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하나 들려드릴께

2019.09.09 22:02

타락씨 조회 수:1103

지난 주말 이후 언론의 기류가 좀 바뀌었죠. 특히 진보언론인 프레시안, 한겨레, 경향 등에서.
일선 취재 기자들은 여전히 추가적인 의혹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보도하고 있는데 반해, 그 윗선에서 나오는 칼럼이나, 외부 기고자들의 칼럼 논조는 '전~하~~ 검찰의 패악질이 도를 넘었사옵니다~~ 부디 줘 패주시옵소서~~~~ 뉴_뉴'로 바뀐겁니다.

이번 조국 사태를 둘러싸고 기사를 컷 당하던 한겨레 기자들이 항명한 사건은 알고들 계실거예요. 여기까지는 단순히 밥줄이 달려있어 어떤 정치 훌리건 세력의 눈치보느라 그랬다고 이해할 수 있었지만, 갑자기 검찰을 줘패야 한다고 입을 모아 외친다는건 좀 이상하죠.
검찰 개혁, 사법 개혁이 진보 진영의 숙원사업 중 하나인 것은 맞아요. 하지만 그 방향은 권력의 분산과 정치권 외압으로부터의 중립이었지, '정권에 의한 검찰 길들이기'는 아니거든요. 진보적 학자, 언론인들이 단체로 약이라도 먹었는지, 검찰을 자신들이 비판하던 '말 잘듣는 권력의 개'로 전락시키자고 나서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겁니다.

금요일에 두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었죠. 청문회와 이어진 조국 부인 정경심의 기소. 정경심의 기소는 예정된 일이었으나, 타이밍이 재미있죠. 청문보고서 제출 시한이자 공소시효 말일이라니, 운명이란..
그보다 더 흥미로운 사건은 청문회에서 벌어졌는데, 박지원이 위조된 것으로 알려진 표창장 사진을 입수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조국에게 표창장을 공개할 의향이 있는지 물은 겁니다.
박지원의 기동이 재미있는데 그건 따로 글을 써야 할 정도고.. 아무튼 박지원과 민주당 청문위원들은 거품을 물고 검찰의 수사기밀 유출을 성토했으나, 곧 이게 검찰과는 무관한 자료라는게 밝혀졌죠.

그럼 이 표창장 사진의 출처는 어디일까요? 검찰은 해당 사진을 입수한 일조차 없으니 조국 측에서 유출한 것일텐데, 조국은 박지원의 질문에 자기 쪽에서 그 사진을 외부에 유출한 사실이 없다라 단언합니다.
딸이 아버지에게 사적으로 보내줬다는 사진을 수신자인 조국은 유출한 일이 없으나 신~비~롭게도 박지원이 입수한다, 그럴 수 있죠. 조국 몰래 누군가가 손을 썼다면. 그렇게 손을 쓸 수 있는게 누구?

민주당 대응팀이 개입하지 않았을 리 없고, 그 배후에는 청와대의 입김이 닿고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죠.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실무자가, 혹은 당차원에서 한 짓이라 꼬리를 자르려 들겠지만, 새 총장 임명한지 두달 된 검찰에 적폐 낙인을 찍는 '공작'을 벌이면서 청와대와의 조율이 없었다? 그럴 리가..
위법 행위의 증거를 유출시키면서 검찰에 수사기밀 유출이란 누명을 씌워 공격한다는 무리수를 두는건 정신 나간 짓이고, 이걸 승인했다는 건 청와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국에 대한 인사를 강행하겠다는 걸 의미합니다.

정경심의 기소 전까지만 하더라도 언론은 윤석열이 적당히 면죄부 주려고 쇼하는 건 아닌지 반신반의 하고 있었죠. 윤석열이 미친 사람이라는 세간의 평은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법무부 장관으로 오게 될, 왕세자 책봉 1순위로도 거론되곤 하는 사람을 건드린다는 건 어디선가 적당히 멈출 수 밖에 없는 일로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청문회와 정경심 기소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검찰의 수사는 쇼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민주당/청와대가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조국을 보호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특수부를 다 때려박은 수사 초기부터 펀드 배후에 뭔가 큰게 있을거라는 얘기들이 있었는데, 그걸 피의자라 할 조국-민주당-청와대에서 확인시켜준 꼴이죠.

그래서 진보 언론은 이 사건이 게이트로 확대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데 이해를 같이하게 되었다..라는 시나리오. (광고: 프레시안, 경향, 한겨레 많이 사랑해주세요~)
현 정권과 민주당에 비판적일지라도 민주당이 공중분해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테니 말이죠.

부록: 현재 필리핀에 도피 중인 조국의 5촌 조카와 함께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사들은 임종석, 윤규근 등이더군요. 자기 가족에 대한 수사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발언과 달리, 서둘러 검찰의 사지를 자르려 덤빌 이유로는 충분해보이지 않습니까?
취임 일성으로 '적절한 인사', '검찰의 통제'를 언급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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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시나리오는 그저 가상일 뿐입니다만, 이를 바탕으로 사고실험을 해 볼 수는 있죠.
만일 저게 사실이라도 조국을, 민주당을, 현 정권을 지지할 수 있을까?
검찰 수사는 외압 없이 계속되어야 할까,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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