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정말 오랜만이군요. 어떠한 논쟁에도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작금의 메갈리아 논란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거의 들여다 보지 않는 편이라 사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글을 올릴 만한 데가 이 곳밖에 없지만, 또 그나마 진영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차분하게 토론할 만한 곳도 달리 생각나는 곳이 없군요.

혼란스럽고 정신 없는 이 논란의 와중에 제 생각을 보다 정리할 수 있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soboo님이 최근 링크하신 경향 신문의 독자 투고였습니다. 그 중 폭력은 수단이 될 수 있다란 글(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720395)을 읽으면서 논점의 가닥이 잡혔습니다. 짧은 지면에 글쓴이의 생각을 다 담아낼 수는 없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위험하고 문제적인 주장들이 담겨 있어서 일단 이 지점에서 시작해볼까 합니다. 저는 이 독자 투고문을 거론하신 soboo님과 토론할 의도는 없으므로 이 글이 그런 말걸기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길 바란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제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좀 긴 글이 될 텐데 그리 새로운 얘기는 아닐 수도 있으니, 어쨌든 끝까지 읽어주실 분들께는 미리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투고문의 글쓴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메갈리아의 미러링전략을 옹호합니다. 그에 따르면, 1. 언어 폭력은 사회적 폭력, 물리적 폭력보다 낮은(“차선책”) 수준의 폭력이며, 따라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된 이 폭력을 갖고서 메갈리아 전략을 극단주의로 몰아가는 것은 부당하다. 2. 미러링은 일상화된 여성혐오를 폭로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유용성을 갖는다.

이 두 가지 논거는 이 게시판에서도 대동소이하게나마 여러 차례 반복된 것들입니다. 글쓴이는 또한 한국사회에서 “‘정상적으로중학교를 졸업한 모든 남성은, 한남이며, “메갈리언들이 그 어떤 언어폭력을 수행했어도,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여성의 칼에 맞아 죽은 남성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여성/남성을 피해자/가해자의 구도 속에서 바라봅니다. 지금 이 인용문은 분명 반대 진영(곧 반메갈리아 남성 진영)으로부터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올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에 대해 그렇게 성급하게 즉물적으로 반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은 거기에 담겨 있는 일말의 진실을 조금 더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논점(그리고 아울러 마지막에 덧붙인 보다 자극적인 논점까지 하면 세 가지)을 이제 하나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1. 제 관점에서, 글쓴이의 주장이 갖고 있는 문제는, 사회적 폭력, 물리적 폭력과 언어 폭력을 연속성 상에서 단지 그 강도만 다른 것으로 두었다는 데 있습니다. 사회적 폭력, 물리적 폭력에 맞설 때, 종종 사람들은 마찬가지의 폭력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런 대항 폭력에 대해 온갖 찬반논란이 벌어집니다. 폭력 시위가 옳으냐 그르냐, 오래된 문제이지요. 그런데 대항 폭력에 대한 정당화 시도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그 목적의 정당성에 호소함으로써입니다. 시위대는 폭력 진압에 맞서 마찬가지로 폭력을 행사하지만 그와 동시에 항상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구호를 외칩니다. 피켓을 들고 시위 구호를 외치고 요구하는 바를 명확하게 발화하는 이 언어 행위가 없다면, 대항 폭력은 지배세력의 폭력과 구분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뉴스에는 시위대의 요구와 주장, 상황은 생략한 채 몸과 몸이 부딪히고 부상자가 발생하는 물리적 상태만 내보내는 것이지요. 목소리를 잃은 대항 폭력은 폭력은 나쁘다라는 단순한 명제(이 역시 또 다른 언어 행위입니다. 언어는 때로는 물리적 폭력을 이깁니다)에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언어 행위가 갖는 차별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정당화의 장입니다. 