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주말 진도 팽목항 다녀왔습니다. 참사 후 늘 한번은 직접 가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 데 출국이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다녀왔습니다. 광주-진도-팽목항과 체육관-다시 광주 공항-제주로 이어지는 2박 2일의 숨돌릴 틈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2. 팽목항에서 거기 차려진 임시 법당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부처님께 3배 후 108배를 올리는 데 와중에 사시 공양 시간이 되어서인지 스님이 들어 오셔서 의식을 진행하십니다. 저는 그냥 옆에서 제가 생각해둔 방식으로 부처님께 절을 다 드리고 나서 오른 쪽에 걸려 있는 천으로 된 304명의 위패에다 절을 합니다. 명단을 보니 아마 시신 수습된 순인거 같습디다. 정차웅으로 시작하는 그 명단은 이묘희로 끝이 납니다. 아 아직 수습이 안된 10명은 정면에다 또다시 올려 놓았더군요. 저는 그 이름 하나하나를 두번씩 부르고 두번 절을 했습니다. 절을 다하고 나니 약 1시간 40분 정도 걸렸습니다.

 

3. 명단을 읽어 가다 보니 사연을 아는 몇 몇의 이름이 나올때 마다 울컥울컥했습니다. 절을 다해갈 때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제 조카 둘과 똑같은 동명이인이 2명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과 이름 마지막 글자만 다른 고인도 2명이 있었습니다. 제 죽은 친구도 있었고 대한항공 다니는 오래된 고등학교 동창도 있었습니다. 예 제가 아는 많은 사람이 거기 이름 한자씩 정도 틀리곤 다 있습디다. 그 수많은 이름들 속에서 저는 제 인생의 인연들을 대부분 만났습니다.

 

4. 팽목항에서 유족들이 계신 체육관으로 이동하는 셔틀버스 안에서 올해 들어 가장 달디 단 30분 꿀잠을 잡니다.(올해 내내 간에 열이 올라서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근데 이 잠이 이상한 게 분명히 몸은 잠들었지만 내 정신은 자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체육관 도착쯤 그 놈이 일어나 하고 속삭이더군요.

 

5. 유족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체육관 앞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유난히 볕이 좋게 느껴졌습니다. 그 한복판에서 볕을 쪼이며 웅크리고 있는데 비로소 눈물이 펑펑 나왔습니다. 예 거기에 아이들이 저랑 같이 있었어요. 그들이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아저씨 고마 슬퍼해. 우린 다 같이 잘 있어 아직 못온 친구들 기다리고 있어. 그니깐 괜찮아"

 

6. 제주로 들어가 우리 다이빙 식구들이랑 저녁 술자리에 동석하게 된 다른 강사 한분이 하필 안산에 사시던 분이더군요. 훨씬 자세하게 몇가지 그쪽 사정을 알게 된 게 있습니다. 그 강사님 유민이 아버지 욕하는 놈들은 인간 같지도 않은 종자다라는 말씀을 하시던데 급 친해져서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 제가 먼저 뻗었습니다. 다음날 옆지기가 그러더군요 "내가 본 중에 어제 역대급으로 코골고 자더라. 그냥 너무 달게 자는 것 같아서 냅뒀다 이 화상아"

 

7. 이번 주말 우리 부부는 미국으로 1년간 공부하러 떠납니다. 이 늦은 나이에 우리가 떠나는 이유는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삶에 다른 옵션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사실 직장 생활 20년,25년 했으면 좀 쉬기도 해야 하구요. 지난 대선 후에 저는 개인적으로 "R"플랜이란 걸 세운 적 있는데 비로소 그 중의 일부를 하게 됩니다. 그 R 이 Refuge가 될지 Red가 될지 내 안의 Revolution이 될지는 아마 1년이 지나면 판명이 나겠지요. 오로지 부처에 기대어 저를 살피고 시절 인연이 무엇인지 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니깐 미국에 계신 듀게분들 정모 한번 하입시더 ㅎㅎ

 

8. 역시 쓸데 없이 긴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편안한 오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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