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20 03:07
Young Moroccan With Tambourine, Constant Joseph Brochart(1816~1899)
19세기 서양 화가들이 그린 무슬림 여인들 중 옷 안벗은 여인 찾기가 참 힘듭니다...-_-;; 그러고 보면 저 시절 서양 남자들 무슬림에 대한 성적 환타지가 정말 쩐다니까요....진짜 오리엔탈리즘을 주제로 한 회화 작품들은 민망해서 눈 뜨고 못 봐줄 지경이라....차마 여기 못들고 오겠고...이렇게 제대로 옷 갖춰입은 무슬림 여인들의 그림 간만에 보면 진짜 반갑습니다.
2016.10.20 04:30
2016.10.20 10:54
명백히 역사적인 문헌자료가 있음에도 아니야~ 빼애엑~거리는 꼴 보니 좀 많이 웃깁니다. 뭘 식은땀 까지야…미치광이 무슬림들 독일에서 성폭력 저지른거 열씨미 쉴드치던 인간이 200년전 페미니스트 혁명가의 한맺힌 죽음을 토로하는거 보고 솔직히 좀 웃겼거든요. 참 애쓰십니다. ㅎㅎ
2016.10.20 11:53
스탈린은 마라에게, 히틀러는 나폴레옹에게 영향을 받은것도 사실이죠. 프랑스 혁명은 참으로 열일을 했군요. 지롱드는 입헌군주제를 주장했고 여성권선언은 농담같은 것이고 자신을 처형한 혁명정부에 협력않았다는 이유로 여성투표권을 주장한 운동가를 반동적이라고 표현한 문헌자료 어디좀 나눠봅시다.
'내가 너를 음란한 눈으로 쳐다본건 전적으로 니 책임이얏.' 오리엔탈리즘이 여럿 잡네요. 여성의 입에서 강간 피의자의 변명 같은 것을 하루에 두번씩이나 듣는건 참 이례적이긴합니다.
2016.10.20 12:25
2016.10.20 12:37
뭔 한마디도 꺼내지않은 제국주의 씨나락 까먹는 헛소리에요? 프랑스의 여성참정권이 오히려 다른 유럽국가보다 수십년 늦은게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못된 이슬람문화를 가져와서라고 지껄인게 누군데 이제와서 견해가 똑같다는 말이 나와요? 잔말 말고 그 잘난 역사적인 문헌자료나 내놔요.
2016.10.20 12:46
2016.10.20 13:07
어이쿠, 로마 이야기를 했으면 시오노 나나미를 들이밀었겠네요.
2016.10.20 13:20
시오노 나나미는 일개 역사평설작가이지만 이 책의 저자는 역사학자입니다. 정확한 사료에 입각해서 쓴 책이니 믿고 보셔도 됩니다.
2016.10.20 13:28
오오, 책 내용중에 구즈가 반동으로 보일만큼 여성인권에 전향적인 혁명정부의 법안을 나폴레옹이 이슬람 문화에 물들어 되돌린 결과로 프랑스의 여성참정권이 1945년에야 인정되었다는 사료가 나오는군요.
2016.10.20 13:31
그렇게 마구 억측하지 마시고 일단 책을 읽어보고 얘기하세요. 그런 태도는 그냥 토론하다 구석에 몰린 찌질이나 하는 겁니다. 역사논쟁을 하면서 애들 책 보고 하고 있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게 쪽팔리지도 않으신지? ㅎㅎ 책 보시다 보면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도중 무슬림들의 여성억압 문화 엄청 부러워하면서 우리 서양 남자들은 그동안 잘못살았다고 한탄하는 대화록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게 이후 제정 시기에 만들어지는 나폴레옹 민법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상세히 나옵니다. 아주 가관이에요 ㅎㅎ 꼭 읽어보세요! 꼭이요!ㅎㅎ
2016.10.20 15:33
나폴레옹 여성편력도 이집트 바람을 쐬서라고 그러시지요?
"국민공회는 1792년 기초위원회를 만들어 법전 심사에 착수했고 결국 로마법, 관습법, 봉건법들을 절충한 법률 초안을 만들었다. 초안은 부권의 전제적 권위를 강조하며 재산을 유증으로 처분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한 로마법과는 완연히 달랐다. 부모의 권한을 제한하고 상속재산의 분배를 보호했다. 남녀평등, 민법상의 결혼, 성격 차이로 인한 이혼, 부모가 인정할 경우 사생아에 대한 상속, 입양 상속인들 사이 재산의 평등분배를 허용하는 등 합리주의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1795년부터 이 초안들은 로마법을 선호하는 반동적 경향을 나타내면서 계몽주의의 합리적 원칙에서 멀어졌는데 나폴레옹과 캉바세레스가 로마법을 선호한 때문이었다. 부권의 권위와 기혼여성 및 어린이의 종속성이 되살아났다. 이혼 사유는 엄격하게 제한되었으며 간통한 아내는 남편이 원할 경우 수감될 수 있었다."
어, 이거 로마탓 아닙니까?
2016.10.20 22:34
나폴레옹 법전의 근간이 로마법이라는건 중학생 교과서에도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고대 로마법 체계와 함께 나폴레옹에게 여성억압의 직접적인 원인제공의 또 다른 영향이 있어요. 바로 이슬람이죠. 로제타 스톤 가져온 이집트 원정은 나폴레옹 개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근대 유럽법의 모체가 되는 나폴레옹 법전이 그냥 한 두가지만으로 이뤄졌을까요? 그리고 저 시절 유럽 회화미술에 하렘에 갇힌 벌거벗은 무슬림 여인들 그리는거 진짜 엄청 유행합니다. 이게 그걸 즐기는 서양 남자들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ㅎㅎ 이거야 원 자료를 들이대도 교과서적인것 밖에는 입력이 안돼는 머리군요. 님 머리는…ㅎㅎ
2016.10.20 23:08
가톨릭의 엄격한 정조윤리에 지배되어왔던 나폴레옹 포함한 유럽남성들이 사악한 이슬람의 하렘을 보자마자 나폴레옹은 처녀,유부녀를 가리지 않고 껄덕대고 남성일반의 여성에 대한 의식은 수십년 후퇴하는 결과를 낳았나 보네요. 그 증거가 앵그르나 들라크르아의 신고전주의 회화이고... 하지만 앵그르가 실제로 하렘이란걸 본 사실조차 없는건 중요치 않을테고... 미술사책을 한권이라도 본 사람이 들으면 기함하겠다...
