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2016.10.16 22:39

Bigcat 조회 수:3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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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튈르리 궁의 습격 - 카루젤 광장의 전투 (1792년 8월 10), 장 뒤플레스 베르투아



언젠가 주명철 교수(서양사학, 한국교원대)는 팟 캐스트에서 이런 얘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대혁명 과정에서 어떤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튈르리 궁 습격 사건'을 꼽으면서 말하길, "...그 사건은 프랑스 민중이 스스로 공화국을 건설하기로 한 분명한 의지의 표현이었죠....민중 스스로 왕정을 끝장내기로 하고 궁으로 쳐들어 간 겁니다...."


 대혁명기의 확실한 분기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 튈르리 궁의 습격 사건을 들어야 한다는건 분명해 보입니다. 대혁명에 관한 자료들을 읽다보면 확실히 이 사건 서술부터 작가들의 사관도 드러나기 시작하거든요. 이 튈르리 습격을 기점으로 혁명이 혼란과 공포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고 묘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대충 어떤 부류들인지는 감이 오실 겁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누구에게는 민주 공화국 건설의 확실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이지만, 누구에게는 혁명이 방향을 잃고 폭력 정치로 일변하는 어떤 기점으로 보이니 말입니다. 이래서 역사라는게 정말 재밌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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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보기에 튈르리 궁의 습격은 분명한 사인으로 보였습니다. 이제 테니스 코트에서의 그 선언을 - 그 인권선언 말입니다 - 그냥 종이에 적어두고 혁명가 너님들끼리 돌려보면서 뿌듯해하지 말고 행동으로 실현해 보이라구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들 스스로 그것을 실현해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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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리알 봉기, 1795년 5월 20일 상퀼로트(노동자 출신 혁명가들) 최후의 투쟁을 묘사한 역사화



 이 그림 딱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엎질어진 물 다시 담으라고 그러지?'


 우선 이 상황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린다면, 이 프레리알 봉기는 상 퀼로트들의 최후의 반란입니다.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정파 내 사민주의자들(그러니까 그 공포정치가 로베스피에르와 생 쥐스트, 쿠통같은 사람들...)을 처낸 부르주아 혁명가들은 방토즈 법 같은 소농민을 위한 토지개혁 법이나 소상인과 저소득층을 위한 여러 법안들을 폐기하고 곧바로 반동 정치를 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자본가들을 위한 정치를 시작한 셈인데 이에 반발한 상 퀼로트들이 그에 뜻을 같이한 국회의원 6명의 지도 아래 무장 봉기를 일으킨 겁니다.  바로 지난 해에 테르미도르 9일의 쿠데타로 상 퀼로트의 뜻을 그런대로 많이 반영했던 로베스피에르 일파가 일소되었거든요. 그런데 더 깨는 건 그 사민주의 자들을 없애는 쿠데타에 이들 상 퀼로트들이 상당히 가담했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이 상 퀼로트 반란의 지도자인 국회의원 6명 중 구종과 롬 같은 의원들은 테르미도르 반동의 핵심 의원들이었는데, 자기들 손으로 공포정치 한다고 로베스피에르와 생 쥐스트 목을 벨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물론 그들에게도 사연이 있습니다. 로베스피에르는 사상적으로 위험하다는 이유로 당내 극좌파인 에베르 파(훗날 공산당의 전형이 되는)를 숙청했고 - 이 때 상 퀼로트들의 지지를 많이 잃었죠. 역시 같은 이유로 당내 우파였던 당통 파(부르주아 자본가 혁명가들)도 처형한 바 있습니다. 그 전에는 중앙집권제에 반대하는 분리주의 파들이었던 지롱드 파도 숙청했고...여튼 이런 이유로 당내에 잔존했던 극좌파와 극우파가 서로 손을 잡고 정변을 일으키는 희대의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테르미도르 9일의 반동이죠.(1794년 7월 27~28)


