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두서없이 쓰겠습니다 요새 장문을 쓰면 자꾸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이 영화는 완벽한 실패작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혹평 같지만, 사실 실패라는 걸 한다는 건 성공의 가능성을 전제한 말이니까 어느 정도 상찬이기도 하죠. 그냥 멍청한 상업영화들은 성공이나 실패란 개념도 없습니다. <극한직업>에 무슨 영화적 성공이 있겠어요? 그 영화에는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흥행만이 존재하죠. 그 영화는 500만이 더 봐서 2000만이 봐도 명백한 실패작입니다. 그에 비하면 <우상>은 이수진의 영화적 실패입니다. 사공이 많으니까 배가 정말 산으로 가버렸습니다.


정치적 공정함은 잠깐 좀 미뤄놓읍시다. 천우희씨가 조선족 칼잽이로 소모되는 걸 보면 정말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저 좋은 배우를 저렇게밖에 못써먹다니... 저도 이런 데 천의 아름다움 회원 사람들은 얼마나 원통했을까요? 뭐 팬이라면 "연기력"이라는 걸 즐길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아무튼 캐릭터 자체가 개판입니다. 천우희의 련화 캐릭터만 그런가? 아뇨. 설경구도 한석규도 모두 개판입니다. 현직 도지사가 갑자기 킬러 노릇을 하고 철물점 주인은 성자가 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포지션이 뒤죽박죽입니다. 그 결과 <우상>의 세계관에는 또라이밖에 존재하지 않죠. 엉엉 울면서 쩔쩔매다가 눈빛이 돌변해서 사람 죽일 생각을 하는 그런 미치광이들의 소굴이죠. 이런 건 입체성이나 다면적이라고 하면 안됩니다. 


현직 도지사인데 여자를 미행하고 납치해서 테이프로 꽁꽁 묶어놨다가 발톱 사이로 주사를 놓고 사람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습니다. 문제는 그 마음가짐이 아니라 능숙함에 있습니다. 이 순간 구명회는 청부살인업자처럼 보입니다. 그럴 수가 있을까요? 련화는 어떻습니까? 저는 련화가 사람 죽이는 전문 킬러인줄 알았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모든 인물이 잠재적 조폭이라는 한국영화의 클리셰를 빌려오기 때문입니다. 조선족 여자이면 다 그렇게 사람 죽이고 기분 나쁜 소리 했다고 기어이 복수하고 마는 그런 사람이 됩니까? 다른 영화와 비교하는 건 별로 정확한 해석은 아니지만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영화는 그렇게 좌충우돌 하면서도 목적지를 잃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자기 딸이 죽은 걸 안 다음에도요. 목적이 분명하거든요. 내 딸은 어디에 있는가, 내 딸은 왜 죽었는가. 찾을 답이 뚜렷하니 빙빙 돌아도 앞으로는 나아갑니다. 그런데 <우상>은 어떻습니까? 영화가 어디로 왜 흘러가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우상입니다. 그리고 우상이 가리키는 인물은 명확하게 한석규가 연기하는 구명회입니다. 설경구의 중식은 억지로 우상을 섬기게 되는 사람이고요. 련화는 우상에 속지 않는 사람 정도가 될 것입니다. 영화가 우상의 몰락과 거짓으로 부활하는 걸 그린다면 우상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영화는 장르를 추구한답시고 련화를 찾는데에만 체감상 러닝타임의 반을 소진합니다. 관객은 련화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이유도 정확히 모르고서 계속 그의 흔적을 추적해야 합니다. 그것도 명회는 명회대로, 중식은 중식대로 두 라인으로 나눠져서 각자 찾아다닙니다. 련화는 우상이 아니고 딱히 우상의 의미를 설명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냥 뺑소니 사건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증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일 뿐이죠. 그가 어떤 증언을 할지도 영화에서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련화 어딨어 련화 아세요 하면서 지긋지긋하게 련화를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찾아냅니다. 만났어요. 그럼 무슨 일이 생기냐구요? 별 거 없습니다. 오히려 뺑소니 사건의 진상은 련화와 상관없는 영상분석으로 짠 하고 확정됩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습니다. 그 사건의 진상이 완전히 드러나든 말든, 우상으로서의 구명회가 저지른 짓은 이미 진상 전에부터 망가져있다는 겁니다. 우상의 의미를 질문하는 이 영화에서 반전으로 드러나는 진실은 우상의 권위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거 아닙니까? 구명회는 이런 사람인줄 알았는데 훨씬 악당이었다! 하는. 그런데 그게 별로 상관이 없어요. 이미 구명회는 그 전에 납치와 살인을 자행하면서 본인이 얼마나 타락한 인간인지 낱낱이 고백했거든요. 정확히는 영화가요. 그리고 그걸 우상을 의심하고 파헤치는 중식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또 한번 발견하는 겁니다. 


