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돈이 세상의 전부라고 대놓고 외치는 인간들이 많아요. 뭐 인식의 폭에 따라 그건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또한 사실이예요. 교환가치로서의 돈의 한계는 넓어지고 있고 지나치게 첨단화된 도시의 구속성은 더욱 강해지고 있으니까요. 결국 우리들 인간들은 유목 생활을 끝내고 도시의 시민이 되어버렸으니까요. 


 그것도 서울이라는 이 초거대 메가로폴리스...이곳에서는 시민조차도 도시를 구성하는 파츠의 일부가 되어버리죠. 메가로폴리스에서 산다면 하루를 살아가는 내내...마주칠 수 있는 거라곤 가치가 아니라 가격일 뿐이예요. 그것은 때로는 숨막힐 정도예요.


 여기서는 직접 먹잇감을 사냥할 사냥터도 없고, 먹잇감을 죽이고 다듬을 기회도 없고, 직접 요리할 일도 없단 말이죠. 그냥 돈만 내면 누군가가 잡은 고기를 누군가가 다듬어서 누군가가 요리한 뒤에 눈앞까지 갖다 주죠. 심지어는 돈을 내는 것조차 인공적이예요. 사물을 교환하는 게 아니라 데이터 조각이 담긴 카드를 내미는 게 전부니까요. 지나치게 첨단화되어서 기괴해져버린 곳에서 살아가는 거니까 돈이 세상의 전부가 된 건 기괴한 일 축에도 못 끼죠.



 2.어쩔 수 없이 이 도시에 있는 의미있는 장소는 두가지뿐...일터와 유흥가뿐이예요. 일터와 유흥가 이외의 장소는 그저 풍경들일 뿐이죠.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에 그곳에 내려서 그곳을 관찰할 일따윈 없어요. 일터로 가거나 유흥가로 가는 도중에 지나쳐가는 풍경들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유흥가에 도착해봐야 모험이나 설렘 따위는 없어요. 가격표만이 있을 뿐이죠. 가격은 높거나 낮거나, 또는 그 가운데 어디쯤이거나겠지만 까놓고 말하면 그건 둘 중 하나일 뿐이예요. 당신이 미친짓을 할 수 있느냐 미친짓까지는 할 수 없느냐. 당신이 남들에게 미친짓을 시킬 수 있는 가격인가 미친짓까지는 시킬 수 없는 가격인가.


 그리고 당신이 남들에게 미친짓을 시킬 수 있게 된다고 해도 거기서 끝이 아니죠. 남들에게 미친짓을 시킬 수 있게 되면 아무에게나 미친짓을 하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좀더 특별한 사람에게 미친짓을 하도록 만들고 싶어질 테니까요. 좀더 특별한 사람이 미친짓을 하는 걸 구경해야만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상태니까요.



 3.가끔은 그래요. 어쩌면 모험이나 설렘이란 건 매일 무심히 지나쳐가는 풍경들 안에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곤 해요. 술을 마시면 그런 기분이 들죠.


 그러면 바로 택시를 타고 들어가지 않고, 괜히 새벽에 낯선 거리나 낯선 골목길을 걸어다녀 보기도 해요.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요. 아주 가끔씩 겪을 수 있는 소요를 빼면. 어쩌면 이곳이 너무 첨단화된 도시라서 그럴 지도 모르죠. 좀 멀리 나가면 부천역...좀더 멀리 나가면 지방...그곳에는 아직 비일상이나 야만성이 남아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부천역이나 지방은 너무 머니까 안 가요.



 4.휴.


 5.뭐 말은 이렇게 불만인 척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세상이 나아요. 끝없이 유목하고...끝없이 유랑하고...끝없이 환경과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 세상에서 태어났다면 훨씬 힘들었겠죠. 의외로 잘 적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마 그런 세상에서 잘 적응해서 살았다면 살인자가 됐을 테니까요. 

 도시에서는 사람과 만나다가 그냥 헤어져버릴 수 있잖아요? 이름도 다른 걸 쓰고, 메신저는 라인만 가르쳐 주고, 숨기로 작정하면 천만명 가까이 살아가는 도시의 사람숲으로 숨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막을 유목하면 누군가와 헤어질 때 그냥 헤어질 수가 없었을 거예요. 헤어진 놈이 언젠가 다시 불쑥 나타나서 나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뭔 짓을 할지 모르니까 이별하기로 작정하면 반드시 죽였겠죠. 

 살인은 인간을 가장 피폐하게 만들어버리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피폐해져야만 한다면 했겠죠.


 6.하지만 도시의 생활 또한 역시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들곤 해요. 알아서 맞춰진 온도...알아서 맞춰진 습도...알아서 보존되는 식량...물론 이건 좋은것들이지만 할일이 아무것도 없으면 사람은 돌아버리거든요.

 그래서 유사적인 유랑...유목을 해보곤 해요. 아무 역이나 가서 그냥 걸어다니고 돌아다니는 거죠. 미술학원이 보이면 괜히 한번씩 들어가서 그림을 구경하기도 하고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식당이나 카페가 눈에 띈다 싶으면 한번씩 가보곤 해요. 그곳이 나를 완전히 지치게 만들 때까지요.