 그런데 상술한 바 이런 원한으로 상 퀼로트들이 로베스피에르와 생 쥐스트의 목을 베었다 한들, 이건 제 손으로 자기들 무덤을 파는 일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이후 불어닥친 자본가들의 혹독한 반동정치에 절망한 그들은 눈물로 후회의 나날을 보내다가 - 이거 제가 비유법을 쓴게 아닙니다. 진짜로 이 사람들은 테르미도르의 그날 이후 후회와 절망 때문에 눈물의 나날을 보냈다고 - 역사와 국가 앞에서 지은 죄 때문에 말입니다 - 본인들이 그렇게 절망에 차서 쓴 글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속죄하는 마음으로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고 증언한바 있습니다. 결과는...지도력 실패로 금방 진압되고 마는 것으로 종결되고 말죠.(이에 가담한 국회의원 세 명은 자살하고 나머지 셋은 단두대 행...) 이후에도 평등주의자들의 난(바뵈프)부터 수도 없이 반란과 쿠데타가 터집니다. 총재정부는 어떻게든 수습하면서 어찌어찌 정부를 이끌어가긴 합니다만 결국 브뤼메르 쿠데타(1799년 11월 9일)가 터지면서 미래의 황제 폐하께서.....



 아마도 대혁명이 200년 하고도 수십년이 지난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유들 중의 하나가 이런 아이러니, 혹은 정치가들의 권력욕이 아닌 순수한 민중의 의지로 혁명가 - 정치가들이 투쟁하는 모습을 여과없이 볼 수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공포정치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를 주도한 로베스피에르나 쿠통은 인권 변호사 출신 법률가로, 흔히 권력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 경찰과 군대에 대한 지배권도 없고 사적인 정치 조직도 없이 - 오로지 자신의 논리에 의한 법안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민중을 설득하고 그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연설 하나로 이 기간 국정을 이끌어 갔습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죠. (이 사람들 다들 초선 아니면 재선 의원들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어떤 지역적 정치 기반이라는 것도 없었어요. 덕분에 공포정치의 핵심 인물들 중 하나인 생 쥐스트 같은 경우는 그 젊은 나이(25세) 덕에 무슨 운동권 투사같은 이미지만...사실은 이 분 검사 출신 국회의원인데요. 물론 초선...) 부언하자면, 이 시기 정치란 이런 식으로 행해지는 겁니다. 종래의 왕과 귀족이 주도하는 밀실 정치는 혁명으로 무너졌습니다. 왕정을 무너뜨린 혁명가들은 자신들의 힘의 근원은 국민이라며 스스로의 국회인 국민의회, 그리고 국민공회도 만들었죠. 이는 정말 말 그대로 그들의 힘의 원천은 직접적으로는 파리 시민, 혹은 프랑스 국민 전체였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의회는 언제나 민중에게 열려있었습니다. 프랑스 인이라면 누구나(여성들도!)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어떤 안건들을 논의하는지 보고 들을 수 있었죠. 그러다 그들은 혁명의 대의에 충실한 의원들에게 더 없이 열광을 하다가도 어느 의원이 민중의 대의에 어긋나는 발언을 하거나 혁명의 대의에 참여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보이면 야유를 퍼붓다가 어느 순간엔 진짜 자기네 집 부엌칼이라도 들고 들어가서 문제의 의원들을 직접 타도하기도 하고...(지롱드 파 의원들이 이렇게 타도됐죠) 그러니 공포정치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반혁명파를 없애고 온전한 민주국가를 구현하기 위한 민중의 의지를 반영한 것에 불과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이런 점이 더 무섭긴 합니다. 이른바 대중독재, 인민독재의 민낯을 여과없이 보여준 것이라고나 할까...



