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용산 드래곤시티라는, 아마도 어딘가의 지명을 뜻하는 듯한 용어를 몇 번 들었어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어서 몰랐는데 그게 뭔지 오늘 알게 됐죠. 아 여기서 쓰는 오늘은 이미 며칠 전이예요. 쓰다가 말았던 글을 다시 이어서 쓰는 거라서 오늘은 오늘이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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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오늘은 용산에서 친구와 만났어요. 용산cgv는 매우 붐비고 있었어요. 친구와 '완전히 살아난 용산'에 대해 좀 이야기를 하며 식당가를 거닐었어요. 어느 가게를 가던 장사가 안 되는 가게가 없었거든요. 그러던 중 그가 한탄했어요.


 '우리가 만나서 하는 얘기라곤 온통 여자와 부동산 얘기뿐이게 되었군. 우리의 폭은 너무도 좁아졌어.'


 그렇게 말하는 친구에게 대답해 줬어요. 그래봐야 옛날에는 게임 얘기를 하지 않았냐고요. 결국 똑같은 거잖아요? 대상과 관심사가 바뀌었을 뿐이지 대화의 틀은 같은거니까요.


 '이봐, 이건 새로 나온 게임 소프트 얘기를 하는 것과 사실 똑같은 거라고. 여자는 우리의 욕망의 대상인 것이고 부동산은 우리를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니까. 결국 모든 건 욕망에 관한 이야기일 뿐인거야.'


 바뀐 건 욕망이 가리키는 방향뿐이다...결국 우리는 10년 전과 똑같다고 힘주어 말했지만 친구는 고개를 저었어요.



 2.아이파크몰이 너무 붐빌 때마다 친구와 나는 종종 용산 전자랜드에 가곤 하죠. 장사가 너무나 잘 되지 않는 용산 전자랜드의 롯데시네마에 말이죠.


 한데 오늘은 그곳으로 가다가...뭔가 이상해서 발을 멈췄어요. 을씨년스럽게 모여있던 전차들이 있던 곳엔 큼직한 건물이 세워져 있고 주차장에다가 작은 숲까지 조성되어 있는 거예요. '나의 용산은 이렇지 않아! 이렇게 세련되지 않았다고!'라고 외치려다가 한 번 가보기로 했죠. 그리고 알게 됐어요. 용산 드래곤시티라는 곳은 호텔 4개가 공존하는 거대 호텔몰(?) 같은 곳이라는 거요. 1층을 대충 둘러본 후 친구에게 결론을 들려 줬어요.


 

 3.'유감이네. 이 호텔은 허세가 몇 퍼센트 정도 모자라.'라고 말하자 친구가 말했어요. 곳곳에 세워진 배너를 보니 회원을 모집하는 것 같다고요. 친구가 이런 곳의 회원권에 관심을 보이다니...대체 무슨 일일까 싶어서 물어보자 대답이 돌아왔어요. 조카들이 집에 와있는 중이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그들을 피해 가능한 늦게 들어갈 거라고 말이죠. 그리고 앞으로는-아마도 조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개인적인 공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며 회원권에 관심을 보였어요.


 '나에겐 좀 쉴 곳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뻔한 걸 물었어요. '왜 그들은 그들의 집을 놔두고 자네 집엘 오는 거지?'라고요. 물론 무의미한 질문이었죠. 조카들이 오겠다고 하면 그건 막을 수 없는 거거든요. 아이들...그 녀석들은 무적이니까요. 어쨌든 호텔을 좀더 돌아보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가 봤어요.



 4. ......램보.



 5.의외로 위층의 바는 괜찮았어요! 너무 건조하지도 않고 너무 날티나지도 않아서 적당히 모임 장소로 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바깥의 더위가 가실 때까지 시간이나 때우려고 술을 좀 시키고 자리에 앉았어요. 그리고 친구에게 물어봤죠. 네 조카들을 보고 있으면 자식을 낳고 싶은 마음이 드느냐고요. 친구는 잠깐 침묵하다가 대답했어요.


 '내 자식은 그들과 다를거라고 믿네.' 



