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1 02:45
1. 미국에선 지금 북한이고 뭐고 관심없고 브렛 캐버노 (Brett Kavanaugh) 판사의 대법관 후보 지명에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2018년 7월을 마지막으로 기존 앤서니 케네디 (Anthony Kenndy) 대법관이 은퇴를 선언합니다. 이건 상당히 중요한 함의를 가지는데 왜냐하면 대법관은 종신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젊은 대법관을 지명하면 보수 혹은 진보 성향 판사를 몇십년 대법원에 박아넣을 수 있습니다. 특히 2016년 2월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심장마비로 죽었을 때 오바마가 대법관 지명권한을 갖고 있었는데 공화당 원내 대표가 인사청문회를 거부하는 바람에 지명권을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에게 뺏겼죠.
그럼 링크한 시사인 기사의 '대법관이 내린 결정으로 본 정치성향'을 한 번 볼까요. 가장 보수적인 사람은 클라란스 토머스이고 가장 진보적인 사람은 소니아 소토마요르 ('희망의 자서전'으로 유명한 미국 최초 히스패닉 대법관)로 되어 있습니다. 앤서니 케네디는 중도에 가까운 보수인데, 여기서 앤서니가 빠진 자리에 더 보수적인 인물을 집어넣으면, 중요한 안건이 생길 때마다 5:4로 보수적인 결정이 항상 이길 수 있습니다. 이 그래프에서 가장 보수적인 인물로 기록된 클라란스 토마스가 바로 아니타 힐의 증언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1991년 흑인 여성 변호사 아니타 힐은 직장 상사 클라란스 토마스의 성희롱/성추행을 고발했습니다. 클라란스 토마스는 자기가 흑인이라 민주당에게서 공격당했다는 주장을 했고, 아슬아슬하게 대법관이 되죠. 그러나 아니타 힐로 인해서 workplace sexual harassment란 개념이 드디어 미국 사회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배경 설명이고... 이번에 지명받은 브렛 캐버노는 보수성향 판사인데, 조지타운 프렙스쿨 - 예일대 학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했고 어머니는 메릴랜드 판사였으며 아버지 역시 변호사였습니다. 혈통적으로는 아이리쉬구요. 젊습니다. 50대예요. 주요 경력으로는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 특검팀 (그 유명한 스타 검사 휘하)에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2018년 8월 12일, 캐버노의 인사청문회 4일째에, 캐버노가 열일곱살 때 여학생을 강간하려고 했다는 주장이 나온 겁니다. 8월 16일에는 워싱턴 포스트가 그 여학생이 파올로 알토 대학의 크리스틴 포드 (Christine Blasey Ford) 교수라고 보도합니다. 8월 23일에는 데보라 라미레즈 (Deborah Ramirez)가 예일대 1학년 때 캐버노가 술자리에서 고추를 자기 얼굴에 들이대서 자기몸에 닿게 했다는 주장을 합니다. 같은 날 줄리 스웻닉 (Julie Swetnick)은 자기가 윤간당할 때 캐버노가 현장에 있었다고 발표합니다. 네번째 익명의 편지도 나와 있습니다만 그건 다루지 않기로 합니다.
+ 조금 더 첨부하자면 두번째 고발자 데보라 라미레즈의 경우, 당시 예일대 학생들 중에서 어느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성추행을 해서 여학생이 울먹였다더라는 이야기를 파티 후에 들었다는 증인들이 있습니다. 세번째 줄리 스웻닉은 캐버노가 윤간 현장에 있었다고 하는데 캐버노가 강간에 가담했다고 말하진 않습니다. 지금 인신공격은 고발자 세 명 모두에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세 사건 모두가 강간이 아닙니다. 첫 두 건은 sexual assault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세 사건 모두 증거가 없습니다. 특히 첫번째 사건의 포드 박사가 날짜와 장소를 특정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이게 법정으로 가면 도무지 유죄가 성립되지 않을 거라고들 예상합니다. 다만 캐버노의 고등학교 친구인 마크 저지 (Mark Judge)란 사람이 크리스틴 포드를 덮칠 때 현장에 있었다고 하기 때문에, 중요 증인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을 불러다 증언을 듣느냐 아니냐가, 공화당의 합리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겁니다.
