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26 14:59
요즘 하루에 하나씩 글을 쓰는 것 같네요. 너무 자주써서 불편하신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일베를 자주 보지도, 워마드에 가입하지도 않은 제가 이런 글을 써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주저리 사담을 늘어놓으려고 합니다. 틀린 부분은 지적 부탁드려요.
***
1)
제가 며칠전 듀게분의 소개(?)로 워마드 대피소를 알게 되었을때,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가입조건 중 "육병기"부분이 아니라 "도덕을 버려라"라는 문구 때문이었습니다.
저들이 왜 저런말을 했을까 고민이 되더군요.
일베는 저런 가입조건을 걸지 않지요.
누구든 자유롭게 가면을 벗고 자신의 본성을 마음껏 펼치며 노니까요.
그런데 워마드의 저 경고는 "너가 도덕을 버리지 않으면 싸울수 없을거야"라는 말 같았어요.
결론적으로 저 문구때문에 저는 가입하지 못했어요.
저는 제가 준법정신이 어느정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도덕적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나 자신의 '도덕적인' 모습을 버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제가 언제 스스로의 도덕을 던져버리고 본능에 충실해질 수 있을지 압니다.
생존권이 위협받을 때죠.
2)
제가 일베를 거북해 하는건 거친 말투 떄문이 아니라 약자 혐오의 정서때문입니다.
작은 동물들, 진보정당, 여성, 노인, 장애인, 호남...
이들이 굳이 두들겨패지 않아도 현실에서 힘들게 사는 존재들을 집요하게 괴롭히며 쾌감을 느끼는 정서요.
워마드의 글들에서 제가 느낀건 그런 "혐오자체를 위한 혐오"의 정서는 아니었어요.
위악과 잔인함을 가장하고 있고, 실제로 해악이 될법한 행동을 하고있지만
사실은 몹시 제정신으로, 어떤 하나의 목표아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였죠.
(이런 조직은 어차피 목표가 어느정도 달성되면 와해될겁니다)
미러링이고 여부를 떠나서 저는 워마드가 하고있는 행동에 옳지않은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 안에서 워마드를 끝까지 타자화 시켜버릴 수 없는 건
저들이 인터넷 세상을 벗어나면 실제 세상에서는 약자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강자가 약자를 때리는 것과 약자가 강자를 때리는건 매우 다른 문제지요.
(많은 분들이 저 전제에는 찬성하고 계실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사실 찬성하지 못하는 부분은 "여자들이 현실에서 약자다"라는 부분이겠죠.)
저는 지금 워마드에 백퍼센트 찬성할 수 없지만,
제가 여자로서 아주 억울한 일을 당했고 그 가해자가 남성이었을 때
망설임없이 도덕을 버리고 저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저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아요.
저는 아직 여유가 있는 사람인거죠.
워마드는 남성에 대한 피해의식과 그에 대한 반감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이고,
그 피해의식이 근거없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 여성이라면 오히려 피해를 피해간다는게 불가능하죠. 인식하는사람과 인식하지 않는 여성이 있을 뿐.
그리고 저는 "피해자들"에게는 일반인과 같은 엄격한 도덕성과 제정신을 요구하는걸 꺼리는 편입니다.
피해의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신은 이렇게 투쟁해야해" "가해자의 인권을 존중해야해"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하니까요. 이번 케이스 뿐만 아니라 언제나요.
3)
워마드가 약자라는 전제하에 계속 이야기 해보면,
약자가 투쟁하고 발언할 때 그 과정에서 어쩔수없이 불필요한 희생자가 나올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깨끗한 운동은 책속에서 밖에 존재하지 않겠죠.
하지만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때, 예를들어 철도 노조가 파업을 해서 제가 출근길에 지각을 한다고 해도
제가 큰 불만없이 받아들이는 건 그 불익 주려고 한 대상이 내가 아니라는 걸 알기때문입니다.
저는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았어도 그 사람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하고,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불편은 감수할 용의가 있습니다.
(저에게 실제적인 큰 손해를 끼치지 않는한...)