신고전주의 작품을 춘화취급하는건 어느 책에 나오는 내용인가요? 그냥 님 인상에 그렇다는건가요?
한국남성 성윤리문제는 야동탓이라 합시다.
2016.10.21 10:42
국민공회는 1792년 기초위원회를 만들어 법전 심사에 착수했고 결국 로마법, 관습법, 봉건법들을 절충한 법률 초안을 만들었다. 초안은 부권의 전제적 권위를 강조하며 재산을 유증으로 처분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한 로마법과는 완연히 달랐다. 부모의 권한을 제한하고 상속재산의 분배를 보호했다. 남녀평등, 민법상의 결혼, 성격 차이로 인한 이혼, 부모가 인정할 경우 사생아에 대한 상속, 입양 상속인들 사이 재산의 평등분배를 허용하는 등 합리주의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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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가져온 자료에 당시 국민공회의 지도자인 로베스피에르가 민법에서만큼은 얼마나 여성권익을 위해 힘썼는지 나와있네요. 남녀평등…ㅎㅎ 물론 어디까지나 공법이 아닌, 사법의 영역에서이지만. 법이 공법과 사법으로 영역이 나뉘는건 알고 계시죠?
2016.10.21 13:38
그 공법의 영역의 권리를 주장했던 운동가를 내란죄 씌워서 처형해도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했죠?
2016.10.21 22:03
내가 불가피하게 생각한게 아니라 당시 혁명재판소가 그렇게 판단했다는겁니다. 구즈가 체포되었던 시점은 국외로는 혁명전쟁에 국내로는 방데나 리용같은 지역반란이 동시다발로 터지고 있었던 시점이었어요. 이런 시절엔 극도로 언론탄압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란죄? 구즈가요? 뭔 엉뚱한 소린지? 구즈의 처형이유는 공포정치를 비난한 죄였어요. 내우외환 때문에 강력한 통제정책 중이었는데 이걸 보고 로베스피에르가 종교재판소 운영하는 미치광이 기독교도 같다고 욕하는 벽보를 붙였거든요. 구즈에 대해서 생각하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2016.10.21 23:07
구즈의 판결문에 '하나의 불가분의 공화국을 무너뜨리려한 죄'라고 나오죠. 전쟁중이거나 계엄령선포중이거나 독재 공포정치 중이면 정부비판하다 목잘려도 어쩔수없는 일이지요. 암요. 위대한 공화국의 지도자를 종교 재판관으로 묘사하는건 죽을 죄이긴 합니다.
2016.10.20 13:28
저자 앨리스테어 혼(Alistair Horne)
영어권 국가에서 가장 훌륭한 역사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울프슨 역사상과 호손던
상 등 세계적인 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로 2003년 프랑스와 영국 간의 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기
사작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영광의 대가』『파리의 함락』『나폴레옹: 유럽의 지도자 1805∼1807』
『야만적인 평화의 전쟁: 알제리 1954∼1962』『아우스터리츠에서 얼마나 멀까? 나폴레옹 1805
∼1815』『파리의 일곱 시대』 등이 있다.
2016.10.20 12:33
2016.10.20 12:45
"올랭프 드 구즈는 왕정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영국식 입헌군주파였죠. 왕정 지지자가 공화파 보고 반동적이라고 생각할리는 없고…오히려 공화파들 눈에야 구즈가 반동적 세력이죠 ㅎㅎ 페미니스트들도 스펙스럼이 다양하답니다. 200년전에 첫 출연한 여성해방론자가 민주적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구체제 옹호자라는게 좀 개인적으로 섭하긴 합니다만…"
기억이란건 참 휘발성이 강하네요. 위의 견해의 근거 하나라도 내놔보세요.
2016.10.20 12:51
공화파들 눈에 반동세력이라고 했지, 언제 내가 구즈에게 반동세력이라고 했습니까? 난 그냥 그 사람이 구체제 옹호자라는게 안타깝다고 했어요. 구즈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여성해방운동을 해야 한다고 공개 서한도 보냈죠. 차라리 박근혜한테 같이 페미니즘 운동 하자고 그러지 ㅎㅎ 이것이 구즈에 대한 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 당시 공화파들 눈에야 구즈가 반동세력이죠. 그래서 구즈가 사형당했으니까요.
2016.10.20 13:03
로베스피에르도 전쟁을 통한 혁명전파와 왕당파귀족들 숙청에 소극적이었으니 반동이라 칭합시다.
구즈는 반동 > 그러니까 사형 > 사형당했으니 반동
빈틈없는 논리네요. 제 심정이 그렇습니다.
2016.10.20 13:12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죠. 그 양반이 확실히 생 쥐스트 보다는 소극적이긴 했지만.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국내 작가가 쓴 책 하나 소개해 드릴테니 시간 되시면 한번 읽어보세요. 인물들이 정치논쟁만 주구장창 하지만 의외로 재밌답니다.
2016.10.20 13:20
저는 지롱드는 온건 공화파라는 내용이 있는 어린이 살아있는 세계사를 추천합니다.
2016.10.20 13:21
아니, 여지껏 애들 책 보고 나랑 논쟁했어요?ㅎㅎ 이건 정말 토론의 기본이 아닌데ㅎㅎ
2016.10.20 13:50
ㅎㅎ애들도 아는 내용을 틀리지만 토론의 기본은 지켜야 되고...
