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포드 v 페라리를 봤어요. 당대 최강자 페라리를 꺾기 위한 포드 엔지니어 & 레이싱 팀원들의 분투 이야기를 예상했는데, 거의 캐롤 셸비 & 켄 마일스 투톱의 드라마 + 레이싱 액션에 가깝더군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지만 왜곡도 좀 있었고요. 그래도 전설의 포드 GT40과 셸비 코브라 427 등 당대의 명차들을 볼 수 있어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영화 보고 와서 포르자 호라이즌 4로 GT40 간접체험... >_<; 

포드 v 페라리는 1965~66년 르망 24 대회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르망 24에 대해 조금 알아두면 좀 더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즐기실 수 있을 거에요. 그래서 르망 24 & 자동차 이야기나 약간... 

르망 24는 프랑스의 사르트 주의 르망에서 열리는 레이스 대회로 인기와 위상 면에서 지상 최대의 레이싱 이벤트라고 불립니다. 단일대회임에도 관람객이 70만명에 이르며, 내구레이스 대회인 WEC 시즌 산하에 있지만 오히려 WEC 종합우승보다도 르망 24 우승자를 더 높게 쳐줄 정도죠. 

르망 24란 대회 명칭이 뜻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말 그대로 르망에서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대회에요. 일반적인 레이싱이 거리를 정해놓고 더 빠른 시간에 통과한 차량이 우승하는데 비해, 르망 24 등 내구레이스 대회는 시간을 정해놓고 더 긴 거리(랩 수로 환산)를 달린 차량이 우승합니다.  단순히 빨리 달리는 게 아니라 24시간 동안 5,000 여 km를 고장 없이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극한의 내구력을 요하며 자동차 회사의 기술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대회 중 하나입니다. 대회 초창기에는 24시간을 혼자 달리는데 도전한 철인도 있었지만(혼자 23시간을 달리며 1위를 유지했지만 결국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로 리타이어...=_=;;), 영화의 배경인 1966년에는 차량 한 대를 2명이 번갈아 운전하도록 바뀌었고(영화에서도 마일스/흄이 번갈아가며 몰죠. 흄은 잘 나오지도 않습니다만;;), 현재는 다시 3명이 번갈아가며 운전 + 1명이 4시간 30분 이상 연속으로 운전 못함 + 혼자서 14시간 이상 달릴 수 없음으로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대회 출발 때 드라이버들이 차에 탄 채 시작하는 게 아니라 도로 반대편에서 대기하다가 깃발을 흔드는 순간 차로 뛰어가서 시동을 거는데, 당시엔 실제로 그랬다고 합니다. 포르셰의 시동키 구멍이 왼쪽에 있는 이유도 르망 대회 때 차에 타는 순간 왼손으로 시동키 + 오른손으로 기어 조작을 하여 빠르게 출발하기 위해서라고 하죠. 출발 방식이 저모양이다보니 차에 타기도 전에 드라이버들의 치열한 몸싸움 + 넘어지기라도 했다간 먼저 출발한 차들이 도로 위에 남은 드라이버들 사이로 질주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심심찮게 발생했고, 지금은 차에 타서 출발하는 걸로 바뀌었어요. 다만, 르망 24는 자동차 대회 뿐 아니라 바이크 대회도 있는데, 바이크는 여전히 뜀박질 스타트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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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망 24가 펼쳐지는 사트르 서킷. 레이스 전용 서킷이 아니라 일반 도로 구간도 포함되어있고, 전체 길이는 13.6km에 달합니다. 날씨가 오락가락할 때는 서킷 한쪽에선 비가 내리고 한 쪽에선 안 내리는 지랄맞은 경우가 펼쳐질 때도 다반사...=_=; 코스 북쪽에는 6km에 달하는 뮬산 스트레이트라는 세계 최장의 직선구간이 있(었)습니다. 1960년대 이미 이 구간에서 최고 350km/h를 기록했고, 89년에는 400km/h를 돌파. 그러나 90년 대회부터 안전에 대한 우려로 2km마다 시케인이 설치되어 예전만큼 미친 질주를 하진 못합니다 >_<; 영화에서 켄 마일스가 3분 31초의 랩 레코드를 세우는데, 평균시속 220km/h를 넘는 미친 속도. 