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했던 피크닉 결혼식

2014.04.15 17:01

리버시티 조회 수:3218

미국에 십년 넘게 살면서 꽤 많은 결혼식엘 갔었네요.

미국에서도 경제사정과 집안 분위기 따라서 식 자체(피로연 포함)만 해도 몇천 만원 넘게 깨지는 호화 호텔 결혼식도 있고 몇백 만원 안팎의 간소한 군인회관 결혼식도 있더군요.

커플이 라스베가스 같은 곳에 가서 뚝딱 둘이서 결혼하면서 결혼사진 몇 장만 단체 이메일로 보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카리브해의 휴양지에서 결혼식을 해서 하객으로서 참석할 시간이나 비행기값+숙박비를 감당할 능력이 되어야 참석할 수 결혼식도 있었는데 이런 경우 초대장을 받더라도 갈 수 있는 하객의 수가 매우 적어져서 하객 일인당으로 계산되는 결혼비용을 오히려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관례라는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식 자체가 매우 다양하더군요.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결혼식은 친한 지인의 피크닉 결혼식이었습니다.

신랑-신부는 채식주의자이고 수의사와 대학교수라는 수입이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지만 알뜰하고 즐거운 결혼식을 전혀 부모님의 개입없이 준비했더군요. 두 사람의 부모님은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어요.

초여름이었는데 결혼식은 30분 정도 시에서 떨어진 state park였습니다. 대부분의 공원에서 하루 5-10만원 정도면 렌트할 수 있는 피크닉 셀터(지붕이 있고 피크닉 테이블과 그릴이 딸린 대형 정자)를 두개 정도 빌렸더군요.

신랑은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에 하와이언 셔츠, 알로와 꽃화환을 목에 걸고 스포츠 샌들을 신고 있었고 신부는 면으로된 아이보리 계통의 여름 원피스에 플립플랍을 신고 꽃화환을 머리에 쓰고 있었어요.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지인이 주례를 하고 강이 바라보이는 나무 아래에서 혼인서약을 하고 실반지 같은 결혼 반지를 주고 받더군요.

사진사는 없었고 디지털 사진기가 대중화 되긴 전인 2000년대 초라서 대신 개당 7불 정도 하는 일회용 사진기를 10개 정도 준비해서 하객들에게 두루 돌리더군요. 하객들은 결혼식 내내 마음껏 사진을 찍고 일회용 사진기를 나중에 신랑신부에게 돌려줬습니다.

참, 하객의 드레스 코드도 피크닉 차림이었죠. 저도 반바지 차림이었습니다.

식이 끝난 후 신랑이랑 친구들이 거들어서 피크닉 테이블에 부페식으로 피로연 점심을 차렸습니다. 신랑-신부가 좋아하는 식당의 음식을 주문해서 당일 오전에 요리된 파스타, 샐러드, 샌드위치 등등이 부페용 대형 은박지 그릇에 담겨진 것을 신랑이 본인의 픽업트럭으로 실어 왔더군요. 후식은 신부가 직접 만든 브라우니랑 파이였어요. 하객이 30-40명 정도였는데 모두들 양껏 먹고 배구, 배드민턴 등등의 피크닉 스포츠를 어두워질 때까지 하면서 신나게 놀았답니다.

하객들과 신랑-신부가 쓰레기 봉투를 들고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면서 결혼식은 마무리 되었고 신랑-신부는 결혼식 전부터 살던 자기들의 월세집에서 첫날밤(?)을 보낸 후 며칠 후 몬트리올로 자가 운전으로 신혼 여행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결혼 선물로 저는 한국산 찻잔을 셋트를 준비했습니다.

신부가 나중에 저한테 일러주기를 고지식한 신부 부친은 딸의 피크닉 결혼을 내심 못마땅해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주장 강하고 독립적인 딸부부에 약간 군시렁거리는 게 전부였다고 합니다. 피크닉 결혼식 부부는 아들 하나 낳고 여전히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두고두고 생각나는 아름답고 유쾌한 결혼식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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