 6.친구는 회원권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았어요. 보아하니 3천만원 정도의 회원권을 사면 연회비가 있고, 8천만원 버전의 회원권을 사면 연회비 없이 다닐 수 있는 시스템이더군요. 업장 입장에서도 마음대로 굴리게 해주는 8천만원을 받는 게 굳이 연회비를 받는 것보다는 나을테니, 나름 합리적인 것 같았어요.  


 한데 전에 회원권을 사던 일기에 썼듯이 회원권도 부동산 같은 거잖아요. 친구는 그 점을 걱정하는 듯했어요. 이걸 사면 취득세를 내야 하고...취득세가 있다는 건 이걸 사는 순간 국가의 관심을 끌 수도 있다는 거죠. 쓸데없는 걱정 같아 보여서 물어봤어요. 이 정도 회원권쯤은 그동안 직장 다닌 걸로 소득이 증명되지 않느냐고 하자 친구가 '아냐. 위험해.'라고 대답했어요. 그리고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투덜거렸어요. '젠장. 요즘 너무 단기간에 재산이 지나치게 많이 불어나버렸어.'라고요. 뭐 그런 돈들이 있는 법이잖아요? 누가 와서 이걸 좀 설명해 보라고 하면 어디서 났는지 설명해내기 힘든 돈들 말이죠. 하긴 그런 게 생기면 한동안 나대지 말고 살아야 하죠.

 


 7.친구가 자신감에 대한 얘기를 했어요. 자신감을 가지고 싶다...는 말을 말이죠. 언제나 그렇듯이요. 친구가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확실히 생각이 다르다는 걸 깨달아요. 나는 무엇을 얼마나 얻었는지만을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하지만 친구는 어떻게 얻었는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거예요. 이건 비효율적인 사고방식이죠. 나쁘다는 게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얻었는지에 더해서 어떻게 얻었는가를 문제삼는 사람은 인생에서 신경쓸 게 더 많아지니까요.


 그래서 글을 쓰라는 말밖에 할 게 없었어요.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걸 타파할 수 있는 건 글을 써서 인정받는 것뿐이니까요. 


 축구 선수는 나이를 먹으면 최고의 축구를 할 수 없게 되지만 최고의 글은 언제라도 쓸 수 있다...자신의 최고의 글을 써내는 건 언제라도 늦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자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8.해가 지고 더위가 좀 가셔서 전자랜드를 한바퀴 돌아봤어요. 역시 영화관은 텅텅 비어 있었어요. 친구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빙긋 웃었어요. 그야...이건 남의 장사가 잘 안되어서 기뻐하는 게 아니라 이곳만큼은 아직도 우리가 어렸던 시절과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 기뻐하는 거예요. 이제 주위에 건물들이 들어서고 관광객이 찾아오고 오피스과 거주지들이 다 차면 전자랜드 롯데시네마도 붐비는 곳이 되겠죠.


 돌아오며 계산기를 두들겨보니...아무리 이곳에 면세점이나 부대시설이 많이 들어서도 드래곤시티의 객실 수는 오버인 것 같았어요. 객실수가 대략 1700개 가까이 되는 것 같던데...한한령이 완전히 풀리고 중국인들이 북적거려도 저걸 다 커버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게다가 식음료 업장도 다른 호텔에는 종류별로 하나씩만 있는 게, 비슷한 것들이 여러 개씩 있는데 저게 다 유지가 될까 싶기도 하고요. 용산은 지금 발전중이지만 뭘 믿고 저기에 저렇게 큰 호텔을 때려넣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긴 완전히 중국인들을 위한 곳 같아. 좀 촌스럽지만 이름에 '드래곤'이 들어가는 것만 봐도 말야.'라고 말하자 친구가 맞장구를 쳤어요. 가보지 못했다면 용산 드래곤시티를 용산 드래곤힐스파 2호점쯤으로 잘못 알고 있었을지도요. 나는 때때로 용산의 을씨년스러운 밤거리를 걷는 걸 좋아하는데...앞으로 용산이 완전히 개발되면 그럴 일도 더이상 없겠구나 싶었어요.



