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1시즌 뿐이지만 괜찮은 드라마에요. 

플릭스에서 밀어주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지만 볼만한데다가 가볍게 보기 좋은 시트콤인 만큼 

제가 하는 말을 듣고 흥미가 있으면 보시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약팔이 목적의 글이 아니고 감상인 만큼 스포일러가 있으니 감안해서 봐주시길. 

심한 스포일러가 포함된 내용은 앞에 한줄 띄고 표시는 했습니다. 

그리고 원래 감상용으로 끄적이던 거라 반발은 양해를. 



엘에이를 중심으로 미국 엔터테인먼트계에서 일단의 계몽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특히 드라마에서는 조금씩 소수자 캐릭터가 늘어나고 묘사가 늘어나는 식으로 점진적으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고들 한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뉴 노멀을 봤을 때 가장 강하게 느꼈다. 

그렇지만 재미는 주관적인 거라고는 하지만 뉴 노멀을 보면서는 조금도 '엔터테인먼트'를 느낄 수가 없었다. 

초반을 보다가 재미도 없고 설정의 과도함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져서 곧 그만뒀다.

뉴 노멀의 불편함이 제한적이고 단순한 수직적 수준의 계몽에서 오는 것이었다면 

넷플릭스는 좀 더 다양하게 많은 이야기를 통해서 꾸준하게 계몽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사실 뉴 노멀과 넷플릭스 드라마들은 계몽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모든 설정에서 드러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이 계몽은 드라마에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소수자 입장에서는 클리셰적이나마 통쾌한 이야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덜컹거림을 어떻게든 잘 뭉쳐낸 것으로 보인다.


기본 설정부터가 그러하다. 가족애로 똘똘 뭉친 라틴계 이민자 가족은 이제 드라마에서는 흔하다. 

그러나 이게 만약 대중을 계몽하려는 의지로 가득한 좌파들이 흔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쿠바 혁명을 

오히려 독재자에 의한 억압으로 여기고 해당 시기에 탈출한 이민자 가족이라면? 

실제로 이 가족은 집에 놀러온 이웃사람이 패션의 하나로 입은 체 게바라 티셔츠를 모욕으로 여긴다. 

이 에피소드는 시트콤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넘어가기는 하지만, 

이 가족이 쿠바 ‘혁명’을 독재의 서막으로 받아들이는 묘사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모든 설정은 이런 식으로, 기존의 클리셰를 여러겹 꼬아놓는다.


캐릭터 묘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주인공 페넬로페는 쿠바 혈통에 유쾌한 성품의 간호사로 십대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참전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때의 상처가 아직 다 치유되지 못해 우울증 약을 먹어야 버틴다. 

과거 이런 류의 계몽 드라마에서 아프가니스탄 참전에 대해 다뤘던 시각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한층 더 나아간 묘사가 아닌가. 


주인공의 어머니이자 이민 1세대인 리디아는 어떤 면에서는 가족을 중시하고 기꺼이 가사노동을 감당하는 숙련된 주부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라티노 아부엘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집안에서 가장 외모를 열심히 가꾸며 로맨틱함을 추구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소위 말하는 여성스러운 캐릭터다. 물론 이 또한 이 드라마에서는 세대 차이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치로 쓰이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3대째라고 볼 수 있는 딸 엘레나는 사실상 리사(심슨가족)의 라티노 버전이다. 

물론 단순히 머리 좋고 아이비리그를 준비하는데다가 알고 보면 외모도 괜찮은 너드 캐릭터로는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수준의 구색이 안 맞다. 

길모어걸스의 로리에서부터 모던패밀리의 알렉스까지 이런류의 캐릭터는 너무 전형적이지 않은가. 

(이하 부분은 핵심이기는 하지만 다분히 스포일러일 수 있습니다. 싫으신 분들은 스크롤을 죽 내려서 다른 캐릭터 묘사로 넘어가시면 됩니다)







그래서 아예 레즈비언 서사를 쥐어줬다. 그리고 이것 또한 꼬인 설정의 대표적인 예다. 

리사 이래로(혹은 그 전에도 비슷한 캐릭터의 전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있었을 거다. 일단 생각나는 건 리사가 대표적이지만) 공부 잘하고 주변 사람들에 비해 월등히 똑똑하고 많은 것(특히 정치 환경 여성 등의 이슈)에 관심을 갖는 어린 여성 캐릭터는 많은 경우 레즈비언으로 의심을 받아왔다. 

그렇지만 기존의 드라마에서는 결코 레즈비언일 수 없었다. 

이것은 레즈비언 캐릭터가 소비되는 일반적인 방식에 따른 것이기도 했으며 시대적 한계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리사는 고작해야 대학생 때 잠깐 여자친구를 가져볼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엘레나는? 하. 시청자들의 이러한 습관적 반신반의를 완전히 가지고 놀고 있다. 

