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곽외, 가상화폐)

2018.01.09 00:47

여은성 조회 수:1207


  어느날 곽외가 인재를 모으고 싶어하는 왕에게 가서 말했더랬죠. '아무것도 아닌 제게 천금을 하사하신다면, 온 세상의 걸출한 자들이 그 소문을 듣고 여기로 찾아올 것입니다.'라는 진언을 올렸고 그건 맞아떨어져요.


 코인 시장을 보고 있으면 곽외의 저 일화가 떠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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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어제 썼듯이, 나는 코인 시장을 거품이라고 생각해요. 100만원짜리 거품이든 100조짜리 거품이든, 거품은 거품이니까요.


 여기서 거품은 꼭 나쁜 뜻으로만 하는 말은 아니예요. 주식시장만 둘러봐도 pbr이 회사의 총 가치를 넘어가는 주식들이 많으니까요. 부동산 매매도 그래요. 내가 먼저 나서서 땅을 팔려고 해봐야 원하는 가격은 받기 힘들어요. 기껏해야 제값이나 받을 뿐이죠. 한정된 자원인 부동산을 고작 제값을 받고 팔면 손해죠.


 땅이란 건 '이 땅이 꼭 필요해서 먼저 찾아오는' 누군가에게 배짱을 부리면서 팔아야 거품을 얹어서 팔 수 있는 거거든요. 그야 그러려면 처음부터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하게 될'땅을 선점해놓는 게 먼저겠지만요. 어쨌든 무언가를 매매하고 이익을 보는 과정에서 거품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거죠.



 2.코인을 하지는 않지만 이번 사태는 매우 재밌게 보고 있어요. 지금까지 있어왔던 어떤 투기판이든 포커판과 같이 자금력이 중요했잖아요? 좀 적게 먹어도 절대 액수로 밀어버리거나, 좀 잃어도 빠방하게 물타기를 할 만한 자금이 있어야 돈 불리기가 쉬웠죠. 게다가 부동산이나 주식 같은 건 진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본은 필요했고요. 그 최소한의 자본도 만만한 액수는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이번 코인 투기판은 이보다 더 개인투자자들에게 관대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관대해요. 초기 자금이 적어도 되고, 접근성도 엄청나고, 개미를 죽이기 위한 드리블도 그리 심하지 않아요. 게다가 수익률도 20~30%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단위수가 다르죠. 어쨌든 2017년 내내 코인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돈을 벌 수 있었어요. 역사상 이보다 더 개인투자자들에게 관대했던 투기판이 있었던가요? 게다가 그 관대함이 1년씩이나 지속된 적이 있었던가요? 1년이라면 망설이고,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들어간 사람들조차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준 거니까요.



 3.2~30%의 수익률도 물론 좋은 수익률이긴 해요. 은행이자로 치면 몇십년 어치를 단기간에 얻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래봤자 30%는 30%거든요. 인생을 바꿔 줄 정도는 되지 않아요. 30%의 수익률로 인생이 나아진다면, 애초에 초기 자금만으로 이미 인생이 윤택한 수준의 부자일 테니까요. 


 100%~1000%씩 벌게 해주는 코인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내가 기분좋은 점 하나는 이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노동이란 것 자체에 회의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거죠. 2016년에는 자주 가는 게시판에서 '회사 다니기 힘들다'라는 글을 많이 봤거든요. 하지만 2017년 후반부터는 '100%, 1000%를 버는 걸 보니까 회사를 왜 다니는지 회의가 든다.'라는 글이 종종 보이고 있어요. 


 누군가는 투기판이 이런 생각을 들게 만드는, 사회를 좀먹는 요소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역시 나는 '힘들게 살 바엔 애초에 뭐하러 태어난 거지?'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서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듀게에 늘 써 왔듯이 나는 노동은 쓰레기라고 생각하거든요. '노동은 신성하다'라는 생각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라는, 어떤 못된 놈들이 제시하는 프로파간다일 뿐이니까요.



 4.휴.



 5.하지만 투기판에서 만들어지는 거품이란 건, 극도로 커진 거품을 결국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끝내기 위해 만드는 거잖아요? 2017년 내내 개인투자자에게 저렇게 관대했던 건 결국 거품을 극도로 키워서 사람들을 홀리기 위해서인 거죠. 아무리 돌부처 같은 사람들도 '옆 부서의 누가 5억을 벌었다더라.' '누구누구는 몇십 년치 연봉을 긁어서 회사를 관뒀다더라.' '코인 안 하는 사람은 바보 아닌가? 돈을 넣기만 하면 돈을 버는데 왜 매일 7시에 일어나서 출근따윌 하는 거지?' 라는 말을 1년 내내 듣고 있으면 코인 시장에 돈을 들고 들어가게 되곤 하니까요. 


 결국 돈을 싸들고 코인 투기판으로 향하는 그 사람들은 곽외의 일화에서 '곽외 같은 자도 천금을 받는데 나는? 왜 나는?'이라고 외치며 왕을 찾아간 인재들 같은 거죠. 차이점이 있다면 위의 일화는 정말 인재를 모으기 위한 미끼였고, 코인판은 개미지옥에서 죽어나갈 개미들을 모집하기 위한 꼬드김이라는 거죠.


 

 6.그래서 나는 역시 코인 투기는 하지 않을거예요. 땅값이 떨어지면 그냥 그 땅을 가지고라도 있을 수 있고 주식값이 떨어지면 하다못해 주총에 나가서 지랄이라도 한번 떨 수 있죠. 하지만 코인은 실체 없이 신뢰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물건이기 때문에 하기가 겁나요. 휴. 어쩌면 이젠 나도 세상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게 된 것일수도 있겠죠. 


 '가상화폐엔 실체가 없어! 실체도 보증주체도 없는 건 믿을 수 없다고!'라고 외치면서 원래 하던 것만 하려는 꼰대라서 이렇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내가 맞는 건지 그들이 맞는 건지는 시간이 가르쳐 주겠죠.



 7.하지만 역시 좋은 점은 있어요. 덕분에 묘하게 경쟁 욕구가 생겨서요. 내가 원래 해 오던 걸로 코인 시장의 수익률 부럽지 않은 수익률을 내보고 싶어졌거든요. 지금까지는 20~30%벌면 적당히 만족이었는데 작년 말부터는 20%버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아요. 예전엔 얼마쯤 벌면 퇴근하거나 농땡이를 피웠는데 이젠 곧바로 다음에 살 종목을 찾아보고 있죠.


 긍정적인 감정으로 이러는 건 아니고 운좋게 투기판에서 수익률을 많이 낸 녀석들이 나대는 꼴을 보는 게 싫거든요. 질투하면서 싫어하기보단 비웃으면서 싫어하고 싶어서, 그들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싶어요. 누군가를 비웃고 싶다면 그 사람보단 잘 해야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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