2016.10.20 13:54
지롱드파에 대한 부연설명 계속 하는데도 고작 애들 책 보고 녹음기처럼 떠드는군요 ㅎㅎ 이런! 님 드디어 밑천이 바닥났나 보네요? ㅎㅎ 전부터 보니까 님은 꼭 할 말 없어지면 했던 얘기 또 하고…했던 얘기 또 하고…그러던데, 아주 님 패턴이군요ㅎㅎ
2016.10.20 13:13
2016.10.20 13:24
2016.10.20 13:27
이 작품의 거울상으로 쓴 소설인데 인민주권을 주장하는 혁명가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소설이지만 그래도 애들 세계사 책 보다는 낫습니다. 원사료에 충실해서 당시 인물들의 대화를 생생히 살려냈거든요.
2016.10.20 13:41
그래도 애들도 아는 상식적인 사실관계를 틀리는 것만큼 부끄러운게 있을까요? 아, 현대적 제노사이드의 시초라고 평가받는 방데학살을 정당한 통치행위이며 다만 관리책임이 있을뿐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에 비견될수 있겠네요.
2016.10.20 13:48
사실관계 틀리지 않았는데요. 지롱드 파는 공화파를 선언하긴 했지만 뒤로는 지방분권제에 입각한 입헌군주제를 모의한 죄로 모두 처형됐어요. 이건 벌써 내가 대답한건데 계속 못들은척 딴소리군요 ㅎㅎ
2016.10.20 14:04
ㅎㅎ적당한 죄목 붙혀 약식으로 재판,처형해버리면 그게 사료가 되는군요. 삼두정치의 인물들은 무슨 죄로 사형당했던가요? 공화국을 너무 사랑한 죄였었나?
산악파의 에베르가 셔츠절도죄로 처형당한 건 기억이 납니다.
2016.10.20 15:53
삼두정치가들은 독재체제를 꾀한 죄입니다. 바로 공포정치를 통해서요. 물론 거기에는 방데와 리용에서 저지른 학살에 대한 책임도 있습니다. 이게 좀 웃긴게 방데와 리용 학살에 관한 한 현장에서 교전수칙을 어기고 민간인을 직접 학살한 야전 지휘관들은 면책되고 오히려 그들에게 학살 재량권을 준 고위 정치가들 - 즉 로베스피에르, 생 쥐스트, 쿠통 - 그 외에 국민공회 국회의원들 수십명이 처형됐단 말이죠. 소위 말하면 꼬리는 두고 몸통만 작살낸 격인데ㅎㅎ 이런 경우는 아마도 처음 접하셔서 잘 이해가 안되실듯 합니다. 나도 그랬어요.
2016.10.20 16:24
튀로의 초토화 전략은 공안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서 이뤄졌고 1794년에 체포되어 복역중 국민의회가 사면하려는걸 거부해서 다음해 군사재판에서 '무죄'선고를 받고 풀려납니다. 애초에 튀로가 학살을 멈춘것도 파리의 정치상황이 바뀌어서이구요. 사실관계가 좀 다르죠?
독제정치는 입헌군주제만큼이나 공화정과는 거리가 있으니 그들또한 공화국의 적이었군요. 시에예스는 가톨릭 주교, 라파예트와 쿠통은 입헌군주주의자, 브리소와 롤랑부인은 지롱드파, 미라보는 귀족이고 배신자였으니 님이 말하는 공화파는 대체 누구였나요?
2016.10.20 22:48
1794년? 국민의회? 1794년에 왜 국민의회가 있습니까? 그거 없어진지가 언제인데? 지금 국민공회 얘기하고 있잖아요. 님이 지금 뒤적거리고 있는 어린이 세계사 책에 그렇게 나오나 보죠? ㅎㅎ 아직도 내 말을 이해 못하고 있네요. 튀로에게 학살을 지시한 그 공안위원회 핵심 멤버가 바로 저 삼두정치 - 로베스피에르, 쿠통, 생 쥐스트에요 ㅎㅎ 그러니까 내 말이 맞잖습니까. 직접 학살한 꼬리 튀로는 사면을 받았고 튀로에게 전권을 주면서 학살을 명령한 몸통들은 1794년 7월 테르미도르 반동 때 다 체포되서 처형됐다구요. 그 반동은 공안위원회의 권력 투쟁에서 빚어졌는데 그 빌미가 바로 방데 학살이었어요. 예상외로 일이 커져서 누군가는 일의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것 때문에 다투다가 저 쿠데타가 터졌다니까요! 대체 이 얘기를 몇 번이나 해야 알아처먹으시려나!!! 님, 제발 부탁인데 내가 쓴 본문이나 읽고 좀 댓글 다세요. 하긴…지금 튀로 사면받은게 뭐 엄청난 것처럼 얘기하는거 보니 방데 학살의 몸통과 깃털이 누군지 지금 분간도 못하고 있군요. ㅎㅎ 아이고…ㅠ…얘기해 봐요. 최고 자리에서 학살을 명한 자가 깃털일까요, 현장에서 그 명령 수행한 장수가 깃털일까요? …ㅎㅎ…(진심 울고 싶네…^^;;) 파리의 정치상황이 바뀌었다고 했죠? 그게 내가 바로 본문에 쓴 테르미도르 반동 사건이에요!!!! 뭘 좀 제대로 알고 얘기좀 해요!!!
2016.10.21 00:20
방데와 리용의 책임추궁이 테르미도르 반동의 원인이라니... 구즈가 반동적이고 지롱드가 입헌군주파고 앵그르가 춘화이며 방데학살이 통치행위라는 얘기만큼이나 신선하네요. 그 역사 토론 모임이라는데서 맨날 그런 얘기만 나누면 심심할일은 없겠네요.
