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2 22:25
이 곳에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정말 오랜만이군요. 어떠한 논쟁에도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작금의 메갈리아 논란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거의 들여다 보지 않는 편이라 사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글을 올릴 만한 데가 이 곳밖에 없지만, 또 그나마 진영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차분하게 토론할 만한 곳도 달리 생각나는 곳이 없군요.
혼란스럽고 정신 없는 이 논란의 와중에 제 생각을 보다 정리할 수 있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soboo님이 최근 링크하신 경향 신문의 독자 투고였습니다. 그 중 “폭력은 수단이 될 수 있다”란 글(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720395)을 읽으면서 논점의 가닥이 잡혔습니다. 짧은 지면에 글쓴이의 생각을 다 담아낼 수는 없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위험하고 문제적인 주장들이 담겨 있어서 일단 이 지점에서 시작해볼까 합니다. 저는 이 독자 투고문을 거론하신 soboo님과 토론할 의도는 없으므로 이 글이 그런 말걸기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길 바란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제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좀 긴 글이 될 텐데 그리 새로운 얘기는 아닐 수도 있으니, 어쨌든 끝까지 읽어주실 분들께는 미리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투고문의 글쓴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메갈리아의 ‘미러링’ 전략을 옹호합니다. 그에 따르면, 1. 언어 폭력은 사회적 폭력, 물리적 폭력보다 낮은(“차선책”) 수준의 폭력이며, 따라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된 이 폭력을 갖고서 메갈리아 전략을 극단주의로 몰아가는 것은 부당하다. 2. 미러링은 일상화된 여성혐오를 폭로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유용성을 갖는다.
이 두 가지 논거는 이 게시판에서도 대동소이하게나마 여러 차례 반복된 것들입니다. 글쓴이는 또한 한국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모든 남성은, 한남”이며, “메갈리언들이 그 어떤 언어폭력을 수행했어도,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여성의 칼에 맞아 죽은 남성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여성/남성을 피해자/가해자의 구도 속에서 바라봅니다. 지금 이 인용문은 분명 반대 진영(곧 반메갈리아 남성 진영)으로부터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올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에 대해 그렇게 성급하게 즉물적으로 반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은 거기에 담겨 있는 일말의 진실을 조금 더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논점(그리고 아울러 마지막에 덧붙인 보다 자극적인 논점까지 하면 세 가지)을 이제 하나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1. 제 관점에서, 글쓴이의 주장이 갖고 있는 문제는, 사회적 폭력, 물리적 폭력과 언어 폭력을 연속성 상에서 단지 그 강도만 다른 것으로 두었다는 데 있습니다. 사회적 폭력, 물리적 폭력에 맞설 때, 종종 사람들은 마찬가지의 폭력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런 대항 폭력에 대해 온갖 찬반논란이 벌어집니다. 폭력 시위가 옳으냐 그르냐, 오래된 문제이지요. 그런데 대항 폭력에 대한 정당화 시도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그 목적의 정당성에 호소함으로써입니다. 시위대는 폭력 진압에 맞서 마찬가지로 폭력을 행사하지만 그와 동시에 항상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구호를 외칩니다. 피켓을 들고 시위 구호를 외치고 요구하는 바를 명확하게 발화하는 이 언어 행위가 없다면, 대항 폭력은 지배세력의 폭력과 구분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뉴스에는 시위대의 요구와 주장, 상황은 생략한 채 몸과 몸이 부딪히고 부상자가 발생하는 물리적 상태만 내보내는 것이지요. 목소리를 잃은 대항 폭력은 ‘폭력은 나쁘다’라는 단순한 명제(이 역시 또 다른 언어 행위입니다. 언어는 때로는 물리적 폭력을 이깁니다)에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언어 행위가 갖는 차별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정당화의 장입니다. 