이 그림이 이 대중독재, 인민독재가 어떤 것인지 정말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왕의 행정부가 혁명으로 기능이 정지되면서 새로 선출된 혁명의회가 행정부 기능도 겸하게 되었죠. (현재의 의원 내각제 비슷한 것이긴 합니다만 국정의 최고 수반인 총리가 없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릅니다. 대신 의장이 있긴 한데, 그 역할도 국회의원들을 위한 회의 진행을 해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의원들은 전국 각지에서 선출된 사람들로, 자기들끼리 특별 위원회를 만들어 민중을 위해 구상한 법안을 만들고 그것을 통과시킨 뒤 직접 집행에도 관여하는 구조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때 제출하는 법안이 정말 중요한데, 바로 이 법안들이 새로 건설하는 공화국의 밑그림을 만드는 발판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정치 구조는 이 시기가 바로 혁명의 기간 - 그러니까 전통적인 신분제에 기초한 왕정을 부수고 모두가 평등한 시민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바로 그 과도기에 이뤄진 특수한 것이라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더 확실히 얘기해 볼까요? 머리 한쪽에 한번 조선 시대의 경국대전을 띄어보세요. 그리고 다른 한 쪽으로는 현재 대한민국 헌법을 띄어보시구요. 그리고 이 둘이 바뀌는 걸 한번 상상해 보세요. 그 것도 한번에 말이죠. 그 과정이 어떨것 같습니까? 아름답고 평화로울 것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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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정치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합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미 모든 상황이 다 끝나고 그 주연들이 역사의 인물로 사라져버린, 수 백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전혀 답이 안나온다는 겁니다. 특히나 유럽에 비해 훨씬 더 전제정치가 발달한 여기 이 동아시아의 정치 시스템의 역사에 익숙한 저로서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전제군주와 민주국가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요? 입헌군주제요? 여지껏 삼권을 다 장악하고 나라 다스려온 왕들에게 어디 한번 그 권력 다 내놓으라고 해 보시죠.(대한제국 때 고종황제가 독립신문 필자들을 어떻게 했던가...-_-;;) 그리고 문제는 전제왕정이나 신분제도라는 것도 다 그것을 믿고 따르는 또 다른 민중이 있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겁니다. 대혁명 때 모든 프랑스 인들이 민주 공화국 건설에 찬성한 것이 아닙니다. 특히 지방의 농민들은 여전히 왕에 대한 충성심 혹은 신분제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게다가 이들은 국가 건설에 대한 논의가 격해지자 아예 중앙정부에서 독립하여 따로 자치지역을 구상할 계획도 세웠죠. 그들 말로는 스위스나 미국과 같은 연방제를 구성한다는 얘기였지만 위대한 프랑스는 하나여야 한다는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구상하는 혁명가들에게는 씨알도 안먹히는 얘기였죠. 게다가 이들이 지방이나 해외의 망명귀족들과 연계해서 입헌군주제를 구성하려는 움직임까지 포착되자 공화정을 지향하는 혁명가들에게는 이들은 곧 반역자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거기다 대혁명의 영향이 퍼지는 것을 두려워한 유럽 왕정들이 대불군사동맹까지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혁명전쟁이 시작되고....그러니까 이렇게 된 겁니다. 공포정치는 바로 이런 더 없이 현실적인 상황에서 벌어졌습니다. 여기서 한 발 밀리면 반역자가 되어 모두 죽게되는 그런 상황말입니다. 반란이 성공하고 세상을 제대로, 그것도 확실히 바꿔 놓아야 혁명이라고 불리는 것이지 사실 지금 이들이 처한 상황은 혁명이 완수된 것이 아니었죠. 나라 전체가 혁명파와 반혁명파로 나뉘어 내란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우외환이라고 밖으로는 유럽 동맹국들과 전쟁을 치르게 된 것입니다. 안으로는 내전이 밖으로는 혁명전쟁이...그러니 경국대전을 대한민국헌법으로 바꾸는 그 과정에 그에 반대하는 왕과 귀족들 그리고 그들 편을 드는 왕당파 민중들까지 함께 죽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민중이 생각이 다른 민중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죠.











Louis Antoine Leon de Saint Just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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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미도르 9일의 국민공회 상황을 묘사한 역사화, 로베스피에르와 동료들을 반대파들이 독재자라고 외치며 의정연설을 방해하고 있다.






 이 학살이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에 대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뭐랄까...저로서는 뭐 한국의 역사도 아니고 남의 나라 역사인데요. 그래서 이 문제는 그냥 유보해 두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이들 역사에서 본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조선시대에 살고 싶지 않고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염원이었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과정이 아름답고 평화롭게는 결코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신분제 국가에서 만인평등을 외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에 반역죄로 사지가 찢어지는 능지처참을 당해 저자거리에 걸리는 형벌에 처해질 겁니다. 전통사회의 신분제는 이런 가혹한 형벌에 의해 유지되었다는 거 다들 아실테니...그리고 그 기간도 정말 엄청 깁니다. 청동기 시대부터 헤아려 보면 못해도 수 천년은 될걸요? 그러니 이런 세상을 뒤집어 엎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건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로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다만 문제는 이것을 한번에 엎어서 할 것인가 아니면 천천히 개혁을 통해서 할 것인가 인데...피치자 입장인 저로서는 만일 기회가 온다면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을것 같습니다. 내게는 한번뿐인 인생인데요.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 후손들에게 온통 억압적이기만한 세상인데, 이걸 단번에 엎을 기회가 내 앞에 주어진다면 이걸 내가 그냥 놓치고 보낼 수 있을까? 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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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르미도르 9일의 국민공회 소요사태를 그린 다른 그림. 이 쿠데타는 연단에 오른 생 쥐스트의 연설을 반대파들이 방해하면서 시작되었다. 생 쥐스트가 자신의 연설에 갑자기 방해를 받자, 어쩌지 못하는 순간에 테르미도르 파들은 고함을 지르면서 사방 연단에서 튀어 올랐다. 순식간에 반대파들에 둘러싸인 로베스피에르 주위로 독재자를 타도하자! 라고 외치는 고함소리가 사방을 울리는 사이에 그의 연설을 중단되었다. 그리고 곧 이어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동료들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가결되었다.