네... 이 영화에는 발견이 너무 많습니다. 사실 넌...!! 사실 넌..!! 넌 정말..!! 아 뭐 어쩌라고요. 실망을 거듭하면 충격도 더해집니까? 심벌즈는 한번만 쳐도 됩니다. 뭘 자꾸 울려서 피곤하게 만듭니까? 그 과정에서 이수진은 계속 이야 이거 끔찍하다!! 하면서 사람 육신을 가지고 별의별 장난을 다 쳐놓습니다. 영화가 쎄다는 건 그렇게 피랑 살코기로 막 화면에 늘어놓는 정육점 광고로 되는 게 아닙니다. <시카리오> 보십시오. 그 영화에 시체 별로 안나옵니다. 믿음과 배신의 관계에서 왜 자꾸 사람 몸으로 뭔가를 설득하려고 합니까? 굳이 누가 누구를 죽인다는 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중식이 말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부남이 자식 아닌 건 알았어. 왜냐하면 내가 잘랐거든. 아무 의미도 없는 신체훼손의 강박입니다. 련화가 부남이랑 섹스를 안했다고만 해도 충~~~분 합니다. 중식이 연단에 서서 구명회를 지지할 때 뜬금없이 자위행위 이야기를 하죠. 노동자 혐오입니다. 배운 것도 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창피한 줄 모르고 딸딸이 치는 이야기나 대뜸 할 거라는 거죠. 개소리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오히려 없는 사람들이 더 움츠리고 교양을 보이려고 애를 씁니다. 이수진은 아주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이런 사람들은 이렇게 막나갈 것이다, 라면서 사회적 계급의 편견을 고대로 투사합니다. 


중식이 이순신 상의 목을 폭파시킨다는 설정도 좀 따져봅시다. 그는 왜 굳이 그런 짓을 합니까? 그럴만한 동기가 없습니다. 부남이 아들이라고 믿기로 했던 련화 뱃속의 아이가 칼부림 이후 버려졌으니까? 아무리 맹목적이고 복수를 하고 싶어도 그렇죠. 구명회를 엿먹이기 위해서 그렇게 이순신 동상 목을 따는 짓을 한다구요? 이수진은 인간을 인간으로 보질 않습니다. 파국의 결말을 위해 복선을 성실히 실천하는 꼭두각시들로만 보죠.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으신 분 목을 제가 따야된대요. 그 대사 하나 때문에 중식은 아무 의미도 없고 오로지 영화 바깥의 관객들만을 위한 미쟝센의 노예가 됩니다. 이순신 장군의 모가지 없는 그 황당한 장면에서 저는 순간 <우리 손자 베스트>를 보는 줄 알았습니다. 그 영화도 막나가긴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교환 나름의 논리가 있거든요. 