그런데 포드 박사가 3일전, 2018년 9월 27일에 청문회에 출석하여 증언합니다. 증언은 구체적이었고, 누가 봐도 너무나 완벽한 모델 증인이었습니다. 도저히 공화당이 무시할 수 없는 증인인 겁니다. 백인, 금발, 좋은 집안에서 자란 여성, 교외에 위치한 집과 아이들 두 명, 예쁘지만 지나치게 예쁘지도 않은 (*각주: 팜므 파탈같이 보이지 않음), 교수, 심리학자, 굉장한 이력서. 문화적으로 공화당 의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우리 중 일부 (one of us)'인 겁니다. 겸손하고 분명하게 답변했죠. 얼마나 모범적으로 증언했는가 하면, VOX에서 포드 박사와 캐버노의 답변을 그래프로 정리했을 정도입니다. 포드 박사는 모든 질문에 답한 반면 캐버노는 답변을 많이 피합니다. 정치적으로 보아 이대로 캐버노를 대법관이 되도록 밀어붙이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댓가를 치를 겁니다. 영국의 잡지 The Economist는 9월 27일 청문회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Ms Blasey’s testimony was too convincing to ignore. His performance was too intemperate and political. (블레이시 씨 (=포드 박사)의 증언은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설득력있었다. 캐버노의 증언은 너무나 무절제하고 정치적이었다.)
* 이코노미스트는 친 시장적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칼럼이 이해가 되요. temper가 있는 대법관은 시장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죠. 그래서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또 씁니다.
But the job he aspires to is a weighty one and his temperamental fitness for it—even setting aside Ms Blasey’s allegations—seems less certain than it did. (그러나 그가 열망하는 직위는 무거운 것이며 그의 성깔이 이 직위에 맞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 블레이시 씨의 주장을 따로 떼어놓고 보더라도 말이다.)
이 사건은 미국사회에 상당히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증언밖에 없는 성추행 건이 있다. 여기는 법정이 아니다. (*법정이었으면 증거불충분으로 기소되지 않았을 것) 대법관 인터뷰다. 이 경우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까?
공화당 상원위원 제프 플레이크 (몰몬 출신 엘리트)의 답은, '조사한다' 였습니다. 1주일 동안 FBI가 조사한다고 합니다. 1주일 갖고 무슨 조사가 되겠냐 싶기는 합니다. 하여간 여성표를 의식한다는 정치적인 제스쳐이긴 한 거죠.
p.s. 80년대 미국 청년들 파티가 어땠는가에 대해서 조선일보가 배경설명을 했군요. 읽어보면 어떤 문화였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2. BBC에서 한국의 출산률에 대한 기사를 올렸습니다. 중간에 나온 그래프가 인상적이예요. 2065년에 한국 인구는 4천만명을 조금 넘게 된다는 것입니다. 2065년은 47년 후죠. 우리는 47년 후에 살아있을까요?
https://www.bbc.com/news/stories-45201725
3. 요즘은 넷플릭스도 안보고 그냥 유튜브에서 사람들이 올린 짧은 동영상이나 보고 있어요. 러시아의 젊은 기타리스트 알렉산더 미스코는 연주하면서 동시에 튜닝을 합니다. 조지 마이클의 Careless whisper 을 이렇게 해석하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YzgTMh21zhI
4. 브렛 캐버노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가 이게 아니었는데... 브렛 캐버노가 고등학교때 어떤 인물인가를 보여주는 증거로 고등학교 졸업앨범이 나왔습니다. 이 졸업앨범에서 캐버노는 자기가 Renate Alumnus라고 씁니다. Renate는 근처 가톨릭계 사립학교를 다니던 여학생의 이름이예요. 졸업앨범에는 또 이렇게 적혀 있어요.