 그리고 테르미도르 이야기.


 테르미도르는 혁명력의 이름들 중 하나입니다. 번역하면 '열월'이라고 하던데 발음 자체는 참 예쁘지만 한국식으로 하면 10.26사태나 12.12 사태 같은거 생각하시면 될듯합니다. 여튼 일은 이렇게 진행이 됐습니다. 거듭된 공포정치로 혁명정부 그 자체는 상당한 안정감을 찾았습니다. 대외 전쟁에서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고 전쟁 때문에 동원되는 국가총동원체제와 국민들의 애국심 고취로 나라 전체가 어느 정도 안정되는 듯한 분위기가 보였죠. 그런데 바로 그 때 위기가 찾아왔던 겁니다. 대외의 불안정한 위험이 어느 정도 해소되자 혁명가들이 서로 품고 있던 열정과 서로에 대한 증오심이 피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공과를 분명히 처리해야 하는 지방 반란의 책임도 있었죠. - 특히 방데와 리옹에서 벌어진 반혁명파에 대한 학살은 워낙 규모가 대단해서 누군가는 꼭 책임을 져야할 상황이었습니다. (방데 반란에 가담한 농민이 얼추 30만이 넘는다는데, 그 중에서 살아서 도망친 생존자들이 4천~5천에 불과했다니 정말 그 참상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을 지경...) 그곳 방데와 리옹 학살에 책임이 있는 열혈 혁명가들도 로베스피에르의 추궁이 두려워 서로 뭉치기 시직했습니다. 여기에 처형된 극좌파 에베르의 잔당과 역시 처형된 당통의 부르주아 잔당 의원들까지 가세하면서 물밑에서 동맹이 형성되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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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상상이 되는군요. 국회에서 다투던 의원들이 말로만 싸우는게 아니라, 정말 칼들고 서로를 위협하면서 반대파들을 끝장내는 상황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간 나라 꼴이...



