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앞서, 일단 김의겸은 짜증나는 놈이예요. 그가 속한 조직에 최악의 모양새로 엿을 먹였죠.


 하지만 뭐...인간따위에게 뭘 기대하겠어요? 전에 썼듯이, 인간들은 나이가 들면 같잖은 깨달음을 하나 얻게 되죠. 자신이 온갖 발버둥을 쳐봐야 이 세상을 나아지게 할 수는 없다는 거...최선을 다해봐야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신세뿐이라는 깨달음 말이죠.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버리고 어느 순간이 되면 인간은 그 깨달음을 실천으로까지 옮기게 돼요. 그러지 않은 사람은 어느쪽일까? 차마 그러질 못했던 걸까? 아니면 그냥 그럴 기회가 없어서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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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한데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내겐 김의겸의 행동이 잘 이해가 안 가요. 그야 김의겸이 쓴 글들을 보면 좀 이상한 글도 쓰면서 살아왔지만, 그 정도쯤은 신념이었던 거라고 둘러칠 수도 있고 그럭저럭 가오는 지키며 살았잖아요? 


 사실 뭔가를 한탕 해먹을 거라면 지금까지 해왔던 기자 생활중에도 해먹을 수 있었을거예요. 하지만 글쎄요? 



 2.확실하진 않지만 드러난 정보들을 보면, 김의겸은 투자라던가 투기 같은 것과는 별 인연이 없는 삶을 산 것 같아요. 도덕적이어서 라기보단...투자나 투기를 저지르는 역치 자체가 엄청 높은 사람이라서, 김의겸에게 투자에 대한 확신이나 설득력을 가지게 할 만한 기회가 없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는 돈이 모이면 그냥 저금하고 해서, 맞벌이 부부생활로 9억 가량의 총알을 모아둔 상태였던 것 같아요.


 한데 여기서부터가 좀 이상해요. 투자나 투기 같은 것과 무관한 삶을 살아오던 사람이 그 나이에 갑자기 풀레버리지를 땡겨서 단 하나의 매물에 올인을 한다? 이런 짓은...이게 옳은 투자든 아니든간에 아무나 저지를 수 있는 짓이 아니잖아요. 안 그러던 인간이 이 정도의 호기를 발휘하는 건 둘 중 하나예요. 미쳤거나, 정말 절대적인 확신이 있거나죠.


 9억원에 플러스 알파의 대출...이건 말 그대로 그 부부가 살아오며 하루하루 아껴왔을, 모아왔을 인생 전체를 농축한 정수란 말이예요. 평생 열심히 살아온 한 남자가, 그간 누적해온 결과물을 몽땅 걸고 환갑 가까이의 나이에 처음으로 풀스윙을 감행해본 거란 말이죠. 김의겸이 나쁜 놈이든 아니면 존나 나쁜 놈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어쩌면 그는 그 순간...환갑 가까이의 나이가 될 때까지 평생 구경해본 적 없는, 최고로 만만한 직구가 스트라이크존의 정중앙을 향해 들어오는 걸 봐버린 걸지도요. 남자라면 온 힘을 다해서 혼신의 스윙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직구를...



 3.한데 이 정도로 확신에 찬 풀스윙을 해봤자...사실 그가 산 건 25억짜리 병신같은 흑석동 건물일 뿐이란 말이예요. 솔직이 말하면 이 정도 사이즈의 축재는 어지간한 놈이라면 다 저질렀을걸요. 야금야금 저질렀던 몇 번에 걸쳐 저질렀던간에. 그리고 딱히 문제삼아지지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위에 김의겸이 존나 나쁜 놈이라고 쓴 건...결국 김의겸이 한 짓거리와 타이밍이 최악이기 때문이예요. 좀 수상한 돈이긴 하지만 훔친 돈은 아닌 돈으로 고작 부동산 하나 사는 행동...이 정도 스케일의 축재는 타이밍에 따라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겠죠. 한데 하필 그가 몸담은 조직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타이밍에 저지른 거예요. 가장 그러면 안되는 타이밍...하이에나들이 가장 좋아할 타이밍에. 



 4.휴.



 5.어쨌든간에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정말 이해가 안된다는 거예요. 김의겸 건에 대해 기사에서 자극적으로 쓴 문구들을 보면 '35억' '40억'같은 표현들이 나와요. 그런데 내가 확인한 기사들 중에 40억을 넘는 숫자가 쓰여진 기사는 없어요. 40억이 제일 큰 숫자였어요.


 이 말을 반대로 하면 저 투자가 정말 스위트스폿에 작렬하고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골든크로스가 이뤄져도, 저 투자의 한계점...맥시멈은 40억으로 끝난다는 뜻이예요. 아니...기사들이 자극적으로 쓰여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개발이 끝난 뒤에도 절대 40억까지는 안 갈걸요. 