“You need a date / and it’s getting late / so don’t hesitate / to call Renate.” (데이트 상대가 필요하지. 시간은 늦어지고 있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르네이트에게 전화해)
https://www.nytimes.com/2018/09/24/business/brett-kavanaugh-yearbook-renate.html
이 Renate Alumnus란 말을 한국인에게 설명하니까, 무슨 뜻인지 대번에 알더군요. 여기도 그런 표현이 있느냐면서. 제가 대학교를 다닐 때, 한 예쁜 여학생을 '**대학 버스'라고 뒤에서 부르는 남학생들을 만나보았죠. 왜 대학 버스라고 불렀느냐 하면, 이 놈도 배에 태우고 저 놈도 태운다는 뜻이었죠. 제가 그 사람과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그 여학생은 보통 여학생들보다 훨씬 예뻤고, 뭔가 자기 만의 룰대로 자신만만하게 고고하게 살아가는 사람 같이 보였죠. 남학생들은 아침에 그 여학생을 1층 로비에서 보게 되면, 하루 종일 마음이 들뜬다고 공공연히 쓰고 말했죠. 지금 다시 그 남학생들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그 여학생이 당신들에게 어떤 피해를 주었길래, 당신들은 그 여학생을 버스라고 모욕적으로 불렀나요? 그 여학생이 여러 남자와 잤든 말든간에 그게 무슨 상관이길래 그렇게 수근거렸나요? 그 여학생과 정말 사귄 적이 있나요? 만일 그 여학생이 당신과 잤다면, 젊은 시절 좋은 추억을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해야하지 않나요? 아침에 얼굴만 봐도 하루가 기분 좋아진다며 그녀의 관심을 갈구했으면서, 왜 뒤에서는 이 놈도 타고 저 놈도 탄다고 비하했나요?
2018.10.01 05:19
2018.10.01 07:23
그래선 안되죠. 전 남자가 걸레란 소리 듣는 건 목격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여자들만 그렇게 천대받는단 말이죠.
2018.10.01 12:18
이런걸 '빌어 먹을 물타기'라고 하죠.
한 7년전? 듀게에서 어떤 분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남자(파트너를 상습적으로 때리고 심삼하면 바꾸어 대던 그런)를 지칭해서 '걸레'라고 했더니 남자사람 회원들 서너명이 우르르 몰려와 생 난리를 치더군요. 여자를 대상으로 '걸레'라는 소리에도 저렇게 날 뛴적이 있었을까? 싶은 그런 부류의 양아치들이었으니 전 그냥 개무시했었습니다. 일종의 미러링이었는데 반응이 참 화끈했던 경험입니다.
자 이제 다른 물타기 갖고 와보세요.
2018.10.01 15:28
2018.10.01 17:29
2018.10.02 05:15
2018.10.01 07:03
2018.10.01 07:25
그건 결코 칭찬의 의미가 아니예요. 조롱이죠. 그걸 갖고 칭찬이라고 둘러대는 것 조차도 상대방의 지성에 대한 조롱입니다.
Renate Alumnus에 나온 그 Renate 씨도 Horrible, Hurtful 하다고 인터뷰했습니다. https://www.nytimes.com/2018/09/24/business/brett-kavanaugh-yearbook-renate.html
2018.10.02 05:18
2018.10.02 05:23
'형'은 사람이기나 하죠. '걸레'나 '버스'는 사람 취급도 아니죠.
2018.10.01 08:56
2018.10.01 12:35
그래프를 보니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거침 없이 폭락하는군요. 그리고 2000년대부터 그냥 완만한 상태
즉 현재 목도하고 있는 출산률 문제는 갑작스러운 문제도 아니고 혹자들이 말하는 여권신장? 여성들 의식변화와는 별 상관 없어 보입니다.
그보다는 일부 인구통계학자들이 말하는 여성 노동력까지 쥐어 짜내어야 일반 시민들의 가구당 생계가 유지되게 만들어 버린 자본의 역할이 큰거 같아요.
47년후면 아직 100세는 안되니 사고를 당하거나 불치병이 생기지 않으면 살아는 있을거 같긴한데 그 때까지 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안들어요. 비관론자라서 그런 것도 있겠죠.
2018.10.01 17:53
2018.10.01 18:39
솔직히 워낙 오래된 일이고 어렸을 때 일이라서 정상적으로만 대응했어도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르는 문제죠. 당시의 섹시즘과 frat culture, 알콜 문화를 비판하고 자기 반성하고, 난 그런 기억이 전혀 없지만 누군가에게 그런 일을 당했다면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 문화의 방관 또는 참여자로서 사과한다 정도로 했으면, 그걸 누가 뭐라고 했을까요. 어차피 투표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그런데 왜 이렇게 잘못 들킨 아이처럼 굴고, 굳이 사소한 것까지 다 거짓말을 했느냐는, "원래 성격이 그 따위라서"와 "트럼프한테 잘 보일려고, 트럼프식으로 대응했다" 정도인 것 같네요.