 하지만 200여년 전 프랑스에서는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테르미도르파 국회의원들은 거의 몸싸움을 하다시피 의회장에서 난동을 부렸고 자신들이 노리던 의원들의 의정 연설을 방해한 끝에 그들이 갑작스런 공격에 넋이 나가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틈을 타 그들의 체포 동의안도 그 현장에서 가결시켰습니다. 죄목은 민주정을 해치고 독재를 행한다는 것이었죠. 독재자! 독재자! 독재자를 타도하자! 사방에서 천둥처럼 비난이 쏟아지자 로베스피에르와 그 동료들은 순간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이런 위험을 전혀 예상 못했던 것일까요? 사실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을 음해하는 세력이 있다고 비난하는 연설을 앞서서 하긴 했습니다만 그로서는 이 연설이 적대감이 있는 동료들에게 불을 지를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을 못했던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건 그 나름대로의 화해 연설이었던가요? 죄우당간 어찌됐든 이미 언급했듯이 자신들을 위한 군대나 경찰조직, 아니 그 어떤 사조직도 없었던 로베스피에르와 동료들은 국민공회 의원들의 지지를 잃는 순간 꼼짝 못하고 적의 수중에 떨어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테르미도르 파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동생 오귀스탱, 생 쥐스트 그리고 쿠통까지 위협하여 튈르리 궁의 한 방에 몰아넣었습니다. (이 때 어떻게 위협을 했냐면...그러니까 이들은 군대나 경찰이 없잖습니까...모두 국회의원들이거든요. 헌병대에 연락해서 이들을 잡아가라고 할 때까지 로베스피에르와 동료들을 잡아두어야 했는데, 각자 준비해온 칼을 꺼내서 정적들 목에 대고 위협했....)물론 이렇게 적들을 인신 구속했다고 원하는 대로 상황이 다 풀리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로베스피에르파가 점거한 파리 시청을 공격하는 바라스(나폴레옹의 아내 조제핀의 애인...)와 부르동의 군대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죄수로 전락한 이들 국회의원들을 감옥에서 수감하기를 거부한 상황이 벌어졌던 겁니다. 사실 로베스피에르만 군대나 경찰 지배권이 없었던게 아니라 이런 사정은 다른 위원들도 마찬가지였죠. 반대파들 역시 모두 경찰권이나 군대나 여튼 어디를 사적으로 장악한 사람들은 없었으니 이런 비상 사태에 다들 우왕좌왕 할 수 밖에요. 이런 혼란 상황을 틈타 로베스피에르와 생 쥐스트는 탈출에 성공하고 그들의 지지자인 파리 시장이 있는 시청 청사로 피신했습니다. 역시 로베스피에르의 지지자인 수비대장 앙리오가 시청 밖에 대포와 포대를 설치하고 방어에 나섰죠. 하지만 새벽 1시가 넘어가는 경에 테르미도르 파인 부르동과 바라스가 이끄는 일단의 헌병대가 파리 시청을 에워싸기 시작했습니다. 예상되는 그림이라면 여기서 본격적인 시가전이 벌어져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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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파리의 상 퀼로트들에게 구원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에겐 그만한 사정이 있었죠. 로베스피에르는 일전에 극좌 에베르 파를 숙청했단 말이죠. 상 퀼로트의 깃발이나 다름없는 그들을 제 손으로 없앴는데 이제 와서 무슨 명목으로 구원을 요청할 수 있단 말인가요? 새벽 1시 경. 절망에 빠져 망설이는 그에게 동료 의원 쿠통이 말합니다. " 군대에 편지를 써야 합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 물론 국민공회의 이름이죠. 국민공회란 우리가 아닙니까? 나머지들은 폭도에 불과합니다."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던 로베스피에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내 생각으로는 그 대신 프랑스 민중이라 해야 할 듯 합니다."


 그리고 새벽 2시 레오나르 부르동이 이끄는 종대가 파리 시청으로 난입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영리하게도 자신의 지역구에 배치되어 있던 헌병대를 끌고 왔습니다. (대체 로베스피에르 의원의 지역구가 어디길래...아, 지방 아라스구나...-_-;; 아라스에서 파리까지 오려면...) 그런데 놀랍게도 앙리오가 데려왔던 수비대원들은 부르동의 헌병대가 도착하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와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만 봐도 로베스피에르의 그 공포정치의 동력이 대체 어디였는지 진심 궁금해질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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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병대가 파리 시청으로 들이닥치는 순간 모든게 끝났습니다. 군대에 보낼 선언문에 서명하던 생 쥐스트는 별 저항도 못해보고 체포됐고 로베스피에르의 동생 오귀스탱은 자살하려고 창 밖으로 몸을 던졌으나 다리만 부러진채 붙잡히고 말았죠. 다리가 불편했던 쿠통은 계단에 내동댕이쳐진채 구르다가 헌병대에 붙잡혔고 르바는 권총자살로 즉사...로베스피에르는...동료 르바가 죽을 때 같이 죽으려고 총을 쏘았지만 부상만 입은채 끝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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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에 부상을 입은 로베스피에르가 붕대를 감은채 탁자에 누워있다. 그와 함께 사로잡힌 동료들은 그 다음날 바로 재판없이 처형될 것이라고 선고를 받았다.





 이런걸 사법살인이라고 하는 거겠죠? 재판없이 동료 의원들을 다 죽이겠다니...그동안 쌓인 원한이 대체 얼만큼일지 도대체 감이 안오는군요. 아니면 이건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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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스피에르는 이 상태로 꼼짝없이 15시간을 누워있었습니다. 턱에 부상을 입을 터라 붕대를 감은채 아무말도 하지 못했죠. 그러니 그가 남긴 유언은 없습니다. 아니, 이 사단이 나기 전 국민공회에서 한 마지막 연설이 그의 유언이 될까요? 아니면 쿠통과 나눈 마지막 대화, 프랑스 민중의 이름으로 요청하노니 부디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군대에 요청하는 서한?


