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020.02.09 10:05

잔인한오후 조회 수:470

생각해보니 했던 말 또 하는게 뭐 어떠냐 싶습니다. 그걸 알아채는 사람은 내 말을 경청하는 사람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새롭게 들릴 것을 말이지요. 애인은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있으면 그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하여 말하는데, 스트레스가 클수록 반복한다는 자각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보면 제가 그 대화에서 매 번 변주된 대답을 하고 있지 뭡니까, 게다가 그렇게 말을 듣고 나면 거의 정리가 되고.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더군요. '말한다는 것은 생각하기의 표현인 것만이 아니라 생각하기의 실현이다. 이것은 걸어간다는 것이 어떤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소망의 표현인 것만이 아니라 그 소망의 실현인 것과 마찬가지다.'


코로나 바이러스_


제 사는 곳 주변에 확진자가 생겨 공공기관이 폐쇄되고, 모임들의 취소가 줄을 이었습니다. 도서관들에서 문자가 와 휴관한다며, 책을 현재 시점에서 2주 연장해주니 걱정말라고 책걱정 말라하고, 독서 모임들은 이번 모임을 취소하더니 3월로 모임을 완전히 미뤘습니다. 대학 도서관은 통 크게 한 달을 연장해준다더군요, 휴관도 안 하고. 버스 출퇴근을 하는데 보통보다 사람들이 삼분의 이 정도로 줄었고, 다들 마스크를 씁니다. 어떤 곳에 인파가 적어보이면 '혹시 코로나 때문인가?', 주택가에 주차가 많으면 '혹시 코로나 때문인가?'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 회식을 했는데, 1년에 한 두 번이나 할까 말까 하는지라 한 번 가보기는 해야지 하고 갔습니다. 식당가는 역시 사람이 없더군요. 배달하기 위해 계속 쌓이는 음식 봉지들만 보이고. 그리고 아무도 빠지지 않아 2차까지 따라갔습니다(내면의 눈물). 살짝 얼린 맥주를 파는 집이었는데 놀랍게도 사람들로 북새통이었습니다. (사실 회사 사람들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없습니다.) 모든 테이블이 만석이고, 끊임없이 여러 팀들이 들고 나더군요. 술을 같이 마신다는건 대체 얼마나 즐거운 걸까 생각했습니다. 저도 거기에 잡혀왔지만.


독서_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직장과 관련된 책들을 한 무더기 빌려다 읽고 있는데, 그 소재로 대화할 사람이 한 명 정도 밖에 없어 숨이 막힙니다. 보통 시즌에 책을 빌리면 친연성이 없는 책들로만 빌리니 이런 떡진 책무더기를 돌려가며 읽고 있자니 재미나지도 않고. 보통 도서관의 대출 최대 연장을 하나의 주기로 놓고, 그 주기 내에 책을 읽던 못 읽던 무조건 반납을 하는데, 이런 책들로만 빌린지 3 ~ 4주기 정도 되니 어느 정도 갈피가 잡히긴 합니다. 일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넓고도 깊은데, 분야와 난이도별로 가지가 처졌고, 책에서 기대할 것과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나뉘었습니다.


처음에는 교과서스러운 설명서들을 읽다가, 다음에는 관심있는 분야의 개론을 읽고, 너무 추상적인 한계를 느껴 실전적인 서적들을 골라골라 모아 읽은 다음에는, 그래도 현 사례와 달라 개별 구간에서의 실무를 조금이나마 다룬 책들을 빌려봅니다. (정확히는 읽다 맙니다.) 그리고 반대편으로는 이 분야 사람들의 말을 듣고 싶어 팟캐스트를 정리한 책이나 회고록, 인터뷰집들을 보게 되더군요. 이직이 전직과 완전히 달라 하다보면 나중에 뭐하게 되는걸까 싶어서 말이죠.


안 그래도 독서 참을성이 떨어져서 동 시간 대비 읽는 책 분량이 줄어드는데... 읽다 보면 정리되겠죠?


