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간 교제한 직장인 남자친구가 그의 사소한 실수, 뜸한 연락에 히스테리 부리는 저에게 지쳐서 '시간을 갖자'고 선언했습니다.

 

네. 평소에도 회사일로 바쁘고, 자격증 공부하느라 스트레스와 피로에 쩌든 그를 한달간 볶고 지진 제가 문제였습니다.

 

서로를 알게된 지 얼마되지 않아 교제를 시작하는 바람에, 서로에 대한 정보, 이미지 이런게 하나도 없던 상태여서 계속 삐그덕거렸거든요.

 

상대가 처음 카톡으로 그 얘기를 하더라구요. '네가 날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시간을 좀 갖자'....

 

당장 통화버튼을 눌러서 대화를 시도했는데, 이 친구는 마치 지금 당장 저와 헤어져야만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처럼 얘기하더라구요.

 

이대로 그가 시간을 갖고 생각하게 내버려둔다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저와 이별이란 결론을 내리는 것이 현 상황을 타개하는데 가장 손쉬운 답이 될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전 저대로 제 생활을 잘 즐기고, 또 여봐란 듯이 그 증거들을 sns에 업데이트하기도 하고... 그게 이제겨우 딱 만 하루 반 됐네요.

 

 

잠이 안오는 새벽에 인터넷으로 '시간을 갖자는 남자'라는 키워드로 서핑을 해 보니, 자칭타칭 연애 칼럼니스트들이 한입을 모아서 주장하는 바가,

 

'남자가 시간을 갖자는 얘기를 한다는 것은 이미 이별을 위해 마음의 정리를 다 마친 상태이며, 이별이 가져올 충격을 덜기 위해서 시간을 벌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였어요. 물론, 화성인의 동굴이론도 간간이 눈에 띄었지만, 전 제 남자친구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너무나도 찝찝하여 위의 설명에 좀 더 마음을 기울이고있습니다.

 

그랬더니 약 이틀간 애써 평온하게 만들었던 가슴이 쿵당거리고 혹시라도 이게 우리관계의 마지막이 되는게 아닌가 해서, 오늘 아침에 용기를 내어 문자를 보냈습니다.

 

 

'냉전 잠깐만 중단하고 잠시 기운안빠지고 편안하게 얼굴 봤으면 하는데 어때?' -> 한시간이 넘도록 답이 없더군요

 

 

다시 시도했습니다.

 

 

'시간 갖자고 한 이야기 못지켜서 미안해. 근데 전화로 마지막 얘기한게 마음에 걸려. 만나서 얘기했으면 좋겠다' -> 1분 채 안돼서 답장이 오더군요.

 

회사 마치고, 참석하기로 한 모임 다녀와서 볼 수 있으면 보자는 대답이었습니다.

 

 

마지막 통화에서 저는, 이제 내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너를 압박하는 연애를 하지 않겠다, 널 좋아하는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겠다라고 얘기했어요.

 

너와 나의 지난 한달간은 우리가 서로를 잘 몰랐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앞으로의 관계를 개선시키는 양분이 될거라고 생각한다고도 했어요.

 

내 욕심으로 널 지치게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도대체 몇 번이나 한건지 모르겠어요.

 

사귀던 한달동안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남자친구가 그제서야 저에대한 불만을 조목조목 털어놓았고,

 

그걸 근거로 지난 일주일 가량 제게 말도없이 혼자서 마음을 정리한게 너무 실망스럽지만 아직 우리가 헤어지기엔 제가 못해준 것도, 우리가 못한것도 너무 많아요.

 

제가 지금까지 베베 꼬고 있던 관계를 풀어서, 서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연애를 하고싶다는게 제 마음이예요.

 

남자친구는 싫다고 뿌리치는 제게, '여자가 자기 싫다는 남자한테 자존심도 없이 매달리냐'라고 했지만, 솔직히 제 기준에선 이게 자존심 세울 문제는 아니거든요.

 

 

오늘 만나서 이런 내용들을 정돈해서 차분하게 얘기해 볼 생각입니다.

 

사실 저도 그 사람이 없는편이 더 행복해서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는것,

 

불만을 평소에 대화로 해결하려 노력하지 않았으며, 시간을 갖자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날 제외하고 네 프레임대로 모든걸 재단했다는 점은 실망했다는것,

 

혼자 지내는것 보다 너와 만나면서 스트레스를 더 쌓는게 사실이지만, 이 만남을 지속하려는 이유는 아직 네게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서라는것,

 

지금까지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너의 모습들에 대해 이제는 좀 알 것 같고, 덕분에 내가 가져왔던 연애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으니 앞으로는 전처럼 널 압박하지 않을거라는것,

 

지금 우리가 긴 시간을 갖고 각자 생각하기보다는 평소에 만남의 템포를 늦추고 자기만의 시간을 서로 가질 수 있도록 여유를 각자에게 주는게 좋겠다는것,

 

그래도 연애는 손뼉이 맞아야 하는 거니까, 네가 정 싫다면 나 또한 어쩔 수 없으니 순순히 이별을 받아들이겠다는 것들을요.

 

 

이렇게 얘기하면 이 친구가 되돌아 올까요?

 

전 생각할 시간을 갖겠다는 의지를 (제가 요청한 것이긴 하지만)꺾고, 잠시라도 대면하겠다는 데서 희망을 보고 있는데 이건 그냥 헛된꿈인걸까요?

 

마지막 통화 때처럼 질척거리는 미련으로 상대를 붙잡고, 그에 매달리고싶은 마음은 이제 추호도 없어요.

 

그냥 이 연애 조금만 더 편안하게 하고싶습니다. 되도록 오래. 질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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