미러링 전략이 갖는 태생적 한계와 위험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미러링 전략은 언어 행위의 장 자체를 오염시킴으로써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폭력을 순치, 변형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축소시킵니다. 미러링 전략이 거둔 효과(라고 주장되는 점들)에 대해서는 곧 얘기할 테니 당장은 그 부분을 제쳐놓고 본다면, 메갈리아의 미러링으로 인해 일베류의 여성혐오적인 언어 폭력이 감소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오히려 일베류를 타겟으로 삼음으로써 일베의 언어가 일반화되고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되지 않았나요? 일베류가 여성혐오만을 일삼는 집단이 아니라 온갖 차별주의적 사고를 언어적으로 실천하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심각합니다. 사람들은 한남충을 말하고 재기하라고 말할 뿐 아니라, ‘~이기야라든가 ‘~하노와 같은 전혀 다른 지점의 정치적으로 심각하게 폭력적인 표현들 또한 사용합니다. 똑같이 되갚아주다보면 어느새 닮아버리는 것이지요. 그럴싸하게 미러링이라고 부릅니다만, 그것은 반사하기일 뿐 아니라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보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양자가 분간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위험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습니다. 일베류에 대한 미러링이 여성 멸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지역 차별, 학벌 차별, 정치적 차별 등까지 함께 확대 재생산하게 될 위험을 예방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령, 남자 어린이에 대한 성희롱 글을 써서 논란이 됐던 메갈리아 유저가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정말 그런 성적 취향으로 그 글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나중에 나온 본인의 해명은 충분히 진정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추측컨대 저는 글쓴이가 그 글을 어떤 성급하고 감정적인 이유, 충동적인 이유에서 작성했다고 봅니다. 그 글 자체만을 봤을 때, 미러링을 감지할 만한 어떤 징후도 읽을 수 없었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 글쓴이가 보다 진지하게 문제에 접근했다면 그것이 미러링,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쓴 것임을 글 속에서 밝힘으로써 불필요하고 불리한 논란을 피했겠지요. 부동액을 타서 남자에게 주었다는 글이나 그밖에 메갈리아나 그런 류의 사이트에서 문제가 됐던 상당수의 글들이 저런 그 사이트 자체의 분위기 속에서 즉흥적으로 작성된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문제가 되고 고소가 이루어지고 났을 때 당사자들은 대개 화가 나서 썼다거나 흥분해서 너무 성급하게 썼는데 이제 보니 후회한다는 말을 남기는 것을 봤습니다. 결국 미러링이라고 부르는 건 사실 화가 나서, 너무 억울해서, 분에 못 이겨 욕을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일베류가 행하는 언어폭력과는 다른 정서와 논리가 있습니다. 일베류가 조롱하고 깎아내리고 공격하는 언어폭력이라면,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그런 공격성에 깔려 있는 쾌락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분노와 억울함이 담긴 욕설입니다. 일베류가 여아에 대한 성희롱을 즐긴다면, 메갈리아는 남아에 대한 성희롱을 원하고 바라지는 않으면서, 그저 당해보라는 심정으로 내뱉는 것이라고 봅니다.

만약 이런 제 추정이 옳다면, 저는 메갈리아와 그에 동조, 동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반면, 이 메갈리아적 언어 폭력을 일종의 적극적 전략으로 해석하고 정당화하려는 관점에 대해서는 비판적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언어 폭력은 정당화의 장을 오염시키고 전선을 성차별이 아닌 다른 지점들로 확장시키고 다른 종류의 차별들을 확대 재생산하거나 그럴 위험을 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투고문의 첫 번째 주장에 반대합니다. 언어 폭력은 혁명의 수단, 변혁의 수단으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모든 대항 폭력은 오히려 정당한 언어에 의해서만 정당화되기 때문입니다. 욕설로 이루어낼 수 있는 혁명이란 없습니다. 글쓴이는 어쩔 수 없이 택한 차선책으로서의 언어 폭력을 말했는데, 그러한 차선책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혁명이란 없습니다. 궁지에 몰린 사람은 욕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치고 받고 싸웁니다. 물리적 행동, 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언어 폭력은 욕설에 불과합니다. 소라넷 폐쇄는 욕설로, 미러링으로 해낸 것이 아닙니다.