 저 40억에서 조미료를 좀 빼고 최대한 부풀려서 생각해 봐봤자 결국 김의겸의 손에 떨어지는 건 35억쯤일 거라고 생각해요. 이거저거 뗄거 다 떼고 최상의 조건을 생각해 봐도요.



 6.문제는 이거예요. 350억이 아니라고요. 35억이란 말이예요. 현금조차도 아닌 35억 말이죠. 위에는 '인간이 발버둥쳐봐야 바꿀 수 있는 건 제 신세뿐.'이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정말 김의겸이 평생 쌓아온 체면과 가오가 그에게 35억밖에 안 된단 말인가? 350억이면 그냥 들켜도 에라 모르겠다 하고 질러도 이해하겠는데 35억을 얻기 위해 그걸 다 내던졌어야 했나라는 의문이 들어요. 정말 김의겸은 그 결정을 내리는 순간...김의겸 자신이었을까?


 아니 왜냐면 35억은 어떤 사람의 신세를 좋게 바꿔주는 돈이 아니란 말이예요. 어떤 사람의 신세를 좀 덜 좆같이 바꿔줄 수는 있어도 좋게 바꿔줄 만한 사이즈의 돈이 아니란 말이죠. 특히 그 사람이 무슨 가난뱅이도 아니고 청와대 대변인 김의겸이라면, 본인도 본인의 삶의 질이 그렇게 나아지는 걸 못 느낄걸요. 이미 그럭저럭 괜찮은 삶의 수준을 누릴 거 아니예요? 거기서 '압도적으로 나아진' 수준의 삶을 체험하려면 그보다는 많아야 해요.


 하다못해 그가 살 부동산 하나 깔고 캐쉬로 35억을 땡겨주는 조건이면 또 몰라요. 하지만 글쎄요. 저건 절대로 캐쉬 35억이 되기 힘든 사이즈란 말이예요. 전해듣기로는 중대형 아파트 한채(또는 중소형 두채)에 상가 한 칸 받는 조건인 것 같은데, 아파트 한 채는 본인이 깔고 살아야 하고...상가는 그냥 월세 받아먹기 용으로 쓴다고 하면 글쎄요. 그게 평생 쌓아온 나름대로의 가오와 체면과 바꿀 만한 돈이란 말인가? 싶어요.


 게다가 김의겸 정도면 나중에 괜찮은 회사의 고위직에도 충분히 갈 수 있을 사람인데...그러면 어찌저찌해서 아파트 한채에 적당한 노후 생활비도 챙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예요.



 7.아니 그야 이럴 수도 있겠죠. 저렇게...모든 것을 한 번의 스윙에 담은 풀스윙을 휘두르는 걸 안 들키고 넘어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못된 짓을 저지른 거라면 김의겸은 나와 완전히 정반대인 사람일 거예요.


 왜냐면 나는 그렇거든요. 나쁜 짓을 감행할 때 한번 생각해 봐요. '이 일을 저지르면 들킨다. 모두에게 알려지게 된다. 저지르더라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저지르자.'라고요. 


 그렇기 때문에...들켰다간 너무나 쪽팔릴 것 같은 나쁜 짓은 절대 안 저질러요. 왜냐면 멀리...아주 저 멀리서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오는 하이에나들의 발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거든요. 결국은 언젠가는 내 앞에 도달해서 나를 물어뜯을 하이에나들...그 하이에나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나는 나쁜 짓은 그만두는 거예요.


 하지만 김의겸에겐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걸까요? 아주 멀리서부터...냄새맡고 김의겸을 향해 미친듯이 신나게 뛰어오는 하이에나들의 발자국 소리가 말이예요. 정말 들키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 


 너무나 궁금해요. 정말 김의겸은 그 결정을 내리던 그 순간 김의겸이었을지. 대체 어떤 무언가가, 환갑에 가까운 남자에게 평생동안 안 하던 짓거리를 갑자기 저지르도록 만든 걸까...분노였을까?



 8.그러네요. 어쩌면 분노였을지도 모르죠. 그가 쓴...


 “이때의 곤궁이란 상대적 박탈감에 가까울 것이다. 난 전셋값 대느라 헉헉거리는데 누구는 아파트값이 몇배로 뛰며 돈방석에 앉고, 난 애들 학원 하나 보내기도 벅찬데 누구는 자식들을 외국어고니 미국 대학으로 보내고, 똑같이 일하는데도 내 봉급은 누구의 반밖에 되지 않는 비정규직의 삶 등등. 가진 자와 힘있는 자들이 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초원에서 초식동물로 살아가야 하는 비애는 ‘도대체 나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낳게 한다”


 이 문장만은 독자를 선동하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진짜 본인의 생각을 담았던 것 같았거든요. 아니...'생각'이 아니라 '감정'을 담았다고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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