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영화가 처음 나온 시기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겁니다. '좀비'라는 명칭을 처음 쓴 영화는 1932년작 '화이트 좀비'입니다. 그 뒤로 1943년작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를 비롯해 여러 좀비 영화가 나왔지만 대부분은 부두교 이미지를 덧씌운 영화들입니다. 보지 않은 영화들이라 더 자세한 설명은 할 수가 없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좀비의 이미지는 1968년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나왔습니다. 50년이 다된 영화라 어설픈 부분이 없진 않지만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서브텍스트 따위를 생각 하지 않아도 꽤 재밌게 본 편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나온 좀비 영화들을 통해 좀비 장르의 설정도 찬찬히 갖춰졌습니다.
부산행의 좀비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 따지면 장르적으로 멀쩡해 보입니다. 빠른 좀비 설정이야 2004년작 새벽의 저주, 2013년작 월드워 Z를 비롯해 최근 좀비 영화들 중에는 많은 편입니다. 좀비 영화의 이단 격인 레지던트 이블도 1편의 좀비는 느린 편이었지만 후속작의 좀비들은 잘만 달리더군요. 좀비라고 하기엔 다른 좀비들과 설정이 꽤 다른 28일 후, 28주 후의 감염자들도 빨리 달립니다. 부산행의 경우 월드워 Z의 좀비들과 제일 유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좀비에 대한 설정 자체를 흔드는 결함들이 꽤 보입니다. (다른 영화들도 그렇듯) 좀비에게 물렸을때 감염되는 속도가 사람마다 편차가 있다 해도, 이 작품 속 주요 캐릭터들의 감염 속도는 다른 엑스트라 좀비들이 순식간에 감염되는 것과 비교해도 너무 늦어요. 대표적으로 아트박스 사장님과 작중 제일 나쁜놈...
좀비 자체의 위력도 달려들때는 강한데, 주인공 일행과 싸울때는 필요 이상으로 약했습니다. 아무리 주요 인물이라는 보정이 있다 해도 이렇다 할 무장도 갖추지 못한 거의 맨몸인 사람도 못 밀쳐내는건 도데체...
몇몇 등장인물의 행동도 이해가 안갑니다. 제일 나쁜 놈이 좀비(영화 속에서 그런 단어는 쓴 적 없지만 편의상)라고 선동할때 주인공 일행이 반박하려면 그리 어렵지 않았을겁니다. 저기 저 괴물들은 말도 못하고 도구도 쓸 줄 모르는 것들이지만 여기까지 돌아온 우리들은 이렇게 말을 하고 도구를 쓰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할 수 있었을텐데요. 주인공이 그렇게 선한 인물상도 아니었으니 충분히 가능했을거에요. 애초에 그런 반박 논리는 배제하기로 한 것 같지만 맘에 드는 전개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옮겨 탄 기차에서 주인공이 제일 나쁜 놈을 봤을때도 이해가 안가더군요. 주인공은 그의 눈 상태를 분명 봤고 아직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본인도 좀비들을 맞상대 했으니 학습효과가 있었을텐데, 완전히 변화되어 달려들기 전에 바로 철로로 밀쳐 버리는게 맞지 않습니까. 주인공이라는 작자가 이렇게 학습효과가 없어서야...
신파스러운 부분은 메이저 한국영화가 나올 때마다 좀비처럼 나오는게 참 그렇습니다. 그 중에서도 음악이 슬프게 나올때는 오히려 짜증이 났습니다. 특히 주인공의 최후 묘사는 그냥 곱게 떨어질 것이지 뭐 그렇게 유아용품 CF를 찍나 싶었습니다.
저는 좀비 장르에 대해 완전히 비현실적인 장르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좀비 감염 묘사는 실제 전염병(신종플루, 에볼라, 메르스 등등)의 증상과는 전혀 다르고, 현실 비판으로서의 기능도 60~80년대에 이미 다 힘을 잃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미 좀비 장르 자체가 클리셰로 점철되었고 최근 나오는 메이저 좀비 영화들은 액션 등 볼거리에 치중할 수밖에 없어요.
부산행은 좀비 영화로서 좋은 편이 아닙니다. 기존의 클리셰를 답습하면서도 충실하지 못해요. 이런 작품은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언급할 자격조차 의문시(라고 쓰고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됩니다. 차라리 '좀비랜드'나 '웜바디스'처럼 그런거 생각 안하고 오락적인 면모로 나가는걸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거라는 생각입니다. 아니면 '괴물', '설국열차'처럼 확실하게 날을 세우든지요. 보고 나니 전염병 아포칼립스를 다룬 '감기'보다 딱히 나을게 없어요. (연가시는 안봤으니 할 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