이전의 논쟁속에서 "난 여혐하지 않았는데 왜 싸잡아 욕하냐"라는 말은
파업하는 노동자에게 난 당신 고용주도 아닌데 왜 나한테 불편을 끼치냐 화내는 모습같아 보였어요.
욕하고 싶다면 어쩔수 없지만, 당신이 잘못한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에게 끼쳐진 피해는 의도된 바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사자가 지금 그럴 여유가 없다는 걸 이해해주면 고맙고요.
4)
저는 분명히 아직까지 여자들이 피해자이며 약자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를 인간이 아닌, 자궁과 보지로 보고 그렇게 만들려는 시도를 하루에도 수없이 느끼며 살거든요.
2016.07.26 15:16
2016.07.26 15:21
네, 현실에서 "여자가 약자임을 부정"하는 건 여혐정서의 전반적인 기조를 말한거고, 메갈 옹호자까지 워마드를 등돌리게 만든건 님이 지적하신 부분이 맞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제가 아는건 워마드가 성소수자/장애인/어린이까지도 "남자"라면 모두 적으로 돌렸다는 것 뿐이죠.
성소수자와 장애인 안에서의 여성 성소수자, 여성장애인 차별, 남자어린이에 의한 여자어린이들의 성추행 이슈때문인걸로 알고있어요.
2016.07.26 15:18
정말 궁금해서 묻는건데요.
마지막 문장 '여자를 인간이 아닌, 자궁과 보지로 보고 그렇게 만들려는 시도를 하루에도 수없이 느끼며 살거든요'
정말 진심으로 저런 과격한 표현을 할 정도의 표악한 울타리안에 계신건가요?
솔직히 잘 믿겨지지가 않아서요.
결국은 다 자기 보는 만큼, 느끼는 만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일텐데, 저로써는 실감이 잘 안됩니다.
이 갭이 세대 차이인지 정말 남녀의 젠더 차이인지, 어쨌든 요즘은 좀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마지막으로 힘내시라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2016.07.26 15:23
자궁과 보지로 만드는 시도라는게 길가던 사람이 저를 보지라고 부르거나, 강간만 말하는건 아닙니다.
"여자는 임신할 몸이니까 담배피우면 안돼" 같은 걱정하는 말이나. 통신사의 (통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여자의 둔부를 강조한 광고까지 포함하는거죠.
2016.07.26 15:52
저도 어떠한 액션이 들어간 행위를 말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우리때와는 달리 요즘은 직장내에서의 남여 관계가 좋아지지 않았나, 내가 잘못알고 있었나 하는 차원에서 드리는 말씀이었습니다.
예로 들어주신 사례는 그냥 패스하겠습니다. 전 기본적으로 저건 자본과 시스템의 문제 제기가 더 크다고 보거든요.
2016.07.26 16:14
네. 생각난 김에 한가지 더하면, 최근에 기분나빴던 건,장미란 선수에 대해 쏟아진 외모 조롱이었죠.
한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기록한 역도선수를 보고 "저것도 여자냐"라는 식의....속상했습니다.
2016.07.26 17:39
2016.07.26 15:39
익익익명님 정도의 수준, 인간이 아니라 자궁과 보지로 보고 그렇게 만들려는 시도를 하루에도 '수없이'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끊임없이 여성을 상대화하고 아이 낳는 존재로'만' 보는 언술에 맞닥뜨립니다.
보건복지부에서 행정예고를 했는데 술병에 들어가는 음주경고문에 '임신 중에 술을 마시면.... '이 앞에 들어가는 시안 세 가지를 내 놓았죠.
험한 말 하나 없고, 실제 임신 중 음주는 매우 위험하지만 이 경고문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자인 저를 짜증나게 합니다.
남성에게는 그게 뭐? 의학적으로 맞는 말이잖아?라고 할 수 있는 말이죠.
하지만 '자궁과 보지'라는 적나라한 단어를 '임신하는 존재'으로 바꾸면 턱턱 걸려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2016.07.26 16:06
와............이건 좀 신선한데요? '임신 중'이 '자궁과 보지'로 해석이 될 수도 있네요.
그런데 임신 중에 술을 마시면 ~해서 위험하다'라는 경고문구가 '여자는 아이 낳는 존재니까 술 함부로 마시지 마라'라고 생각되신다면
혹시 '수유실'이나 버스의 '임산부 전용석'도 그런 의미로 해석되서 짜증나게 여겨질 수 있나요?
