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부터 바람이 슝~슝~ 불더니 비가 내리네요. 이제 여름이 다 갔구나 생각하니 슬퍼요. ㅠㅠ 


이런 날씨에는 시나 읽어야지 하고 전자도서관에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명시 100선>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세계의 명시 100선>을 급히 다운받아서 읽다가 몇 편 적어봅니다. 







봄비

 

                변영로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기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앞에 자지러지노라!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누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빗소리

 

          주요한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즈러진 달이 실낱 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 밖에, 지붕에,

남 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단조

 

       이상화

 

 

비 오는 밤

가라앉은 하늘이

꿈꾸듯 어두워라.

나뭇잎마다에서

젖은 속살거림이

끊이지 않을 때일러라.

마음의 막다른

낡은 뒷집에선

뉜지 모르나 까닭도 없어라.

눈물 흘리는 적 소리만

가엾은 마음으로

고요히 밤을 지우다.

저편에 늘어섰는

백양나무숲의 살찐 그림자는

잊어버린 기억이 떠돎과 같이

침울, 몽롱한

캔버스 위에서 흐느끼다.

아, 야릇도 하여라

야밤의 고요함은

내 가슴에도 깃들이다.

병아리 입술로

떠도는 침묵은

추억의 녹 낀 창을

죽일 숨 쉬며 엿보아라.

아, 자취도 없이

나를 껴안은

이 밤의 흩짐이 서러워라.

비 오는 밤

가라앉은 영혼이

죽은 듯 고요도 하여라.

내 생각의

거미줄 끝마다에서

젖은 속살거림은

줄곧 쉬지 않더라.

 

 

 

 


내 마음에 눈물 흐른다

 

             폴 베를렌 



거리에 비가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 내린다.

가슴 속에 젖어드는

이 설레임은 무엇일까?

땅에도 지붕에도 내리는

빗소리의 감미로움이여!

답답한 마음에

아, 비가 내리는 노랫소리여!

울적한 이 마음에

이유도 없이 눈물 내린다.

웬일인가! 원한도 없는데?

이 이유 없는 크나큰 슬픔은 무엇인가.

이건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장 괴로운 고통

사랑도 없고 미움도 없는데

내 마음 한없이 괴로워라!


 




사랑의 노래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대의 영혼에 내 영혼이 스치지 않으려면

내 영혼을 어떻게 잡고 있어야 하는가?

그대를 지나서 다른 것에 이르려면

내 영혼을 어디로 드높여야 하는가?

아아 어둠 속 어느 분명하지 않은 자리에

내 영혼을 묻어두고 싶구나

그대 마음 속 깊이 흔들려도

더는 흔들리지 않을 어느 낯선 고요한 자리에

하지만 우리, 나와 그대를 스치는 것은

모두 우리를 한몸으로 묶어 놓는 것

두 개의 활줄을 그으면 하나의 소리 흘러나오듯

어느 악기를 타고 우리는 팽팽히 늘어서 있는 것인가?

어느 바이올리니스트 손에 우리는 붙잡혀 있는 것인가?

오오 달콤한 노래여






선물


          기욤 아폴리네르 


 

만일 당신이 원하신다면

나는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아침을, 나의 즐거운 아침을

당신이 좋아하는 나의 빛나는 머리카락과

금빛 도는 나의 푸른 눈도


만약 당신이 원하신다면

나는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햇빛 가득한 곳에서 눈을 뜰 때에

가만히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근처 분수에서 들리는

정겨운 물 소리를


이윽고 찾아들 석양을

쓸쓸한 내 마음의 눈물인 석양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조그만 나의 손과 함께

당신의 마음 가까이

두지 않으면 안 될

나의 마음을 드리겠습니다


 

 



재즈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다가 끈적끈적한 연주곡 하나 ^^ 


Duke Ellington & Johnny Hodges - Prelude to a Kis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391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234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0741
125790 이정재가 라이트세이버 쓰는 스타워즈 시리즈 애콜라이트 예고편 [5] 상수 2024.03.21 389
125789 근황 겸 잡담 - 포기해도 되는 것들과 잊어야할 상처, 그리고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들(삼체, 오타니, EOE와 듄, 파묘, 이번 생은 처음이지만) [2] 상수 2024.03.21 307
125788 프레임드 #741 [4] Lunagazer 2024.03.21 41
125787 "이강인도 싸울 권리 있다" 프랑스, '대국민 사과'에 깜짝..."극도의 죄책감 느끼게 하는 사회"/리그앙 베스트11 선정 [5] daviddain 2024.03.21 380
125786 Mlb 서울 시리즈 1차전 하이라이트 [16] daviddain 2024.03.21 190
125785 나탈리 우드 바머스 B-52 장면 catgotmy 2024.03.21 97
125784 [벼룩] 중고 DVD/블루레이 내놓겠습니다. [5] 조성용 2024.03.21 230
125783 M. Emmet Walsh 1935 -2024 R.I.P. [4] 조성용 2024.03.21 139
125782 [왓챠바낭] 러브크래프트 & 스튜어트 고든 & 브라이언 유즈나, '지옥 인간' 잡담입니다 [4] 로이배티 2024.03.21 254
125781 에피소드 #81 [6] Lunagazer 2024.03.20 69
125780 프레임드 #740 [6] Lunagazer 2024.03.20 70
125779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퀵 앤 데드 인터뷰 catgotmy 2024.03.20 174
125778 (더) 캐슬 [4] 돌도끼 2024.03.20 209
125777 'F학점 첩보원' [4] 돌도끼 2024.03.20 307
125776 듀게 오픈채팅방 멤버 모집 [3] 물휴지 2024.03.20 138
125775 (스포) [패스트 라이브즈] 보고 왔습니다 [13] Sonny 2024.03.20 449
125774 [웨이브바낭] 일본 호러의 영광은 어디에... '하울링 빌리지' 잡담입니다 [6] 로이배티 2024.03.20 289
125773 프레임드 #739 [4] Lunagazer 2024.03.19 61
125772 스팀으로 설치해본 미연시 catgotmy 2024.03.19 141
125771 조국(혁)신당 바람을 보는 (전)정의당 당원의 씁쓸함 [17] soboo 2024.03.19 125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