2016.10.21 01:04
자기가 모르는 얘기면 신선한 해석입니까? 님은 애들 세계사 책이나 읽는 주제에 애들 역사책에 안나오는 얘기면 다 신선하다니…쪽팔리지도 않습니까…그런데 잘 모르는거 가르쳐 주는게 쏠쏠하게 재밌긴 하네요 ㅎㅎ 그리고 앵그르 오달리스크 춘화 맞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 오리엔탈리즘 그림은 앵그르 말고도 되게 많아요 ㅎㅎ
2016.10.21 01:36
신고전주의 회화에 오리엔탈리즘이 영향을 준건 이전까지는 신화를 주로 다룬 누드화의 소재의 폭을 넓혀준것에 의의를 둡니다.
2016.10.20 16:02
적당한 죄목으로 붙여 약식으로 재판, 처형한 사례는 에베르 파만 해당이 됩니다. 에베르 파는 극좌파로 공공연히 사유재산 폐지와 유산계급 타도를 주장했는데, 이는 대부분의 혁명가들과 공화정 지지자들이 중소부르주아 출신들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 뻔했습니다. 부르주아 계급이 에베르 파의 주장에 분노하여 혁명정부에 등을 돌릴 경우 모든게 끝나거든요. 그런데 에베르 파를 극좌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기소할 경우(마침 무장 봉기의 징후를 포착하기도 했고) 상 퀼로트 - 파리의 민중들이 크게 반발할 것 역시 우려해야 했죠. 당시 파리의 민중들은 에베르 파가 주장하는 무산계급의 국가 건설에 상당히 매료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로베스피에르는 비상 수단을 쓰기로 합니다. 바로 셔츠 절도죄니, 숨어있던 왕당파였느니 하는 어처구니 없는 누명을 씌어서 이들을 없애는 것이었죠. 참 정치란 것이 냉혹합니다.
2016.10.20 17:21
결국 공포정치가 상퀼로트로 상징되는 민중권력의 의지를 권력욕 없고 청렴한 인권변호사들이 그저 추인한거라는 님의 표현도 그저 표현에 불과한거군요.
2016.10.20 23:03
공포정치가 상퀼로트로 상징되는 민중권력의 의지를 권력욕 없고 청렴한 인권변호사들이 그저 추인한거 맞습니다. 그 동력으로 혁명정부가 그 내우외환의 상황에서도 몇 년을 버틴겁니다. 그런데 혁명 정부의 두 기둥은 상 퀼로트와 중소 부르주아 층이었죠.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했는데, 결국 로베스피에르는 에베르 파를 치면서 그동안 자신을 지지했던 상 퀼로트를 등지고 맙니다. 이것이 에베르 파 처형 이후 불과 몇 달 뒤에 벌어진 테르미도르 반동 때 로베스피에르가 별반 싸워보지도 못하고 반대파에게 잡혀서 죽게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이 얘기도 본문에 이미 다 했는데요. 그저 대혁명에 대해 이해도 못하면서 나한테 꼬투리 잡을려고 여기 계속 붙어있었군요. 제발 본문 좀 읽고 댓글 좀 답시다…^^;;…미치겠다…기본도 안되는걸 데리고 일일이 다 설명을 해야 한다니…님 지금 본문을 봐도, 내가 쓴 글 봐도 이해도 못하고 있죠?
2016.10.20 23:27
자신조차 무슨 말을 썼는지 기억이 가물하니 댓글을 썼다가 수정하고 첨가하고 난리가 나는 법이죠. 그니까 청렴한 인권변호사가 처형자판기가 된 분기점이 언제란거요? 그런게 존재합니까? ㅋ
2016.10.21 00:05
인권변호사가 처형 자판기가 된 때를 공포정치 기간이라고 합니다. 그 분기점? 그게 언제인지도 지금 모르고 여지껏 방데 학살 얘기에 열을 올렸군요.…아놔…이런…그 분기점이 바로 방데 농민반란이에요!!! 그것도 여지껏 몰랐단 말입니까!! 그러면서 방데 학살에 분노했고!! 방데 학살의 몸통과 꼬리도 분간 못하고! 방데 학살이 공포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기점인지도 모르고!!!…
........-_-;;
그런데 댓글 수정하는게 뭐 문제가 있나요? 오타가 나거나 더 첨가할 사항이 있으면 당연히 댓글 수정을 해야죠 ㅎㅎ잘못 써놓고도 안하면 그게 더 문제인데.
2016.10.21 01:02
1793년 3월 혁명재판소 설치, 방데지역 봉기
1793년 10월 혁명정부 선언
1793년 12월 튀로 방데지역 사령관 부임
1794년 1월 공안위원회의 승인으로 방데 초토화 작전
1794년 3월 에베르, 4월 당통 처형
1794년 5월 작전중단
1794년 7월 테르미도르 반동
제가 아는바는 이렇습니다. 공포정치는 혁명재판소 설치로 이미 시작한 셈이고 방데의 학살은 반란군이 거의 진압된 다음해 1월에 시작해서 테르미도르 반동 이전에 이미 중지되었습니다.
공포정치시기가 민중권력을 혁명정부가 그저 따를뿐이라는것과 동시에 권력투쟁을 위한 처형자가 되어 지지기반인 민심을 잃는다는것은 모순되는 설명이라고는 생각안되세요?
그래서 분기점 얘기를 한건데 이해가 역시 안되나봅니다. 딱히 기대한건 아닙니다만.
2016.10.21 10:18
2016.10.21 10:42
온건파들 목자를때까지는 인민들의 열화같은 혁명의지를 그저 따라가기만했던 권력이라곤 쥐뿔도 없는 청렴한 사형반대론자 로베스피에르가 에베르를 제거할때만 유독 없는 죄목을 붙혀 처형했다는 얘기잖아요? 그것도 공화국을 구하려는 순수한 일념으로요. 베르사유의 장미도 이보다는 어른스러운 내용이었을텐데... 방데반란의 진압은 그후로 수년은 더 지나서야 마무리되었답니다. 이전엔 테르미도르 반란때문에 학살이 멈춘거랬다가 연표제시하니까 이젠 진압보고를 받고 책임소재를 밝히는게 당연하지 않냐고 화내시고...
