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기...(마감과 번개)

2019.03.03 00:07

안유미 조회 수:599


 1.목요일까지 작업을 한다고 했지만 역시...마감은 연장되는 법이죠. 오늘까지가 마감이었어요. 작업과 시간, 효율의 상관관계란 게 참 그래요. 2~3일 가량이라도 남았을 때는 여유가 있거든요. 지금 가진 시간 중 5분은 잠깐 동영상 하나 보는 데 쓸 수도 있고, 10분은 인터넷 커뮤니티 하면서 농땡이 피는 데 쓸 수도 있고 20분쯤은 잠깐 나가서 산책하는 데 쓸 수도 있어요. 작업을 하면서도 아주 조금씩의 낭비쯤은 늘 있는 법이예요.


 그러나...일 단위가 아니라 시간 단위로 남은 기간이 줄어들어 버리면? 그리고 두 자릿수 시간에서 한 자릿수 시간으로 줄어들어 버리면? 그때부터는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미친듯이 돌아가기 시작해요. 남아있는 작업량과, 자신이 작업해낼 수 있는 최대 작업속도가 디테일하게 계산이 되는 거죠. 그게 계산이 되는 영역에 진입하면 간식 하나를 먹거나 스트레칭 한번을 하는 것조차도 시간이라는 리소스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자각하게 되죠. 마감까지 얼마 남지 않게 되어서 너무나 귀중해져버린 시간 말이죠.


 

 2.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게 있어요. '자신의 작업해낼 수 있는 최대 작업속도=남아있는 작업량=남아있는 시간'이렇게 삼위일체-trinity-가 되는 순간, 나는 신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과장이 아니라 진짜로요. 


 지금 남아있는 시간 동안 지금 남아있는 작업량을 나의 최대 작업속도로 수행해내면 정말 아슬아슬하게 마감에 맞출 수 있다는 사실...그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그 시간동안은 나의 인간성은 사라지고 신성만이 남는 거죠. 작업의 신이 되는 거예요. 아니 정말로요. 그 흐름이 시작되면 작업이 끝나는 순간까지는 정말 1초도 낭비될 수 없는 순간들이 연속돼요.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동작들...생수 뚜껑을 돌려서 열고 물을 마시는 동작도 아까워서 생수 뚜껑은 아예 열어놓고 물을 마시고, 식사따윈 당연히 안 하죠. 


 왜냐면 그 순간엔 너무나 귀중하게 되어버린 시간이라는 자원...그 자원을 물병을 열거나 식사를 하는 데 지불할 수가 없게 되어버리니까요. 평소에 별생각 없이 들어가던 커뮤니티들...별생각 없이 켜놓고 짬짬이 클릭해주는 휴대폰 게임...이런 건 없어요. 오직 작업만을 하는거죠.



 3.물론 이 아슬아슬한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선 작업이 계속 진행되어야 해요. 시간은 아무것도 안 해도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그에 비례해 남은 작업량이 계속해서 줄어들어야만 '지금 계속 열심히 하면 간신히 마감을 맞출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계속해서 성립시킬 수 있으니까요. 이 흐름을 놓쳐버리고 몇 분이라도 농땡이를 피워버리면 갑자기 거대한 파도가 밀어닥치듯이 맥이 탁 풀려 버리는 거예요. 


 지금부터 최대 작업속도를 계속 유지해도 데드라인을 맞출 수가 없다라는 사실...그 엄중한 사실이 나를 덮쳐오면 맥이 탁 풀려버리고 다시 평소 모드로 돌아가서 무의미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클릭하고 있는 내가 되어버리는 거죠. 어차피 마감에 맞출 수 없다...포기해야 하나...아니면 시간을 더 달라고 변명을 하야 하나...시간을 더 달라고 하는 것보다는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폼나지 않나...같은 생각들을 하면서요.


 하지만 잠깐...아주 잠깐 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계산해보면 역시 가능...! 예비 탱크까지 소모해서 작업속도를 120%로 하면 아직 괜찮다...아직 마감에 맞출 수 있다...지금 당장 시작하면 가능하다! 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곤 해요. 그럼 다시 작업의 신이 돌아와서 초고속으로 작업하게 되는 거죠.


 

 4.휴.



 5.그러다 보면 갑자기 한계를 넘는 순간이 오곤 해요. 내가 아는 나의 최대속도...툴 하나를 고를 때 낭비되는 시간, 단축키 하나를 누를 때 낭비되는 시간, 선 하나를 그을 때 낭비되는 시간, 말풍선 하나를 그릴 때 낭비되는 시간, 네모칸 하나를 넣을 때 낭비되는 시간...이렇게 아주 조금씩 누수되는 시간들 속에서 손의 속도가 조금씩 조금씩 더 빨라지게 되는 거예요. 엄청난 속도로 툴을 바꾸고 엄청난 속도로 단축키를 누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어떤 거슬림이 느껴지기 시작해요.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컴퓨터의 렉 같은 거 말이죠. 단축키를 누르거나 C+Z를 눌렀을 때 곧바로 반응하지 않는 아주 잠깐...0.1초정도 되는 시간도 거슬리기 시작하는 거죠. 얼마 안 남은 황금같은 시간이 아주 조금씩 누수되는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며 작업하는 단계에 들어간 거예요. 