 하지만 이 때 그의 동료 생 쥐스트는 인상적인 한 마디를 남깁니다. 그는 시청사 벽에 걸린 '인권선언'을 가리켰습니다. 바로 혁명정부의 이상이 담긴 꿈같은 법전이었죠. "....그래도 우린, 뭔가 해냈어요!..." 생 쥐스트는 이 때 불과 스물 여섯이었습니다. 아직 젊어서 그랬던 것인지 다른 혁명가들이 모두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자 거의 자살을 시도한 반면에 그는 전혀 그런 시도 없이 담담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스스로 생을 포기하기에는 사실 너무 젊은 나이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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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시에주리 감옥에서 형장으로 이송되는 로베스피에르와 동료들





 이들이 형장으로 가는 마지막 길에 전설같은 이야기가 하나 전해져 오는군요. 군중 속에서 누군가 "잘 가라, 최고가격!" 이라고 외쳤다네요.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 기간 통제경제를 강력하게 실시했는데, 이는 소임금 노동자를 위한 것이기는 했습니다만 반면 소상인들은 적지 않은 고통을 겪었죠. 그래서 이후 정권을 장악한 반동정부는 곧바로 통제정책을 해제했습니다만 경제 문제는 더 헬게이트가 열렸다는...결국 이 문제가 테르미도르파의 발목을 잡습니다. 누군가는 이 정책실패의 책임을 져야 하는데 생전의 로베스피에르의 동료였던 테르미도르 반동파들이 그 타겟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살기 위해 로베스피에르를 배신했지만 - 공포정치를 다 같이 해놓은 마당에 누구한테 그걸 뒤집어 씌운다고 자기들은 빠져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건지... - 그들 역시 공포정치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은 다른 동료들에 의해 모조리 숙청당하는 신세가 됩니다. 이들의 마지막을 보면 진짜 그런 비극이 없습니다. 처형, 자살, 유배, 망명, 추방....한마디로 테르미도르 파는 실패한 - 성공한 쿠데타 세력이었던 겁니다. 진짜 정치 게임이라는 건 복마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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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두대에 오르는 로베스피에르와 동료들



테르미도르 10일 오후 내내 22명이 처형됐습니다. 로베스피에르는 맨 마지막으로 목이 잘렸는데, 그는 숨을 거두기 전 자기 동료들이 죽는 모습을 다 지켜봐야했습니다. - 대체 그런 심정은 어떤 것일지....전혀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 동생 오귀스탱, 생 쥐스트, 쿠통...특히 동생은 형의 체포 동의안이 가결되자 자신도 함께하겠다고 사지로 들어왔죠. 동생은 그렇다 하더라도 생 쥐스트는 죽기 전까지 로베스피에르에게 어떤 심정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는 전부터 이런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잔당파의 숙청이 더 필요하다고 로베스피에르에게 끊임없이 제기를 하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로베스피에르는 잔당파의 숙청을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사람을 죽이기 싫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이제는 왠만하면 타협하면서 가야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어쨌든 본인이 가장 우려하던 일이, 정말 우려한 그대로 터지고 말았는데, 이를 예견하고 있었던 생 쥐스트의 심정은 대체 어땠을지...앞으로도 알 수는 없겠습니다만, 이 그림에서 보니 그런 상념은 다 잊은 듯 하네요. 부상 입고 아무 말도 못하는 동료에게 마지막 작별의 입맞춤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같은 신념으로 함께 일하다가 그 인연이 무덤까지 이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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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공회(프랑스 제 1공화국 1792년 9월 21일), 프랑수아 레옹 시카드, 1913년작, 파리 팡테옹 소장



 국민공회의 제헌의원들이 - 그러니까 혁명가들 말입니다 - 마리안(의인화된 프랑스)에게 고대 로마식 경례를 하고 있습니다. 정치가로서 국가에 대한 영원한 충성서약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신생 공화국은 로마 공화정을 지향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리고...저 뒤에 한 무리의 군인들은 '라 마르세이에즈'를 부른 라인의 부대겠죠. 그런데 저 시간대에 저기 계시면 안되는 분이 자꾸 겹치는 건...제 착각이겠죠.







영화 <프랑스 대혁명>의 주인공들입니다. 맨 위부터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장 폴 마라, 카미유 데물렝, 조르쥬 당통, 루이 앙투안 생 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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