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열쇠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오늘 열쇠가게에 갔습니다. 요즘 열쇠를 쓰는 집들이 없어지다보니 복사가 제대로 될만한 열쇠가게 자체를 찾는 일도 쉽지 않더라구요. 길을 가다 마침 발견해서 (아시죠? 구둣방과 열쇠 같이 하시는 작은 컨테이너 가게) 반가운 마음에 안쪽으로 빼꼼 고개를 들이밀고,


"사장님, 열쇠 복사 2개 얼마인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대단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뒷쪽 열쇠가 가득한 벽면을 가리키며


"이게 다 열쇠야. 어떤건지를 알아야 얼만지를 알지. 아파서 병원갔는데 여기 얼만가요 물어?"


하며 갑작스레 저를 혼내시는 말투. 과히 뜬금없고 이상하였기에 저는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글씨로 하니 상당히 담백하고 심지어 유머러스해 보이지만 느닷없이 훈계당하는, 본능적으로 기분이 상하는 그런 말투였어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친 하대에 저는 얼굴이 굳었고, 일단 저 문장을 해석해서 '아 이 노인네;가 내게 원하는게 열쇠를 보여달란 말이구나' 하고 아무말 없이 열쇠를 건네드렸습니다. 몰라요, 이 양반이 제 얼굴 만면에 드러난 기분나쁨을 눈치챌만큼의 양심은 있었는지


"이거 원래 삼천원씩 두개 육천원인데, 오천원에 해줄게."


하고 바라지도 않은! 원치도 않은! 천원 할인을 주시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오분 후에 돌아오겠다 하고 일단 그 자리를 떴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피해의식에 젖어 마구 차오르는 상념들을 파워워킹에 실어 한 오분 걷고 돌아오니 아까 앉아서 훈계질 하던 것과는 다르게 벌떡 일어나 열쇠를 건네 주더군요. 그러면서


"이거 열쇠가 너무 오래 돼서 재고가 없는데, 하나 남아서 내가 한거야."

"감사합니다."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반전은, 그 재고가 없다던 열쇠, 안 열려요. 누가 봐도 홈의 방향 같은게 완전 반대인, 복사가 제대로 안된 열쇠에요. 이쯤 되니 열 받기도 지쳐서 그냥 웃깁니다. 뭘 어쩔까. 가서 이 거짓부렁쟁이 화쟁이 노인네야! 하고 성질을 부릴까. 그냥 환불이나 해달라고 할까. 아무튼 이상한건, 애초에 제가 열쇠복사 얼마냐고 물어보았을 때,


"열쇠 이리 줘보세요." 


하면 되었을 일이고, 후에는 그냥


"열쇠가 재고가 없네. 미안하지만 다른 곳 가봐요." 


하면 되었을 일들인데. 대체 왜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을, 이토록 화나고 어렵게 만든 걸까요?...뭐 그냥 재수가 없는거지요 제가 오늘. 쓰고 잊어야겠습니다. 다시 복사해야 하는 그 열쇠 들고 그냥 다른 열쇠가게 가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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