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2차 가해라는 것

2020.07.31 14:21

Sonny 조회 수:805

"악"이라는 것을 따로 분류하려 할 때 많은 사람이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것은 아주 명확하고 뚜렷한 것이며 의심할 수 없을만큼 선명한 의도를 가진 것이 표출되었을 때 악이라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악"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실패"라는 단어를 쓴다면 객관적 성찰이 훨씬 용이합니다. 목적은 무엇이고 본인의 행위는 무엇이며 무엇이 결핍되어있는가, 이런 걸 따져봐야합니다.


성폭력 2차 가해의 가장 큰 특징은 피해자를 비난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표면적인 현상입니다. 성폭력 2차 가해는 어떻게 보면 더 근본적인 목적을 수행할 때 생기는 결과에 불과합니다. 그 목적은 "가해자 남성을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다수 남초 커뮤니티들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말하려고 하질 않습니다. 그냥 침묵을 해버리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폭력의 주 가해자가 남성이고 여성은 피해자라는 현실을 아주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건 가해자 남성에게서 초점을 돌리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제가 성폭력을 강렬하게 인식할 수 있던 몇가지 사건 중 하나는 한샘 성폭력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떠들썩해지자 어떤 글이 남초 커뮤니티에 올라왔었습니다. 그 글의 내용은 대충 이랬습니다. 피해자는 1차로는 동료 남자에게 화장실에서 도촬을 당했고, 그 남자를 고소하기 위해 회사 내에서 내려온 인사팀장에게는 성희롱을 당해서 고소를 해서 그 동료와 인사팀장은 각각 해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간에 자신을 도와주던 남자 상사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하는데 남자는 무죄를 주장한다, 저 여자는 정말로 강간을 당한 것일까 아니면 저 남자를 무고하려는 것일까... 


엄청나게 뒤틀린 인식입니다. 여자가 도촬과 성희롱을 당했는데도 그 와중에 다른 남자를 무고할 수 있다고 믿는 겁니다. 그 글에서 도촬한 남자와 성희롱을 한 남자에 대한 가치판단은 없었습니다. 그냥 저 여자가 정말 강간을 당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진실게임만을 펼치고 있었죠. 모든 초점이 순식간에 다 피해자 여성에게만 쏠립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확실한 사실인 남자들의 도촬과 성희롱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오로지 여자에 대해서만 그 진위를 의심하며 가치판단을 시도하고 있었으니까요. 남자에 대한 가치판단은 거의 하나로 통일되었습니다. "저 남자가 불쌍하네요..."


이번 박원순 사건에 대해서도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가. 아니오. 사람은 의외로 단순해서 절대로 양립적이거나 중립적인 태도를 신중하게 취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한쪽으로 쏠립니다. 박원순을 옹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성추행범 박원순을 아예 이야기하지 않는 겁니다. 박원순이 왜 죽었는지 모른다, 박원순은 훌륭한 사람이었다, 박원순의 죽음을 사람들이 너무 쉽게 비난한다 등등으로 박원순의 죽음을 "이야기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프레임을 짜버립니다. (박원순이 노무현의 친구가 아닌 게 천만다행입니다) 박원순에 대한 가치판단은 다 함구됩니다.


박원순에 대한 추론과 비판은 신중해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과연 이 이슈에 대해 그 태도를 유지하고 있나요? 피해자의 변호사에 대해서는 업무의 효율성과 방향을 의심하고 계속해서 그 변호의 실패를 확신합니다. 법률전문가 박원순이 성추행 피소 다음날 죽은 것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진실이라고 하지만, 변호사 김재련의 모든 꿍꿍이와 엇나가는 방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들 이야기하고 숨은 의도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박원순의 유족에 대해서도 아무 가치판단도 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걸 당연한 현실이고 취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당위 바깥에서 이야기를 하죠.


분노의 부작위가 그 자체로 이미 진영이나 가치관을 설명합니다. 성폭력 2차 가해는 피해자를 악의적으로 모는 사람들이 아니라 피해자에게는 무관심하고 가해자의 변호에만 성실하고 가치판단을 무위로 돌리려는 데만 열심인 사람들이 하는 말들입니다. 성폭력 2차 가해는 그래서 광범위하고 피해자가 직접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본인이 누굴 생각하며 어떻게 가치판단을 하고 있는지 보다 신중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치판단이 한 쪽으로만 쏠리고 있는지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280300045&code=990100&utm_source=twitter&utm_medium=social_share




세상은 A씨에게 물었다. ①왜 이제야 고소했나 ②의도가 뭔가 ③원하는 게 뭔가.

두 차례 입장문에 모든 답이 들어 있다. ①문제의 인식과 문제 제기까지 시간이 걸렸다(A씨는 4년간 20명에게 피해를 호소했으나 외면당했다고 밝혔다) ②법의 보호 속에 용서하고, 사과받고 싶었다 ③일상과 안전을 회복하고 싶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 때도 세상은 똑같이 물었다. 피해자 B씨는 답했다. “사건 직후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신상털이와 가십성 보도를 예상치 못했던 바 아닙니다. 이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 전 시장의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잘못한 사람은 처벌받고,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유 때문입니다.”(4월23일 입장문)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280300045&code=990100&utm_source=twitter&utm_medium=social_share#csidx99f69e48350b013b2860256eae932c8 onebyone.gif?action_id=99f69e48350b013b2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55462.html



과거 한국여성민우회가 상담했던 사례를 보면, 직장 내 성희롱을 신고한 ㄱ씨에게 인사부는 ‘가해자의 퇴사 사유를 성희롱 건으로 퇴사한다고 밝히지 말고 희망퇴직으로 정리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ㄱ씨는 “가해자가 조용히 나감으로써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는 것이 이상한 것 같기도 했지만, 가해자가 나가게 되었으니 할 만큼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한달 병가를 냈다가 복귀한 ㄱ씨는 되레 조직 내 ‘왕따’가 됐다. 가해자가 일을 그만둔 것은 미화되고, 피해자에 대한 험담이 오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회사는 새로운 부서를 만들어 피해자를 고립된 1인 부서에 발령 내기까지 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55462.html#csidx9d68d703cd33be2b27c89e73d5f3dd6 onebyone.gif?action_id=9d68d703cd33be2b2



https://n.news.naver.com/article/152/0001960430


뿐만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징계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신고 이후 피해자에게 불리한 조처가 취해지는 사례도 있었다. 실제로 가해자가 징계를 받은 경우는 8.8%에 그쳤고, 징계 조치 없이 사건이 무마된 경우는 24.5%에 달했다. 사건에 비해 가벼운 징계에 그친 경우도 7.4%였다. 심지어 피해자가 가해자와 같은 부서로 배치된 경우(6.7%)도 있었으며, 해고(6.3%), 사직 종용(5.5%) 등 신고자가 피해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성희롱 신고자를 상대로 △피해자에 대한 불리한 소문 △피해자 탓을 하는 비난 △동료들의 노골적·은밀한 따돌림 등의 2차 가해도 존재했다.




세상은 선명한 악보다 본인의 지혜와 중립을 과신하는 어설픈 정의론자들, 본인만큼은 끝끝내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 자신하는 사람들이 망가트리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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