2016.10.21 10:53
그런게 정치의 냉혹함이죠. 물론이죠. 방데 반란은 한번만 일어난거 아닙니다. 이후에도 계속 산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이거 다 진압하는데 나폴레옹 시절까지 가요. 물론 저 시절엔 일단 진압하긴 했지만.
2016.10.21 11:01
내가 언제 테르미도르 쿠데타 때문에 학살이 멈췄다고 했습니까? 방데 학살의 책임 소재를 두고 혁명정부에서 책임 소재를 두고 공방을 벌이다가 책임 추궁을 받을게 두려워 일부 혁명파들이 테르미도르 반동을 일으켰다고 했지. 한 마디로 학살의 몸통들끼리 싸움이 벌어저 저런 참극이 일어난 겁니다! 국회의원들끼리 서로 칼을 겨누고 정적들을 잡아다가 재판도 없이 수십명을 길로틴에서 썰어대고!! 그런데 쿠데타가 성공한 이후에도 저 치들은 방데 반란 책임 소재에 잡혀서 처형과 유배를 당해요. 덕분에 방데 학살의 꼬리는 살고 몸통들만 작살나는 전대미문의 결과가 나왔죠. 잘 이해안돼죠? 이런 정치사는 처음 접해볼테니.
2016.10.21 11:33
근현대사에서 혁명정부의 권력싸움과 숙청과정중 국가와 인민의 적이라는 죄명으로 처형당하지 않은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었던가요? 지겹도록 봐온거에요.
2016.10.21 11:59
뭘 지겹도록 봅니까…학살 책임자들을 꼬리는 놔두고 몸통들만 썰어댄걸 대체 어느 역사에서 본적이 있다고 ㅎㅎ 지금 보니까 방데 학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있는것 같은데, 그 지역에 수십만의 희생자가 난게 바로 공포정치 기간이었어요. 그러니 그 시점에 책임소재를 따지느라 테르미도르 반동이 터진 것이고. 1805년까지 가는 방데 반란에서 어느 시점에 희생자가 집중적으로 났는지도 모르면서 지금 댓글 달고 있죠? 참 밑바닥 보이네요 ㅎㅎ
2016.10.21 12:34
역사 해석이라는게 그런거겠죠. 반대파들 제거하다못해 같은 몽테뉴들끼리도 숙청하고 그나마 그 숙청도 어설프게해서 생존한 반대파들이 반동을 일으켰고 그걸 시민들이 환호했으니 그것도 다 민중의 의지라고 보면 되겠네요. 숙청의 명분이랍시고 내세운게 다 받아들여야 하는거라면 에베르의 셔츠절도죄인들 똑같이 받아들여야겠구요.
수백만명 학살했다는 폴포트도 제국주의로부터 공산주의정부를 지키려다 그랬을테고 후에는 동료에게 국가반역죄로 체포되었으니 그것도 깔끔한 결말이라 부릅시다.
2016.10.21 21:52
역사 해석이 뭘 어쨌는데요? 님이 읊어댄 그 결과가 오늘날의 민주국가의 원형인데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전제왕정에서 민주국가로 옵니까? 민주주의라는게 뭐 하늘에서 감 떨어지듯이 입 벌리고 있으면 떨어지는건 줄 아시닌지? 님같이 착한척 하면서 입이나 나불대면 민주국가가 그냥 건설되는 줄 아나 봅니다 ㅎㅎ 내가 그랬죠. 민주국가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님같이 얘기하는 사람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고기는 맛있게 먹으면서 그 고기 도살한 도살업자는 동물학대범이라고 욕하는 꼬락서니 같다는. 그렇다면 고기를 처먹지 말던가. 방데 얘기하다가 할 말 없으니 폴 포트 얘기로 끝내는군요. 로베스피에르는 폴 포트같은 극좌파 에베르 일파를 처형했는데, 여전히 아무거나 되나 안돼나 갖다 붙이면 되게 역사의식 있어보이나 봅니다.
2016.10.21 22:34
도대체 공화정 간판달면 해선 안될 일이 없다는건지? 수십만이 학살당해도, 민주적 절차 어기고 처형시켜도 다 불가피한 일이고 역사발전단계에서 거쳐야할 일이고... 반인반신 좋아하는 인간들이 언제 사라질까했더니 이렇게 생각치도 않게 툭 튀어 나오니 섬짓하다. 프랑스 혁명은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전체주의라는 괴물의 산실이었어요. 님은 양쪽을 구분않고 찬양하고 있구요.
2016.10.22 01:35
그게 바로 수정주의자들 논리죠. 200년전 전제왕권과 싸우기 위한 환경 싹 다 무시하고, 전제왕권은 반역자들 사지를 찢어 효수하던 시절에 왜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고 혁명을 했냐고 떠드는 무개념론자들이죠. 생각해 봐요. 경국대전 앞에서는 님이 그렇게 외치는 민주적 절차 - 자유, 평등, 인권은 바로 반역이에요. 님이 그렇게 떠드는 민주적 절차, 조선 왕조에서 한번 떠들어 봅시다. 님은 어떻게 될까? 장담하는데 님은 산채로 사지가 찢어져서 종로 사거리에 걸립겁니다. 아마 나같은 겁쟁이는 님의 찢어진 시체가 길거리에 걸려서 썩어가는거 보면서 속으로 꼭꼭 다짐을 하겠죠. 저 사람처럼 되지는 말아야지…농담 같아요? 이거 실제로 있었던 일이에요. 구한말 개화정책에 반대하면서 영남만인소 주도했던 주동자가 바로 이렇게 됐어요. 그 양반이 했던건 절차를 갖춰서 상소문을 쓴 것 뿐인데, 표현이 과격했다고 그런 형벌에 처해졌어요. 어디 한번 이런 전제왕권과 어떻게 민주적 절차를 거쳐서 대한민국 사회를 이룰 수 있는지 한번 얘기나 들어봅시다.
