인간 캐릭터들이 이들에 비해 밋밋한 이야기 도구들 그 이상이 아닌 게, 그리고 실사 배우들이 별다른 할 일 없이 들러리 아니면 이야기 상 도구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게 유감이지만, 본 영화는 좋은 시리즈 리부트이고, 이만큼 질이 좋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 





[소울 서퍼]

하와이에 사는 베서니 해밀턴은 그녀의 가족만큼이나 서핑을 좋아할뿐더러 지역 경기에 나갈 정도로 실력 있는 십대소녀입니다. 한데 어느 날 서핑을 즐기던 도중 상어에게 물려 왼팔을 잃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 그녀는 얼마 후 경기에 또 나가서 장애를 극복하지요. 실화에 바탕을 둔 [소울 서퍼]는 전형적인 감동 드라마 공식을 우직하게 따라가고, 배우들이야 할 일을 다 하고 있고,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답게 시원한 느낌이 듭니다만, 이야기는 평탄하고 캐릭터들은 심심하니 2% 부족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듭니다. (**1/2)



 



[슈퍼]

식당 요리사인 주인공 프랭크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그리 멀쩡하지 않은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영화 속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커져만 갑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를 동네 마약상에게 뺏긴 데에 더 정신이 나가서 [킥애스]의 주인공처럼 쫄쫄이 유니폼 입고 우스꽝스러운 슈퍼 영웅 행세한다는 건 이해가 갑니다만, 사람들에게 렌치 휘둘러대면서 민폐 끼치는 걸 어찌 편하게 볼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의 싸이코 짓은 가면 갈수록 더 심해져만 가니 더 이상 웃어넘길 수 없고, 불행히도 이런 동안에 영화는 의례적인 마지막 대결 때까지 정체됩니다. 레인 윌슨은 주인공으로 적합하고 엘렌 페이지는 프랭크 못지않게 문제가 있는 소녀로써 엘렌 페이지답게 톡톡 튀면서 연기하고 있고, 케빈 베이컨은 악당 역으로써 가능한 한 재미 보려고 애씁니다. 썰렁한 농담한다는 건 이해가 가는데 그냥 썰렁하기만 합니다. (**)






[트러스트] 

 데이빗 쉼머의 [트러스트]는 인터넷 시대 범죄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은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캐머런 부부의 딸 애니는 채팅을 통해 한 친구와 가까워지는데, 처음엔 남자 고등학생일 줄 알았던 상대방의 나이는 가면 갈수록 올라가고 드디어 상대방을 직접 만났을 때는 30대는 훌쩍 넘은 아저씨였습니다. 하지만 애니는 이 늑대 같은 인간에게 설득당해 모텔까지 가게 되고 그리하여 애니 뿐만 아니라 그녀 부모도 아주 힘든 시기를 겪게 됩니다. 클라이브 오웬, 캐서린 키너, 그리고 바이올라 데이비스과 같은 든든한 실력파 배우들이 나오는 이 작은 드라마에는 아픈 순간들이 여럿이 있는데 특히 애니를 맡은 라이아나 리버라토는 가끔씩은 답답하게 보여도 고통 받는 모습이 역력한 십대 주인공으로 인상적입니다. (***)





 [오월애]

다큐멘터리 자체로썬 비교적 평범한 편이지만, 그 때 그 순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차분히 듣다 보면 어느 전직 대통령이 TV에 나올 때마다 속이 끓는다는 그 분들에 동감하게 되더군요. (***)  






[고양이: 죽음을 보는 눈]

영화엔 고양이를 두려워할 충분한 이유가 있고 영화 속 고양이들은 귀엽기도 하면서 때가 되면 음험하게 보이는 존재들입니다. 나쁜 건 아니지만 장르 틀 안에서 너무 우직하기 구는 이야기가 영화 속 고양이들만큼이나 공이 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밋밋한 느낌이 드는 게 유감이긴 해도 말입니다. (**1/2) 




