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의 숙명

2020.02.09 14:22

Sonny 조회 수:1100

정희진 선생님이 그랬던가요. 글을 쓰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자신은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기 위해 쓴다고. 저 역시 비슷한 동기를 가지고 뭔가를 씁니다.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질 수 없다는 그 느낌으로 뭔가를 씁니다. 그래서인지 항상 동기를 헛소리맨들에게서 받고 그걸 반격하는 식으로 쓰는데, 그러다보니 이번 트랜스젠더 A의 입학 취소에 대해서는 "질 수 없는 상대편"을 좀 애매하게 설정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자신을 렏팸으로 분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의욕을 갖고 있는 동시에 이 때다 싶어 페미니즘이 어쩌구 저쩌구를 떠들며 논평하는 남자들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게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본래 목적이었던, 연대한다는 다짐을 글 안에서 잃어버렸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저는 진중권처럼 페미니스트들을 적으로 설정하는 공언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건 그 사람들이 좋다거나 우리 편이라는 진영논리가 아니라, 순전히 발화자인 저의 위치 때문입니다. 그냥 제 기분이 그렇습니다. 교회다니는 사람이 퀴퍼반대집회를 하는 기독교인들을 "그들"이라고 설정하기 좀 어려운 거부감 같은 것이죠. 사실 저는 다른 sns에서 렏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과 너무 신물나게 싸웠기 때문에 더 이상 감정적 소요를 겪고 싶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연대를 이야기하고 저보다 단호하게 그것은 잘못됐다는 사람들의 입장을 "인용"하는 데에서 그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저 역시 그 랟펨분들의 논리에 화가 나고 실망스럽습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다수자들의 이지메라고 보고 있고요.


비슷한 기간 내에 트랜스젠더의 군입대와 여대 입학이 이렇게 이슈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더이상은 미룰 수 없는 사회적 숙제를 마주했다는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당신은 틀렸고 나는 그의 편에 설 것이라는 주장을 무슨 이유로든 무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비겁한 태도겠지요. 신중한 태도와 모호한 편들기를 조금은 구분하려 합니다. 당장 저 자신부터가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를 어떤 식으로든 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 퀴어퍼레이드가 만일 열린다면, 저는 T라는 글자가 저에게 유달리 큰 대문자로 들어올것 같기도 합니다.


한 친구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너무 공격을 많이 받고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상태인데, 당장 그부터 격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가 제 유일한 연대의 대상이자 가장 확실하게 얼라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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