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네요

2018.11.24 09:49

underground 조회 수:894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와서 창밖이 하얘요. 


첫눈인데 엄청나게 많이 오네요.  


하얀 눈을 보니 좋아요. 

 

창문을 열고 눈 구경 하고 있는데 커다란 눈송이가 펄펄 내려요. 




눈이 와서 아무렇게나 펼쳐든 책에 나온 시(?)인데 제목도 없고 시인 이름도 없네요. 





그랬지, 나는 오래 전에 너의 창문을 두드리고 두드리다 


갔지



세게 두드렸으면 유리창쯤 깨졌을 텐데


피도 봤겠지


너도 봤겠지



오버over하는 건 연애의 본질일까, 실수일까


지우개는 하얗고


밤중에 밀려나오는 지우개 가루는 검다






눈은 회색빛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 줘서 참 좋아요. 


아무렇게나 펼쳐서 나오는 조각시나 몇 편 적어볼까 해요.   





코끼리의 몸이 둥근 것은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잊혀졌기 때문이다 네 몸 안에서 


혹은 잊혀진 곳에서 불이 켜진다 나는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잊혀진 곳은 아늑하므로 


         



코끼리 좋아요. ^^





늦가을 마른 바람에 모래가 날려


그녀 마음의 키 높이만 한 언덕을 이룬 후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내릴 때


모래 알갱이들의 미세한 마찰이


진동을 일으키며 소리를 내지


.............



비오는 날엔 들리지 않는다 그 소리


사막이 된 몸에서만 울려나는 낮은 노래 소리 


 




눈 오는 날 시를 읽으니 좋군요. 






모자가 떨어져 있었어. 누군가 모자를 쓴 사람이었다가 모자를 쓰지 않은 사람이 되어 그곳을 지나갔고, 


나는 길에서 모자를 주웠을 뿐인데, 모자 때문에 슬픈 것 같아.



모자 때문에 나는 감상적이야. 절제하지 않아. 모자가... 모자를... 어떻게 모자를... 


나는 똑같은 모자를 열 번 쓰는데, 모두 다른 모자들이야. 어떻게 슬프지 않겠니?





예전에 지하철에서 모자 잃어버렸을 때 유실물 센터에 모자 맡겨 주신 분 복 많이 받으시길... 






이 방은 나의 영토


노을을 배경으로 비가


마치 모든 꿈은 허구라 속삭이듯 비가 내린다


빗소리는 귓볼에 닿아 스러지는 숨결 같아서


.................



너는 도처에 있고


기억의 토막들이 범람하는 홍수 위를 표류하고


나는 너의 자궁 속으로 숨어든다


노을을 배경으로 비가 내리는


이 방은 나의 늪, 물고기를 꿈꾸는 


너는 도처에 있다 






비가 오면 누군가 날 부르는 것 같아서 밖으로 뛰쳐나가던 시절이 있었죠. 






경계, 나누어지는 곳이 아니라 닿는 곳으로서의 지점. 넘어가지 못한다 해도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 해도,


넘어가지 못하는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너머에는, 닿아야 했다. 



경계는 스미는 것이 아니다. 다름을 다름으로 잡고 있는 힘. 그래서 그곳에서 떠나지 않는 힘. 비껴서지 않는 힘. 






넘어가지 못해도 경계에서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눈사람이 녹는다는 것은


눈사람이 불탄다는 것.


불탄다는 것은


눈사람이 재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재가 물이다


하얀 재 


더 희어질 수 없는 재가 물이다







눈이 그쳤네요. 눈이 쌓이면 오랜만에 눈사람을 만들어 볼까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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