미러링 전략이 갖는 태생적 한계와 위험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미러링 전략은 언어 행위의 장 자체를 오염시킴으로써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폭력을 순치, 변형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축소시킵니다. 미러링 전략이 거둔 효과(라고 주장되는 점들)에 대해서는 곧 얘기할 테니 당장은 그 부분을 제쳐놓고 본다면, 메갈리아의 미러링으로 인해 일베류의 여성혐오적인 언어 폭력이 감소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오히려 일베류를 타겟으로 삼음으로써 일베의 언어가 일반화되고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되지 않았나요? 일베류가 여성혐오만을 일삼는 집단이 아니라 온갖 차별주의적 사고를 언어적으로 실천하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심각합니다. 사람들은 ‘한남충’을 말하고 ‘재기하라’고 말할 뿐 아니라, ‘~이기야’라든가 ‘~하노’와 같은 전혀 다른 지점의 정치적으로 심각하게 폭력적인 표현들 또한 사용합니다. 똑같이 되갚아주다보면 어느새 닮아버리는 것이지요. 그럴싸하게 미러링이라고 부릅니다만, 그것은 반사하기일 뿐 아니라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보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양자가 분간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위험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습니다. 일베류에 대한 미러링이 여성 멸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지역 차별, 학벌 차별, 정치적 차별 등까지 함께 확대 재생산하게 될 위험을 예방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령, 남자 어린이에 대한 성희롱 글을 써서 논란이 됐던 메갈리아 유저가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정말 그런 성적 취향으로 그 글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나중에 나온 본인의 해명은 충분히 진정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추측컨대 저는 글쓴이가 그 글을 어떤 성급하고 감정적인 이유, 충동적인 이유에서 작성했다고 봅니다. 그 글 자체만을 봤을 때, 미러링을 감지할 만한 어떤 징후도 읽을 수 없었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 글쓴이가 보다 진지하게 문제에 접근했다면 그것이 미러링,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쓴 것임을 글 속에서 밝힘으로써 불필요하고 불리한 논란을 피했겠지요. 부동액을 타서 남자에게 주었다는 글이나 그밖에 메갈리아나 그런 류의 사이트에서 문제가 됐던 상당수의 글들이 저런 그 사이트 자체의 분위기 속에서 즉흥적으로 작성된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문제가 되고 고소가 이루어지고 났을 때 당사자들은 대개 화가 나서 썼다거나 흥분해서 너무 성급하게 썼는데 이제 보니 후회한다는 말을 남기는 것을 봤습니다. 결국 미러링이라고 부르는 건 사실 화가 나서, 너무 억울해서, 분에 못 이겨 욕을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일베류가 행하는 언어폭력과는 다른 정서와 논리가 있습니다. 일베류가 조롱하고 깎아내리고 공격하는 언어폭력이라면,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그런 공격성에 깔려 있는 쾌락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분노와 억울함이 담긴 욕설입니다. 일베류가 여아에 대한 성희롱을 즐긴다면, 메갈리아는 남아에 대한 성희롱을 원하고 바라지는 않으면서, 그저 당해보라는 심정으로 내뱉는 것이라고 봅니다.
만약 이런 제 추정이 옳다면, 저는 메갈리아와 그에 동조, 동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반면, 이 메갈리아적 언어 폭력을 일종의 적극적 전략으로 해석하고 정당화하려는 관점에 대해서는 비판적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언어 폭력은 정당화의 장을 오염시키고 전선을 성차별이 아닌 다른 지점들로 확장시키고 다른 종류의 차별들을 확대 재생산하거나 그럴 위험을 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투고문의 첫 번째 주장에 반대합니다. 언어 폭력은 혁명의 수단, 변혁의 수단으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모든 대항 폭력은 오히려 정당한 언어에 의해서만 정당화되기 때문입니다. 욕설로 이루어낼 수 있는 혁명이란 없습니다. 글쓴이는 어쩔 수 없이 택한 “차선책”으로서의 언어 폭력을 말했는데, 그러한 차선책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혁명이란 없습니다. 궁지에 몰린 사람은 욕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치고 받고 싸웁니다. 물리적 행동, 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언어 폭력은 욕설에 불과합니다. 소라넷 폐쇄는 욕설로, 미러링으로 해낸 것이 아닙니다.