2. 이제 미러링의 폭로적 효용에 대해서 말해보죠. 제가 보기에 메갈리아식 미러링 전략은 그 폭로적 측면과 화풀이 측면이 분리 불가능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풍자나 고발처럼 사태를 폭로하고 무의식적 피해자를 위로하는 게 아니라, 똑같이 돌려주었을 때 흥분하는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얻는 분풀이에 의존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분풀이가 직접적인 만큼 그 분풀이를 불러일으키는 미러링적 언어의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인 관념 내용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논란이 됐던 잠재적 성범죄자란 언급을 한 번 생각해보죠(투고문에서도 “‘정상적으로중학교를 졸업한 모든 남성은, 한남이란 말로 같은 관념이 되풀이되고 있죠. 저는 앞서 언급한 세 번째 논점을 아울러 얘기할 겁니다). 이 표현은, 투고문에서 말하는 대로 남자들은 한 번도 공공화장실에서 살해당할까 두려워하며 살지 않는다는 사실, 반면 모든 여자들은 항상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산다는 사실을 환기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이중으로 문제적입니다. 표현이 지나치게 이분적이기 때문이죠. 일단, 남자 입장을 생각해보죠. 1) 한국 남자들 상당수가 여자에 대해 성적 대상화를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2) 심지어 한국 남자 그 누구도 무의식적으로라면 그러한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3) 그렇다면 한국 남자는 모두 한남충내지 잠재적 성범죄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세 번째 단계에는 상당한 비약이 있습니다. 문제는 흔히들 지적하는 대로 성급한 일반화에 있지 않습니다. 한국 남자들 상당수가 여자들을 성적 대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그런 머리 속 경향이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나고 범죄로 이어지기까지에는 많은 단계들과 그만큼의 간극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타자의 생각 자체를 재단하고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성적 대상화가 문제라면, 어느 누군들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여자들 또한 무의식적으로라도 남자를 성적 대상화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통제의 대상은 어떤 생각 자체가 아니라 그 생각이 발화되는 방식, 행위로 옮겨지는 방식입니다. 여자를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경향이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성적 쾌락과 취향으로 발현되느냐 아니면 성범죄 내지는 성추행의 형태로 나타나느냐를 좌우하는 것은 그 경향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객관적으로는 새로운 사회적 규범의 구성과 기존 규범들의 명확한 확립 및 유지에 의존하고 주관적으로는 각 개인의 이성적 판단에 의존합니다. 누구나 일탈적이고 심지어 범죄적인 욕망을 가질 수 있지만 사회가 그것을 직접 표출하도록 허용하지 않고 개인이 스스로 그 욕망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일베류처럼 성희롱 발언을 온라인에서 일삼는 개인조차도 실제로 그 발언을 자동적으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습니다. 일베류가 위험한 것은, 개인의 그런 기본적인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입니다. 비판해야 할 것은 개개인의 성적 욕망과 경향이 아니라, 그것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부추기고 방관하는 사회(작게는 일베가 형성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크게는 우리 사회 전체)입니다. 비판의 대상은 어떤 불특정 다수 남자들의 머리 속이 아니라, 그 머리 속 망상이 언어적 표현으로, 더 나아가 실제 행위로, 또 범법 행위로 실현되도록 만드는 공동체입니다. 이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남녀간의 전쟁이 아니라, 공유할 수 있는 기초 사회 규범의 확립 및 관철이 필요합니다. “잠재적 성범죄자발언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층위입니다. 폭력적 경향이 실제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개인이 스스로 그를 차단할 수 있는 이성적 판단을 하도록(자신의 도덕적 이성에 의해서건 처벌과 비난을 두려워하는 계산적 이성에 의해서건 간에) 만들어야 합니다. 남성에 의한 성범죄의 경우에는, 남성 스스로 탈성별화되도록, 그래서 남자가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 층위에 대한 고려 없이 남자들에 대해 잠재적 성범죄자라고 말하는 것은, 남자들이 남자들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즉 자신들의 일탈적 성적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이성적 주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마찬가지 논리에 따라, 대다수는 잠재적 살인자일 수 있습니다. 한 번쯤 누구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이런 찜통 더위에 홧김에, 짜증나서, 어떤 폭력적인 충동이 작은 일로 촉발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우리 안의 폭력적 본능을 비난하기보다, 그 본능을 제어할 수 있는 이성을 신뢰하고 이성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반면 메갈리아적 미러링은 이 본능적 폭력성을 직접 비난하고 공격함으로써, 이 폭력성이 현실화되는 무수한 매개과정들을 간과하고, 더 나아가 그 매개과정들을 약화시키기까지 합니다. 이 매개과정들 중에 중요하게 공론장이 포함됩니다. 다시 투고문으로 돌아가보면, 글쓴이는 글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메갈리언들의 언어 폭력이 논리적 공론의 장 형성을 방해한다는 비판도 보이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반박할 가치조자 없는 발언이다. 