련화는 왜 죽습니까? 곰곰히 따져봅시다. 련화는 사람들을 확 죽여버립니다. 그런데 그건 성깔머리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남을 희생시켜서라도 살아남는 생존본능에 가깝죠. 그런데 이수진은 이걸 어떻게 그려놓습니까? 성깔머리 무시무시한 조선족 킬러로 완성시킵니다. 련화는 자기를 납치해서 죽이려했다는 인물이 구명회인 걸 알고 복수하러 옵니다. 구명회의 아내는 묶어놓고, 어머니는 입에 잔뜩 뭘 쑤셔서 죽여버렸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기상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구명회 앞에서 협박을 한 다음에 가스관을 터트려서 자폭해버립니다. 니 죽고 내 죽고의 무대뽀 정신밖에는 없는 인간인 겁니다. 이 영화의 모든 인간들이 다 그렇습니다. 도덕이고 욕망이고 다 없고, 아무튼 건드렸으니까 끝까지 가보자는 똘끼만 가득합니다. 련화가 왜 죽어요 죽기는. 그렇게 악랄하고 남자 죽이면서 자기 명줄 잡아온 여자가? 당연히 또 한번 살려주라고 하고, 하다못해 협박으로 돈이라도 뜯어내려고 하겠죠. 그런데 그냥 죽여버립니다. 살아있으면 영화가 뭐가 안되거든요. 


곰곰히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공주>를 찍었던 이수진이 왜 이런 영화를 찍었을까. 이 영화는 <한공주>의 후속편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진짜로 그렇다는 게 아니라, 감독의 세계 안에서 <한공주>의 이야기가 변주되어서 나온 후속작이라는 뜻입니다. <한공주>는 성폭행 피해자의 생존기처럼 보이지만 그 폭력의 종류를 넘어가면 거기에는 지독한 가해자들과 피해자들이 있습니다. 이를 한공주의 시점에서 보면 아주 피학적인 이야기가 되죠. (그래서 <한공주>를 말할 때 가장 논란이 되는 그 성폭행 장면을 이수진은 기어이 넣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피학을 완성해야 하니까요. 그에게는 윤리보다 고통을 통한 세계의 이해가 더 절실하니까요) <우상>은 <한공주>에서의 일방적 흐름을 쌍방으로 바꿔본 영화입니다. 한공주는 그저 당하고 도망치기만 했었지. 하지만 가해자들에게 맞선다면 어떨까? 그 일방적이던 성폭행범들이 다음 영화에서는 고스란히 당하면 어떨까. 구명회는 속죄를 하면서 피해자의 입장이 되는 듯 하지만 점점 적극적인 가해자가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본인의 폭력에 대한 카르마를 확실하게 되받습니다. 중식은 피해자입니다. 그는 영화 초반 가장 거칠게 나오면서 가해자로 돌변할 것 같지만 오히려 또 다른 피해자이자 약자인 련화를 구원해주는 인물(<한공주>에서 하숙집 아주머니의 역할)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본인 스스로 변절을 택하고 거래로 단죄를 포기하는 인물이기도 하죠. 련화는 누구입니까.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기어이 되돌려주는 인물입니다. 이 영화에서 아무도 하지 못하는 복수의 자격을 갖춘 자이자 되로 받으면 말로 돌려주는 카르마의 집행자죠. 이 영화에는 피학과 가학이 왔다갔다 합니다. <한공주>에서 한공주를 일방적으로 짓누르기만 하던 에너지를, 이수진은 다음 영화인 <우상>에서 세 인물 사이에 계속 오고가게 만들었습니다. 이 전편에서는 공주가 하지 못했던 복수와 속죄를, <우상>에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로 주고 받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의미를 우상이라는 제목까지 끌고 가는데 실패합니다. 왜냐구요? 우상은 최고로 일방적이고 위를 향해 솟구치는, 궁극의 매저키즘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만들어지거나 고꾸라지는 이야기에 그렇게 탁구처럼 핑핑 오가면서 왔다갔다 하는 이야기는 필요가 없습니다. 대상을 향하는 그 경외심이 더 굵고 진해지거나, 아니면 흩어지고 맹탕이 되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우상>은 우상이 뭔지 설명을 하지 못하는 영화입니다. 쓸데없이 한국사회의 어떤 면들을 풍자한답시고 어떤 조각들은 쑤셔넣었지만 이 영화의 본질은 전혀 담지도 못했습니다.


@ 천우희 배우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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