2. 이제 미러링의 폭로적 효용에 대해서 말해보죠. 제가 보기에 메갈리아식 미러링 전략은 그 폭로적 측면과 화풀이 측면이 분리 불가능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풍자나 고발처럼 사태를 폭로하고 무의식적 피해자를 위로하는 게 아니라, 똑같이 돌려주었을 때 흥분하는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얻는 분풀이에 의존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분풀이가 직접적인 만큼 그 분풀이를 불러일으키는 미러링적 언어의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인 관념 내용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논란이 됐던 “잠재적 성범죄자”란 언급을 한 번 생각해보죠(투고문에서도 “‘정상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모든 남성은, 한남”이란 말로 같은 관념이 되풀이되고 있죠. 저는 앞서 언급한 세 번째 논점을 아울러 얘기할 겁니다). 이 표현은, 투고문에서 말하는 대로 남자들은 한 번도 공공화장실에서 살해당할까 두려워하며 살지 않는다는 사실, 반면 모든 여자들은 항상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산다는 사실을 환기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이중으로 문제적입니다. 표현이 지나치게 이분적이기 때문이죠. 일단, 남자 입장을 생각해보죠. 1) 한국 남자들 상당수가 여자에 대해 성적 대상화를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2) 심지어 한국 남자 그 누구도 무의식적으로라면 그러한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3) 그렇다면 한국 남자는 모두 ‘한남충’ 내지 ‘잠재적 성범죄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세 번째 단계에는 상당한 비약이 있습니다. 문제는 흔히들 지적하는 대로 성급한 일반화에 있지 않습니다. 한국 남자들 상당수가 여자들을 성적 대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그런 머리 속 경향이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나고 범죄로 이어지기까지에는 많은 단계들과 그만큼의 간극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타자의 생각 자체를 재단하고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성적 대상화가 문제라면, 어느 누군들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여자들 또한 무의식적으로라도 남자를 성적 대상화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통제의 대상은 어떤 생각 자체가 아니라 그 생각이 발화되는 방식, 행위로 옮겨지는 방식입니다. 여자를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경향이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성적 쾌락과 취향으로 발현되느냐 아니면 성범죄 내지는 성추행의 형태로 나타나느냐를 좌우하는 것은 그 경향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객관적으로는 새로운 사회적 규범의 구성과 기존 규범들의 명확한 확립 및 유지에 의존하고 주관적으로는 각 개인의 이성적 판단에 의존합니다. 누구나 일탈적이고 심지어 범죄적인 욕망을 가질 수 있지만 사회가 그것을 직접 표출하도록 허용하지 않고 개인이 스스로 그 욕망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일베류처럼 성희롱 발언을 온라인에서 일삼는 개인조차도 실제로 그 발언을 자동적으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습니다. 일베류가 위험한 것은, 개인의 그런 기본적인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입니다. 비판해야 할 것은 개개인의 성적 욕망과 경향이 아니라, 그것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부추기고 방관하는 사회(작게는 일베가 형성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크게는 우리 사회 전체)입니다. 비판의 대상은 어떤 불특정 다수 남자들의 머리 속이 아니라, 그 머리 속 망상이 언어적 표현으로, 더 나아가 실제 행위로, 또 범법 행위로 실현되도록 만드는 공동체입니다. 이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남녀간의 전쟁이 아니라, 공유할 수 있는 기초 사회 규범의 확립 및 관철이 필요합니다. “잠재적 성범죄자” 발언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층위입니다. 폭력적 경향이 실제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개인이 스스로 그를 차단할 수 있는 이성적 판단을 하도록(자신의 도덕적 이성에 의해서건 처벌과 비난을 두려워하는 계산적 이성에 의해서건 간에) 만들어야 합니다. 남성에 의한 성범죄의 경우에는, 남성 스스로 탈성별화되도록, 그래서 남자가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 층위에 대한 고려 없이 남자들에 대해 잠재적 성범죄자라고 말하는 것은, 남자들이 남자들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즉 자신들의 일탈적 성적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이성적 주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마찬가지 논리에 따라, 대다수는 잠재적 살인자일 수 있습니다. 한 번쯤 누구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이런 찜통 더위에 홧김에, 짜증나서, 어떤 폭력적인 충동이 작은 일로 촉발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우리 안의 폭력적 본능을 비난하기보다, 그 본능을 제어할 수 있는 이성을 신뢰하고 이성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반면 메갈리아적 미러링은 이 본능적 폭력성을 직접 비난하고 공격함으로써, 이 폭력성이 현실화되는 무수한 매개과정들을 간과하고, 더 나아가 그 매개과정들을 약화시키기까지 합니다. 이 매개과정들 중에 중요하게 공론장이 포함됩니다. 다시 투고문으로 돌아가보면, 글쓴이는 글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메갈리언들의 언어 폭력이 논리적 공론의 장 형성을 방해한다는 비판도 보이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반박할 가치조자 없는 발언이다. 