친구 카르멘 에피소드로 역시나 하는 마음을 주는가 했더니 짜잔. 대놓고 시청자에게 커밍아웃을 해놓고, 

그 와중에 알고 보면 ‘브로콜리’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며 남자친구를 만드는가 했더니 

결국은 다시 아니네 나 레즈비언임 땅땅. 아. 이쯤 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실 그렇다. 동성결혼이 합헌되기 전에도 미드에서 게이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아들이 게이일까봐 고민하는 부모도 흔한 소재였다.

그러나 어린 여성이 레즈비언이 ‘되는’ 이야기는? 성소수자의 고민과 어려움을 다룬 인디 무비가 아닌 이상 드라마화 되지 않는, 

대표적으로 다들 기피하는 소재였다. 


대부분의 경우 레즈비언 서사가 다뤄지는 방식은 이러하다. 

주인공은 당연히 절대 될 수 없고, 주인공의 친구, 혹은 같은 학교 누군가 정도. 

외형적으로 티피컬한 레즈비언으로 묘사되지만 가십의 대상인 정도. 

반대로 성인 레즈비언이 나오면 어린 시절의 고충이 농담 삼아서 다뤄지는 딱 그 정도가 

소위 성소수자에 대해 그나마 공정하게 묘사한다고 하는 미국 드라마의 상황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엘레나를 통해서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어린 레즈비언 여성의 방황과 성지향성 확립까지의 그 모든 과정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드라마의 메인 주제로까지 가져가면서 묘사하고 있다. 

이런 점을 생각했을 때 확실히 이 드라마는 전보다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고 있다. 물론 그 또한 기존 캐릭터의 변주라는 점, 

그리고 어디까지나 드라마 주인공은 페넬로페인 만큼 주변부 캐릭터에 그치고 있다는 정도의 안전장치는 가지고 있기는 하다.





(여기부터는 다시 보셔도 됩니다) 

이 드라마의 메인 서사는 여성 중심이긴 하지만, 남성 캐릭터들도 조연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낸다. 

주인공의 아들인 로우틴 알렉스. 

기존 드라마의 전형적인 게이 아들 캐릭터처럼 외모를 가꾸고 다른 멋진 남성들을 흠모하지만, 

이 드라마의 방향성을 생각해봐도 그렇고, 심지어 이미 누나인 엘레나가 커밍아웃한 상황에서 얘가 게이가 될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시트콤에서 유구하게 하나씩 등장하곤 하는 민폐 식객이자 건물 주인인 슈나이더는 좀 더 심층적이고 복합적인 클리셰 덩어리다. 

제작진은 이 캐릭터에 진지한 서사를 줄 생각이 애초에 조금도 없어 보인다.

알렉스랑 비슷하게 외모를 가꾸고 캘리포니언 힙스터 캐릭터를 수행하는가 하면 주인공 가족에 완전히 동화되어서 가족 구성원에 없는 성인 남성의 역할을 수행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 특성상 그게 꼭 필요한 캐릭터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다보면 캐릭터의 역할은 겉돌게 될 수밖에 없다. 

한편 이 캐릭터는 주인공과 어느 정도의 가족애를 공유하는 동시에 성적인 긴장감도 가지고 있다. 

물론 시즌이 길어져서 시청률 같은 시시껄렁한 작품외적인 문제 때문에 잠깐이라도 주인공과 맺어지면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악플을 받을 수밖에 없는(그 중에 하나는 아마 나일 것이다) 그런 류의 절대 이루어질리 없다는 것을 바탕에 둔 성적 긴장감이다. 

이에 따라 의도적으로 슈나이더의 연애 상대들은 대부분 주인공과 전혀 다른 외모를 가진 키 크고 매우 마른 백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더해서 주인공의 전남편은 가정적이고 좋은 사람으로 묘사된다. 

물론 이혼에 이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문제는 가지고 있지만, 본바탕은 좋은 사람, 그래도 한때 젊은 시절과 애정을 나눌 수 있었던 사람이다. 

다만 지금 이 가족에는 이 캐릭터가 필요 없다. 작중에서 어느 정도 그 공백을 메꾸는 게 슈나이더다. 

그러나 슈나이더가 애들 아빠의 대체물이 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슈나이더가 조금도 진지하지 않은 캐릭터라는 게 강조된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슈나이더가 페넬로페한테 전남편의 대신이 되지는 않을 것임을, 

그리고 굳이 한 가족이 잘 사는데 있어서 성인 남성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보자면 가벼울 수도 있고 뻔할 수도 있는 그런 가족 이야기다. 

심지어 그걸 굳이 부정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다만 디테일을 잘 살려서 식상함을 줄이고 가벼운 반전과 불편하지 않은, 

적어도 불편함이 적은 유쾌함을 제공하고 있다. 그게 이 드라마의 목적인 동시에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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