2016.10.22 01:58
전제왕권과 공화정부가 똑같이 수십만을 도살해도 민주주의 명패걸면 역사발전입니까? 인권따윈 개나 줘란 소리가 숨쉬듯이 뿜어져나오네.
폴포트도 폭격으로 백만명의 캄보디아인을 죽인 미제국주의와 싸우는데 어떻게 민주적절차를 다 지켜가며 국가를 유지합니까? 부르주아와 인민의 적들 좀 학살할수도 있지.
2016.10.22 19:07
냉혹한 결론이긴 한데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가 그렇게 태어났으니 역사 발전으로 인정합니다. 나는 조선 왕조에서 살고 싶지 않거든요. 난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난 역사의 모든 반란자들, 압제자와 싸우며 희생당하고 압제자를 살해한 모든 혁명가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그들이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이뤄낸 사람들이니까요. 그리고 그들이 내 대신 손에 피를 묻혔기 때문이죠.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들 덕분에 내가 원하는 세상에서 살 수 있으니 말입니다.
2016.10.22 19:58
폴 포트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 봐야 하는것이, 일단 폴 포트의 공산주의와 자코뱅의 사민주의는 노선이 다릅니다. 로베스피에르는 생전에 왕 하나의 폭정이나 민중대표 700명의 폭정도 똑같은 폭정이라면서 마라나 에베르가 주장하는 무산계급의 독재정에 분명 반대 의사를 표했습니다. 이후 에베르 파는 아예 숙청을 해서 공산주의와는 분명히 선을 그었죠. 다시 말하지만 로베스피에르는 사민주의자입니다. 오늘날 프랑스의 사회당, 영국 노동당 그리고 독일 사민당이 모두 그의 후신이에요. 그리고 방데 학살과 비교한다면, 방데는 분명 반혁명 반란이기 때문에 진압해야 합니다만, 폴 포트는 미국이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철군한 뒤 계획적으로 200만을 살상했죠. 전쟁 중이 아니라 이미 전쟁이 끝나고 전후의 평화시에 학살을 저지른 겁니다. 하지만 방데는 다릅니다. 방데난은 분명 반란이기 때문에 진압해야 하고 그 때 벌어진 학살은 폴 포트처럼 무슨 계획을 갖고 벌인 학살이 아니라 과도한 진압과정에서 벌어진 대형사고 였어요. 왜냐면 그 때 프랑스 혁명정부는 대외적으로는 전유럽과 전쟁 중이었으니까요. 게다가 로베스피에르는 뒤늦게 이런 끔찍한 사실을 알고 담당 파견 의원들을 호되게 문책했는데 이들이 결국 방데 사건의 추궁이 두려워 테르미도르 반동에 가담하고 말죠. 다시 말해, 폴 포트의 사회정화를 위한 계획된 학살과 반란 진압 중 벌어진 학살은 구분해야 합니다. 물론 진압의 전권을 내려준 로베스피에르가 일차 책임이긴 합니다만 정당한 반란 진압과 정치적 목표를 위한 계획적인 학살은 명백히 구분해야 하죠. 그래도 과도한 진압은 잘못이긴 합니다만…폴 포트 200만과 방데 30만…여튼 명심해야 할 숫자군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그의 동료 수 십명이 이 방데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물론 이들이 간 뒤에도 방데에서 난은 계속 터졌고 이 후의 총재정부 그리고 나폴레옹 집권기까지 방데에 대한 진압은 변함없이 계속 됩니다. 왜냐하면 과도한 학살은 잘못이지만 반란은 꼭 진압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 원칙은 오늘날의 어느 나라라도 변함없는 것이니까요.
2016.10.23 01:08
누가 같은 노선이랬수? 똑같은 학살수괴랬지. 로베스피에르일파에게 독재정치와 방데학살의 죄를 물어 사형당했다면서요? 근데 또 로베스피에르는 학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는거임? 전두환이 발포명령 자기가 안내렸다는 소리만큼 참신한 개소리네요. 학살명령서가 떨어졌는데도 대형사고, 200만>30만이니 오케이. 티끌같은 죄도 없는 로베스피에르는 목잘리자마자 날개달고 승천했을 것같네요.
2016.10.25 17:18
님 생각대로라면 반인반신이니 승천했을 수도 있는데, 학계에서는 로베스피에르나 생 쥐스트를 이념형 인간이라고 한답니다. 여튼 같은 학살이라 하더라도 230년전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전쟁과 내전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생각해서 논리적으로 따져봐야죠.