이 명제가 참이 되려면 메갈 이전부터 남녀가 젠더 문제에 대해 페어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있었고, 그 공론의 장을 하나 이상 메갈리아가 붕괴시켰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공정한 공론 장은 명시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러한 공론 장은 이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녀차별로부터 자유로운 사회가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반대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공론 장은 우리 사회에서조차 계속 형성 중이고, 또 우리들 각자가 그 공론 장의 형성과 확대를 책임지고 수행해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도 표현의 자유를 차단하고 사람들의 입을 원천 봉쇄할 수 있는 권력이란 없습니다. 메갈리아 이전에도 한국에 페미니즘 운동은 존재했고, 여성들은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 때문에 젠더 문제가 공론화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공론화의 방식이 남녀간의 이분법적 전쟁과 욕설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성차별 폭력의 제어에 기여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메갈리아는 공론장 형성에 기여한 것이 아니라 그 형성을 과제로 던져주었습니다. 저는 메갈리아가 촉발시킨 전쟁으로부터 어떻게 공론장을 형성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모두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페미니즘을 지지하면서도 메갈리아에 거리를 두는 많은 분들의 입장이 이러할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남자는 잠재적 성범죄자”란 표현이 갖는 문제점은 여자 입장에서도 존재합니다. 이 표현은 그 단순한 도식화에 따라 “여자는 성범죄의 잠재적 피해자”란 의미를 함축합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는 대로, 성범죄에 대한 공포, 그 뿐 아니라 여성비하적 표현들로 입은 상처를 상당수 여성들은 공유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그 자체로 다수입니다. 모두가 하루 종일 성범죄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고 여성비하적 표현들에 시달리지는 않습니다. 누구는 지방대 학생, 누구는 저임금 노동자, 누구는 부자 부모의 자식, 누구는 전라도 사람, 누구는 비만인 등등 우리는 다양한 다수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제가 든 예들에서 보듯이 온갖 종류의 다른 차별들과 성차별은 우리의 복잡한 정체성만큼 서로 엮여 있습니다. 과거 맑스주의는 이 복잡성을 주요 모순을 중심으로 위계화해서 정리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좌파 노동자 운동가가 자본주의 모순을 주장하며 여성 운동가를 착취하고 성폭력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간은 노동자/자본가의 계급적 범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남자/여자의 성차로 환원되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성차에 기초한 집단적 주체성이란 매우 허약하고 허구적일 뿐입니다. 당장 유리천장의 문제를 생각해보죠. 이 문제를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해결을 도모할 주체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여성들 내에서조차 이미 정규직/비정규직을 비롯해서 자본이 만들어놓은 온갖 차별들로 인해 “여성”이라는 단일 범주는 쪼개져버릴 것입니다. 자본 내에서 여성 차별은 노동자 차별의 문제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유리천장을 제기할 때 싸워야 할 대상은 단순히 남자만이 아니라 자본이기도 합니다. 자본은 노동자들을 차별할 좋은 기제로 성차별을 이용합니다. 남/녀의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는 이러한 복잡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성차별의 해결에도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존재하는 성차별이란 없고, 언제나 각자가 가진 다수의 상이한 정체성들에 따라 각각의 상황 속에서 역시 상이하게 규정되는 차별 상황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차별 상황들에 눈을 뜨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지금 일베류의 성폭력 언사를 비판하고 항의하는 것 이상의 노력과 성찰이 요구됩니다. 이번 메갈리아로 인해 깨닫게 된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착취당하고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폭력을 겪고 있으며 이에 대해 깨닫고 이를 위한 새로운 규범들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베류의 좁은 세계, 곧 사치하는 여자들, 남자들 등골을 빼먹는 여자들, 운전 못하는 여자들, 나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는 여자들로 이루어진 상상적 세계를 빠져나와야 합니다. 미러링은 그저 이러한 상상적 세계를 공격하면서 여전히 그 안에 갇혀 있고 그런 방식으로 그 세계를 공고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저는 일베의 세계가 그 언어 표현 방식과 함께 심지어 확장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합니다. 메갈리아는 그 상상적 세계 자체의 비판이 아니라 그 세계 안으로 자신들이 비판하는 남자들 또한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이 “폭로”하는 현실은 일베류의 상상적 세계의 거울상이라는 얄팍한 현실일 뿐입니다. 너도 나도 성범죄의 공포와 성희롱의 불쾌감을 공유하고 공감하지만, 그것은 실재의 여러 차별들과 엮여 작동하는 구조적 성차별의 여백에 존재하는 표면적 현실입니다. 그 밑에 있는, 성차별을 비롯한 온갖 차별들의 복합체의 구조(이것이 한국 사회의 기본 구조입니다. 다시 말해 지역 차별, 학벌 차별, 나이 차별, 성차별, 인종 차별 등등이 각 상황에서 서로 얽혀 있는 관계망들),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짐작하면서도 역설적이게도 의식하지 못하는 구조를 드러내는 일 없이는, 메갈리아식 폭로는 빛을 바래고 맙니다.