 9.그러고보니 제작년에 용산 배회 번개를 열었어요. 위에 썼듯이 을씨년스러운 용산 밤거리를 걷는 번개 말이죠. 일단 만나서 영화를 봤는데 한 사람은 가버리고 남은 사람과 거리를 거닐었죠.


 이리저리 걷다가 그 자가 '그러고보니 아는사람이 여은성씨를 만나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예전에 쓴 글을 보고 말이죠.'라고 중얼거렸어요. 씁쓸한 기분이 들어서 대답했어요.


 '그 사람에겐 미안하게 됐네. 그 재미있던 여은성은 이제 만날 수가 없거든. 나는 요 몇년 사이에 너무나...보통이 되어버렸어. 재미있는 부분은 이제 사라져버렸지. 날 만나봐야 재미볼 것도 없어.'


 그래요...위에서는 '욕망의 방향만 바뀌었을 뿐이지 나머지는 다 똑같다. 변한 건 없다.'라고 썼지만 사실은 아니예요. 인간은 무엇을 추구하느냐...만으로도 완전히 바뀌어 버릴 수도 있거든요.


 왜냐면 몇 번 썼듯이 나는 욕망 쪽으로 '다가가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알 수 없는...이상하고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단 말이예요. 욕망의 대상이 이쪽으로 '다가오길' 바라죠. 그렇기 때문에 욕망의 대상이 인간이 되어버린다면 유니크함은 급속도로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왜냐면 욕망의 대상이 욕망하는 것들...즉 뻔하고 재미없는 것들을 나도 체화하게 되어버리니까요. 남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 내가 인간을 욕망하게 된 뒤로는, 그들이 먼저 내게 다가오게 만들기 위해 뻔한 것들과 동화해 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나의 재미있는 부분은 사라져 버린 거예요. 


 음 하지만 괜찮아요. 어차피 개인의 유니크함 따위는 별 거 아닌 텍스쳐에 불과하니까요. 그건 매우 쉽게 벗겨질 수 있는 한낱 텍스쳐일 뿐이죠. 텍스쳐가 뜯겨져나간 뒤로는 인생이 정말 얄팍해지긴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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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런데 용산 드래곤시티는 좀 알아놔야겠어요. 지금 운동하는 곳에서 가깝기도 하고...서울 한복판이라서 앞으로 사람을 만날 때 쓸모있어 보이기도 해서요. 한데 업장이 졸라 많단 말이예요. 애프터눈 티를 마실 만한 업장...술을 간단히 한잔 할만한 업장...술을 안 간단히 할만한 업장...남자와 단둘이 만날 만한 업장...여자와 단둘이 만날 만한 업장...잘 모르는 사람끼리 여럿이 모일 만한 업장...잘 아는 사람끼리 여럿이 모일 만한 업장 등등 말이죠. 그런 게 하나씩 있는 것도 아니고 겹치는 컨셉으로 두세 개씩 있어요. 


 할것도 없고...업장별로(객실 포함) 한번씩 돌아보고 싶은데 혼자 갈 수는 없으니 드래곤시티에서 가보고 싶은 곳 있음 쪽지주세요. 같이 한군데씩 돌아보죠. 맨 꼭대기에 있는 풀장+바는 8월 말까지만 하는 모양이예요. 풀장 바는 입장료가 있는데 거기 가게 되면 입장료만 각자 내는 걸로 하고 내가 카바나랑 식음료를 쏘기로 하죠.


 ...생각해 보니 잘 아는 사람끼리 여럿이 모일 만한 업장은 필요가 없네요. 잘 아는 사람이 여러명씩이나 있지는 않으니까요. 한데 어차피 인간은 잘 알게 되면 곤란해요! 인간은 상상할 구석이 많은 시기가 좋죠. 상대를 상상할 구석이 적어질수록 상대가 무서워져버려서 결국 멀어지게 되거든요. 헤헤. 그리고 다시 상상할 구석이 많은 사람을 찾아내서 어울리는 거죠. 그건 여러분도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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