또 슬픈건, FBI 수사에서 기적이 일어나서 이 판사가 낙마한다고 했을 때, 그보다 더 보수적인 판사들이 플랜B로 기다리고 있다는 거죠. 그러면 Roe v Wade는 뒤집히는 게 더욱 확실해지고.. 차라리 이대로 임용이 되고, 그 분노를 통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고, 대선을 이긴 후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서 이 판사를 탄핵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좋은 시나리오 아닌가란 얘기도 나오는데, 상원 2/3이 필요한 탄핵이 성공할 리가 없기도 하죠. 정치적 고려를 떠나서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낙마를 시키는 게 옳겠죠.
2018.10.01 18:47
음. 더 보수적인 판사들이 후보자로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저는 피해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을 위해서 브렛 캐버노는 낙마해야한다고 봐요. 왜냐하면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성향과는 별개로, 청문회에서 미성숙하면서도 정치적인 모습을 보여줬거든요. 지금 그 자리에 어떻게 올라갔을까 궁금해지는 청문회였어요.
2018.10.01 19:04
네, 동의합니다. 모든 사실관계를 떠나서 그 판사가 청문회에서 보인 행동만으로 최고 법관 자격이 없다는 건 명백하죠. 힐러리의 복수라느니 민주당의 공작이라느니 이런 말 때문에, 법관이 된다면 민주당과 관련된 모든 재판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더라고요. 카바노가 몇년전 성추행 문제로 사임했던 알렉스 코진스키 연방고법판사의 시보로 있었고, 카바노는 얼마 전에 불명예 퇴진한 코진스키 판사의 아들을 시보로 고용했다고 하더라고요. 이 셋의 공통점은 예일대 출신이란 거고요. 미국 상류층 백인 남성 간의 끈끈한 연대와 그들의 문화가 어떤지가 상상이 가는 부분이죠. 저따위로 행동해도 자기에게 국가의 최고 법관 자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 오만함도 있고요. 끊임없이 자기가 예일에 가고 성적이 최상위고 스포츠도 얼마나 잘했는지를 외치던 모습은 정말...
상식적인 정부라면 카바노 낙마시에 여성 판사인 Amy Coney Barrett를 지명할 걸로 봅니다. 그렇게 되면 최소한 여성이 한명 늘어난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을 텐데, 트럼프 정부는 상식적인 정부가 아니라서..
2018.10.01 19:18
또한 브렛 캐버노는 자기가 예일대에 어떤 연줄도 없었고 열심히 노력해서 예일대에 갔다고 청문회에서 주장했는데, 뉴스위크 보도에 따르면 레거시 입학이었더군요. 할아버지가 예일대 동문이라고 합니다. 레거시 입학은 일반 입학에 비해 세 배나 입학 확률이 높다고 해요.
https://www.newsweek.com/kavanaugh-said-he-had-no-connections-yale-he-was-legacy-student-1145286
또한 예일대 동문 한 명이 브렛 캐버노의 음주 습관은 그가 청문회에서 증언한 것과 다르다고 인터뷰했네요.
https://www.bostonglobe.com/news/politics/2018/09/30/yale-friend-says-brett-kavanaugh-was-heavy-drinker/pR2dryAc0s1LrOLbd0sAHJ/story.html
538에서 브렛 캐버노의 보수 성향을 그래프로 그렸네요.
https://fivethirtyeight.com/features/how-conservative-is-brett-kavanaugh/
2018.10.02 03:17
참고로 브렛 캐버노가 자라난 메릴랜드 베데스다는 엘리트끼리 배타적(cliquish)이기로 유명합니다. 포드 박사가 이 곳을 떠나 자기를 다시 만들었다(reinvent)고 신문에서 기술하는 이유가 있지 싶네요. 여기 NIH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가 있어서 고학력자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리고 포드 박사가 석사를 받은 페퍼다인 대학은 아주 강력한 기독교 대학입니다. (만화영화 'The Simpson'에서 목사가 자기는 페퍼다인에서 학위했다고 말하는 대사가 있을 거예요.) 박사를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받았고, biostatistics 로 스탠포드에서 석사도 하다 더 받았네요. 이 분 경력도 엄청난데 청문회에서는 겸손히 말하고 넘어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