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버닝이라는 영화에서 벤이라는 녀석이 말하죠. '노는 것도 일이다.'라고요. 이게 무슨 헛소린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맞는 말이예요. 전에 썼듯이, 당신이 노동이나 의무에서 해방되어봤자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하루 24시간뿐이거든요. 당신이 원래 당신의 것이었던 하루 24시간을 돌려받아 봤자 남는 건 비어버린 24시간일 뿐이란 말이죠. 그리고 돌아버리기 싫다면 그 24시간을 무언가로는 채워넣어야만 해요. 


 다른 사람이 절대 채워주지 않는 구덩이를, 당신이 직접 채워넣어야 한단 말이죠. 



 2.그 전의 인생...이른바 '자유롭지 못한 인생'에서는 '논다'라는 게 의무적인 스케줄과 의무적인 스케줄의 사이에 생기는 빈틈...그 작은 빈틈에 존재하는 해방이었어요. 하기 싫은 것과 하기 싫은 것들 투성이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틈이었죠. 너무나 즐겁고, 너무나 짧아서 아쉬운 빈틈 말이죠. 그래서 그게 너무 좋았던 거예요. 한순간의 작은 빈틈이라서 말이죠.


 하지만 하루가 완전 통째로 내것이 되어버린다면 그 작은 빈틈을 기다리며 사는 낙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인생 전체가 빈 캔버스가 되거든요. 그순간부터는 노는 것도 일...'계획을 세워서 해야만 하는' 스트레스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결국 자유로운 인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엿같은 허상인 거예요. 인간은 늘 무언가는 해야 하거든요. 늘 무언가를 하던가, 무언가에 매달려 있어야만 돌아버리지 않고 살 수 있는거예요.



 3.노는 게 일...의무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미쳐버릴 거고 일하면 좆같을 거니까요. 그러니까 가만히 있지도 않고 일하는 것도 아닌 그나마 할 수 있는 것...노는 걸 하는 거예요. 좋아서 노는 게 아니라, 미치기도 싫고 좆같기도 싫어서 그냥 노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노는 건 당연히 재미가 없죠. 왜냐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아니라, 그나마 덜 좆같은 걸 골라서 할뿐인 거니까요.


 어쨌든 알고보니 나는 노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거예요. 위에 썼듯이 힘든 스케줄과 힘든 스케줄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해방이라서 좋게 느껴졌을 뿐인 거죠.



 4.휴. 



 5.어쩌면 이건 내가 마음이 피폐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죠. 인생에 의무만이 가득할 때는 그 의무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막상 의무들이 사라지니 알게 됐어요.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걸요.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이라면 자유롭지 못하게 살 때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과정을 즐기며 살 수도 있겠죠.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이 자유롭게 살게 되면 즐겁게 먹고 즐겁게 사람을 만나고 즐겁게 생산적인 취미 생활을 하며 살 수 있을거고요. 적은 돈으로도 즐거움을 느끼고, 도서관을 다니거나 카페를 다니거나 이곳저곳을 유목하거나 여행을 다닐 수도 있겠죠. 그들은 풍족하지 않아도 풍요롭게 살 수 있게 태어난 사람들일 테니까요. 한데 나에겐 불가능한 일들인거예요.



 6.하긴 위에 '다른 사람이 채워주지 않는 구덩이.'라고 쓴 것에서 다들 알겠지만 내겐 친구가 없어요. 친구가 많은 사람들은 그렇거든요. 친구들에게 불려 다니느라 바쁘단 말이예요. 딱히 스스로 오늘 스케줄을 세우지 않아도, 자신을 불러 주는 사람들 중 하나를 골라서 시간을 보내면 되거든요. 그런 사람들은요.


 하지만 내겐 친구가 없다 이거죠. 왜냐면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게 됐거든요.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거느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란 말이예요. 그래서 친구라고 할 만한 인간들은 다 떨어져나가게 됐죠. 그때까지 친구였던 사람들 중에 누가 내게 거느려지고 싶겠어요?


 친구들이 없어지니 허무하긴 한데 솔직이 말해 다시는...사람들과 어울리는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척을 해야만 하며 살던 시절 말이죠. 사람들이 나를 마음껏 싫어할 수 있도록, 그들이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마음껏 보여줘도 되는 지금의 생활이 더 낫거든요. 좋은 건 아니지만, 더 나아요. 



 7.하지만 문제는, 스스로 스케줄을 세워야 하는 신세가 된거죠. 친구가 딱히 없으니까 누군가가 나를 위해 스케줄을 만들어 주지 않거든요.


 그리고 내가 스케줄을 만든다고 해도...내가 환영받지 않는 곳에 가는 건 정말 싫어요. 내가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 가서 그곳에 오도카니 있는 것...그건 슬프고 비참한 일이니까요. 뭐, 누구의 친구도 아닌 사람이 어딘가에서 환영받으려면 어쩔 수 없죠. 돈이 많이 들어요.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이예요.


 전에 썼듯이 그렇거든요. 세상은 아무것도 아닌 남자를 그냥은 좋아해 주지 않는다고요.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남자를 환영받는 남자로 만들어 주는 건 둘중 하나 뿐이거든요. 그가 가진 생산성이거나 또한 그가 가진 구매력이죠.



 8.그래서 요즘은 열심히 살거라는 말을 자주 하는 거예요. 일이나 하려고요. 


 왜냐면 놀면 노느라 돈이 계속 줄어들잖아요? 그런데 돈을 벌면 그 시간 동안 돈이 줄어들지는 않거든요. 어차피 일하는 것도 노는 것도 심심함을 때울려고 하는 일이니까, 일하는 것도 의외로 나쁘지는 않아요. 노는 건 아무리 잘 해도 필연적으로 돈이 줄어들지만, 일이란 건 잘만 하면 돈이 늘어나잖아요?


 내가 싫어하는 건 일을 했는데도 충분한 돈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지, 내가 일 자체를 싫어하거나 나쁘게 여기는 건 아니더라고요. 아마도요. 아직 나도 나에 대해 확실히 아는 게 아니라서...지금까지 알아낸 건 이 정도예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선망하는) 줄 알고 살았으니까요. 하지만 아니었던거죠. 열심히 살다 보면 새로운 나를 좀더 알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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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심하네...오늘은 뭘하죠? 스케줄을 짜봐야겠죠. 번개를 치고 싶지만 오늘은 무리예요. 왜냐면 번개를 치면 번개에 나와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최대의 친절함과 최대의 사교성을 발휘해야 하거든요. 하지만 오늘은 '친절함 게이지'와 '사교성 게이지'가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는 상태예요. 그래서 번개를 칠 수 없어요. 나를 만나러 나와 준 사람들의 기분을 좆같이 만들면 안되잖아요?


  그러니까 오늘은...내가 기분을 좀 좆같이 만들어줘도 되는 녀석들을 만나야 하는 날이죠. 빌어먹을 돈을 좀 써야 한단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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