 6.물론 인간의 몸도 기계와 같아요. 하드웨어적으로도 소모되고 소프트웨어적으로도 소모가 되죠. 하드웨어적인 부분은 자면 나아지지만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은 글쎄요. 이건 컴퓨터에서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켜놓고 계속 돌려대는 것과 같거든요. 휴식을 취해야만 할 타이밍에는 반드시 취해야만 하는 거예요.


 여기서 가끔 실수하는 게 쉰답시고 영상을 보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하는 거예요. 일상적인 생활중이라면 이것도 괜찮아요. 하지만 극한의 마감 작업 도중에는 완전 패착이죠. 평소에는 못 느끼지만 컴퓨터를 계속 한다는 것 자체가 인지자원을 계속해서 소모하는 거니까요. 확실하게 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컴퓨터를 한다는 상황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피트니스에 가서 마구 뛰거나 하면? 그것도 패착이예요. 그렇게 하면 뇌는 리붓될수도 있겠지만 진짜로 운동을 하면 피로가 쌓여버리니까요. 그러니까 여기서 제일 좋은 건 사우나겠죠. 피트니스에 가서 운동은 안 하고 사우나만 갔다오는 거예요.


 평소에 매일 사우나에 갈 때는 잘 못느끼지만 이렇게 피곤할 때 사우나에 가면 사우나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게 돼요. 아주 배고플 때는 주먹밥 하나만 먹어도 감사한 것처럼요. 옛날 로마인들이 대중목욕탕을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7.하지만 이렇게 사우나에 가는 건 비유하자면 레이싱에서 피트인하는 것과도 같아요. 수백 킬로로 달려야 하는 레이싱에서 그 귀중한 시간을 빼가면서 타이어를 교체하는 건 결국 여유가 있을 때나 하는 거니까요. 남아있는 시간이 일 단위가 아니라 시간 단위가 되어버리면 이런 것도 무리...타이어가 녹든 마모되든 프레임이 삐걱거리든 달리는 수밖에 없어요. 


 그래요. 마감이 24시간 가량 남았을 때부터는 여기서 잠깐 나가거나 한숨 자거나 하는 것도 어불성설...그냥 나아갈 수밖에 없는 거죠.


 어제는 마지막 24시간을 작업하면서 밤을 샜어요. 완전히 샌 건 아니고, 아침에 전략적으로 한시간 잤어요. 7시 반에 자서 8시 반에 일어나서 다시 작업하려고 누웠죠. 8시 반에 정신을 차리긴 했으나 도저히...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30분 더 잤어요. 그렇게 1시간 반쯤 잤는데 물론 긴장감때문에 계속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잤어요.


 그리고 지금...이때쯤 되면 매우 피곤해서 푹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졸립지가 않아요. 마라톤으로 치면 2nd윈드 영역에 와버린 거죠. 귀찮게도 말이죠. 쳇.



 8.누군가는 이럴 수도 있겠죠. '뭔가...그럴듯한 소리를 주워섬기고 있지만 평소보다 하루만 더 먼저 작업을 시작하면 그런걸 안 겪어도 되잖아?'라고요.


 하지만 무리인 거예요! 아무리 이른 시간에 작업을 시작하려고 해도 맥이 탁 풀린단 말이죠. 지금 작업을 해봐야 너무나 안전한 상황이라는 걸 뻔히 아는 상태니까요. 


 예를 들어서 초원에서 사자와 마주쳤다고 쳐요. 한 3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요. 사자가 이쪽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오지만...나는 아직 도망치지 않고 있는 거죠. 왜냐면 아직 안전하니까요. 사자가 한 30m 앞까지는 와야 그제서야 일어나서 도망칠 마음이 드는 것과 비슷한거예요. 마감도 비슷한거죠. 뭔가...위험이 감지되지 않는 영역 안에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가 않거든요. 위험이 감지되는 영역에 진입해야만 작업의 능률이 마구 올라가는 거죠.



 9.이제 다시 인생이 심심해졌으니까 번개나 하죠. 신도림역에 있는 문어부인삼교비가 가고 싶네요. 삼겹살...시원한묵사발...무한리필 계란찜! 그 모든걸 냠냠쩝쩝 하고 싶다 이거죠. 여러분도 그렇죠? 누가 좀 사줬으면 좋겠어요. 문어부인삼교비 삼겹살 셋트 좀 사줄사람 없나요? 사줄사람이 오면 번개하기로 하죠. 


 번개에 올 사람은 여기로. https://open.kakao.com/o/gJzfvB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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