제가 보기에 근본 문제는 폭력에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간에 폭력은 인간에게서 완전히 제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순치할 수도 없는 경향입니다. 대항 폭력을 사용하는 일은, 또 다른 폭력의 순환, 통제할 수 없는 순환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위험하고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일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 자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폭력의 다양한 형태들, 그 형태들의 변화를 추적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폭력의 행사자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폭력 자체를 타자화하고 그로부터 모두가 거리를 두고 빠져나와 비판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 맥락에서 이제 마무리 삼아 조금 실천적인 얘기를 해보죠. 남자들은 메갈리아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일을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메갈리아의 방식을 지지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것이 욕설이고 분풀이임을 인지하고, 그러한 욕설의 언어 폭력을 촉발시킨 일베류의 세계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에 자신 또한 이미 어느 정도 들어서 있던 것은 아닌지 흥분하지 말고 반추해야 합니다. 메갈리아의 일부 사용자들이 일베류의 “패륜적” 언사를 사용한다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쩌면 어느 누구도 그러한 일베류의 세계에서 자유롭지 못할지 모릅니다. 일베류와 일베류의 거울상(그것이 메갈리아처럼 직접적인 거울상이든 오유처럼 “자칭” 대립지점으로서의 거울상이든)이 공유하는 얄팍한 세계(어떤 민족주의적이고 패배주의적이며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잠재적으로 폭력적인 세계. 가령 오유와 일베의 유사성에 대해서는 역시 경향 신문의 투고문 “ 일베나 오유나 - 메갈리아 논쟁에 부쳐”에서 잘 지적되어 있습니다)를 벗어나야 합니다. 메갈리아에 발끈해서 달려드는 것은, 일베 안에 갇히는 일일 뿐입니다(실제로 원든 원하지 않든 메갈리아와 싸우는 남자들은 일베와 같은 수준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그들이 원래 그런 수준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일베를 비롯해서 그와 무의식적으로 사고를 같이하는 이들(나 자신을 포함한)에 대한 반성적 비판을 행할 때, 메갈리아(지지자)의 일부는 동지가 되어줄 것이고, 비판했었던 일부(일베류의 메갈리안)는 일베와 함께 비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메갈리아를 해체하고 싶다면, 일베의 성차별, 성희롱을 비판해야 합니다. 여자들 역시 메갈리아에 대한 지지 여부를 두고 싸울 것이 아니라, 소통 가능한 언어로 차별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개저씨를 개저씨 없는 데서 비난하고 욕하기보다는, 그러한 자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닐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도록 이성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모두와 공유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이 말하듯이, 메갈리아는 일베에 비하면 매우 작은 커뮤니티일 것입니다. 그것은 일베의 세계를 비추었던 작은 거울, 일베의 세계 안에 여전히 있는 거울입니다. ‘일베나 메갈이나’와 ‘일베나 오유나’의 양자 택일에서 선택하는 것은 거짓 선택입니다. 일베를 보다 진지하게 접근하고 이해하려고 시도해야 하며, 그러한 관점 속에서 성차별을 비롯한 이 차별 공화국의 차별들을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공통의 담론 장이 형성될 수 있도록, 그래서 폭력을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전선을 새로 긋고 우리가 왜 이 지옥도에 빠져 버렸는지를 지옥을 비추는 거울 안이 아니라 그 바깥으로 나와서 생각해야 합니다.
* 아마도 제 얘기는 다들 알고 계실 생각을 장황하게 풀어놓은 것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메갈리아 미러링 문제 있지만, 일베가 진짜 문제이니 남녀할 것 없이 일베 비판에 집중하자는 얘기에 불과할지 모르겠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일베 비판에 성차별을 포함시켜서 전선을 새로 구축하자는 얘기입니다만. 또는 어쩌면 메갈리아에 대한 제 비판과 관련해서 제가 놓치거나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여성 비하를 비롯한 온갖 차별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자신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점이 있다면 경청하겠습니다.