그리고 24시간 동안 360랩, 약 4,900km를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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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르망 24의 우승자인 #2 포드 GT40 Mk-II. 1번 차량의 켄 마일스가 마지막 랩에서 의도적으로 속도를 줄이며 포드 1,2,3 피니시를 나란히 하는 진기한 장면을 만들었지만, 이 때문에 같이 들어왔던 팀 동료 브루스 맥라렌에게 우승을 빼앗기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 건 사실입니다. 다만, 이게 부사장 비비의 음모로 그려졌던 영화와 달리 셸비도 이 계획에 찬성했고(나중에 마일스가 우승을 뺐길 줄은 몰랐고, 이 결정을 후회한다고 하긴 했습니다), 마일스도 별 불만이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아닌 2번 차량의 맥라렌이 우승했다는 걸 알고 황당해하긴 했지만 나중에 그래도 포드는 자신에게 항상 잘해줬다며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그리고 마일스가 비비에게 밉보여 혼자 르망에 가지 못했던 영화와는 달리 켄 마일스는 1965년 르망 대회에도 참가해서 멕라렌과 함께 달렸고, 기어박스 고장으로 초반 리타이어했습니다. 마일스가 머스탱을 까서 비비가 탐탁찮아하긴 했지만, 영화처럼 대놓고 사이가 나쁘진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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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의 라일벌로 등장한 페라리의 SPA 330 P3(...이어야 하는데 사진은 P4 >_<;;). 65년 르망 대회에 2대 출전했지만, 모두 리타이어하고 말았습니다. 이후에도 포드가 66년~69년까지 르망 24를 4연패하며 페라리를 이기겠다는 목표를 확실히 달성했죠. 절치부심한 페라리가 67년 선보인 SPA 330 P4는 르망 타이틀을 탈환하는데는 실패했지만(2위), 미국을 대표하는 내구레이스 대회은 데이토나 24에서 우승하며 체면치레를 했습니다(412P와 함께 페라리의 1,2,3 피니시). 미국 회사인 포드가 유럽을 대표하는 르망 24를 차지하고, 유럽 회사인 페라리가 미국을 대표하는 데이토나 24를 차지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던 해. 영화에서 마일스와 셸비가 주고받던 대화처럼, 페라리는 다소 투박하게 생긴 포드 GT40에 비해 정말 섹시하게 잘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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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셸비 코브라 AC. 심장이상으로 레이서에서 은퇴한 캐롤 셸비가 만든 자동차입니다. 만들게 된 과정이 좀 웃겨요. 코브라의 섀시는 영국의 Ace라는 회사에서 만든건데, 섀시는 가볍고 진보적이었지만 엔진 성능이 형편없었습니다. 셸비는 이 차량에 미국제 대배기량 V8 엔진을 얹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돈이 없었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은 셸비는 봉이 김선달 수준의 사기 행각을 벌이는데, Ace를 찾아가서는 자신이 포드와 계약해서 고성능 엔진을 잔뜩 가지고 있다며 차량 섀시를 먼저 넘기라고 했고, 섀시를 받은 후 이번에는 포드를 찾아가서 포드 엔진을 얹을만한 끝내주는 차량을 찾았다며 계약을 제의합니다 =_=;; 1,000kg이 되지 않는 초경량 차체에 무지막지한 출력의 V8 엔진을 얹었으니(레이싱 버전은 지금 기준으로도 굉장한 수준인 490마력;;) 차가 미쳐날뛰는 건 당연했고, 그 성능에 감탄한 포드는 계약 체결. 이제 차만 잘 팔리면 그 돈으로 양쪽에 대금을 지불하면 되니 아무 문제 없는 거였지만, 문제는 셸비 생각만큼 차가 잘 팔리지 않았다는 것이죠 =_=;; 게다가 영국에서 넘어온 섀시에 포드 엔진을 얹고 껍데기를 씌우는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생산성도 극악. 영화에서 셸비가 같은 차량을 3명에게 팔아먹는다든가, 포드 임원이 왔다는 말에 기겁을 하다가 부품값 받으러 온 거 아니란 말에 안심하는 모습은 이 때문입니다. 나중에 포드에선 엔진 공급 재계약을 맺지 않았고, 셸비 코브라 AC는 1,100여 대만 생산된 후 단종되었습니다. 


현재에는 희소성 + 끝내주는 외양 + 당대를 앞서간 미친 성능(마력이나 0-60mph는 지금 기준으로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덕분에 미국인에게 가장 사랑 받는 전설의 레전드 차량으로 꼽힙니다. 


...시간이 늦었으니 대충 마무리.. >_<;; 글 읽어주셔서 감사 & 좋은 밤 되세요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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