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오브 브라더스> 9화. 폐허를 정리하고 있는 독일인들 사이에서 네 명의 악사가 구슬픈 음악을 연주합니다.

승리한 군대의 병사들답게 반파된 건물 위에서 이를 내려다 보는 이지 중대원들. 

그 중 조 일병이 "모차르트나 감상하자"라고 말 하자, 

마침 등장한 있는 집 자식이자, 배울 만큼 배운 사람 닉슨 대위가 말을 받습니다.

"베토벤이야"


그때 악사들이 연주한 '현악 4중주 14번'은 베토벤 스스로 최고의 걸작이라 평했던 4중주 곡이었습니다.

뛰어난 쇼맨십과, 대중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는 발군의 통찰력으로 

락으로 치자면 관객의 사랑을 끊임 없이 갈구하는 글램락 스타와 같은 생을 살았던 베토벤.

그의 음악은 달려야 할 때 달려주고, 이쯤에서 찢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을 때쯤 정확히 샤우팅을 날려줬지만,

왜인지 14번 그 곡만은, 곧 익숙지 않은 소금기에 온 몸이 휘감길 것이 두려운 강물처럼 길게, 길게 현을 밀고 나갑니다.

오죽했으면 완성된 곡을 들은 친구가, 얘 왜 이래? 라며 걱정을 다 했을까요?


구시대의 망령이 기요틴에 목이 달아나는 환희도 보았고, 꿈꾸었던 공화정의 희망이 유린 당하는 꼴을 보았으며,

오선지로 밥 먹는 중인 된 자로서 인생사 쓴맛 단맛 일찌감치 다 보았던 베토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가사처럼, 이 곡을 완성한 뒤 그는 친구의 우려를 배반하지 않고 8개월 뒤 별세합니다.

그 스스로 하나의 시대였으며, 하나의 시대를 막 내리게 한 자였고, 죽음으로써 하나의 시대를 출산한

빰빠빠빰의 주인공, 클라식 계의 데이빗 보위. 락스타 베토벤...


<밴드 오브 브라더스> 의 제작진이 바로 그의 곡, 4중주 14번을 굳이 선곡한 데에는 의미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때는 마침내 히틀러가 자살한 직후. 하나의 광풍 같던 시대가 끝이나고, 또 하나의 시대가 막 열리려 하고 있던 격변기 속의 격변기.

잔인하지만 때론 변화는 무고한 자들의 희생을 발판삼아 커가는 법. 더군다나 멸망의 가운데서 담담히 연주를 하는 4중주 악단이라니요. 

너무 대놓고 타이타닉 호의 악사들에 대한 오마쥬 아닙니까? 


해서, 괜히 꼽아 보는

그게 어떤 장면이든 사연 있어 보이게 만드는 브금 베스트 파이브!

어떤 장르라도 상관 없습니다. 슬픈 멜로, 극한직업 류의 코미디, 이명세 감독 류의 후까시...

이 노래들을 품에 안는 순간, 그게 무엇이든 그 무엇이 되고야 만다.....


5위. Donde voy 


어느 여고딩이 파라다이스 분식집 창가 자리에 앉아 혼자 떡볶이 2인분을 씹어먹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브금으로는 이 노래가 흐릅니다. 그녀는 지금 슬픈 걸까요? 기쁜 걸까요? 아니면, 오늘따라 유난히 떡볶이가 매운 걸까요?

진실은 그게 무엇이든 선율과 함께 석양의 저 편으로 걸어가는 겁니다...


4위. Soft on me


보았느냐? 섹시란 이것이다. 몸소 피아노 위를 나뒹구시어 그저 헐벗으면 섹시인줄 알았던 몹쓸 자들에게 큰 가르침 주신

우리의 영원한 누이 미셸 파이퍼. 그녀가 열연한 작품 ... 토요명화 판 제목은 <사랑의 행로> 

그 중에서도 이 음악을 심야의 어느 사악한 FM 방송 때문에 기억하는 자들이라면 응당 

그 어떤 장면에 이 브금이 흐르든, 설사 나라가 망하고 새벽에 연탄불이 홀랑 꺼져버린 비참 속에서도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듬이와.. 올가미...


3위. How am I supposed to live without you


어느 날, 죽집에서 저녁을 먹던 저는 이어폰으로 이 노래를 듣고 있었고,

눈으로는 티비에 틀어져 있던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았습니다. 마침내 숨겨왔던 진심을 토로하며 절규하는 나문희 여사님과 이에 놀라 소스라치던 박해미씨의 얼굴을...

그것이 설령 호박고구마를 두고 벌어진 헤프닝이었을 지언정, 그 순간만은 저는 그것이 호박고구마 뒤에 수줍게 감춘 금지된 사랑이라... 읍! 읍읍!!!


2위. Gone the rainbow


그게 무엇이든, 어떤 장르이든, 모두 취합하여 결국 이루지 못 한 첫사랑의 추억으로 소환하고야마는 마법의 브금

책상 위에 그저 펴놓기만 한 수학의 정석과, 심야 라디오 디제이의 엽서 소개, 마루에서 에밀레종처럼 그 애의 얼굴과 함께 아련히 울려오는 괘종시계의 두 점 반 치는 소리...

내 볼 위에 와닿던 너의 뜨거운 입술, 사랑한다 사랑한다 속삭이고 돌아서서 터져버린 너의 눈물...

소주를 부르는 바로 그 노래. 피터 폴 앤 매리의 곤 더 레인보우 되겠습니다.


1위. She is



이 노래의 제목은 "숨겨왔던 너의" 가 아닙니다.

너무 뻔해서 안 꼽으려 했지만, 그럼에도 1위의 영광을 안겨준 것은

나는 솔직히 뭐가 대단한지는 딱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다고들 하니니 조용필을 가왕이라 불러주는 예의 같은 거

이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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