2016.08.22 23:42
2016.08.23 18:57
soboo님과 늘 거리를 두려고 하는 편이지만, 그간 게시판에 쓰신 글들 중에서 배운 바 적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곳에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기회가 되면 그러고 싶긴 하네요.
2016.08.23 00:09
길어 차근하게 읽어보겠습니다.
2016.08.23 18:59
너무 길긴 합니다 ㅎㅎ
2016.08.23 00:23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랜만에 들렀는 데 딱하니 익숙한 닉네임이 보여 글도 안 읽고 댓글부터 남깁니다.
2016.08.23 18:58
24601님, 반갑습니다. 정말 오랜만이군요. 기억해주시는 것도 고맙고요. 저부터 자주 들러야 알던 분들이 조금이라도 글을 쓰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2016.08.23 00:37
2016.08.23 18:59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그리 활발한 유저는 아니었는데 이렇게 기억해주시는 것도 고맙고요.
2016.08.23 06:14
2016.08.23 19:03
표현만 보면 분간 안될 수도 있겠지요. 미러링의 한계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밝혔듯이 저 역시 비판적입니다. 하지만 그것과, 지금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것이 전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가져오느냐에 대한 전략적 사고는 분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메갈리아 현상이 유해한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메갈리아 자체만이 아니라 그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몫이기도 합니다. 메갈리아를 그 자체로 긍정하는 데 반대하지만, 메갈리아로 인해 촉발된 위기-기회를 긍정적으로 전유할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6.08.24 01:25
2016.08.24 23:33
변화에 모든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그게 안 되면 가능한 다수가 동참하길 기대해야 하고, 그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변화는 일어날 수도 있겠고, 실제로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런 변화에서 배제된 자들과의 갈등은 결국에는 또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에서 후퇴, 역행을 목격하며, 어떤 성취도 그 자체로 유지되는 안정성을 자동으로 획득하지 못합니다. '계승'이란 말은, 그렇게 이전의 성취가 최대 다수에게 유효하도록 갱신하고 이어나가는 과제를 의미합니다. 변화의 진정한 주체는 당연히, 원칙적으로, 우리 모두입니다. 메갈리아가 제기하는 문제는 남녀 한쪽의 성에 국한된 게 아닌데, 여기에서 논공행상을 따질 겨를은 없습니다.
2016.08.25 04:26
2016.08.23 10:19
남자들은 메갈리아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일을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메갈리아의 방식을 지지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것이 욕설이고 분풀이임을 인지하고, 그러한 욕설의 언어 폭력을 촉발시킨 일베류의 세계를 직시해야 합니다.
-->이런 식이면 일베도 욕 못 합니다. 일베도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괴물이 아닙니다. 진보좌파가 절대 우위였던 온라인 세상에서 목소리 내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던 보수우파. 진보좌파였지만 그들의 패악질에 환멸을 느끼고 전향한 사람들이 건너가 지금과 같은 괴물이 된 겁니다. 진보좌파는 민주화 운동. 김대중과 노무현. 여성주의와 소수자에 대해 과도하게 성역화 했고, 그 과정에서 숱한 모순을 저질렀습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폭력에 반대한다고 하면서 광우병 시위에서의 집단 폭력을 묵인하는 모습. 그러면서 어버이 연합은 가스통 할배라고 조롱하는 모습. 이명박근혜를 희화화하는 건 권력자에 대한 풍자라면서 김대중 노무현을 희화화하는 건 패륜이라는 이중잣대.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면서 데이트 비용과 병역 의무의 평등을 주장하면 여혐으로 매도하는 앞뒤 안맞는 모습. 이런 게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일베가 탄생한 겁니다. 메갈리아가 분풀이라면 일베도 분풀이고, 메갈을 욕해선 안 된다면 일베도 욕해선 안 됩니다.