트렌스젠더_


애인은 이러든 저러든 사람들에게 그다지 기대가 없습니다. '아니, 사람들이 이러이러할지까지는 몰랐어.'라고 하면 '응, 원래 그래'라고 대답을 듣는 대화를 자주 하죠. 애인은 포털에서 당시 이슈인 기사들을 (어쩌면 이슈가 아닌 기사들도) 읽는 것을 즐기는데 사실 기사보다는 기사 댓글을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읽습니다. 같이 누워 애인의 휴대폰을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어디서 뉴스를 안 읽는 저는 깜짝깜짝 놀랍니다. 


개중 군대에 복무하던 분이 성별정정을 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제목은 아마 "꼭 계속 복무하고 싶습니다" 등의 애국심 투철한 내역이었습니다. 저는 그 기사를 애인이 누르기도 전에 설레발을 쳤어요. '이.. 이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다! 외통수야.' 보수적 관점에서 제일 수용할 수 있는 지점인 자발적(?) 군역 참여에 대한 요청을 행정적 여성으로 분류된 사람이 요청한다니 (그 수많은 자발적(?) 군역 연장에 대한 미담들처럼) 사람들이 좋아하겠다는 애송이같은 생각을 저는 하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요즘 한국의 뉴스 기사에는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댓글을 읽기 전에 그 비율을 보여주는데, '화나요'의 숫자가 다른 무엇보다도 압도적으로 많더군요. 저는 거기서부터 혼란스럽기 시작했습니다. 화... 가 났다고?


넘쳐나는 댓글들 대부분에서 반복되는 용어는 '이기적이다'라는 표현이더군요. 이기적... 이라고? 이기적이라고? 저는 한참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참 이기적이다, ..." 이기적이라는 말에 붙은 논지들은 상당히 다양했는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기억이 안 납니다. 삶을 다들 이타적으로들 살고 계시나보다, 비꼬기도 전에 군역 복무 연장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에게 거의 모든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지칭하는게 혼란스러웠습니다. 보니 국가적인 역를 개인적인 선택에 의해 과정을 흔들다니(??)라는 멘탈리티가 있더군요. 제가 이 사회를 너무 포용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과정을 흔드는 사람이 누구지??)


그래서 휴, 애인과 또 그 대화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역시 보수가 또... 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이런 일은 또 뭐랍니까. 군대에 복무할 수도 없고, 여대에 입학할 수도 없고. (정확히 말하자면 군대에는 행정적으로 성별전환시 4 ~ 5급의 상해(?) 때문에 건강한 남성에서 탈락하고, 대학교는 행정처리는 통과되는데 집단의 반대에 부딛히고.) 마침 이 혼란스러움에 최근 애인이 구매한 [페미니즘의 개념들]에서 '트렌스젠더' 항목이 있어서 그를 읽으며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유구한 전통이 있고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되었던 일임을 확인하니 체념이 되더군요, 아 이런 결론이면 안되나.) 직장 서적을 좀 줄이더라도 이 쪽 쿼터를 넣어야겠어요. 기억에 남는 단문을 하나 들어보자면, '우리 모두는 트렌스젠더이다. 그러므로 트렌스젠더는 없다.'


잠_


회사 가기 싫은지 밤에 늦잠을 잡니다. 하는 것도 없이 정신 차려보면 3시가 되어 있는데요. 어떻게 하면 빨리 잘 수 있을까 이렇게 저렇게 해보다가 달력에 스티커를 붙여주기로 했습니다. 가끔 마음에 드는 스티커를 사는데 쓰지를 않아서 자주 사지도 않는데 몇 개 쌓여 있기도 해서요. 그러니 빨리 자는 빈도가 늘긴 했는데, 가상적인 시간선을 넘어버리면 '아이고 난 몰라~'하고 더 늦게 자는 단점이 있더군요. 다들 숙면 취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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