이 명제가 참이 되려면 메갈 이전부터 남녀가 젠더 문제에 대해 페어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있었고, 그 공론의 장을 하나 이상 메갈리아가 붕괴시켰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공정한 공론 장은 명시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러한 공론 장은 이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녀차별로부터 자유로운 사회가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반대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공론 장은 우리 사회에서조차 계속 형성 중이고, 또 우리들 각자가 그 공론 장의 형성과 확대를 책임지고 수행해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도 표현의 자유를 차단하고 사람들의 입을 원천 봉쇄할 수 있는 권력이란 없습니다. 메갈리아 이전에도 한국에 페미니즘 운동은 존재했고, 여성들은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 때문에 젠더 문제가 공론화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공론화의 방식이 남녀간의 이분법적 전쟁과 욕설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성차별 폭력의 제어에 기여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메갈리아는 공론장 형성에 기여한 것이 아니라 그 형성을 과제로 던져주었습니다. 저는 메갈리아가 촉발시킨 전쟁으로부터 어떻게 공론장을 형성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모두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페미니즘을 지지하면서도 메갈리아에 거리를 두는 많은 분들의 입장이 이러할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남자는 잠재적 성범죄자란 표현이 갖는 문제점은 여자 입장에서도 존재합니다. 이 표현은 그 단순한 도식화에 따라 여자는 성범죄의 잠재적 피해자란 의미를 함축합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는 대로, 성범죄에 대한 공포, 그 뿐 아니라 여성비하적 표현들로 입은 상처를 상당수 여성들은 공유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그 자체로 다수입니다. 모두가 하루 종일 성범죄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고 여성비하적 표현들에 시달리지는 않습니다. 누구는 지방대 학생, 누구는 저임금 노동자, 누구는 부자 부모의 자식, 누구는 전라도 사람, 누구는 비만인 등등 우리는 다양한 다수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제가 든 예들에서 보듯이 온갖 종류의 다른 차별들과 성차별은 우리의 복잡한 정체성만큼 서로 엮여 있습니다. 과거 맑스주의는 이 복잡성을 주요 모순을 중심으로 위계화해서 정리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좌파 노동자 운동가가 자본주의 모순을 주장하며 여성 운동가를 착취하고 성폭력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간은 노동자/자본가의 계급적 범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남자/여자의 성차로 환원되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성차에 기초한 집단적 주체성이란 매우 허약하고 허구적일 뿐입니다. 당장 유리천장의 문제를 생각해보죠. 이 문제를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해결을 도모할 주체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여성들 내에서조차 이미 정규직/비정규직을 비롯해서 자본이 만들어놓은 온갖 차별들로 인해 여성이라는 단일 범주는 쪼개져버릴 것입니다. 자본 내에서 여성 차별은 노동자 차별의 문제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유리천장을 제기할 때 싸워야 할 대상은 단순히 남자만이 아니라 자본이기도 합니다. 자본은 노동자들을 차별할 좋은 기제로 성차별을 이용합니다. /녀의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는 이러한 복잡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성차별의 해결에도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존재하는 성차별이란 없고, 언제나 각자가 가진 다수의 상이한 정체성들에 따라 각각의 상황 속에서 역시 상이하게 규정되는 차별 상황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차별 상황들에 눈을 뜨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지금 일베류의 성폭력 언사를 비판하고 항의하는 것 이상의 노력과 성찰이 요구됩니다. 이번 메갈리아로 인해 깨닫게 된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착취당하고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폭력을 겪고 있으며 이에 대해 깨닫고 이를 위한 새로운 규범들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베류의 좁은 세계, 곧 사치하는 여자들, 남자들 등골을 빼먹는 여자들, 운전 못하는 여자들, 나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는 여자들로 이루어진 상상적 세계를 빠져나와야 합니다. 미러링은 그저 이러한 상상적 세계를 공격하면서 여전히 그 안에 갇혀 있고 그런 방식으로 그 세계를 공고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저는 일베의 세계가 그 언어 표현 방식과 함께 심지어 확장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합니다. 메갈리아는 그 상상적 세계 자체의 비판이 아니라 그 세계 안으로 자신들이 비판하는 남자들 또한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이 폭로하는 현실은 일베류의 상상적 세계의 거울상이라는 얄팍한 현실일 뿐입니다. 너도 나도 성범죄의 공포와 성희롱의 불쾌감을 공유하고 공감하지만, 그것은 실재의 여러 차별들과 엮여 작동하는 구조적 성차별의 여백에 존재하는 표면적 현실입니다. 그 밑에 있는, 성차별을 비롯한 온갖 차별들의 복합체의 구조(이것이 한국 사회의 기본 구조입니다. 다시 말해 지역 차별, 학벌 차별, 나이 차별, 성차별, 인종 차별 등등이 각 상황에서 서로 얽혀 있는 관계망들),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짐작하면서도 역설적이게도 의식하지 못하는 구조를 드러내는 일 없이는, 메갈리아식 폭로는 빛을 바래고 맙니다.