2016.08.23 19:13
저는 일베가 단순한 보수우파 집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명박근혜 vs. 김대중노무현의 이분법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원인을 따져묻지면, 님 가정대로 온라인에서 보수우파를 쥐어박았던 진보좌파의 폭력성은, 현실에서 역사적으로 억압당해온 진보좌파의 반작용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어요? 이 폭력의 인과연쇄가 어디까지 올라가야 합니까? 사태는 근본적으로는 간단할 수 있습니다.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는 입장이 있고, 차별과 폭력을 어떤 방식으로든 긍정하고 용인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실제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고 상상적 고통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뒤얽혀 서로 욕설을 주고 받는다고 해서, 이 차이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일베를 비롯한 온라인 보수 우파에게 사회 구조적인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합니까? 저는 일베를 단순하게 비판하지 않습니다. 일베는 단순한 집단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가진 모순의 중요한 징후로서 면밀히 탐구하고 이성화해야 합니다. 일베를 억압하고 배제하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라는 점에서, 제 입장은 일베를 단순히 욕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2016.08.23 11:09
[OO들의 머리 속이 아니라, 그 머리 속 망상이 언어적 표현으로, 더 나아가 실제 행위로, 또 범법 행위로 실현되도록 만드는 공동체입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이 “폭로”하는 현실은 일베류의 상상적 세계의 거울상이라는 얄팍한 현실일 뿐입니다.]
... 섬세한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에는 불특정 다수보단 특정 소수와 대화하고 싶어지더군요.
너울거리는 환상의 그림자들을 바라보는건 지쳤고, 현실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어서요.
(요새는 조마경이나 하나 있었으면 싶다는 헛생각도 합니다. 현상학적 현실만 골라 비춰보였으면 해서요.)
과잉해석과 과소해석된 것들이 제 크기를 찾아 맞아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2016.08.23 19:33
저도 같은 바람을 공유합니다.
2016.08.23 11:4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성껏 쓴 글이라 댓글 달기가 어렵네요. 다른 건 다 모르겠고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남녀간의 성적 집단 주체성이란 생각보다 강하고, 실제 피해자-가해자 구도에서는 더욱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남녀문제에 있어서 해결이 어려운 것은 성적 차이 말고 다른 차이 있는 개별적 속성을 간과하기 때문이라는 말엔 공감하고 그런 면에서 허구적이라는 말도 공감할 수 있지만, 반대로 그래서 본질을 흐리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차별이 차별로 인식되기 위한 과정도 그만큼 복잡해지고 실제로 폭력적이었던 것이 폭력적이 아니었던 걸로 왜곡 되고 축소 되는 경우가 현실에서는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 자체로 다수인 여성들이 겪은 폭력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일에서 잠재적인 피해자라고 할 수 없다는 말씀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잠재적 가해자라고 발언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실제 성희롱 등 성폭력 관련 현실이 문제가 되었을 때 각자 처한 현실이 다르지만 여성이 폭넓게 공유하는 현실에 대해 매일 그런 위험에 노출되어서 겁내고 사느냐는 식의 어떤 남자들의 조롱과 무지 섞인 반박을 떠오르게 합니다. 틀렸다고 말씀드리는게 아니라 위험하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나치고 넘어갈까 생각했는데 고민하다 씁니다.
2016.08.23 19:41
제가 여성들이 겪는 현실을 과소평가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당사자가 겪는 현실과 외부자가 보는 현실이 다를 수 있고, 진짜 현실, 또는 전체적인 현실이란 이 양자 어딘가에 있는 것 아닐까요. 말씀대로 여성이 폭넓게 공유하는 잠재적 피해자로서의 현실을 결코 축소해서는 안 되지만, 또한 그것이 전부이거나 심지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폭넓게 공유하는 현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는 현실은 보다 다층적, 복합적일 수 있으니까요. 제 얘기가 잠재적 피해자로서의 현실을 축소하고 왜곡하면서 균형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면, 제 부족입니다.
2016.08.23 20:22
글 잘 읽었습니다. 이번 메갈리아 이슈 관련 글 중 가장 공감되는 글이네요.
평소 메갈리아도, 메갈리아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탐탁치 않게 보였으나, 양비론보다 나은 어떤 그럴싸한 입장을 세우지 못해 방황하고 있던 저에게 나침반이 되어주었네요.
지금 한국 사회에는 메갈리아 이슈를 잘 이해할 만큼 젊으면서 이 담론을 잘 리드할 수 있는 운동가/정치가 혹은 오피니언 리더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는 진영 논리에 매몰된 채 싸움에 참여하는 병사들 밖에 보이지 않더군요.
말씀하신대로, 부디 전선을 새롭게 정립하고 전장 밖으로 빠져 나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향으로 진전되기를 바랍니다.