경우가 다르다고 말하실 수도 있겠는데 어떤 경우든 여자를 아이낳는 존재로'만' 여기는 사례라고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데요.
2016.07.26 16:29
임신 중을 자궁과 보지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여성을 임신하는 존재로만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불편함입니다.
위즈님이 새로 바뀔 음주경고문과 수유실/임산부 전용석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신대도, 저는 차이를 느낍니다.
부산지하철의 여성전용칸과 아파르트 헤이트의 흑인분리석의 차이를 아신다면 둘의 차이를 아실 거라고 생각하고요.
2016.07.26 16:20
다른 분들도 많이들 다셨지만, 서울 지하철에서 임부 전용석을 만들면서 임부 전용석이라고 표현하는 대신 미래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라고 썼던 것도 대표적이죠. 임신의 주체는 여성인데, 여성은 지워지고 임신 사실만 남는 거니까요.
그리고 술병 경고 문구가 바뀐 것은 전 마케팅 문제가 아니고, 저출산에 대한 국가적 위기감의 발로라고 보는데, 이 또한 여성을 도구화 하는 시각이 노골적으로 반영된 거죠. 바뀐 문구는 보셨는지요?
기존의 경고 문구에도 임신 중 음주가 기형아 출산 등의 위험이 있음을 적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반적인 다양한 위험도 함께요. 바뀐 문구는 세 종 모두 앞에 임신 중 음주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뒤에 나머지 일반적 위험을 나열하는 식이죠. 내용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아보일 수 있지만, 이런 식의 재배열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는 꼭 피해의식을 가진 여성 집단이 아니라도 누구나 합리적 사고가 가능하다면 금방 읽어낼 수 있지 않나요?
또 다른 하나의 예. 이번 넥슨 사태가 불거지면서 어느 남초 커뮤니티에서 나왔던 표현이라고 합니다.
워딩이 대충 '이제 니들은 여자로도 안 보이고 그냥 인간으로 보인다.' 과격한 욕설 비속어 하나 없는 문장이지만 얼마나 끔찍합니까. 이 발화자에게 여성이 어떤 의미였던 건지, 그리고 이게 또 얼마나 많은 남성들의 공통된 심리였던지, 대충 이해하실 수 있지 않나요? 물론 이 말을 들은 대부분의 여성들은 우리가 여태 바라던 게 그거다 하고 박장대소했지만, 그 안에 씁쓸함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죠.
2016.07.26 15:34
그런데 익익익명님은 꽤 당당하신거 같은데 왜 익명을 사용하시나요?
2016.07.26 15:37
게시판에서 제가 당했던 강간미수 경험을 털어놓을 떄 마음이 어려워서 익명을 사용했는데,
마침 넥슨 사태가 터지면서 그대로 댓글을 달고하다보니 그대로 이어지게 되었네요.
2016.07.26 15:46
그 절박한 상황에서의 '투쟁'의 결과들을 보세요.
소라넷 폐쇄를 이끌어낸 메갈리아도 공식적이고 정제된 언어로 진정서를 냈고, 성금모금을 위한 티셔츠 문구도 순하기 그지 없어요.
'투쟁'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죄다 합법적이고 평범한 움직임이에요.
인터넷에선 심한 언어를 사용하던 그들조차 현실에선 그렇게 해야 하는걸 아는거에요.
훨씬 절박한 세월호 유가족도 단식투쟁하고 노동자들이 수십일씩 고공농성하고 시민들이 물대포 맞아가며 촛불시위를 했어요.
다들 여유 넘쳐서 그러는거 아니에요.
2016.07.26 16:00
의도치 않게 폄하한 부분이 있을수도 있겠네요.
제 마음이 어떤 선을 넘기 힘들다는거였지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2016.07.26 16:06
사실 인터넷에서 욕한다고 엄청난 피해를 주는거 아니에요. 기분만 나쁘고 말지.
그건 한편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반증이에요.
내 여성주의의 주도권을 남성에게도, 워마드에게도 줄 필요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