 

제가 보기에 근본 문제는 폭력에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간에 폭력은 인간에게서 완전히 제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순치할 수도 없는 경향입니다. 대항 폭력을 사용하는 일은, 또 다른 폭력의 순환, 통제할 수 없는 순환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위험하고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일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 자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폭력의 다양한 형태들, 그 형태들의 변화를 추적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폭력의 행사자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폭력 자체를 타자화하고 그로부터 모두가 거리를 두고 빠져나와 비판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 맥락에서 이제 마무리 삼아 조금 실천적인 얘기를 해보죠. 남자들은 메갈리아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일을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메갈리아의 방식을 지지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것이 욕설이고 분풀이임을 인지하고, 그러한 욕설의 언어 폭력을 촉발시킨 일베류의 세계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에 자신 또한 이미 어느 정도 들어서 있던 것은 아닌지 흥분하지 말고 반추해야 합니다. 메갈리아의 일부 사용자들이 일베류의 패륜적언사를 사용한다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쩌면 어느 누구도 그러한 일베류의 세계에서 자유롭지 못할지 모릅니다. 일베류와 일베류의 거울상(그것이 메갈리아처럼 직접적인 거울상이든 오유처럼 자칭대립지점으로서의 거울상이든)이 공유하는 얄팍한 세계(어떤 민족주의적이고 패배주의적이며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잠재적으로 폭력적인 세계. 가령 오유와 일베의 유사성에 대해서는 역시 경향 신문의 투고문 일베나 오유나 - 메갈리아 논쟁에 부쳐에서 잘 지적되어 있습니다)를 벗어나야 합니다. 메갈리아에 발끈해서 달려드는 것은, 일베 안에 갇히는 일일 뿐입니다(실제로 원든 원하지 않든 메갈리아와 싸우는 남자들은 일베와 같은 수준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그들이 원래 그런 수준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일베를 비롯해서 그와 무의식적으로 사고를 같이하는 이들(나 자신을 포함한)에 대한 반성적 비판을 행할 때, 메갈리아(지지자)의 일부는 동지가 되어줄 것이고, 비판했었던 일부(일베류의 메갈리안)는 일베와 함께 비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메갈리아를 해체하고 싶다면, 일베의 성차별, 성희롱을 비판해야 합니다. 여자들 역시 메갈리아에 대한 지지 여부를 두고 싸울 것이 아니라, 소통 가능한 언어로 차별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개저씨를 개저씨 없는 데서 비난하고 욕하기보다는, 그러한 자들이 활개치고 돌아다닐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도록 이성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모두와 공유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이 말하듯이, 메갈리아는 일베에 비하면 매우 작은 커뮤니티일 것입니다. 그것은 일베의 세계를 비추었던 작은 거울, 일베의 세계 안에 여전히 있는 거울입니다. ‘일베나 메갈이나일베나 오유나의 양자 택일에서 선택하는 것은 거짓 선택입니다. 일베를 보다 진지하게 접근하고 이해하려고 시도해야 하며, 그러한 관점 속에서 성차별을 비롯한 이 차별 공화국의 차별들을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공통의 담론 장이 형성될 수 있도록, 그래서 폭력을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전선을 새로 긋고 우리가 왜 이 지옥도에 빠져 버렸는지를 지옥을 비추는 거울 안이 아니라 그 바깥으로 나와서 생각해야 합니다.

 

* 아마도 제 얘기는 다들 알고 계실 생각을 장황하게 풀어놓은 것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메갈리아 미러링 문제 있지만, 일베가 진짜 문제이니 남녀할 것 없이 일베 비판에 집중하자는 얘기에 불과할지 모르겠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일베 비판에 성차별을 포함시켜서 전선을 새로 구축하자는 얘기입니다만. 또는 어쩌면 메갈리아에 대한 제 비판과 관련해서 제가 놓치거나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여성 비하를 비롯한 온갖 차별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자신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점이 있다면 경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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