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분이 이런 취지의 얘기를 하셨죠.

'나는 자발적으로 (내가 원해서) 이일을 하고 있고, 
동료들 거의 대부분 (혹은 전부) 자발적으로 이일을 한다.'

많은 분들이 이를 부정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성매매의 현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얘기하지 말라는 지적도 있었죠.

한국의 성판매자 중 자발적 성판매자의 비율은 매우 높습니다.
저는 이 비율을 95% 이상으로 짐작하지만 정확한 통계는 없겠죠.

어떤 행위를 자발적인 행위라고 판정할 수 있는 엄밀한, 합의된 기준은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분의 기준에 따르면 자발적 성판매자의 비율은 훨씬 더 낮을 것입니다.
똑같은 정보량에 대해서 50%라고 볼 수도 있고, 20%라고 볼 수도 있고, 심지어 0%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타인의 물리력, 물리적 위협에 의해 강제되지 않은 성판매를 자발적 성판매로 이해합니다.
타인의 물리력, 물리적 위협에 의해 강제된 성판매만 비자발적 성판매로 보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자발적 성판매가 전체 성판매의 95% 이상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자발성'을 좁게 정의함으로써 자발적 성판매자의 비율을 얼마든지 낮출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정의된 '자발성'은 특정 행위의 법적 허용/금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해당 정의에 따르면
이 사회에 존재하고, 널리 허용되며, 심지어 권장되기도 하는 많은 행위들이 
매우 높은 비율의 성판매만큼이나 비자발적인 행위일 테니까요.
그런 많은 다른 비자발적 행위들은 허용되는데 비자발적 성판매만 금지된다면,
성판매 금지의 근거는 자발성 여부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 기준에 따르면 타인의 타인의 물리력, 물리적 위협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니라면
절대적 빈곤에 처한 사람의 성판매도 자발적인 성판매입니다.
절대적 빈곤에 처한 사람의 
택배 서비스 노동, 세신(때밀이) 서비스 노동이 자발적인 것과 마찬가지로요.

절대적 빈곤에 처한 사람의 성판매, 택배 서비스 노동 등을 모두 비자발적인 것으로 규정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 정의에 반대할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노동들이 비자발적이기 때문에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또는 그 노동들 중 어떤 것은 허용되고 어떤 것은 법으로 금지된 상황에서
금지된 것을 합법화하자는 주장에 대해 비자발적이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반론은 일관성, 설득력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2.
성판매자 중에서 절대적 빈곤자, 소득 최하위(+차상위) 계층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

질문을 좀 더 엄밀하게 해 보겠습니다. (조건부 확률의 개념)

소득 최하위 계층의 사람이 성판매에 종사할 확률은 
소득 중상위 계층의 사람이 성판매에 종사할 확률보다 얼마나 클까요?
꽤 차이가 날 것입니다. 
P(성판매|최하위) >> P(성판매|중상위)

소득 최하위 계층의 사람이 택배 기사로 일할 확률은
소득 중상위 계층의 사람이 택배 기사로 일할 확률보다 얼마나 클까요?
꽤 차이가 날 것입니다. 
P(택배기사|최하위) >> P(택배기사|중상위)

식당의 허드렛일, 공사판의 일용직 등 소위 말하는 3D 직종 어느 것이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당연한 경향이 성판매와 다른 3D 직종 중 어느 직종에서 더 강하게 나타날까요?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과학적인 근거는 없습니다만,
제가 생각컨대, 성판매는 이런 경향이 다른 직종에 비해 현저히 약합니다.

[ P(성판매|중상위) / P(성판매|최하위) ] >> [ P(택배기사|중상위) / P(택배기사|최하위) ]

다르게 표현하면,

소득 계층이 최하위가 아니면서
택배기사나 식당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소득 계층이 최하위가 아니면서
성판매를 하는 사람은 꽤 있다. 택배기사 하는 사람보다는 훨씬 많다.
(절대적 수치의 관점이 아니라 수요 대비 공급의 관점에서)

한 번 더 다르게 표현하면,

성판매를 하지 않고도 (다른 3D노동을 해서든, 하지 않고든) 최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음에도
성판매의 임금률(시간당 소득)이 높기 때문에 성판매를 선택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듀게 회원이셨던 그 분도 비슷한 취지로 말씀하셨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른 직업을 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판매의 노동의 보상이 비용보다 크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고,
다른 일 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그 일 하느니 성판매가 낫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것이라는 얘기죠.

심지어 딱히 3D 직종에 종사하느니 실업 또는 경제활동불참을 택해도 크게 문제 없지만
성판매를 하면 훨씬 높은 소비수준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성판매를 택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4. 비자발적 성판매

성매매 합법화/비범죄화 옹호와 비자발적 성판매 척결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성매매 합법화 후에도 비자발적 성매매는 처벌되어야 하고, 처벌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매매를 (다양한 형태로) 합법화한 국가들에서 이런 원칙이 견지되었고요.

따라서 성매매 합법화와 비자발적 성매매를 연결하는 것은 착오입니다.

