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봉 감독님의 몇년 전 인터뷰의 고양이 살해충동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군요.
근데 실행되지 않은 한마디 죄악의 말로 인성 전체를 규정하는 일부 여론이 저는 좀 의아합니다. 프로이트가 그랬던가요?  때로는 실언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뭐 모든 해석이 옳은 건 아니니 저는 다만 그 발언을 기억해둘 뿐입니다.

2. 그냥 고양이에 관한 이런저런 기억이 떠올라서 가볍게 써봐요.
저를 제외한 전 가족이 동물애호가라, 독립하기 전까지 아기송아지 만한 덩치 큰 개들과 여러 종류의 고양이와 파충류, 물고기들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마당 너른 단독주택이라 가능했음.)
다른 생명체엔 거부감이 없었는데, 막내가 고양이를 입양하자는 건의를 처음 했을 때 저는 결연히 일어나 반대!를 외쳤더랬습니다. 이 세상 너머를 투시하고 있는 듯한 냥이들 특유의 무당 같은 눈빛이 무서웠거든요. 하지만 우리집은 투표로 모든 사안이 결정되는 시스템이라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식구로 맞게 되었죠.

살아보니, 고양이는 신기한 생명체였습니다.  성격이 독립적이면서 한편 의존하는 균형감각을 묘하게 유지하는 성향이더라고요. 같은 고양이과 동물이라도 사자나 호랑이는 인간과 분리되어 살 수밖에 없는데 냥이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인간과 밀당하며 살 수 있는 동물이죠.  그들을 볼 때마다 '성격이 운명'이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 이해됐어요. 작은 몸집의 그들의 세계가 인간 세계와 단단하게 공존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느꼈고요. 몽테뉴가 통찰했 듯 철학자의 위상을 느낄 만한 동물이었습니다. 
"철학자가 한 마리 고양이와 논다. 그러면 그 철학자가 그 고양이와 놀아주는 걸까, 그 고양이가 철학자와 놀아주는 걸까?" - 몽테뉴.

철학자와 놀아주는 고양이, 라는 게 무슨 뜻일까요. 집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미죠. 그들은 어루만지려는 집사의 손을 자주 탁 치고는 도망가버립니다. 성깔이 나빠서가 아니라 성격이 그런 생명체더군요. 그러다 집사가 다른 일에 몰두해 있으면, 그 몰입의 삼매경이 아름답다는 듯 제발로 다가와서는 몸을 부비부비대요. 비트겐슈타인의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는 것에서 철학은 시작된다."는 말에 가장 부합되는 성격을 가진 동물입니다. 더불어 살아보니,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게 철학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저도 하게 됐.... -_-

3. 제목이 기억 안 나는데, 고양이 살해를 다룬 소설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산에서 새를 사냥해왔는데, 동네 고양이가 따라다니며 그 새를 달라고 자꾸 칭얼대자 그 냥이와 대치하게 돼요. 옥신각신하다 냥이에게 몸을 긁히고 피를 보는 순간 주인공은 고양이를 죽여버립니다. 근데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돼요. 고양이 주인은 자식을 잃고 냥이와의 생활이 삶의 모든 낙이었던 노파였거든요.
기억이 희미한데, 작가는 주인공의 고양이 살해를 '자연지배 욕구/의지'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연이 자기에게 반항하거나 방해하는 건 용서하지 못하는 자연지배 의지. 이해받기 어려운 그런 개인 강박은 결국 비극으로 마감하고 만다는 걸 보여줬죠.

4. 언젠가 독일에서 고양이가 아파트에서 추락해 죽은 게 사건화 돼 재판에 붙여진 적이 있었어요. 한 아파트 발코니에 길고양이가 들어와 거기에다 배변하자 주인이 격하게 쫓아냈는데,  두려움을 못 이긴 고양이가 12층에서 스스로 뛰어내린 사건이었죠. 법원은 그 주인에게 동물학대 죄를 적용해 이천 유로의 벌금을 물렸습니다. 모든 동물이 인간과 동등하게 법적 대상으로 보호받고 있음을 절감했던 사례였어요.

5.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봉 감독의 저 실언을 접하는 순간,  까뮈의  <이방인>한 단락이 떠오르더군요 .어머니의 죽음 후, 뫼르소가 태양 때문에 아랍인에게 방아쇠를 당긴 상황 말이에요. 굳이 책을 뒤적여 타이핑해봅니다.

" 엄마 장례를 치르던 날과 같은 태양이었고, 그때처럼 유달리 이마가 아팠다. 이마 아래 흐르는 모든 혈관이 거칠게 뜀박질했다. 불타는 태양을 더는 견딜 수 없어 한걸음 앞으로 나갔다. 어리석은 짓인 건 알았다. 한 걸음 움직인다고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한 걸음, 딱 한 걸음 앞으로 갔다. 그랬는데 이번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 않은 채 칼을 태양에 비추며 빼들어 내게 겨눴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되어 번쩍이는 긴 칼날처럼 내 이마를 겨냥했다. 그 순간 눈썹에 켜켜이 쌓인 땀이 단번에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터운 베일로 눈꺼풀을 덮었다. 

눈물과 소금 장막 탓에 눈앞이 안 보였다. 이마에서 퍼지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만 들렸다. 아직 나를 향하는 칼에서, 눈부신 검이 희미하게 튀어나왔다. 불타는 검이 속눈썹을 갉아먹고, 고통스러운 두 눈을 파고들었다. 그러자 모든 것이 흔들렸다. 바다는 타오르는 두터운 숨결을 내뿜었다. 마치 하늘이 불을 쏟아붓기 위해 활짝 열리는 듯했다. 내 존재 전체가 긴장했고, 손으로 권총을 쥐어 잡았다. 방아쇠가 뒤로 무너졌다. 매끈한 총자루 아랫부분이 느껴졌다. 

바로 거기서, 건조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됐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냈다. 내가 하루의 균형과 행복을 느꼈던 해변의 이례적인 고요를 깨뜨렸구나. 그래서 움직이지 않는 몸에다 네 발을 더 쐈다. 총알은 흔적도 없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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