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퇴근)

2017.02.15 02:01

여은성 조회 수:1072


 1.처음에는 이해가 안 가다가 결국 이해가 되는 일이 있죠. 그 중 하나가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일이 끝나고 또 술을 마시러 가는 거였어요.


 뭐...1시나 2시쯤에 닫는 가게라면 약간은 이해가 가요. 술을 잘 먹는다면 거기서 소주나 막걸리를 좀더 먹는 것 정도는 가능할 테니까요.



 2.한데 놀라운 건 새벽 4시가 넘어서 끝나는 가게에 가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공식적으로' 새벽 4시에 끝난다는 건...남아서 좀더 죽치려는 녀석들을 어떻게든 보내고 대리운전기사를 불러주고 제대로 돌아가는지 체크하고 테이블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고 직원들끼리 인사하고 나면 새벽 4시 반쯤은 되어야 퇴근할 수 있다는 거거든요. 


 하지만 어쨌든 술을 또 먹으러 가는 거예요. 저녁 8시에서 새벽 4시반까지 40도 술을 수백~천ml 단위로 마구 들이켜 놓고 또 술을 마시러 간단 말이죠.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거리면서 서울에 몇 곳 없는 아직 연 가게로 향하는거죠.



 3.그래서 물어봤어요. 여기서 술을 더 먹고 싶은 마음이 어떻게 드냐고요. '뭐? 여기서 또 술을 먹으러 간다고? 어떻게 그럴 마음이 들지?'라고 경악했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한 직원이, 그건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라고 했어요. 퇴근하면서 이제 남자친구와 자러 간다는 매춘부에게 '뭐? 여기서 또 섹스를 하러 간다고? 어떻게 그럴 마음이 들지?'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4.휴.



 5.어느 날 새벽 4시까지 하는 가게에서 한 직원이 뭔가 각오한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어요.


 '오늘은 술을 좀 마셔야겠어.'


 라고요. 지난 8시간동안 마신 건 뭐였던건지 궁금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어요. 여기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건 분명히 나를 끼워주려는 분위기인데 거기다 대고 '뭐? 여기서 또 술을 먹으러 간다고?'같은 딴지거는 말을 하면 안 끼워줄 것 같았거든요. 


 안 물어 봤지만 대충 알 것 같은 대답...아니 혼잣말이 돌아왔어요. 방의 문이 열려 있어서 시끌벅적한 바깥 테이블에서 소음이 들려왔어요. '저들은 지난 몇시간동안 저 정도 소음을 냈던 걸까?'라고 궁금해하는데 직원은 '제발 좀 가라...씨X새끼들아.'라고 중얼거렸어요. 


 이렇게 글로 쓰니까 별 것 아닌 혼잣말 같겠지만 그 직원의 표정을 봤어야 해요.



 6.직원2가 그들을 보내는 데 성공했는지 방으로 들어왔어요. 아디다스에서 파는 후줄근한 긴 잠바를 입고요. 그리고...아직 보내야 할 손님이 한 명 더 남아 있다는 걸 보고 표정이 굳어졌어요. 직원1이 말했어요. '괜찮아. 은성이도 같이 갈 거야.'라고요. 직원2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나는 술을 먹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미 충분히 마셨으니까요. 내가 따라간 이유는 뭐 일단 그들이 예뻐서겠죠.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정말로 그들이 여기서 술을 더 먹을 수 있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그냥 허세 삼아 저런 말을 하는 건지, 1000ml단위의 위스키를 마시고서도 또 술을 마시는 건지요.


 그들은 의외로 똑바로 걸어서 어느 고깃집에 들어갔어요.



 7.그들은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솔직이 감탄했어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오늘의 첫 술을 마시는 것처럼 마셨거든요. 그들은 나를 두고 이런저런 평을 했어요. '얜 술을 못 먹어.' '아냐아냐, 얜 술을 못 먹는 게 아니라 애초에 술을 마시러 오는 게 목적이 아닌 거야.'같은...매우 정확한 평이요. 


 그들에게 물어봤어요. 조금전까지 술을 마셨는데 왜 또 술을 마시냐고요. 직원 1이 대답했어요. 가게에서 마시는 술은 술이 아니라고요. 그리고 이렇게 힘들었던 날은 끝나고 술을 마셔야만 한다고 말이죠.


 이건 내가 원한 논리적인 대답은 아니었어요.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가게에서 직업으로 술을 마신다고 해도 똑같은 알콜 작용이 일어날 거 아니예요? 그 점이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는데...돌아온 대답은 그냥 정신론에 대한 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술을 즐기며 마시는 걸 보고 있자니 왠지 알 것 같았어요. 아무리 술을 좋아하더라도 그게 업무라면 그건 어쨌든 진짜가 아니라는 거요. 


 그래서 가게가 끝난 후에 자기 돈을 내고 진짜로 술을 마시러 간다...가야만 한다는 걸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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