택배기사, 식당 허드렛일, 때밀이 서비스 등은 모두 합법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 노동들이 타인의 물리력, 물리적 위협에 의해 강제된다면 그것은 불법이고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비자발적 성매매가 존재하고 그것이 처벌되지 않는다면
그 때문에 성매매를 합법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비자발적 성매매를 포함한 모든 비자발적 3D 노동, 인신매매를 완전히 뿌리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3. 비율들

3-1. 차상위 이상의 비율

대충 말해서 개인으로 보든 가구로 보든 자산과 소득을 적절히 평가해서
최하위 20% 를 빈곤층으로 정의하고 빈곤층을 제외한 80%를 '차상위 이상'으로 정의한다면,
차상위 이상에 속하는 성판매자가 꽤 많다는 몇 가지 파편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카더라"

월세 60~100만원 정도 하는, 강남의 원룸 오피스텔 거주자를 직종으로 분류했을 때
성판매자가 단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출처 

임차인(세입자)들: "우리 층 다른 방 사람들 대부분 '언니들'이다"
임대인들: 
"언니들이 많다. 
다른 수요자들이 보증금 비율을 올리고 월세 비율을 낮추려고 하는데 비해, 
'선수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쓴다. 
그래서 이 정도 월세가 지탱된다.
'선수들'은 가계약금 걸어 놓고 날짜에 안 오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계약금 걸어 놓고 안 오는 경우도 있다."

부동산 개발자, 투자자들도 비슷한 얘기를 많이 합니다.
강남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마포 쪽도 그렇다는 얘기도 들은 적 있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명품을 많이 사용한답니다.
자기 만족과 업계 내 경쟁력 유지를 위해 성형수술 및 고가의 각종 미용 관리도 정기적으로 받고요.

(투잡을 하는 경우, 심지어 소규모 개인기업의 사장인 경우도 있습니다.
파트타임으로(프리랜서 스타일로) 성판매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신입사원에 준하는, 연차가 짧은 직장인들이 선배들과 함께 업소에 가면
"니 옆에 앉은 '언니' 연봉이 니 연봉보다 높아."와 같은 얘기를 자주 듣는다고 하죠.)

물론 이 분들도 보증금 낼 목돈이 없어서 비싼 월세를 내겠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보증금 낼 목돈이 없는 소득/자산계층 하위자는 
비싼 월세를 내면서 마포나 강남에 거주하지 않죠.
가난한 사람들은 보증금 낼 목돈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정도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마포나 강남에 살고 싶어도 살 수 없으니까요.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은 이런 저런 이유로 굳이 마포나 강남에 살고 싶어 하지도 않고요.

물론 "카더라"이고, 엄밀하거나 과학적인 근거는 아닙니다.
하지만 간단하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치부할 만큼 근거없는 얘기도 아닙니다.

3-2. 자발:비자발의 비율

차상위 이상의 비율에 대한 얘기와 여러 면에서 겹칠 텐데..

간단하게 말해, 성판매자 전체 숫자를 엄청 크게 보기 때문에 95% 이상이라는 짐작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비자발적 성판매자가 10만명이라고 할 때,
자발적 성판매자가 90만명이면 10%고, 190만명이면 5%가 되겠죠.

군산화재참사 얘기도 있었는데,
그런 현실이 실재하지만, 그런 현실을 부정하지 않지만,
엄청나게 많은 수의 자발적 성판매자가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듀게 회원이셨던 그 분이, '대부분이 원해서 이 일을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분에게 성매매의 현실에 대해 모른다고 하신 분들이 모르는 이런 성매매의 현실을 지적하신 것이죠.

비율이 작다고 해서 비자발적 성판매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성매매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누가, 왜, 어떻게 성매매를 하고 있는가를 이해해야 하는데,
군산화재참사나 다른 쇼윈도 업소의 이미지는
성판매자 전체의 분포를 적절하게 대표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비자발적 성판매와 자발적 성판매는 다른 종류의 문제이고 따라서 다른 종류의 접근법, 대책이 필요합니다.
(비자발적 성매매는 무조건적 근절 대상입니다. 자발적 성매매의 합법화 여부와 무관하게.)

일부 사람들이 자발적 성판매자가 많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reverse naturalistic fallacy 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용어가 어느 정도 범용성이 있는지, 얼마나 엄밀하게 정립되어 있는지, 번역 용어가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자연주의의 오류(naturalistic fallacy)가 뒤집힌 오류,
당위, 가치 혹은 그에 대한 믿음 때문에 사실을 잘못 해석하는 오류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생계에 꼭 필요하지도 않은, 높은 소비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성판매를 하는 것이 매우 옳지 않고 비인간적이라는 믿음이 너무 강해서
그런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실제로 나타나는 방식은
"성판매를 하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물리적 강제와 경제적 강제(필요)에 의해, 울며 겨자먹기로 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고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성판매를 선택하며
비교적 분명한 자의식, 직업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실은 또 한 가지 사실을 시사하는데 그것은
그런 사람들의 근로 환경이 '그렇게 심하게' 열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근로 환경이란 주로 업주나 구매자와의 관계, 예를 들어, 구매자에 의한 폭행 가능성 등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심하게'는 상대적인 단어라 다투지 않겠습니다.
소득에 대해서도 상대적이고,
강제적 성판매를 기본으로 형성된 이미지에 대해서도 상대적이고,
성에 대한 관념에 대해서도 상대적이고, 
여러 가지를 기준으로 상대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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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자발성 여부 and/or 종사자의 경제적 계층 분포는 성매매 합법화 반대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성매매 합법화 반대는 어떤 식으로든 성의 특수성에 호소, 근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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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업 전부터 찔끔찔끔 정리했던 내용들 마무리해서 올립니다.
다른 주제들은 선별적으로 배쨀 생각인데, (호레이쇼님께 약속(?)했던 내용은 다 지킬 거에요.) 
이 주제는 어떤 두 분에 대해, 아무 근거도 없는, 빚진 마음이 있어서 더 미룰 수가 없네요.
다음 내용은 "성매매 합법화가 관련 범죄를 크게 증가시킨다"는 주장을 제가 받아들이지 않는 근거를 간략히 밝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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