덧) 얼마전 '좋은 글을 쓰던 분들이 떠나서 아쉽다'고 썼던 글쓴이입니다. 그 글을 쓰며 raven 님을 떠올렸는데, 이렇게 글을 써 주시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오랜 팬입니다. :)
2016.08.23 21:59
저 역시 그러한 방황 끝에 나온 (잠정적) 입장인데, 조금이나마 참조가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말씀을 듣고 쓰셨던 글을 찾아보았습니다. 결국 어떤 공동체에 대한 갈망을 다들 공유하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끊임없이 뜻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을 찾아 헤맸었는데, 여전히 헤매는 중입니다. 가끔씩이나마 이렇게 서로 알아봐주는 관계에서 조금이나마 희망을 봅니다. 고맙습니다.
2016.08.24 02:38
상당 부분 공감합니다. 물론 제 의견과 다른 부분도 있지만 본인의 잣대와 이를 받침하는 논리가 있는 견해는 무조건 존중합니다.
메갈리아가 여성 운동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을지언정 필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작금의 상황은 '남자' 보다는'자본' 혹은 '자본가'의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합니다.
이미 직장 내 성희롱은 '남녀 관계'가 아니라 '권력 관계'임이 밝혀졌고 실제 여자 상사가 남자 부하직원을 성희롱하는 경우도 많이 발견되었죠.
피평가자가 평가자를 희롱해서 얻을 건 불이익 뿐이니까요.
우리나라는 미국보다도 먼저 여성대통령이 배출됐고 여성 문제만 전담하는 부서가 있는 아홉 개 나라 중 하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권익과 지위가 제자리, 아니 오히려 후퇴했다면 단순히 반대쪽 성별의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거든요.
실제로 제 주변 여성들 중 여성부를 지지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조금 더 거국적이고 뚜렷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미러링이라는 명목으로 고작 '일베'를 따라하는 게 어떤 도움이 되겠습니까.
남성들이 발끈하는 건 '뼛속까지 혐오 본능' 따위의 성혐설이 아니라, 본인들을 '일베' 따위와 동일 선으로 묶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미러링으로 실효를 얻으려면, '미쳐 모르고 해오던 일을 깨닫게 하는 행위'를 찾는 게 먼저겠죠.
아둔하지만, 단적인 예로 이런 것들이 있겠네요.
1. 명절에 온가족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여성은 주방에서 일을 하고 남성은 쉰다.
2. 여성은 도보 중 흡연 시 손가락질을 받지만, 남성은 거리낌 없다.
3. 여성은 화장을 해야 예의이지만, 남성은 상관없다.
여성이 양성 평등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건 대찬성입니다.
하지만 순서를 잡아야겠죠. '비교적'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부터 고쳐나갔으면 합니다.
2016.08.24 23:40
잘못 공감하고 계신 것 같군요. 저는 "작금의 상황은 '남자'보다는 '자본' 혹은 '자본가'의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본의 문제는 그리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 성차별을 포함한다고 말했습니다. 성차별을 해결하려면 자본의 문제를 함께 봐야 하듯이, 자본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차별을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제 얘기는 성차별의 문제를 다른 문제로 환원하는 것과 거리가 멉니다. 일베 낙인이 억울하면, 일베의 성차별을 비판하고 공격하십시오. 메갈리아 방식이 아닌, 본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아무도 일베와 같다고 낙인찍지 않을 것입니다.
2016.08.25 16:07
'그런 말걸기'를 할 생각은 없구요 :P (해당 글은 처음에는 가볍게 웃자고 올린글이었는데 저의 아둔함 때문에 대실패)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실은 꽤 긴 장문의 댓글을 쓰고 있다가 실수로 다 날려 먹었어요. 생각해보니 결국 이러나 저러나 raven님 주장에 대부분 동의한다는 것이라
다시 그대로 쓸 필요는 없겠다 싶군요.
그래도 꼭 남기고 싶은 말이 있어 댓글창을 다시 열었습니다.
결론 부분 맨 서두에 "남자들은 메갈리아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일을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 라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aven님 글 전체 속에서의 맥락과 별개로 요즘 정의당에서 상당수의 남성당원들이 당게를 장악하고 당지도부를 비판하고 조롱하며 심지어 조작된 SNS내용을 유포하여 당의 신뢰성과 투명성에 타격을 입히려던 사건까지 발생하는 것을 보며 속이 시커매지던 차인지라 울컥스럽게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raven님의 상황이 허락하신다면 앞으로도 관련된 좋은글 계속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그러면 저같은 사람도 소모적인 논쟁이나 말쌈보다는 좀 더 여유를 갖고 생산적인 토론에 참여하거나 능력이 안되면 관전하며 응원하는 쪽이 될 수도 있을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