 전에 썼듯이 대중 교통을 이용할 수 있으면 택시를 잘 안 타요. 그래서 그런 낯선 곳에 가면 한가지 원칙을 정했어요. '낮인데도 택시를 타고 돌아오고 싶어질 정도로'지칠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말아보자고 말이죠. 


 7.요즘은 낯선 곳에 가면 미술학원이 아니라 부동산 앞을 어정거리는 일이 잦아졌어요. 부동산 앞에 붙어있는 땅값...빌라 1칸의 매매가...빌라 건물 전체의 매매가...역에서 가까운 거리의 매매가...역에서 먼 거리의 매매가...이런 자료가 많이 붙어 있을수록 그곳에 대해 유추해볼 수 있죠.

 그렇게 보고 있으면 안에서 사람이 불쑥 나와서 '들어와서 차나 한잔 하시죠.'라고 말하곤 해요. 예전엔 거절했어요. 왜냐면 나는 살 마음이 없으면 옷가게든 술집이든 잘 안 들어가잖아요. 하지만 요즘은 그런 제안을 받으면 'ㅎㅎ 그럴까용.'하고 들어가서 차나 마시며 그 지역에 대해 노가리를 까곤 해요. 가능성은 낮지만 그곳으로 이사갈 가능성이 0%는 아니니까요.

 
 8.그래서 요즘은 그냥 어정거리는 게 아니라 '테마'가 생겼어요. 어딘가에 가서 돌아다닐 때 '이곳에 이사오는 건 어떨까' 라는 가정을 늘 하며 둘러보거든요.

 일단 중요한 건 생활물가. 지금 사는 곳은 나가서 외식을 하면 서울 기준으로 탑급이거든요.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니 퀄리티는 비슷하면서 외식비가 이곳의 3분의 2정도 되는 곳이 서울에 많아요. 건물 가격도 중요하지만 한달 식비를 일단 왕창 아낄 수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식당들을 슬슬 둘러보며 가격표를 눈여겨보곤 해요. 그리고 다른 곳으로의 접근성. 잠실까지는 얼마나 걸리는지...중구까지는 얼마나 걸리는지...홍대까지는 얼마나 걸리는지...한 번에 갈 수 있는지 등등도 따져보고요.

 그래서 한때는 지나가는 풍경일 뿐이었던 곳들도 제법 알게 되긴 했어요. 아직 멀었지만요.


 9.나는 캬바쿠라에 가면 많이 썼다거나, 현금으로 낸단 이유로 깎지 않아요. 그들이 알아서 5만원이나 10만원 정도 빼주는 경우도 있지만 이젠 기본적으로는 깎지 않게 됐죠. 그곳에서 가격 흥정을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예요. 왜냐면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그곳에서의 시간에는 별로 의미를 두지 않거든요. 내가 그곳에서 사려는 건 그곳에서 놀고 술마시고 노래부르는 시간이 아니라 그들의 '호감'이니까요. 

 대개의 사람들은 가게에서 노는 게 목적이라 가게에 가지만, 내가 가게에 놀러가는 건 호스티스나 사장을 '가게 밖으로' 불러내기 위한 밑작업 단계거든요. '밖에서' 보는 게 목적인 거지 가게 '안에서' 보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애초에 접근 방향이 다른 거죠. 나도 가게에서 노는 게 목적의 끝이라면 당연히 가격을 깎겠죠. 진짜 핵폭탄급의 진상들은 50%까지도 깎지만...그런 건 인간이길 포기한거고요. 나는 하려고 하면 15%나 20%까지는 깎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의 호감을 사러 간다는 방향에서 접근하면, 거기서 몇 퍼센트 깎아보자는 말을 꺼내는 건 완전 마이너스란 말이죠. 서비스를 사는 거거나 현물을 사는 거라면 얼마든지 협상할 수 있지만 호감을 사러 갈 때는 가격 협상은 안하는거예요.


 10.이 말을 바꿔서 말하면, 나는 똑같은 퀄리티만 보장된다면 미친듯이 가성비를 따진다는 뜻이예요. 옷도 주식도 그리고 부동산도요. 

 아무리 가격을 깎아도 상대가 똑같은 퀄리티의 재화를 제공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가격을 깎아요. 아니 그야 옷이나 뭐 그런 건 귀찮으니까 안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게 부동산 정도의 사이즈가 되면 나는 정말 집요하게 가격을 깎죠.

 위에 이사 얘기를 써서 누군가는 '응? 곧 이사를 가는 건가?'라고 여길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아니예요. 이사를 가는 건 아무리 빨라도 2년 후예요. 하지만 고작 2년 남은거죠. 이 2년 동안 비슷한 품질이면서 가장 싼 부동산을 알아보려면 서울 전체를 이잡듯 뒤지고 다녀야 하거든요. 가격과 접근성만 괜찮으면 서울 외곽으로 가도 좋고요. 서울 전체와 서울 외곽에 빠삭하게 되기엔, 2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죠. 기본적으로는 이사를 가도 이 근처로 갈 생각이지만 그 편의성을 넘는 가격과 잠재력을 가진 부동산을 좋은 가격에 잡을 수 있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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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내게 좋은 가격이란 건 그걸 나한테 팔 사람에겐 매우 나쁜 가격이란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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