2016.10.25 20:47
역사의 냉혹한 논리이기도 한데, 청동기 시대 이래로 정치 지도자들 중 전쟁과 관련된 쪽으로는 수 천, 수 만 단위의 시체를 쌓지 않는 인물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역사에서 이들 모두들 빌어먹을 학살자들~ 빼애액~하면서 부정하던가요? 그 지도자가 얼마나 시체를 쌓았던 간에 그가 남긴 정치적 유산에 집중하죠.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와 방데 반란 진압을 통해서 어떤 유산을 남겼던가요? 그는 오늘날 프랑스에 국가 통일과 사민주의라는 유산을 남겨줬어요. 님이 계속 빽빽거리는 방데 지역은 만약 혁명 정부가 진압 못했으면 프랑스 국토가 3/1이 날라갈뻔 했어요. 그런데 폴 포트가 캄보디아에 남긴 유산은 뭔가요. 좀 생각에 논리라는것 좀 갖춰 봅시다. 님이 대체 뭘 보고 방데 갖고 빼애액 거리나 싶어서 찾아봤더니 출처가 나무위키더군요. ㅎㅎ 그럼 그렇지 ㅎㅎ 걔네들 마리 앙투아네트도 근친상간죄로 처형됐다고 왜곡 날조하는 애들인데, 아니나 다를까 방데 반란도 4.3 사건이니, 동학농민 난이니…이 따위로 비유질을 해놨더군요. 그것들 진짜 양심도 없지.…조선 왕조가 혁명정부, 방데 반도들이 동학농민군…대체 어떤 새끼들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이 따위로 왜곡질을 해대는지…진짜 추잡한 것들이네…
2016.10.20 09:24
2016.10.20 10:56
2016.10.21 09:22
2016.10.21 09:38
2016.10.21 10:31
2016.10.21 11:01
여성의 신체를 묘사하는 것이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중요한 소재이어서에요. 노골적 묘사에대해 여전히 보수적인 분위기때문에 처음에는 그리스로마신화를 소재로 했고 그후로 오리엔탈리즘을 표방하며 이국의 여성을 묘사하는 방법을 택한것입니다. 님이 춘화라고 했던 앵그르의 작품에는 성모마리아, 잔다르크를 그린 작품도, 오리엔탈리즘과 상관없는 누드화인 '샘'도 있지요. 오리엔탈리즘 작품속 여성들이 검은 피부가 아닌 백인여성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시길...
2016.10.21 11:09
님이 지금 보시는 이야기 세계사에 미술사 해설도 나오는가 보군요. 좋은 책이네요. 나도 지금 애들 보는 책 하나 쓰고 있는데 미술사 얘기만 하지 말고 역사 얘기도 좀 해주어야겠어요. 참고로 페미니즘 미술사 방법론에서는 저런 신고전주의 미술의 여성 누드화, 특히 무슬림 여인들이 주로 그려지는 오리엔탈리즘의 오달리스크 누드화들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살펴보시길요. 님이 보시는 이야기 세계사에서도 이런 설명이 좀 나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2016.10.21 11:27
신고전주의 누드화와 그중 오리엔탈리즘 누드화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그 가치를 구분할수 있다면야 뭐... 세상일에 불가능한건 없겠네요.
2016.10.21 11:46
2016.10.21 12:13
코르데가 처녀성검사를 받은 이유는 남성애인의 정치적 교사를 받지않은 여성단독으로 정견을 갖고 암살을 저지를수가 없다는 남성들의 판단때문이겠죠. 그 검사를 여성이 했으니 괜찮은거라고 생각하는걸 뭐... 어쩌겠어요?
누드화 자체가 반여성적이라고 하는거라면 그건 그것대로 수긍할수도 있구요.
두가지 주장이 굉장히 상충한다고 느껴지지만.....뭐 인간은 원래 모순덩어리니까요.
요즘 방송에서 비너스의 탄생같은 그림에 모자이크 처리한다던데 페미니즘관점이 반영된 조처라고 봐야할까봐요.
2016.10.21 21:33
괜찮은게 아니라 괜히 여성인권 생각해주는척 하면서 쓸데없는 망상질 하지 말라는 얘깁니다. 계속 처녀성 타령이니 진짜 구역질 납니다.
2016.10.21 22:56
200년전 유럽남성의 성차별의식을 옹호하는 사람을 마주한다는건 참 희귀한 경험이고 동시에 역겹기도 합니다.
2016.10.22 01:24
처녀성 타령하면서 여권 옹호하는척 하는 누구보다는 낫죠. 그 누구는 인간 백정같은 무슬림 근본주의자들 옹호하느라 평소 관심도 없었던 대혁명, 공포정치, 방데 반란 같은 거 애들 세계사 책 보면서 기를 쓰고 역사논쟁이라는걸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200년전 유럽 기독교 남성의 성차별 의식이 얼마나 더러운 것인가는 무슬림 여성들 나체 이미지 그림 얘기하면서 내가 지적한겁니다. 처녀성 타령이나 하는 주제에 페미니스트인척 하지 맙시다. 요즘은 페미니스트가 무슨 벼슬인가? 뭔 개나 소나 페미니스트라고 ㅎㅎ
2016.10.22 02:09
그 저열한 성차별의식이 앵그르의 '터키탕'에서는 드러나는데 코르데의 처녀성검사에서는 찾아볼수없다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2016.10.22 18:50
그 보다는 여성인권 걱정해 주는척 하면서 처녀성 나발을 불어대는 님의 말씀이 좀 웃기다는 거였습니다. 님이 진짜 여성인권 걱정하는 인간이면 공포정치 시기에 진행된 페미니스트 혁명가들의 탄압사례를 가져와야 하는데, 그건 제처놓고 계속 처녀성 타령 중이거든요. 님은 혹시 성희롱 중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발언'이 있다는 건 아시는지? 나야 40넘은 아줌마니까 외간 남자가 나 따라다니면서 계속 처녀성이 어쩌고 떠들어도 그냥 짜증만 나고 말지만, 나중에 어디 가서 여성억압에 대해 토로한다고 젊은 여자들 앞에서 처녀성 얘긴 떠들지 마세요. 심히 걱정되는군요.