[행오버 2]

[행오버 2]를 보는 동안에 [나홀로 집에 2]가 머릿 속에 떠올랐습니다. [나홀로 집에 2]는 배경만 바꾸었지 전편 공식을 그냥 그대로 써먹어서 재미가 덜했는데, [행오버 2]도 마찬가지로 배경만 바꾼 가운데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편까지 전편 공식을 게으르게 따라갑니다. 전편에서 생고생을 한 필, 스튜, 앨런, 그리고 그들이 잃어버렸다가 극적으로 찾아내어서 결혼식을 무사히 치른 더그는 이번엔 스튜의 결혼식으로 태국으로 가게 됩니다. 당연히 필, 스튜, 앨런은 스튜의 미래 처남과 같이 어울려서 술 마시다가 또 정신을 놓아서 다음 날 아침 방콕의 어느 싸구려 호텔에서 깨어나고 또 한 차례 소동을 겪지요. 물론 웃기는 순간들도 좀 있지만, 전편과 달리 이번엔 웃음 지수가 민망함 지수를 넘지 못하니 그냥 불쾌한 느낌만 남깁니다. 그건 그렇고 본 영화가 미국 박스 오피스 흥행을 해서 3편도 계획 중이라는데, 그 때는 좀 더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






[유어 하이니스]

감독(데이빗 고든 그린)과 모인 배우들(대니 맥브라이드, 제임스 프랑코, 나탈리 포트만, 조이 드샤넬)을 고려하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영화는 형편없습니다. 중세 판타지를 갖고 개그하자는 건 이해 가겠는데, 몬티 파이썬류의 풍자는커녕 즐길만한 건 거의 없는 가운데 영화 내내 싸구려 농담들의 행진을 봐야 하는 건 그리 기분 좋은 광경은 아니지요. 적어도 배우들은 영화 만드는 동안 재미있게 일했다는 티가 나지만, 그들의 재미는 영화 뒤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도, 작년에 각각 힘든 연기를 하느라 진 빠졌을 것 같은 프랑코와 포트만이 부담 없이 가볍게 연기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1/2)




   


 [돈 비 어프레이드 - 어둠 속의 속삭임]

이야기 상 허술한 점들이 역력히 보이는 등 여러 단점들이 있지만, 여느 음험한 비밀을 간직한 저택이 나오는 영화들처럼 [돈 비 어프레이드 - 어둠 속의 속삭임]은 좋은 어두운 분위기, 그리고 좋은 여주인공을 가지고 있고, 반복되는 깜짝 쇼보다는 꾸준한 서스펜스가 분위기 조성에 훨씬 더 효과 있다는 걸 잘 증명합니다. (***)


P.S. 그나저나,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문득 떠오른 건 본 영화가 눈에 상당한 위협이 가해지는 장면이 나오는 올해 두 번째 영화이고 둘 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제작에 참여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한 우연이겠지요.





 [내 여자 친구의 결혼식]

본 영화는 [행오버]와 많이 비교되었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제게 떠오른 건 몇 년 전에 본 [아이 러브 유 맨]과 다른 ‘bromance' 코미디 영화들이었습니다. 로맨틱 코미디 공식이 남자들 간 우정에 대한 코미디에 적용되고 나선 이젠 그 적용된 방식이 여자들 간 우정에 대한 코미디로 이어지는 걸 보니 재미있더군요. 요즘 미국 코미디 영화들처럼 가리는 게 없으니 영화 중반에 지저분한 장면이 등장하지만 이는 다행히 비교적 깔끔히 처리되면서 보는 사람들 많이 웃게 하는 편이고, 그거 말고도 여러 좋은 코미디 장면들이 있습니다. (***)


P.S. 영화는 얼마 전 사망한 여배우 질 클레이버그의 마지막 작품입니다(주인공의 좀 별난 어머니를 맡았습니다). 다시 한 번 명복을 빕니다.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