2016.10.23 00:36
2016.10.25 17:25
하도 처녀성 타령하길래 엉뚱한 망상 할까봐 그만 헛소리 하라는 의미로 알려준 겁니다. 참 추잡하네요. 아무리 아줌마라도 외간 여자 따라다니면서 처녀성 운운하는게 민망하지도 않나…한 두번도 아니고 빼애액~ 난 그래도 아줌마니까 그냥 들어줄게요. 하지만 어디 가서 페미니스트 자처하면서 이런 얘기는 하지 마세요. 진짜 듀게에서 성희롱범 나오겠네 ㅎㅎ
2016.10.25 18:14
님 얘기가 아주 웃기는게, 그 시절이 230년전 옛날이란걸 편리하게 까먹고 있다는겁니다. 그 시절 남자들 수준이 다 그랬어요. 혁명정부만 유달리 성차별이 심해서 그딴 검사한줄 아십니까? 그런 검사는 그 시절에 정해진 관례였어요. 그럼 구즈가 지지한 지롱드는? 거긴 뭐 그런 사건 안났으면 그딴 검사 안했을것 같나요? 지롱드의 지도자 브리소는 아예 초등 교육만 시키고 그 나머지 여성 교육기관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로베스피에르는 어떤가요? 그는 공법의 영역에서는 여성을 제외시켰지만 사법의 영역에서는 법률적으로나마 남녀평등을 추구했죠. 자, 이럼 구즈가 순수하게 여성해방 입장에서만 봤을땐 어디를 지지해야 할까요? 공법은 물론이고 사법영역에서는 아예 여성교육권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지롱드의 브리소? 그래도 사법영역에서만은 남녀평등을 추구한 로베스피에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계속 처녀성! 처녀성! 빽빽거리는건 그만합시다. 진짜 쪽팔리지도 않나…
2016.10.21 11:36
오리엔탈리즘 작품속 여성들이 검은 피부가 아닌 백인여성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시길...
ㅡㅡㅡㅡㅡ
제대로 짚으셨네요! 바로 그겁니다! 우리 서양남자들도 저 무슬림들처럼 우리네 백인 여성들 저렇게 하렘에 가둬놓고 맘껏 성착취하고 싶다! 부럽다 무슬림들…진짜 남자들이란 저렇게 사는건데…라는 심정으로 무슬림 여인들은 시종으로, 술탄의 총애를 받는 여인은 백인 여성으로 그려놨지요. 무려 그림 제목들도 <백인노예>에요! 바로 이게 그 당시 서양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였던 겁니다. 정확히 짚으시네요! 님 그림 보는 안목이 있으신듯.
2016.10.21 12:01
그건 한편으로 작품속의 이슬람여성에 대한 제국주의적 시각이라는게 애초에 그 실체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중동, 북아프리카 근처도 안가본 앵그르가 그런걸 느껴볼 가능성이 있을리가 만무하죠. 아니 남성의 출입이 금지되어있다는 하렘을 서구남성이 묘사한다는것이 결국 철저한 성적상상력의 산물 그이상의 의미가 있을리가 없겠군요.
신화나 중동여성의 형식을 차용하지만 당연히 백인여성에 대한 에로티시즘을 내포하는게 당연하구요.
그런 왜곡된 상상이 옳지 않다는거라면 뭐 그럴수도 있겠네요.
위에 올린 다비드의 '바라의 죽음'이 동성애적 욕망을 투영하는거라고 한들 누가 뭐라겠어요?
2016.10.21 21:21
2016.10.21 22:43
님의 토론모임에서는 다비드가 죽어가는 혁명군소년의 나신을 통해 남색의 욕구를 투영하고 이건 프랑스 혁명의 영향이다라고 해석이라도 합니까?
다같이 상담 받아보시라고 했었죠?
2016.10.22 01:13
바라의 죽음에 대한 해석을 두고 동성애 성향에 대한 분석을 하는건 미술사 연구가들로부터 이미 오래된 얘깁니다. 그냥 자기가 첨 들어본 얘기면 다 신선하고 망상인가 보네요. 님은 어린이 세계사나 읽는 수준이고 미술사에는 기본도 없는 인간이지 않습니까…자기가 첨 듣고 이해안된다고 혼자 개거품 물지 맙시다. 애들 책이나 읽고 역사 논쟁 하겠다는 인간을 일일이 가르치면서 떠드는게 재밌긴 하니 계속 무식한 소리 해대도 대답은 해주겠습니다만.
2016.10.22 02:54
신고전주의란걸 처음에 주장한 빙켈만이 게이인거지 그의 주장대로 테르모필레의 레오니다스 같은 그림을 그린 다비드 개인에서 동성애적 성향을 찾으면 곤란해요.
2016.10.22 18:42
다비드가 동성애자인지는 모르겠는데, 바라의 죽음이라는 그림에서는 동성애 표현 코드가 보인다는겁니다. 작가가 이성애자라 하더라도 작품은 동성애 성향을 표현할 수 있어요. 작품을 보세요. 님도 그렇게 느끼고 있잖습니까. 바라 그림 내가 가져왔나요? 자기가 덜렁 가져와서 동생애 성향 보이지 않느냐며 떠들땐 언제고 이젠 아니랍니까…
2016.10.23 01:20
미술사의 맥락을 모르니 그런 헛소리가 가능한거겠죠. 신고전주의 누드화는 여성차별적이고 남성누드화는 동성애코드이며 오리엔탈리즘 회화는 islamic invasion이고...이런 식의 해석과 무릎척수반사의 공통점은 뇌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이겠죠.
좋은 어린이 미술사책을 한권 소개시켜 줘야 할거같네요.
다비드의 테르모필레의 레오니다스의 이미지를 프랭크 밀러가 그래픽노블 300에서 차용하고 다시 잭 스나이더가 영화 300에서 복각했으니 그걸 보고 동성애 코드로 읽을 수도 있겠군요. 대체로 헛소리 그자체는 무해하니까요.
2016.10.25 17:14
이게 바로 어린이 세계사나 어린이 미술사밖에 못 본 사람의 폐해죠…님이 말씀하신 작품들 모두 동성애 코드가 있습니다. 이건 미술사 연구 방법론 중 심리학 분석법에서 나오는 얘깁니다. 고작 곰브리치 미술사같은 청소년을 위한 미술사 책만 봐서는 이런 견해가 있다는걸 알 턱이 없죠. 아니 몰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내 말꼬리 잡으면서 계속 왜곡질이나 하고 있네요 ㅎㅎ
2016.10.21 10:30
지난번에 이어, 글타래가 매우 흥미롭네요.
2016.10.21 1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